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21회] 우연한 선택 / 영화 <페르세폴리스>(2007)

청량리
2022-11-21 06:48
494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한 선택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 96분 |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삶은 같은 일상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 되는 결과들 혹은 그 결과가 만들어 내는 작은 차이들로 이뤄진다. 마치 버스터 키튼이나 성룡의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액션처럼 말이다(영화대로42길, 19회 ‘우연이라는 결과’ 참조). 무한한 시간 속에서 삶의 작은 차이들은 그물망처럼 얽혀 있고 서로 중첩된다. 때문에 살면서 그 차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떤 선택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택’이란 무엇인가?

어느 방송에서 한 가수가 자신의 ‘번 아웃(burn out)’ 상태를 털어 놓았다. 함께 술 한 잔 하던 동네 지인 정신과의사가 말했다. “번 아웃(감정)을 날씨에 종종 비유하곤 해요. 개입할 수가 없거든요. 날씨처럼 내 기분도 예측이 불가능해요. 하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가 있죠. 내 기분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어요.” 화면 속 작은 술집의 분위기만큼 좋은 표현이다, 싶어 찾아서 메모해 두었다. 개입할 수 없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마르잔의 선택

1979년, ‘이란혁명’은 친미성향의 전근대적 팔라비왕조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이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호메이니’는 율법에 따른 신정국가로 이란을 통치하기 위해 유혈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검은 차도르’는 이때 확산되고 여성의 지위도 추락한다. 캄보디아의 좌파 ‘크메르루즈’가 벌였던 혁명, 그리고 이후의 탄압으로 이어지는 유혈사태와 흡사하다. 혁명도 중요하지만, 다가올 혁명 이후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영화 <페르세폴리스>(2007)는 그 혁명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란 출신의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란 테헤란의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감자튀김과 케첩을 좋아했고, 이소룡을 동경하고 아디다스를 신었”던 철없던 소녀였다.

 

아이가 '타도와 투쟁'을 외치는 건 가족과 삼촌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환경은 그녀를 서둘러 철들게 했다. 1980년, 혁명 전후 이란의 혼란한 상황을 노리고 이라크가 기습 침공한다. 8년 동안 두 나라 사이에서 지속됐던 잔인한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란은 이를 계기로 더욱 국내 탄압정치를 강화한다. 마르잔이 열 세 살 때였다. “폭격 속의 공포와 정부의 탄압과 이웃 간의 감시로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혁명가였던 삼촌 아르쉬가 오히려 사형을 당하는 모순적인 사회였고, 엄마에게 차도르를 강요하는 남자는 서슴지 않고 강간으로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마르잔’의 부모는 그녀를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 보내기로 한다.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마르잔은 일찍부터 테헤란의 프랑스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마침 부모의 친구가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었다. 중산층 가정, 이란혁명, 삼촌의 죽음, 유혈사태, 오스트리아 유학, 그 가운데 마르잔이 있었다.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게 된단다. 혹시 널 해치거든 (그 사람을)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라 여기고,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무시해 버려라. 앙심을 품고 복수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나쁘단다.”

 

난 또 뭐라고. 그깟 이혼 따위로 고민할 필요는 없어. 당당하고 멋진 할머니. 

 

 

유학을 떠나기 전 할머니는 어린 마르잔에게 ‘지혜’를 선물한다. 할머니는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마르잔에게 일러준다. 그냥 지나가게 내 버려두라고. 우연으로 가득 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건 가만히 짚어내는 이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혁명의 순간보다 이후의 시간이 중요하듯이, 그걸 알아차리고 나에게 다가온 것을 톺아보는 순간이 없으면 그저 흩어지며 지나간다.

할머니의 바람과는 다르게 마르잔의 유학생활은 순탄치 못 했다. 가족이 없는 불안정한 주거와 이성관계의 실패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외로움, 결국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이란으로 겨우, 다시 돌아온다. 자살시도까지 있었으나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마르잔. 그녀에게 지나온 시간들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실패라고 말하는 건 잔인하다.

 

우연한 선택

2년 전,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던 두 건의 프로젝트가 건축주들의 변심으로 결국 계약금도 못 받고 엎어졌다. 무엇을 해야 할까, 황당한 마음 반 기대 반으로 공무원을 선택했다. 10년 만에 꼬박꼬박 받는 월급이 나쁘진 않았다. 건축주였던 ‘김 사장’에게 감사할 노릇이다. 나름 임시방편이라 생각했던 공무원 생활을, ‘2년 만 더 해보자’는 선택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하지만 다시는 설계사무실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게 다 ‘김 사장’ 때문이다. 앞으로 2년 후, 담당 주무관과 설계사무실 소장 사이에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 알 수 없다.

 

번 아웃을 고민하는 가수에게 정신과의사가 건넨, ‘더 나은 방향으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적절했다. 다만 그 결과에도 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덧붙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우연이라는 결과는 삶 속에서 촘촘히 얽혀있고, 우리들은 그 결과의 인과관계를 알지 못하며, 무한한 시간 속에 삶은 영원히 반복된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내가 속해있는 관계의 그물망을 인식한다면 나의 ‘선택’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나의 선택’은 그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표면적으로 있어 보여도 우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이 무한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의 선택은 또한 내 것이 아니다. 나의 선택에 고민이 생기는 건, 다가올 미래의 결과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그 결과에 우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흘러가게 내 버려두는 수밖에.

 

마르잔의 꿈은 미래의 예언자다. 삼촌의 죽음으로 하느님에게 '꺼지라고' 했지만, 자살을 선택했을 때 다시 다가온다. '넌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딸을 생각해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보냈지만, 부모는 마르잔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이란으로 돌아올지는 몰랐다. 이 사람이다 싶어 이른 나이에 결혼했지만, 친구의 죽음 이후 이혼하게 될지는, 다시 이란을 떠나게 될지는 마르잔은 몰랐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무시해 버려“ 그저 흘러가게 두라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될 때로 되라는 비관주의나, 어떻게든 될 거라는 낙관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 여기에 있기 위해서 과거를 소환할 필요도, 미래를 걱정할 이유도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지금 여기의, 선택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끊임없이 과거로 도망치거나 미래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럼에도 분명 이 말은 한계이자 가능성을 뜻한다. 그 선택이 더 나은 방향이라 믿는다면, 그렇게 하면 그뿐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뒤로 하고 마르잔은 이란을 떠난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흑백의 화면은 컬러로 바뀐다. 흑백의 차도르를 벗은 마르잔도 다시 유럽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아니,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유년시절 떠났던 모습과 달라진 건 그녀의 신체 뿐만은 아니다. 그녀는 파리에서 이란인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그리기로 한다. 주변의 왜곡된 시선과 자신의 아픈 상처를 마주하기로 한 그녀의 선택에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는 모른다. 지금, 그녀의 이야기는 책으로, 영화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녀는, 우연의 구름 속으로 날아가려고 한다.

 

 

댓글 6
  • 2022-11-22 09:32

    내가 너무 사랑하는 흑백 투디 에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잘 읽었습니다~~

  • 2022-11-22 10:26

    이년전 세미나에서 청량리샘이 남발했던 '우연'은.. 쫌 오버아냐? 싶었는데
    지금 이 글의 우연과 선택은 설득력 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22-11-22 10:48

    이란 혁명은 양가감정을 일으킵니다. 친미독재정권 팔레비 왕가의 지배하에서 이란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혁명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히잡을 쓰고 온몸을 감싼 옷을 입고 몸 안에 유인물을 비롯한 저항의 도구들을 운반했습니다. 그녀들에게는 미니스커트냐 히잡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여 독재를 무너뜨린 이란혁명 이후 여성들에게는 히잡이 강요되었지요. 최근 스물 두살의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이 빠져 나왔다는 이유로, 히잡을 법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요. 우리의 기대는 늘 어긋나고, 삶도 역사도 혁명도 예상치 못한 진로를 갑니다. 다른 한편 그런 가운데서 우리 역시 우리 앞에 펼쳐진 시간 앞에서 진로를 계속 바꾸고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청량리님의 글을 읽으며 그것을 모두 '우연'이라고만 말해도 좋을까?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만.. 여기까지!ㅋ

  • 2022-11-22 14:19

    영화가 궁금해지네요 ..

  • 2022-11-22 14:20

    페르세 폴리스를 이렇게도 읽을수 있군요~ 청량리쌤의 우연은 과연 몇부작일지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ㅎㅎ

  • 2022-11-24 09:51

    얼마전에 내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엣원스'를 해석한 듯한, 해석했다고 해도.. 음 그렇구요.
    제가 예측하건대 약간의 먼훗날 청량리샘은 이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바꿀지도 모른다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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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20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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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조회 180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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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3.31 |
조회 167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71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15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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