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수치심>3,4장 후기

스르륵
2022-09-20 15:38
179

누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 3장에서 혐오가 정답이 아니라면, 무엇이 혐오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유용한 법률적 지침을 제공해 줄 수있는지를 구체적인 법률적 이슈 속에서 살펴본다. 그 속에서 '혐오'는 위험해보이지만 일견 '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지만 '정서적'이고, 도덕적으로 보이지만 '비합리적'인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여 자세히 보지 않으면 혐오는 야누스적인 얼굴로 우리 안에 깊숙히 들어와 일상의 중요한 명분과 근거로 자리하기 쉽다.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혐오반응이 범죄의 정당한 이유가 되어 감형에 직접적인 사유가 될 수 있는 동성애에 관한 사례는 요즘은 거의 드문 것 같지만 과거 사례들을 보면 동성애 혐오로 인한 범죄는 그 혐오성을 인정받아 충동적 과실치사의 사유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누스바움은 '동성애적 도발이라는 항변'에서 중요하게 살펴볼 점은 공격적 부당행위가 있었느냐, 그리고 그 불쾌감을 피할 수 있었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도발 항변의 요소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불쾌함'이 아닌 '위해의 증거'다.

어떤 행위의 불법 여부가 일반인의 혐오 반응을 기준으로 결정되기 쉬운' (음란)외설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음란물 심사의 기준이 되어온 1973년 밀러 기준 심사는 음란물의 정의 속에 섹스 자체에 대한 혐오감과  여성 혐오를 교묘히 연계하여 성적흥분과 노골성을 지적하고 있다. 누스바움은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논쟁의 핵심은 '섹스와 여성'에 내재된 혐오성에서 포르노그래피 속 여성의 '예속과 위해'의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경한 도덕감정과 표현에 관한 자유같은 이슈들이 음란물 속에 숨겨진 진짜 더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해악들을 물타기 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체성애'와 '소도미법'은 언뜻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좀 생소하게도 느껴졌었지만 어쨋건 혐오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이만큼 혐오하기에 적절한 것도 없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죽은 자의 몸에 대한 성적인 오욕과  다양한 대상(?)들과의 성행위는 누가봐도 명백히 상스럽과 역겹고 불법스러워보인다. 그러나 여기서도 혐오라는 연막에 가리워진 핵심은 시체 성애처벌은 이미 사적 소유물(시신)에 대한 훼손이며, 소도미법은 자신이 원하는 사적 성적 활동의 자유를 위배한다는 점에서 불법적(2003년 효력정지)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선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인 도덕성과 정치적 원칙(법)은 구분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혐오가 확실하게 불법적인 위해로 인정받고 있는 사례인 '생활방해법'은 추정상의 혐오까지 인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편견에 기초한 혐오와 위해에 기초한 혐오의 아슬아슬한 경계가 느껴질 수 있다. 생선비린내는 불법이 아니지만 생선찌꺼기로 만든 인산비료 냄새는 불법이고, 당장 인체에 유해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 불순물이 더 쌓일 경우가 예상되면 불법성을 인정 받을 수 있고,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돼지고기 혐오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지만 채식주의자들의 육식혐오는 단지 편견에 의한 혐오로 볼 수만은 없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경계선상의 문제(층간 소음, 고등어 냄새, 실내 흡연, 내 집 주변의 혐오 시설... 등등 )들이 산재해 있는지 짐작케 한다. 우리는 사회의 기초가 되는 핵심적원리로서 적합한 가치들을 잘 가려낼 수 있을까?  

이렇게 인간의 취약성과 유한성을 상기시키고 오염에 대한 거리두기의 감정인 혐오와 연관된 감정이 있다. 4장에서 다루고 있는 '수치심'이 바로 그것인데 누스바움은 수치심의 기원을 주로 대상관계 정신분석(인간을 관계 속에 존재하고 발전하는 존재로 여기는)에서 가져온다. 인간은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채 세상에 나와, 돌봄제공자를 통해 대상 세계와 만나게 되면서 불완전함과 더불어 외부적 대상에 의존하게 된다. 이렇게 필요, 불안, 불완전함이라는 조건에서 유아가 피할 수 없는 나르시시즘적 좌절에 직면했을 때 형성되는 수치심을 누스바움은 ‘원초적 수치심’이라 부르는데, 이는 우리 삶 속에 잠복해 있다가 향후 사회적 도덕적 삶에서 계속 위험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원초적 수치심은 장난스럽고 창조적인, 그리고 불완전하다는 점에서 평등한 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미묘한 상호작용’을 거쳐 그 긴장감을 이완시키지 못하면 공격성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타인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가족과 사회는 바로 이런 원초적 수치심을 조장하기도 한다. 아무도 아들에게는 내적 세계를 보라고 말해주지 않고, 여성스러운건 폄하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 파괴적 메시지가 사회에 난무한다. 정상적인 것에서 벗어난 것은 낙인찍힌다. 통계적으로 빈번하거나 규범적이라는 사고와 관념에서 비롯된 정상성의 개념은 유아기적 나르시시즘과 자신의 불완전성에서 생겨난 수치심에 대한 공격적 반응의 기원이다.

그러나 수치심이 혐오와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수치심은 건설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도덕적, 공적 규범과 연결되어 타인의 삶에 대한 공통 감각을 지니며 인간 취약성을 인정하는, 그래서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여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그런 의미에서의 수치심 말이다. 우리는 어떤 수치심을 느껴야 할까? 오늘날 우리는 어쩌면 수치심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한데 그 수치심은 어디에서 온 수치심일까? 도달하지 못할 완전성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수면’ 상태에 기어이 들어가고야 마는 우리의 자아 심리는? 사회적 낙인의 기초가 되는 유아기적 나르시시즘의 측면에서 접근하여 살펴본 수치심의 역학은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인간성과 개별성을 모두 부인하려는 충동이라는 점에서 혐오/편견의 역학과 다르지 않음이 느껴졌다.

댓글 3
  • 2022-09-20 16:49

    스르륵샘의 발제도 믿고 읽는 발제인데, 후기도 넘 정리를 잘해주셔 감사합니다~ 도더적 수치심이 없어 너무 뻔뻔해진 사회에 대한 성토도 있었고, 외모, 학력, 직업, 재산 등등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수치심의 항목들이 더 늘어났다는 반론도 있었고, 신당역 살인사건도 있고, 뭔가 우리 사회의 중핵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 2022-09-20 17:04

    원초적 수치심이 인상적이었어요. 스르륵쌤이 말씀해주신 한국사회 가해자들끼리 공유되는 감형세트. 피해자의 피해와 고통에 한참 못 미치는 양형에 대해서 상기하며 분노했네요. 잠깐의 분노에 멈추지 말고 건설적 수치심과 더불어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어째야 할까요. 질문 품고 계속 세미나 해야겠어요

     

    이번 혐오와 수치심을 공부하면서 법에 대해 쥐뿔도 모르고 있구나 느끼며 한 때 법 공부하셨던 정의와 미소님 말씀 귀하게 듣고 법과 관계된 책들 일단 몇 권 모아놓았습니다. 부디 함께 읽어나가길 ㅋㅋ 

    밑줄 쫙쫙 긋고 싶은 정리 잘 된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2-09-23 22:23

    꼼꼼한 발제와 후기에 감탄했습니다- 5장 발제를 하고 나서 스르륵샘 후기를 읽으니 건설적 수치심이란 무엇일까 가능할까에 대해 내일 많은 이야기 나누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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