입보리행론 7회차 후기

도라지
2022-04-29 00:57
61

 

"범청권청 설화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석존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각오는 있는가? 라고 묻고 있다. 석존의 가르침은 세간적인 욕망을 조금이라도 채우려는 마음가짐으로는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보통 있다고 생각하고서 애착하는 자아를 근저에서 해체하지 않을 수 없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쩌면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는, 오히려 사람들의 생각을 역행하는, 정신의 안정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그러한 가르침인 것이다... 존재와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탈각하라, 번뇌의 격류를 건너라고 설한다. 그것은 현대에 대해서, 문명에 대해서, 가치관의 근본적인 전환을 강요하는 가르침이다. "(인도불교의 역사 p.52,53/다케무라 마키오/산지니)

 

이번 시간부터 읽기 시작한 '인도 불교의 역사'에서 마침 위 문장을 읽었을 때, 맞다! 우리는 이번 시즌 보리심을 공부하고 있었지! 라는 잠시 잊고 있던 '보리심'이 돌아왔다. (지난 몇 주 샨띠데바의 사람정신 쏙 빼는 논파 과정을 따라가다 보리심은 홀랑 까먹고 있었다.)

 

'인도 불교의 역사'의 저자 다케무라 마키오는 '범청권청설화'는 우리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각오가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런 '각오'를 해본적이 있었을까?

어쩌면 그래서 불교를 공부하며 상당히 오랜 기간 헤맸는지 모르겠다. 경전에서 단지 마음의 위안을 찾고 싶었을지 몰랐을 그때 그 마음은, 어찌나 자아에 대한 애착이 컸었던가! 돌이켜 생각하니 아직까지 내가 불교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아마도 중간에 징글징글한 '자아'에 대해 알게 되면서 '회심'의 순간이 있었겠지. 입보리행론 '지혜품'을 읽으며 눈은 좀 더 침침해졌을지언정 샨띠데바의 지혜의 힘을 빌어다 존재와 자아에 대한 집착을 적어도 한 삽은 더 퍼다 버렸지 않았을까?

그렇게 한 삽 한 삽 자아를 퍼다 버리는 일.  그동안 이어온 공부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대체 존재하지도 않는 자아는 얼마나 깊고 넓길래 나는 여태 그걸 다 못 퍼냈을까 싶다만... 요요쌤이 좌절할 것 없다고 늘상 말씀하시니 나는 그냥 공부로 갈 길을 간다.  설령 제자리 걸음일지라도. 나는 내 발로 씩씩하게  걸었으니. 그걸로 됐다. 

 

지난 시간 읽은 '인도 철학의 역사' 1장은 붓다의 입멸까지를 다루고 있었어서 특별히 어려운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독특하게 읽힌 부분이라면, 일반적으로 붓다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은 것을 십이연기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깨달음과 십이연기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문헌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에 대해서 후대 불교도의 붓다에 대한 신앙고백이 다양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요요쌤도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하셨다. 붓다 입멸 이후 결집과 분열을 거치며 있어온 다양한 신앙고백들은 어쩌면 붓다가 마지막 남긴 '자등명 법등명'에 대한 제자들의 실천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불제자들이 그 실천을 고민하며 공부도 말도 어찌나 많이 하셨는지, 이천년이 지나 우리가 참고할 자료는 또 엄청나게 많지만,  그만큼  참고할 의지처가 많으니 든든하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ㅎ

 

입보리행론에서 지혜품만 따로 달라이 라마께서 정리하신 '달라이 라마의 지혜 명상'은 3장 까지 읽었다.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신심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하려면 통찰을 더할 수 있는 지성이 필수! 지성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러한 공성의 지혜를 보리행을 통해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인데, 앞으로 샨띠데바가 논사들과 펼친 논박의 내용을 달라이 라마가 어떻게 공성과 보리행으로 설명해나갈지 (난데없이) 기대가 좀 된다.

댓글 2
  • 2022-04-29 10:18

    "나는 그냥 공부로 갈 길을 간다. 설령 제자리 걸음이라도, 내 발로 씩씩하게 걸었으니 그걸로 됐다." 

    <입보리행론>을 읽어서 일까요? 뭔가 도라지님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은 이 느낌! 좋네요!^^

     

     

    저는 이번에 달라이라마의 <입보리행론> 강의를 읽으며  

    "진제는 마음의 영역이 아니며, 마음은 속제에 속한다 설하셨다." 바로 이 대목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아마도 여기서 마음은 주관과 객관을 나누는 이분법, 즉 희론이 작동하는 마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용수는 <중론>에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불거불래의 팔불을 희론이 적멸한 것이라고 했는데

    마음의 세계에서 살고, 마음의 영역인 언어로 소통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진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은,

    '이것이다'라고 언명하는 긍정표현이기보다는 '이것이 아니다'라는 부정표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지요?

    또 달리 생각해보면 생과 멸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생불멸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진제는 이원론적 마음의 대상이 아니며 이원적 개념과 희론을 완전히 벗어난 직접 지각 또는 직접 경험을 통해서만 아는 대상"이라는

    쫑까파대사의 말도 아마도 그런 맥락 속에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속제와 진제, "이제는 세속적으로는 구분되지만 본질은 같은 것이다"라고 할 때 휘리릭 넘어갈 수가 없네요.

    속제와 진제는 레벨이 다른 앎이라고 하거나, 아예 서로 다른 것이라고 하면 좋을텐데, 본질이 같다고 하니... 흠...

    진제와 속제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에 대한 쫑까파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동일한 사물을 사물 자체와 무상한 속성으로 구별하듯, 이제의 구분은 두 가지 시각의 반영이다."

     사물 자체와 무상한 속성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며 이 설명에 좀 더 오래 머물게 되는군요.

  • 2022-04-30 16:45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개념들이 혼란스럽네요^^

    세미나 시간에 요요님께서 '받아들이는 우리가 열려있는가' 라는 말을 던질 때 아~~! 나 이 세미나의 목적이 그거였는데 또 벽을 치고 칼을 갈고 있었구나 깨달았어요.

    인도 불교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은 석존을 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책들은 뭔지 모른 신적인 존재였다면 여기서는 철저한 인간의 느낌이라  요약에서도 고집스럽게 석존이라는 이름으로 썼지요. 붓다는 여러명이지만 석씨네 붓다는 한명이니까.  역사의 흐름을 밟아 나가니 왜 그들이 서로를 논박하고 투닥거리는지 이해를 하게 됐습니다. 그 시대의 생존이 그러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서로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들을 하게 되네요. 그렇다고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래서 저의 삶에 변화가 있었냐는 물음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아주 조금씩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인정하지 않던 부분들을 조금씩 인정해가고 받아들이려 노력은 하니까요. 그것이 실질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시간적으로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그게 어딘가 싶어요. 공부머리가 없는 제가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공부머리가 없다는 자성에서 벗어나는 노력이겠지요^^ 

    공성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고 수행하다 보면 습도 빠지고 공성에 대한 집착도 사라질 수 있다니 손해 볼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해 볼 것도 없고 딱히 다른 대안도 없다면 지혜수행을 따라가는 것이 지금의 저에게는 최선의 선택인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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