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에 이름을 붙이고

꿈틀이
2023-06-07 00:33
312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은 16년 동안 거식증을 겪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한올 한올 끄집어내어 정리한 글이다. 신체의 모세혈관 한가닥까지 도려내어 해부하듯이 그녀 내부에서 일어난 복잡하고도 심도깊은 감정과 욕망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직조하여 우리에게 펼쳐 놓는다. 그녀가 선택한 ‘허기’의 키워드는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욕망과 죄책감, 욕구의 솟아오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참혹한 세계에 대한 공포. 이런 양가적 감정 사이에 자리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녀에게 배고픈 상태의 유지는 아우성치는 원함을 걸어 잠그는 열쇠이자, 원하는 것을 성취해낸 외부적 증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거식증’의 극단까지 끌고 간 그녀의 강박스러움과, 그 속에서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는 욕구들, 감정들의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허기’를 욕구했는가? 라는 질문은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태생적 기질은 물론, 시대가 요청한 여성에 대한 억압까지 파헤치기에 충분했다. 개인이 신체에 가한 자해적 억압은 거대한 진실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놓쳤던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원한다’는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나의 감정을 풀어내어 언어로 옮겨 놓는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포용하며 타인과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 작업의 작은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불안의 내면화

30대 초반부터 거의 십년 동안 나는 공황장애 환자였다. 심장이 미칠 듯이 빨리 뛰고 정신은 아찔하여 죽을 것만 같았던 경험들은 삶이 곧 지옥이 되는 순간들을 선물했다. 흔히 잘 알려져 있듯이, 공황장애는 위험에 처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신체가 극도의 긴장과 급박한 상황에 돌입한 것 같이 작동하는 질환이다. 자율 신경계의 오작동으로, 심할 경우 공황발작으로 정신을 잃는 경우도 있다. 삶의 질은 엉망이었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일들이 되었다. 당시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원망하고 분노했었고 때론 비참하기까지 했다. 불안은 불안을 낳았고, 더 큰 절망이 다가왔었다. 나는 왜 이 ‘불안’의 스펙트럼 안에서 옴싹달싹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10살,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항상 무서웠었다. 공동체가 살아있던 내가 살던 동네의 관습은 사람이 죽으면 그 집 지붕에 흰 저고리 같은 걸 던져 올려 동네 사람들을 죽음의 의례에 참여하게 했다. 학교 정문을 지나 신작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걸어가면 우리집이 정면으로 보이는데 나는 멀리서 우리집 지붕을 먼저 확인하고 걸음을 재촉하곤 했었다. 아픈 엄마가 누워있는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젠가 닥치게 될 공포가 현실이 될까봐 두려웠던 짧지만 무거운 시간들이었다. 엄마는 그해 여름 방학 때 돌아가셨고 예상했던 두려움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버려진 아이 같았다. 언니 오빠들 따라서 많이 울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뚝 떨어진 방에서 혼자 누워 있었던 한 조각의 기억은 슬픔보다 더 강한 공포였다. 그것은 아마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독한 고독, 준비되지 않은 외로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비슷한 감정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어느 해,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바다에서 또 한번 느꼈던 것 같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아랫동네는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항구마을이었는데 친구들과 한번씩 놀러가곤 했었다. 해가 넘어가고 곧 저녁이 닥칠 무렵이었다. 바다는 검은색에 가까웠고 흰색 파도는 그것에 대비되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서서히 밀려오는 밤의 기운과 스산함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가슴을 세게 파고 들었었다.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상을 받고 곤히 잠이 드는 누구나들의 저녁과 밤의 계절은, 나에게는 태양이 너무 밝아 감출 수 있었던 어떤 감정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슬픔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죽음을 어깨에 올려놓고, 불안을 내면화 했다. 그리고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을 차라리 삶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롤라인 냅은 쌍둥이 언니보다 약하게 태어난 자신에게 유모가 저지른 ‘허기’ 상태의 감각을 거식증의 원인이라고 단정 짓는 것을 경계한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과 환경의 결합들이 얽혀 있음을 시사하는 말일 것이다. 나의 공황장애의 원인도 어머니의 상실에 의한 ‘불안’으로만 결정짓고 마침표를 찍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중학생이 되고 자아 형성기가 되면서 내 안에서 피어오르던 불안과 외로움의 감각들은 밖으로 표출시키기 보다는 더 꽁꽁 싸매어서 절대 나오지 못하는 금기의 영역처럼 만들어가고 있었다. 결핍에 대한 요구가 커질수록 떠안을 수밖에 없는 절망감의 무게는 나를 숨막히게 했을 것이고, 그것을 받을 만한 힘도 용기도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던 욕구는 음식에 대한 정의를 생명유지를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결정했고, 중학교 시절 첫사랑의 남자친구에게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들키고 싶지 않은게 너무 많았을 것이다. 자존심은 강하고 자존감은 낮았던 비쩍 마르고 까칠했던 소녀는 이렇게 결핍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그것은 진실로 내 주위를 머뭇거리던 그림자를 못본 척 하기로 결정한 것이고, 외부로 시선을 돌려 공허함을 채워 가기로 한 결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학교 선생님이나 직장상사 등의 평가로부터 늘상 자유롭지 못했고 그들로부터 받아내는 높은 점수가 나의 그림자 일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살고 있으며, 누구 못지않은 유능함을 보여주는 것은 외로움을 삼킨 보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내 마음에서 들려오는 원하는 것들의 목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오지도 못한 채 나에게 거절 당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갔다. 내부에서 일렁이던 복잡한 감정들은 아닌 것처럼 묻어두고. 언제나 그랬듯이 괜찮은 것처럼 살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살아간다는 건 혼란스러움과 다양한 선택들의 복잡한 구도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나는 어떤 면(성실하고 부지런함)에서는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어떤 측면(나의 내면과 대면하여 결정을 내리거나 선택해야 되는 일)에서는 유아기적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은 그럭저럭 나의 통제 하에 잘 흘러갔지만 결혼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남편과 2년 정도 연애를 하고 다소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당시 남편의 가부장적면이나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을 법 한데 나는 그것을 수면 위에 올려놓고 고민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피해버렸다. 그리고 남편도 나를 평가하는 외부인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남자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싶었고 그가 던지는 평가와 판단의 말들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사건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했고 나를 억압하고 참아내는 능력에만 매달렸으며 남편은 나의 평가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어떤 사람과 잘 맞고 소통하길 바라는지, 가족이 되는 의미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흡수되는 게 아니라 각자 고유의 모습을 찾아가고 인정하며 응원하는 관계라는 걸 정말 몰랐다. 나와 소통하지 않고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 결과는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이어졌다. 물론 모든 시간이 힘들었다고 말한다면 비약이 심한 표현으로 되겠지만 나는 절대로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려고 무던히도 애썼고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갈등들을 잠재우기 위해 파묻고 파묻었지만 이런 삶에도 유통기한이 있음을 알았다. 갑자기 공황증상이 찾아왔고 나는 더 이상 그대로 나를 내버려둘 수 없게 되었다.

 

 

 

회복과 시작

캐롤라인 냅은 쌍둥이 언니의 권유로 우연히 조정을 하게 되고, 스컬링을 통해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직접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팔과 다리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고 온전한 하나로서의 몸, 살아가기에 훌륭한 장소로서 몸을 느끼기 시작했다. 억압. 소비주의, 남성의 대상으로서의 몸이 아니라 ‘나의 몸’ 그 자체를 보게 된 것이다. 물론 때때로 굶기의 충동은 그녀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통제 수단으로써 신체를 놓아주기 시작하니 마음에서 일어나는 ‘허기’의 욕구도 점차 그 힘을 잃어갔다. 그녀는 서서히 거식증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어머니의 상실이 가져다 준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들은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가는 나의 자아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외부의 평가와 시선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라는 안도감을 선물했을 것이다. 회피와 냉소의 태도는 ‘나’를 걸어잠그고 안도감을 증명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나는 무던히도 나의 영혼을 말라가게 하면서도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캘로라의 냅의 ‘허기’의 감정에도 이런 이중적 맥락이 숨어있다. 그녀는 ‘허기’로 욕구를 통제하면서도 ‘허기’상태를 유지하는 자신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욕구를 차단하고 아닌 것처럼 사는 방식과 그녀가 ‘배고픔’을 통해 존재를 느끼는 방식은 공황장애로, 거식증으로 우리 둘 모두를 아프게 했다.

 

 

“고통은 고립 속에서 창궐하고 은밀함 속에서 번성한다. 단어들은 고통의 숙적이며 괴로움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괴로움을 진정시키는 첫걸음이다..”p304<욕구들>

 

나는 괜찮지 않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닫아놓았던 마음의 빗장을 풀어 친언니들에게 ‘나’를 조금씩 보여주었다. 같이 공부하는 학인들에게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털어놓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그들이 해결해주거나 결정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나 그 말이 세상 밖으로 나갔다는 건, 외부 시선을 두려워하거나 잘사는 척 하는 위선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의 입을 통해 발설된 그 언어들은 내 마음의 단단한 자존심을 깨부수고 저 아래에 깔려있던 자존감이 회복된 결과물이기도 했다. 나는 잘사는 척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잘 사는-나를 직시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남편에게 더 이상 나를 평가하지 말라고 선언했고 행복한 가족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쥐고 있던 것을 버리니 그 자리에 풍요롭고 자유로운 무언가들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자리에는 외로움이라는 한덩이의 무게도 채워지고 있었지만 예전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냥 그 자리에 놔두어도 나를 메말라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익어가게 만드는 발효식품 같은 것이었다. 공황장애는 더디게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그때도 그랬고 최근까지 나는 모든 불행을 잘못 선택한 결혼으로 퉁치려고 했었다. 그 이면에는 지혜롭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지혜의 영역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욕구, 그래야만 존재되어지는 어떤 상황이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지면 위에 공황장애의 이름을 붙이고 그것 또한 살아내기 위한 ‘나’ 자신이었음을 인정하고 말할 수 있는 것. 여기서부터 나는 또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 4
  • 2023-06-07 11:37

    오랜만에 꿈틀이 샘 글 읽으니 좋네요. “살아내기 위한 ‘나’ 자신이었음을 인정하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분투가 느껴졌습니다. 멋져요!

  • 2023-06-07 13:21

    잘 읽었습니다^^
    저도 불안장애를 갖고 있어서 더 와닿게 읽힌 글이었습니다

  • 2023-06-07 16:31

    아.... 길고 긴 터널에서 온 힘을 다해 걸어나온 꿈틀이 샘의 삶을 잠시나마 감히 상상해봅니다.
    읽는 내내 꿈틀이 샘 말씨로 퍼지는 운율을 고스란히 느끼며
    생생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참으로 잘 버티셨고 잘 이겨내셨네요.
    멋진 우리 꿈틀이샘.
    다음에 봬면 꼬옥 안아드릴게요~♡

  • 2023-06-08 09:43

    꿈틀이를 자주 봐서 매우 기쁨^^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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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 조회 220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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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234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떨어지고 난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며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서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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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3.16 | 조회 163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250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250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01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모로
2024.02.25 | 조회 295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359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가마솥
2024.02.17 | 조회 366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현민
2024.02.16 | 조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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