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 순자를 말하다

요요
2023-03-21 15:28
393

소동파가 쓴 재미있는 글, <순경론>을 읽었다. 순자의 이름은 순황(荀況)이고, 순경(荀卿) 은 공경하여 부르는 경칭이다.

순자를 경칭한 <순경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글은 순자를 높이 평가하는 글은 아니다.

이 글은 진시황의 통일제국을 만든 일등공신이자, 진시황의 나라를 망친 이사의 스승이었다는 이유로 순자를 가혹하게 비판하는 글이기도 하다.

 

소동파는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공자세가>로 서두를 연다. 자신은 늘 <공자세가>를 읽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공자의 말은 보통사람들도 다 알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말을 행하려고 하면 성인도 다하기 어려운 그런 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의 말을 능히 실천하는 자들은 성인 되기도 어렵지 않고, 능히 실천하지 못하는 자들이라해도 그저 조금 잘못하는 정도에 그치기만 할 뿐이다. 공자의 말이 평이하고 정직했던 것은 공자가 자기 말이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 진다.

 

그런데 순자는 공자의 평이하고 정직한 말과 달리 남들을 놀라게 하는 특이한 논변을 펼쳤다. 가령 세상사람들이 군자라고 하는 맹자나 자사가 천하를 어지럽혔다고 하질 않나, 사람의 성품이 악하기 때문에 천하의 포악한 군주였던 걸주는 성품대로 한 것이고 요순은 인위로 한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순자는 그 사람됨이 강퍅하고 불손하고, 자기가 무척 잘났다고 생각했다고까지 한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이다.ㅎㅎ

 

그러다 보니 그 제자인 이사는 스승보다 더 나갔다는 이야기이다. 이사가 6경을 불태우고 하은주 삼대의 제후들을 다 절멸시키고 주공의 정전제도를 파괴한 것은 그 기원이 스승 순자가 제자백가들 하나 하나를 콕찝어서 비판한 것을 배운 탓이요, 선대의 성왕들에게 본받을 것이 없다고 한 것을 배운 탓이라는 거다. 

 

소동파가 보기에 순자는 그저 통쾌한 말빨로 한 시대의 담론을 전개했을 뿐이지만, 그는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화가 결국 유가의 전적과 성왕의 예악을 망치게 되리라는 걸 몰랐다. 이와 달리 공맹의 론은 평이하지만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으니, 이 계열에서는 특이한 것을 구하는 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묘한 논리이다. 분서갱유로 대표되는 진시황의 정책이 이사로부터 나왔고, 이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인 순자의 허탄한 주장을 배운 탓이라고 그 잘못을 순자에게 뒤집어 씌우는 솜씨가 대단하다. 그런데 순자에 대한 비판은 순자를 향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공맹의 주장이 그에 비해 얼마나 훌륭한가로 마무리되니! 

 

지난번 후기에서 자작나무님이 인물비평을 하는 에세이(논문) 읽기의 재미와 어려움을 같이 말했는데, 나는 동파의 <순경론>을 읽으며 송대 신유학이 단지 정이정호 라인의 독점물이 아니라 어떤 시대정신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순자는 이사의 스승으로 치부되면서, 공맹라인 밖으로 밀려난 것이 아니었을까. 도통의 수립 또한 이런 시대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런데 직하학당의 좨주를 지낸 순자는 정말로 이사를 그렇게 키운 담당 지도교수였던 것일까? 또 순자의 설이 그렇게 허탄하고 방자한 주장(放言高論)이었단 말인가? 지난 번에 북앤톡에 여울아님이 몇편의 글을 통해 알려준 순자를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순경론>을 읽을 때 순자를  읽은 토용님이 없어서 무척 안타까웠다.^^

댓글 1
  • 2023-03-22 11:25

    우리 동파선생이 아무리 송대 유학자라고 하지만 순자를 너무 미워하시네요 ㅋㅋ 순자가 이렇게 오해를 받으면 안되는데 ㅋㅋ
    <사기>에 이사가 순경에게서 배웠다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제자가 아니었다는 글도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순자와 이사가 확실하게 공자-안연 같은 스승 제자 사이였는지, 아니면 잠깐의 문하생으로 있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잘못배워서 저렇다고 비판하는건 샘 말씀대로 너무 인신공격인데요.
    사실 분서갱유도 당시 진나라 입장에서는 사상의 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일이었죠. 그렇지만 실제로 왕실도서관에는 유가 책들을 남겨두었고 민간에 있던 책들을 불태운거였는데.... 따지고보면 진짜 분서는 항우가 함양을 불태울때였죠. 그 때 왕실도서관에 있던 책들이 다 타버렸으니까요.

    철학이 그 시대를 벗어날 수는 없잖아요. 순자도 봉건에서 제국으로 넘어가는 시대상황에 맞는 사상을 주장했다고 생각해요. 단지 그게 신유학자들의 입맛에 안맞았을 뿐이겠죠.
    근데 사실 유가가 유가를 비판해야 발전이 있는거잖아요. 순자님 잘 하셨구만 ㅋㅋㅋ
    어쨌든 <순자>는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텍스트예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글이거든요.
    <전습록> 다음으로 <순자> 읽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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