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생 명랑분투기
들어가며   친한 동료 교사가 병가를 냈다. 지난 해의 나처럼 몸과 마음이 지쳐서 도저히 담임을 계속할 수 없다고 했다. 함께 동학년도 하고 카풀도 하는 사이라서 누구보다 선생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작년 동학년 선생님 중 2명이 차례로 병가를 내는 상황을 보면서 동료들은 다음은 내 차례인가 하는 생각에 번호표를 받아 든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그래도 병가라도 내서 스스로를 보호한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서이초 교사처럼 악성 민원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죽음의 무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난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막 2년 차가 된 젊은 교사가 교실 옆 창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겨우 수업을 마치고 동료들과 서희초로 달려갔다. 수많은 근조 화한과 포스트잇에 쓰인 추모 글들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이 침통한 얼굴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교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추모할 공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자들 앞에서 짧게 브리핑을 하고 북받쳐 흐느끼는 교사들의 외침을 외면한 채 서둘러 자리를 떴다.   토요일마다 서울에서 교사 집회가 열렸다. 충격과 분노도 컸지만 어린 후배 교사를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과 죄책감 속에서 우리는 뭐라도 해야 했다. 뭔가 큰 일이 한 번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줄은 몰랐다. 교사들이 가장 꺼리는 지역, 강남 한 복판에서 가장 어린...
들어가며   친한 동료 교사가 병가를 냈다. 지난 해의 나처럼 몸과 마음이 지쳐서 도저히 담임을 계속할 수 없다고 했다. 함께 동학년도 하고 카풀도 하는 사이라서 누구보다 선생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작년 동학년 선생님 중 2명이 차례로 병가를 내는 상황을 보면서 동료들은 다음은 내 차례인가 하는 생각에 번호표를 받아 든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그래도 병가라도 내서 스스로를 보호한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서이초 교사처럼 악성 민원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죽음의 무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난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막 2년 차가 된 젊은 교사가 교실 옆 창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겨우 수업을 마치고 동료들과 서희초로 달려갔다. 수많은 근조 화한과 포스트잇에 쓰인 추모 글들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이 침통한 얼굴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교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추모할 공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자들 앞에서 짧게 브리핑을 하고 북받쳐 흐느끼는 교사들의 외침을 외면한 채 서둘러 자리를 떴다.   토요일마다 서울에서 교사 집회가 열렸다. 충격과 분노도 컸지만 어린 후배 교사를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과 죄책감 속에서 우리는 뭐라도 해야 했다. 뭔가 큰 일이 한 번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줄은 몰랐다. 교사들이 가장 꺼리는 지역, 강남 한 복판에서 가장 어린...
산책
2025.07.04 | 조회 494
스프링의 실화극장
  주의 : 혈압 올라가고 짜증날 수 있습니다.   덥다. 곧 본격적인 폭염이 올 거라고 한다. 더운데 이런 갑갑한 글을 쓰고 있자니 답답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발랄하지 못해 미안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코너 제목이 실화 극장 아닌가? 내 마음의 실화를 쓸 수밖에. 뿌연 안개 속을 더듬더듬 헤쳐가고 있는 중이다. 글이 좀 지지부진하다. 지금도 안 늦었다. 스킵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왕 클릭했다면, 스킵할 의지도, 기력도 없다면 가급적 시원한 곳에서 읽기 바란다.     어긋남   한 달 간의 출가 체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섯 시간 전후로 갑자기 내가 속한 세계가 바뀌었다. 마치 타임 슬립을 한 것 같았다. 절 스타일이라며, 함께 살자고 붙잡는 손길과 눈길을 뒤로 한 채 돌아온 집에서 나는 뭔가 붕 뜬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온 담날부터 속세도 바쁘게 돌아갔다. 세미나, 아빠 제사, 아르바이트, 태극권 모임, 킨사이다 엠티 등으로 약 2주 이상의 일정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몸이 너무 피곤했다. 성스런 세계에서 속세로 범퍼 없이 바로 진입해 질주한 탓인지, 나를 둘러싼 세상 일이 다 번다하고 덧없게 느껴졌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힘들고 벅차다는 게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지, 아님 진짜 내가 무상을 느끼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집에 꿀 발라놨냐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로, 속세가 즐겁다고 외쳤던 나였는데.   허덕대며 예정된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고 있었지만, 약간 멍한 상태였다. 누군가 내...
  주의 : 혈압 올라가고 짜증날 수 있습니다.   덥다. 곧 본격적인 폭염이 올 거라고 한다. 더운데 이런 갑갑한 글을 쓰고 있자니 답답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발랄하지 못해 미안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코너 제목이 실화 극장 아닌가? 내 마음의 실화를 쓸 수밖에. 뿌연 안개 속을 더듬더듬 헤쳐가고 있는 중이다. 글이 좀 지지부진하다. 지금도 안 늦었다. 스킵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왕 클릭했다면, 스킵할 의지도, 기력도 없다면 가급적 시원한 곳에서 읽기 바란다.     어긋남   한 달 간의 출가 체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섯 시간 전후로 갑자기 내가 속한 세계가 바뀌었다. 마치 타임 슬립을 한 것 같았다. 절 스타일이라며, 함께 살자고 붙잡는 손길과 눈길을 뒤로 한 채 돌아온 집에서 나는 뭔가 붕 뜬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온 담날부터 속세도 바쁘게 돌아갔다. 세미나, 아빠 제사, 아르바이트, 태극권 모임, 킨사이다 엠티 등으로 약 2주 이상의 일정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몸이 너무 피곤했다. 성스런 세계에서 속세로 범퍼 없이 바로 진입해 질주한 탓인지, 나를 둘러싼 세상 일이 다 번다하고 덧없게 느껴졌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힘들고 벅차다는 게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지, 아님 진짜 내가 무상을 느끼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집에 꿀 발라놨냐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로, 속세가 즐겁다고 외쳤던 나였는데.   허덕대며 예정된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고 있었지만, 약간 멍한 상태였다. 누군가 내...
스프링
2025.06.30 | 조회 346
아스퍼거는 귀여워
“해외에서 감자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미아방지 목걸이라도 해야 하나?”   말이야 방구야. 초등학교 6학년에 키 172cm인 아이를 잃어버릴 걱정을 하다니. 아무리 장애가 있다 한들, 아이가 자란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남편의 말에 웃음이 났다. 물론 내가 없어서 불안한 마음은 알겠지만… 그건 좀 심하지 않니?   남편은 여행을 좋아한다. 물론 나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남편만큼은 아니다. 우리는 결혼 후 코로나 시절을 제외하고는 일 년에 한두 번씩 해외여행을, 수시로 국내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가게 되면 지겨운 집안일에서 벗어나게 되니, 나야 땡큐다. 청소랑 밥만 안 해도 그게 휴식이니까. 실컷 놀고 돌아와 깨끗하게 치워진 호텔 방을 볼 때의 기분이란! 하지만 가족과 함께 가는 여행에는 한계가 있다. 매번 비슷한 휴양지에 바다를 낀 리조트, 마사지, 수영 같은 여행이니까. 물론 좋다. 좋긴 한데, 나는 수영도 못하고 덥거나 사람 많은 것도 싫어한다. 여행 가서 가장 좋은 점은 깨끗한 호텔 방에서 낮잠을 자거나 썬베드에 앉아 책을 읽는 거다. 그러려면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배부른 소리라는 건 나도 알지만, 사실이 그렇다.       황금연휴, 두 남자의 여행이 성사되다! 올해도 황금연휴가 줄줄이 있다 보니 남편의 여행 욕구가 솟구쳤다. 원하는 목적지는 (언제나 그러하듯) 태국. ‘또’ 방콕을 가자는데, 어찌나 태국을 좋아하는지 (참고로 생긴 것도 태국 사람을 닮음) 검사를 해보면 태국 DNA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N번째 태국행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어? 그러면 아들과...
“해외에서 감자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미아방지 목걸이라도 해야 하나?”   말이야 방구야. 초등학교 6학년에 키 172cm인 아이를 잃어버릴 걱정을 하다니. 아무리 장애가 있다 한들, 아이가 자란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남편의 말에 웃음이 났다. 물론 내가 없어서 불안한 마음은 알겠지만… 그건 좀 심하지 않니?   남편은 여행을 좋아한다. 물론 나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남편만큼은 아니다. 우리는 결혼 후 코로나 시절을 제외하고는 일 년에 한두 번씩 해외여행을, 수시로 국내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가게 되면 지겨운 집안일에서 벗어나게 되니, 나야 땡큐다. 청소랑 밥만 안 해도 그게 휴식이니까. 실컷 놀고 돌아와 깨끗하게 치워진 호텔 방을 볼 때의 기분이란! 하지만 가족과 함께 가는 여행에는 한계가 있다. 매번 비슷한 휴양지에 바다를 낀 리조트, 마사지, 수영 같은 여행이니까. 물론 좋다. 좋긴 한데, 나는 수영도 못하고 덥거나 사람 많은 것도 싫어한다. 여행 가서 가장 좋은 점은 깨끗한 호텔 방에서 낮잠을 자거나 썬베드에 앉아 책을 읽는 거다. 그러려면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배부른 소리라는 건 나도 알지만, 사실이 그렇다.       황금연휴, 두 남자의 여행이 성사되다! 올해도 황금연휴가 줄줄이 있다 보니 남편의 여행 욕구가 솟구쳤다. 원하는 목적지는 (언제나 그러하듯) 태국. ‘또’ 방콕을 가자는데, 어찌나 태국을 좋아하는지 (참고로 생긴 것도 태국 사람을 닮음) 검사를 해보면 태국 DNA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N번째 태국행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어? 그러면 아들과...
모로
2025.06.25 | 조회 414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늘 투표율이 낮은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투표율은 전체 선거인 수 중 실제 투표를 한 사람의 비율이다. 지난 20년의 선거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은 선거는 50.7%, 가장 높은 선거는 79.4%였다. 대체로 대통령 선거는 70%대다. 국회의원 선거는 그보다는 낮았고, 지방선거는 그보다 더 낮았다. 나는 민주주의의 기본은 투표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정치적 견해와 요구를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를 안 하는 시민들에게 늘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왜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지, 자신들의 의견을 왜 표현하지 않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번 조기 대선을 치르면서 나의 의문점이 조금은 풀렸다. 그동안에는 정치적인 이유나 무관심으로 투표를 안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투표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 풍경1   내가 일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센터에서는 지난 4월 4일 내란수괴인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자마자 두 달 후에 있을 조기 대선 투표를 준비했다. 복지사 선생님은 센터 이용인들에게 선거와 투표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게 한 후 기본적인 지식을 설명했다. 투표용지에 도장 찍는 방법, 내용이 안 보이게 접어서 나와야 한다는 점, 그리고 투표함에 접은 상태로 넣어야 하는 것까지 반복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투표소와 비슷하게 꾸며놓고 모의 투표를 진행했다. 실제 투표처럼 한 사람씩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교부하고 기표한 후 투표함에 투입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나는 투표사무원이 되어 이용인들의 신분증 확인과...
  나는 늘 투표율이 낮은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투표율은 전체 선거인 수 중 실제 투표를 한 사람의 비율이다. 지난 20년의 선거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은 선거는 50.7%, 가장 높은 선거는 79.4%였다. 대체로 대통령 선거는 70%대다. 국회의원 선거는 그보다는 낮았고, 지방선거는 그보다 더 낮았다. 나는 민주주의의 기본은 투표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정치적 견해와 요구를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를 안 하는 시민들에게 늘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왜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지, 자신들의 의견을 왜 표현하지 않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번 조기 대선을 치르면서 나의 의문점이 조금은 풀렸다. 그동안에는 정치적인 이유나 무관심으로 투표를 안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투표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 풍경1   내가 일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센터에서는 지난 4월 4일 내란수괴인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자마자 두 달 후에 있을 조기 대선 투표를 준비했다. 복지사 선생님은 센터 이용인들에게 선거와 투표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게 한 후 기본적인 지식을 설명했다. 투표용지에 도장 찍는 방법, 내용이 안 보이게 접어서 나와야 한다는 점, 그리고 투표함에 접은 상태로 넣어야 하는 것까지 반복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투표소와 비슷하게 꾸며놓고 모의 투표를 진행했다. 실제 투표처럼 한 사람씩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교부하고 기표한 후 투표함에 투입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나는 투표사무원이 되어 이용인들의 신분증 확인과...
김윤경~단순삶
2025.06.20 | 조회 358
산골짝에 도라지
    뜻밖에 손님   8년 전 강원도로 집을 보러 다닐 때 남편에게 제시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마당에 섰을 때 멀리 바다가 작게 보일 것. 다른 집의 지붕이 보이지 않을 것. 강릉에서 바다가 손바닥만 하게 보이던 언덕 위 작은 집에 잠시 마음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강릉은 이미 핫플이라 주머니 형편에 맞지 않았다.     양양으로 북진하여 골짜기 안에 폭 들어앉은 집을 발견했을 때, 바다가 멀어진 것 말고는 계약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른 집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곳. 눈 닿는 곳이 온통 산이라 인간 냄새 흐릿한 곳. 꿈꾸던 입지 조건을 거의 다 갖춘 터전에 마침내 짐을 풀었다.     가족을 제외하고 이 집의 첫 손님은 달팽이와 기린이었다. 산속에 오두막 하나 얻었다고 하자 문탁 친구들은 관심을 보였다. 언제든 놀러 오라고 말했지만 설마하니 누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양양까지 선뜻 나서기 만만한 거리가 아니라서다. 하지만 오라고 한다고 진짜로 오는 두 쌤 때문에 나와 남편은 다소 당황했었다. 하룻밤 함께 자고 다음 날 몇 명의 쌤들이 더 왔다. 우리는 즐겁게 먹고 마셨고 바다도 함께 보았다.     2018년 4월 달팽이와 기린. 기린쌤은 문탁 친구들 중에서 우리집에 제일 많이 다녀가셨다. 거의 준가족이시다~       초대의 계절   이 집의 성수기는 5월부터. 두릅과 고비를 채취하러 시댁 식구들이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손님들이 다녀간다. 내내 손님들로 북적이는...
    뜻밖에 손님   8년 전 강원도로 집을 보러 다닐 때 남편에게 제시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마당에 섰을 때 멀리 바다가 작게 보일 것. 다른 집의 지붕이 보이지 않을 것. 강릉에서 바다가 손바닥만 하게 보이던 언덕 위 작은 집에 잠시 마음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강릉은 이미 핫플이라 주머니 형편에 맞지 않았다.     양양으로 북진하여 골짜기 안에 폭 들어앉은 집을 발견했을 때, 바다가 멀어진 것 말고는 계약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른 집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곳. 눈 닿는 곳이 온통 산이라 인간 냄새 흐릿한 곳. 꿈꾸던 입지 조건을 거의 다 갖춘 터전에 마침내 짐을 풀었다.     가족을 제외하고 이 집의 첫 손님은 달팽이와 기린이었다. 산속에 오두막 하나 얻었다고 하자 문탁 친구들은 관심을 보였다. 언제든 놀러 오라고 말했지만 설마하니 누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양양까지 선뜻 나서기 만만한 거리가 아니라서다. 하지만 오라고 한다고 진짜로 오는 두 쌤 때문에 나와 남편은 다소 당황했었다. 하룻밤 함께 자고 다음 날 몇 명의 쌤들이 더 왔다. 우리는 즐겁게 먹고 마셨고 바다도 함께 보았다.     2018년 4월 달팽이와 기린. 기린쌤은 문탁 친구들 중에서 우리집에 제일 많이 다녀가셨다. 거의 준가족이시다~       초대의 계절   이 집의 성수기는 5월부터. 두릅과 고비를 채취하러 시댁 식구들이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손님들이 다녀간다. 내내 손님들로 북적이는...
도라지
2025.06.09 | 조회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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