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철학학교 시즌1] 3회차 <방법서설> 후반부 후기

호수
2023-03-18 13:19
508

싱글벙글 2023년 철학학교의 첫 시즌 데카르트가 삼 분의 일이 지나갔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거센 폭포와 풍랑으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우리를 감시하시는) 가마솥샘, 재선샘을 빼고 모두 참석했습니다. ‘방법서설’의 나머지를 읽었는데요, 4부에서는 데카르트 철학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코기토를 집약적으로 서술하고, 이어 5부에서는 코기토로 보장된 하나의 확실성으로부터 마음 놓고 끌어낸 다른 자연학의 법칙들이 (노지에서 캐온 다듬기 고약한 시금치처럼) 나열되고, 6부에서는....뭘 얘기한 건가요? 항상 깔끔하게 정리해주시는 봄날샘의 요약문으로도 요점이 잘 안 잡힙니다... 데카르트,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털어놓기엔 흉중에 품은 뭐가 그리도 많았던 겁니까? 그러니까 갈릴레오가 옳다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돌아보면 이번 데카르트 시즌의 첫 시간부터 늘 우리를 관통한 질문은 다름 아닌 ‘데카르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아니었을까요. 데카르트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언뜻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어 보이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발견하고 근대 과학혁명의 토대를 마련한 확실성의 철학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데카르트는 그간 공부하며 접한 여러 이후 철학자들(스피노자, 칸트, 푸코, 들뢰즈.... 가깝게는 제가 작년에 읽은 후쿠오카 신이치의 <동적평형>에서도.....)에게 뭇매를 맞아온, 우리에게는 어쩌면 그 자체로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할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빙의당’ 또는 일종의 해석 논쟁(?)이 불거진 것은 아마도 후자의 경우가 우리의 색안경이 될까 스스로 경계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 충분히 유효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대체로 데카르트의 목소리 자체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빙의의 노력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확실성을 추구하는 철학자의 글치고는 그리 정치해 보이지 않는 글쓰기 방식 때문이기도 하고, 새로운 철학자를 깊이 들여다볼 때마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짐작한 데카르트’와 ‘자세히 들여다본 데카르트’는 일치하지 않는 점이 많기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데카르트는 그는 분명 변곡점에 위치한 철학자이되, 그에게는 (의외로) 획기적인 전환보다는 애매한 혼재의 흔적이 더욱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진달래샘의 첫 질문도 그런 간극을 드러냈습니다. 진달래샘은 모든 인간은 양식을 두루 갖추고 있으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면 이성의 빛으로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한 데카르트가 중요한 대목에서 신을 통해 그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세미나 시간에는 신에게 기대는 것은 서양의 오래된 전통이었으니 데카르트의 이러한 결론을 데카르트의 한계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이야기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이후 옷을 바꿔입고 정군샘이—세션샘의 타박을 들으며 재차 제기한—완전한 신과 신에게서 유래한 완전한 이성 등 ‘완전성’의 논리가 지니는 한계점에 대한 질문으로도 나타났다고 생각이 듭니다.)

 

당시 신에게 기대는 유서 깊은 전통이 있었으나 데카르트가 신에게 기댄 방식에서 이전 철학자들과 달랐던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의 주된 논증에서 신은 존재를 보증한다기보다 인식을 보증하고 있으니까요.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것만으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데카르트에게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나 근거가 더 필요하지 않았고, 그에게 그것은 ‘직관’되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 직관이 어디로부터 유래했을까가 중요했습니다. 그것은 어딘가로부터, 아주 확실한 어딘가로부터 유래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데카르트가 신을 끌어옵니다. ‘덜 완전한 어떤 것’의 인식한 것이 확실함을 보증해줄 ‘더 완전한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완전성이란 세션샘이 지적해주셨듯 ‘실재성’의 정도를 가리키는 존재론적 함의를 지닌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4부에서도 완전성과 대비되는 것은 ‘무’입니다. 또한 세션샘은 질문에서 왜 명석판명함이 참과 거짓을 가르는 근거가 되는가, 진실한 것과 가짜인 것(또는 그것보다 덜 진실한 것)을 가를 수는 있어도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잘 납득되지 않는다고도 하셨어요. 저는 이때 참/거짓과 진짜/가짜의 구분이 어떻게 다른 것이냐고 물었는데 정군샘은 이것이 인식론적 기준(참/거짓)과 존재론적 기준(진짜/가짜, 가령 플라톤의 이데아와 모상)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데카르트는 ‘참이면서 진짜인 것’이 아니면 나머지는 진실됨의 함량과 상관없이(순도 99.999999999999...%라도) 모조리 틀린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감각과 상상력의 오류를 경계하는 것도 그것이 ‘틀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의 철학은 분명히 그 중심을 인식론 쪽으로 옮기고 있으며 인식의 가능성은 주로 내면의 성찰의 엄밀함에 있되, 그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신의 완전성에는 여전히 존재론적 함의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결은 다르지만 정군샘은 이전에도 신 존재 증명이 있었지만 데카르트는 스콜라철학자들을 양분한 의지주의와 주지주의를 통합했다는 의견이 있고, 그런 면에서 데카르트는 근대를 연 철학자인 동시에 중세를 닫은 철학자이기도 하다고 언급하기도 하셨지요.)

 

사유와 연장의 구분이 그렇게 확실한 것인가에 관해서도 길게 이야기되었습니다. 저는 데카르트가 이후 ‘사유’의 정의에 ‘의지’뿐만 아니라 ‘감각’도 포함시키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는데요,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나는 사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아프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도 마찬가지로 ‘나는 사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끌어낼 수 있다고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신체의 변형 그 자체는 직접적으로는 동물 정기와 관련된 것이고 ‘연장’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되 내가 통증을 ‘의식’한다면 그것은 ‘사유’의 영역에 들어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정신과 신체의 완벽한 이원성을 강조한 데카르트가 둘이 연결되어 있음을 또한 언급한 대목에서는 몇몇 샘들의 혼란과 공분을 샀는데요, 저는 이 지점 또한 데카르트 철학에 존재론적 함의가 다분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유 실체가 인간과 신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인간은 연장 실체이기도 하기에 존재론적으로 신보다 열등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사유 실체인 동시에 연장 실체인 인간과 연장 실체이기만 한 비인간 존재를 가름으로써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위계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어졌습니다. ㅋㅋ 질문도 길고 후기도 길고..... 개미가 일이 한가해서 그런가 보다 해주시길요 ㅋㅋ 이 정도로 마치고 다음 주에도 싱글벙글 즐거운 세미나 기대하겠습니다.

 

아래는 생각나서 찾아본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만화입니다. 데카르트가 침대에 주로 누워있다는 재선샘 말씀이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네요 ㅎㅎ

 

댓글 12
  • 2023-03-19 00:52

    뭔가 엉성하고 부족하고 그럴 때는 깊이 읽거나 많이 읽거나 해야하는데... 깊이 읽을 집중력을 모으기가 그래서 어제 오늘 많이 읽기를 택했습니다. 책의 뒤에 '규칙'과 철학의 원리 불어판 서문격인 글이 있더라구요.... 읽다 멈춘 '규칙'도 끝내고 철학의 원리 서문격인 글도 읽었습니다. (철학의 원리는 안읽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철학책이 아니라 과학책일거 같아요. ) 읽으면서 느낀 건데...데카르트는 자기 글에서 자기가 한다고 했던 것을 제대로 다 한 적이 별로 없네요... 아무튼 핑크 책은 이제 안녕입니다...

    • 2023-03-21 09:24

      우와~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고 말았는데, 우리 중에 읽은 분이 계시군요^^

  • 2023-03-19 10:18

    아! 세미나에서 방법서설 4부를 둘러싸고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머리 속에서 와글와글합니다.
    <성찰>을 읽으며 주의해서 봐야하는 지점들을 두루두루 짚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코기토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데카르트의 사유란 뭔지..^^
    <방법서설> 이후에 나온 <성찰>에 희망을 걸어봅니다.ㅎㅎㅎ

  • 2023-03-19 11:28

    호수샘의 후기를 읽다 보니 호수샘이 셈나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그리고 쟁점들을 성실히 정리하고, 결론을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너무나 잘 느껴저서 좀 죄송한 생각이...지난 시간에 튜터샘이나 감히 '타박'하고 자다깨서 헛소리+견소리나 했던 걸 깊이 회의하고 반성합니다! '성찰'은 조금 천천히 읽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제가 요즘 책을 자꾸 날림으로 읽는 경향이 있어서요ㅠ 글고 정군샘이 말씀하신 '16세기 문화혁명'을 조금씩 보는데 식물학의 도상 부분부터 읽어 봤죠. '2천년 식물탐구의 역사'라는 책에도 이 책에 나온 그림들과 비슷한 그림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어? 신기하네 하면서 반가웠습니다. 요요샘 관심있으시면 재미로 보시면 좋습니다. 린네이전까지 식물 탐구의 과정들인데요, 그림도 예쁘고 많고 심지어 칼라도 있고 무튼 재밌습니다. 지난 셈나에서 했던 이야기들은 데카르트를 읽으면 언제나 나오는 시그니쳐 질문들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책에서 그럭저럭 결론이 나겠죠. 좀 성실히 읽어보겠습니다. 아, 한가지 잊었네요. 지난 시간의 제 행태는 노지의 거칠디 거친 시금치를 다듬다 지친 부작용이라 이해해주시길...

    • 2023-03-19 16:47

      여울아샘이 저더러 개미라 하셔서 넘 웃겼는데 세션샘 댓글까지 보니 정말 개미가 된 기분이네요 ㅎㅎ (아, 문득 생각나네요. 초등학교 담임샘이 생활기록부에 게으르다고 ㅋ 아빠가 어떻게 아셨지? 하시고 ㅋㅋ 어릴 때 게으른 벌 받느라 이런 일 하나 싶기도;; ㅋ) 글고 세션샘만 타박한 건 아닌 건 확실해요 ㅎㅎ 아무튼 시금치 말끔히 다듬어주신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 2023-03-22 02:31

        데카르트에 따르면 회반회님이 세션샘이 아니라 저 만화 속의 빨간 괴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2023-03-21 09:15

    으하하 싱글벙글세미나.. 네이밍이 기가막히네요. 제가 철학..이라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가 봅니다. 마음의 준비에 한없이 시간이 걸리다 보니 책은 건성으로 보게 됩니다. 호수님이 마음에 부담감을 내려놓고 싱글벙글하면서 공부해보자고 말하는 것 같아 다시 용기내봅니다~

  • 2023-03-21 15:10

    댓글이 늦었습니다 헉헉. to 회.반.회님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는 걸 두고 '도덕'을 묻지 않듯 이 튜터의 컨셉이 타박받이므로 괜찮습니다 ㅎㅎㅎ
    저 개인적으로는 지난 세미나 때 문득 '왜 내 질문은 늘 똑같은가'라는 걸 자각한 계기가 되었습니다(아니 작년 내내 그래놓고 지금 자각했다고?) ㅎㅎㅎ 다음번엔 어떻게든 데카르트를 옹호하는 컨셉을 가지고 접근해 보려고 마음을 다지는 중이고요 ㅎㅎ 첫시간의 세션샘 말대로 데카르트가 하고 싶었던 말, 그런 말을 했던 이유를 자꾸 놓치게 되는데 그건 역시 어떤 '선입관' 같은 게 작용하는 것도 분명 있을테고, 사실 데카르트의 논설 자체에, 오늘날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들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를테면, 지난시간에 확인한 것처럼 '완전성의 관념을 주입받은 명석판명하게 존재하는 주체'라는 입론을 따라 가다보면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마음껏 약탈하는 주체'로 귀결되니까요(물론 저는 이게 그렇지가 않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그게 인간의 '자연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요. 시야를 더 확대해 보면 인간이 그런다고 해서 '우주'엔 어떤 생채기조차도 내지 못하고요. 요컨대 우리는 그냥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부수다가 결국은 끝장나게될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게 어쩌면 가장 정당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뭐 어쨌든 저는 모두 빠져나간 '빙의당', 이제는 '꼬마 빙의당'을 지키려는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ㅋㅋㅋ

    • 2023-03-22 02:32

      데카르트의 직관과 연역을 발판 삼아 우리가 지금 신이 되려하고 있다는 말씀 하나만으로도 지난 시간 충분히 빙의 하셨어요...자책마세요...

  • 2023-03-21 23:25

    세미나를 참석하지 못했지만 너무 깔끔하게 잘 정리를 해주셔서 찬찬히 읽어보게 되네요. 그런데 마지막에 데카르트가 가장 좋아한 것은 침대라는 말은 정군샘께 들은 것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 제가 등장하네요.

  • 2023-03-22 22:33

    제 엉성한 질문을 저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주시다니.... 호수샘 대단하세요~

    • 2023-03-22 22:52

      제가 이해한 방식으로만 너무 일방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닌지.. 조금 걱정했는데 다들 너그러우셔서.. <성찰>의 '독자들을 위한 서언'에서 반박도 그렇고 본문도 그렇고 우리가 지난 시간에 나눈 내용이 다시 자세히 다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있을 시간들이 더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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