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읽기/논어4] 지금도 공자님의 '효(孝)'가 유효한가요?

곰곰
2022-07-11 10:19
386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지 20년이 넘었다. 타지에서 생활하면 자주 뵙기 힘든 부모님에 대한 ‘효’는 더욱 간절해진다. 나와 사정이 비슷한 남편은 혼자 계신 시어머니가 걱정되어 나에게도 안부 전화를 드리는지 자주 확인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도 누가 시켜서 하려면 마음이 달아나는 법. 나는 미루다 미루다 마지못해 한 번씩 전화를 드리곤 한다. 아무래도 이건 ‘효’라고 말하기 좀 그렇다. 얼마 전 친정엄마의 칠순을 기념한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왕이면 더 멋진 장소, 더 맛있는 음식, 기준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딜까 고민했고 그에 따라 여행 일정은 빡빡해졌다. 다행히 별다른 다툼 없이 여행을 잘 마쳤고 ‘고마운 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문득 그때 내가 ‘효’라고 믿고 행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가 ’효’를 말하다.

 

<논어>를 보면 여러 사람이 공자를 찾아와 효에 대해 묻는다. 당시에도 효를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공자의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효는 구체적인 행위들로 드러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로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는 일정한 형식(禮)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격식에 맞는 행동이라도 마음이 빠져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공자는 효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한번은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합니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위정 6)

 

아마도 맹무백은 건강이 좋지 않았나보다. 그러니 공자는 부모에게 효도한답시고 특별한 무언가를 하기 전에 자기 몸부터 잘 보살피라고 한 것이 아닐까. 부모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야말로 효라고 말이다. 이번에는 자유가 효에 대해 묻는다. 공자의 대답은 앞서와 또 다르다.

 

자유가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요즘에 효는 부모님께 음식을 잘 해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개나 말도 모두 잘 먹여 키우니,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무엇이 다르겠느냐?”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 不敬, 何以別乎?” (위정 7)

 

날카로운 지적이다. ‘요즘’이라고 한 걸 보니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효를 형식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부모를 잘 봉양(奉養)하면 된다고, 즉 자식은 늙은 부모를 먹여 살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자는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개와 말을 예로 든다. 사람은 개와 말에게도 먹이를 가져다 주고 집을 만들어 준다. 만약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부모를 봉양한다고 해도 개나 말을 키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아마도 공자가 보기에 자유는 부모를 모시는 데에 마음으로는 정성을 다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래서 음식을 잘 해드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마음으로 봉양해야 함을 강조한다. 공자가 말하는 ‘효’는 가장 정성스럽되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효’에 대해 생각하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 혼란의 원인을 도덕성의 타락으로 진단하였다. 그 혼란을 극복하고 올바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핵심요소로 ‘인(仁)’을 주장한다. <논어>에서 인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나 자신을 수양하고 다른 사람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 남을 배려하고 남과 함께 하며 나아가서 남을 위하는 의미까지 담겨있다. 인을 실천하는 근본은 효이다. 공자는 늘 가까운 데에서부터 인을 실천한다. 나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수양하는 ‘극기’에서 시작한 인은 나와 가장 가까운 내 부모를 섬기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내 부모를 섬기는 마음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고 공경한다면 더 이상의 규범과 도덕이 필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평천하가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다는 것은 윗사람이 부모께 효도하면 백성에게서 효가 일어나고, 윗사람이 웃어른을 제대로 모시면 백성에게서 공경함이 일어나고, 윗사람이 홀로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백성이 배신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군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헤아려 보는 도가 있다.”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대학> 전10장 - 平天下章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평천하를 말하면서 효를 그 시작점으로 삼는다. 공자가 말하는 효는 우리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단순히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봉양하는 것보다도 범위가 훨씬 넓다. <논어,사람의 길을 열다>(배병삼)에서 저자는 부모가 내리사랑을 하는 것은 모든 동물이 다 그렇지만, 부모의 사랑을 알아채고 그것을 감사히 여겨 이를 되갚겠다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그만큼 효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공자는 이 인간만이 가진 ‘사랑 되돌려주기’(치사랑-上愛無)에 깊이 감동 하였고, 이 되돌려주는 사랑을 확산시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겠다고 작정했다.
효는 목표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운동을 하고 체력을 키우는 것은 땀을 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효를 실천하는 것은 효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되돌려주는 사랑’이라는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다. 가족은 우리가 인을 계발하는 헬스장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에서 시작하라. 사랑으로 충만한 관계는 결코 가족 안에서 머물 수 없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서 가족으로, 이웃으로, 국가로 모든 지각있는 존재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할 때 인은 연못에 던진 돌멩이처럼 커다란 원을 만들며 퍼져 나간다는 것이 공자의 믿음이다.

 

‘효’는 방법론이다.

 

자하가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 앞에서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일이 있을 때는 젊은이가 힘든 일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을 때는 어른이 먼저 드시게 하는 것,
이것을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위정 8)

 

공자는 부모를 위해 수고로운 일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한다. 이것도 효성스러운 태도는 맞지만, 효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얼굴빛(표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마 자하는 효행을 실천하기는 하는데, 얼굴 표정에는 귀찮은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던 모양이다. 그 표정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효라고 할 수 있을까? 마음이 빠져 있다면 당연히 행동의 효과도 반감된다. 효를 행함에 있어서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이다.
최근에 어르신 케어 AI 로봇이라는 광고를 봤다. 로봇이 노인의 가장 친한 벗이라니 슬픈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미 고령화 시대는 시작되었고 노인을 책임지고 보살필 필요성은 점차 커지는데, 바쁜 자식은 부모를 챙길 여유가 없다. 그렇지만 독거노인을 살피는 반려 로봇이 자식의 미안한 마음을 대변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숨이 난다. 남편 등살에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나도 결국은 이와 비슷한 것 아닌가? 공자의 효에 대입해 보면, 효성스러운 태도가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려면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니 말이다.

 

 

공자의 ‘효’는 현재의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공자의 말대로 부모님께, 나아가 시어머니께 진심에서 나온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효’를 행한다면 무척 기쁘고 좋은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르자, 정작 내 마음은 답답하고 불편해진다. 지금도 그런 효만이 마땅한 것일까? 과거의 사상은 흐트러지고 모든 것이 변했다. 그럼에도 옛날에 장착된 효의 마음은 그대로 남았고 그 형식도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봉양도 제대로 못하는 시대에 어르신 케어 로봇은 효의 형식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에도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일테다.

하지만 효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공자는 효가 구체적인 행위이기에 그 마음을 중시했다. 마음은 일반화해서 말할 수 없고 행위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질문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주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전통적인 효에 대한 생각만 고집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아직 그런 사람이 있다면 공자는 도리어 역정을 내지 않았을까. 공자가 말한 효의 기본과 ’색난(色亂)’의 의미는 되새기되, 지금도 그것이 유효한지 다시 물어야 한다. 얼굴색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여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 의미있는 효일지, 정체된 효의 자리에 머물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에 미치지 못함에 힘들어 하는 건 괜찮은지 말이다. 효가 살아 있으려면, 지금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효의 방법, 각자의 처지에 따른 맞춤형 효의 방식을 상상하고 계발해야 할 때가 아닐까. 여전히 ‘효’는 질문이다.

댓글 3
  • 2022-07-12 16:27

    시부모님께 효도하기  인생과제입니다.

    가부장 문화의 분위기가 여전한 상태에서  마음을 담는 효를 행하기

    아슬아슬 줄타기도 해보고 가끔은 반항도 해보고

    슬기로운 효도생활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보는 수밖에

     AI는 좀 ......

    곰곰의 논어읽기 재밌습니다~

  • 2022-07-15 07:32

    효도와 관련  얼굴빛을 가다듬기 어렵다는  색난의 문제를 고민해 보게도 되는... 시간이었어요^^

  • 2022-07-19 18:48

    병원을 전전하는 친정엄마 때문에 막내동생은 오늘도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바쁩니다. 동생은 동양고전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효'를 말할 때 절로 막내동생을 떠올릴만큼 엄마에 정성을 다합니다. 엄마의 지독한 고집과 아들만 좋아라하는 고약한 말에 눈물도 찔금거리고 '다시는 엄마 수발 안하겠다'고 선언하지만, 그래도 역시 제일 먼저 엄마의 보족기와 살살 녹는 복숭아를 사야 된다고 난리 블루스를 칩니다. 효의 사상이 바뀌었나요? '효도란 이러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이는 동생이 있어 엄마한테 덜 미안합니다....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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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28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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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조회 18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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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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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75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157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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