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매미가 울다

토용
2022-06-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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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수의 부(賦) 두 편을 읽었다. 추성부(秋聲賦)와 명선부(鳴蟬賦).

강독 시간에 賦를 읽게 되면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 한다. 우선 모르는 한자가 많이 나오고 내용도 만만치 않아 예습 시간이 평소보다 2~3배는 더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구양수의 부는 그럭저럭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고문운동의 영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대(五代) 시기의 혼란에 성행했던 유미적이고 쾌락적인 문학풍조는 송나라가 안정되면서 고문운동을 통해 점차 쇠퇴한다. 그 선두에 구양수가 있었다. 만약 구양수가 없었다면 남조 시대 귀족문화로서 극단적 형식주의 문체였던 변려문을 배격하고 고문운동을 벌였던 한유의 정신은 계승되지 못했을 것이다.

 

명선부는 매미 우는 소리를 듣고 쓴 글이다.

매미는 여름 한철 잠깐 우는 것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렇게 보면 운다는 것은 존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인 듯하다.

구양수가 묘사한 매미는 ‘시원한 바람을 이끌어 길게 휘파람불고 가는 나뭇가지를 안고 길게 탄식한다. 우는 소리는 피리소리가 아니라 현악기와 같다. 찢어질 듯 부르짖다가 다시 오열하고, 처절함은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진다. 외로운 운을 토하여 율에 맞추기 어려워 오음(五音)의 자연스러움을 품고 있다.’

이어서 그는 만물의 울음에까지 시선을 넓힌다. 계절과 절기의 변화에 따라 온갖 새와 벌레가 운다. 꾀꼬리, 귀뚜라미, 두꺼비, 하다못해 지렁이까지 운다. 소리를 내지 않을 것 같은 지렁이도 샘물을 마시고 흙을 먹으면서 긴 밤 노래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철이 변하고 물건이 바뀌면 모두 조용하여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만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다르다. 사람도 우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언어와 문자가 있어 그 울음을 오랜 세월 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울어야 할까? 구양수는 구구히 쓰지 않았지만, 고대 이래 누가 잘 울었는지를 보려면 한유의 <송맹동야서>를 읽으면 된다.

 

구양수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구양수는 자신을 노년에 육일거사(六一居士)라 칭했다. 왜 육일이냐는 물음에 “나에게는 『집고록』 1천 권, 장서가 1만 권, 가야금 하나, 장기 하나, 술 한 주전자가 있다.”라고 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단지 다섯 종류의 ‘일(一)’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여섯 종류의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 하자, 구양수가 웃으며 “거기다 늙은이 하나를 더하면 여섯 종류의 ‘일’이 되지 않는가?”라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유머가 뛰어난 사람이라니, 취옹정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댓글 1
  • 2022-06-29 11:47

    제가 생각해 온 '울음'의 표상을 넘어서는 '울음관'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근데 왜 한유의 글을 읽을 때보다 구양수의 글을 읽을 때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마도 한유의 글에서 울음이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과 달리 구양수의 글이 더 확장된 자연을 끌어들이고 있어서 생각의 폭을 넓히게 촉발한 것 같아요.

    <장자>는 우주적 차원으로 소리를 넓히고 있지 않나..  그 또한 유가와 도가의 차이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멋대로 더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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