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서야 놀자'를 잠시 쉬고 지난 2월 유럽을 다녀온 청량리의 여행담을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   청량리의 유럽여행기 오해(誤解)와 이해(理解) 사이 -2부 <여행개요> 여행경로 : 일본(나리타) - 덴마크(코펜하겐) - 스페인(7개 도시) - 포르투갈(4개 도시) - 프 랑스(파리) - 그리스(아테네) (총 6개국 15개 도시) 여행기간 : 1월 23일 - 2월 19일 (28일간)   아쉬운 성지(聖地),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걷는 이에게 이곳은 성지(聖地)다. 하지만 내겐 이래저래 아쉽기만 한 도시다. 우선 숙소가 압구 정의 한 가운데 있는 오피스텔 같았다. 주변의 화려한 부티크와 음식점들은 전혀 성스럽지 않았다. 산티아고 대성당 주위 구도심을 제외하곤 가파르게 개발되고 있었다. 게다가 순례길을 따라 걷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산티아고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직접 본 산티아고 대성당은 규모의 거대함과 장식의 화려함이 다소 눈에 거슬렸다.  오후에는 알바로 시자의 작품인 산티아고 현대 미술관에 갔다. 이 미술관은 이번 여행에서 찾아본 그의 작품들 중 마지막 건물이다. 그의 인상적인 대표작 중 하나. 하지만 마지막에 와서 드는 생각은 알바로 시자를 찾는 이번 (건축)여행이 오히려 무모했다는 것이다. 가보지 못한 곳에, 심지어 들렀던 도시에서 조차 못 보고 지나친 그의 건물들은 너무도 많았다.  대표작 몇 개만 보면 (그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은 어리석었다. 더군다나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면서 알바로 시자만을 보려 했던 것은 더욱 큰 잘못이었다. 이곳의 거리 곳곳에서는 훌륭한 느낌의 지역건축가들이 너무도 많았다. ‘무엇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걸까?’ 하지만 내일도 여행은 계속된다. 산티아고를 끝으로 ‘알바로 시자 순례(?)’를 마치고 이제는 ‘가우디’를 만나러 간다.           자전거 팔아요! 단돈 62유로   여기까지 왔으니 가우디 이야기는 한 마디 하고 가야겠다. 바르셀로나에 오기 전부터 왠지 가우디로 장사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했다. 가우디의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건물 한 곳의 입장료가 알람브라 궁전 전체 입장료보다 비쌌다. 그런데도 건물 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거렸다. 건물 주변은 이미 쇼핑센터나 의상부티크가 차지하고 있었다. 명동의 한 복판에서 가우디의 작품들을 보는 듯 했다. 그나마 ‘성 가족성당’에 와서 규모와 디테일에 다소 위안이 된다. ‘100년 넘게 아직도 공사중’임을 오히려 강조하는 건물이다. 공사를 위해 세워진 타워크레인조차 건물의 일부처럼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요즘 만든 부분들의 디테일은 엉성하다. 조각에도 정성이 없어 보인다. 이 상태로 갔다간 완공되어도 욕만 얻어먹을 것 같다.  사실 가우디의 작품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꼭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었다. 렌터카 반납과 자전거 팔기. 차야 사고 없이 돌려 주면 되니 걱정할 건 없고, 문제는 자전거를 파는 거다. 몇 번 타보지도 않은 새 거라 다행이었지만 ‘왜 갖고 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숙소 직원에게 ‘자전거를 팔고 싶다’고 말하니 자기가 아는 자전거포를 소개해 준다. 역시 일이 되려고 하니까 이런 행운도 온다. “얼마 받을까? 80유로? 조금 깎아줄까? 75유로?”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자전거포에 갔다. 젊은 친구 둘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였다. 이리 저리 살피는 듯 하더니 “지금은 겨울이라 흥미가 없다. 게다가 우린 이미 자전 거가 많다”라며 안 사겠단다. 뭣이라?? 우린 가격도 흥정해 보질 못 했다. ‘이거 열 번도 안 탄 거다, 한국에서 직접 가져 온 거다, 색깔 봐라. 멋있지 않냐?’ 등등 한참을 떠들어도 반응은 시큰둥하다...-_-;; 난감했다. 가게 앞을 나서며 못 팔지도 모 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옆에서 Y는 ‘대책 없이 자전거 판다고 나섰다’며 핀잔을 준다. 하는 수 없이 직접 돌아다니며 팔아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숙소 직원에게 부탁해서 스페인말로 문구를 써 달라고 했다. 뭐 대충 내용은 이랬다. ‘자가 자전거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 1년만 타면 본전은 뽑는다! 더 이상 임대용자전거에 미련을 갖지 말자!’ 하지만 또 옆에서 Y는 ‘그거 다 읽어보는 사람 이 어디 있겠냐?’며 짧고 굵게 쓰란다. ‘sale my bike 62유로!!!’ -_-;; 안장 뒤에 붙이고 길을 나섰다. 일단 ‘성 가족성당’까지 가보기로 했다. 골목길이나 전철 안에서, 계단에서 자전거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후훗...^^;; 하지만 다들 ‘눈팅’만 하고 정작 물으러 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시 불안해진다. “안 되면 렌터카 반납하면서 거기 사람에게 20유로에라도 팔아야지, 뭐” 낙담을 하는 사이, Y가 내기를 건다. “이거 60유로 이상에 팔면 내가 만원 줄께!” ‘성 가족성당’에 도착했지만 자전거를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박수라도 치면서 사람을 끌어 모아야 하나? 그 순간, 누가 말을 건다. “이거 파는 거냐?” 오호, 현지인 젊은 부부다. “그렇다.” “한 번 타 봐도 되나?” 공원을 한 바퀴 돌더니 어떻게 접 히는 지, 어디서 샀는지, 얼마 정도 탔는지를 물어본다. 뭔가 일이 될 거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티 안내려고 팔짱을 낀다. “90유로 이상 주고 산 건데 싸게 파는 거다.” 사겠단다. 정말요? 흑흑...은행에 갔다 올 동안 잠깐 기다리란다. 그 잠깐이 왜 이리 길게만 느껴지는지. 현금을 받고 자전거를 넘기고 얼른 그 자리를 떴다. 혹시나 맘이 바뀌더라도 우릴 못 찾게...-_-;; 자전거 판돈을 만지니 아직도 흥분된다. 그리고 홀가분하다. 지금도 그 오렌지색 자전거는 스페인을 잘 누비고 있을까?     난 조언을 구하는 게 아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와인과 저녁거리를 샀다. 보양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냄비 바닥까지 박박 긁어 먹고 와인 한 잔을 하니, 우리의 고민들이 다시 대화에 오른다. 답답해하는 녀석에게 뭐라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읽었던 책과 정토회 이야기를 꺼내본다. 듣던 Y는 답답해한다. 내가 이상하게 변했단다. “대학교 때는 안 그랬는데, 뭔가 말하면 넌 꼭 조언 해주려고 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어. 지금 내가 너한테 조언을 해 달랬냐? 근데도 뭔가 거창한 걸 말해주려고 하더라. 왜 그래?” 아내와의 일이 생각이 났다. 언젠가 논리적인 답을 구하는 이야기도 아닌데, 나는 그 일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늘이 되어 상대방에게 아픔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설령 내가 옳은 것을 말하고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지금도 Y는 옆에서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는데 나는 녀석의 위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넌 왜 네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말해 주려고 하는데? 고민은 나한테만 있는 것 같네...쳇” 가까운 사이일수록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때도 그랬다. 녀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결국 하지 않았다. 사람 마다 관계 맺는 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베리아 반도 여행이 다 끝난 오늘 저녁, 이제야 Y와 관계 맺는 법을 조금씩 알 게 되는 것 같았다. 내일은 드디어 파리에 입성한다.          날씨도 사람도 길거리도 우울한 파리   파리에 도착한 늦은 밤, 내일은 각자 루트를 잡고 여행하기로 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미술작품에 관심 있는 Y. 반면 나는 파리 시내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기로 했다. 다음 날, Y는 아침도 안 먹고 새벽같이 떠났다. 혼자서 아침 먹으면서 점심때 발라 먹을 잼 몇 개를 몰래 챙기는데 아줌마가 자꾸 눈치를 준다. 파리는 지금까지 먹은 숙소아침 중에 최악이다. 에펠탑과 개선문, 쁘띠 팔레와 시립미술관 등등을 돌아다니다 느지막이 ‘퐁피두 센터’에 도착했다. 말로만 듣던 퐁피두 센터 앞에 있으니 신기 하다. 사실 파리는 별로 매력이 없었다. 길거리는 사람똥과 개똥이 뒤섞여 더러웠고, 사람들은 대부분 부랑자들같이 눈빛이 우울했다. 잠시라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불안함이 이 도시엔 있었다. 파리지엔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 비하면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은 순박해 보였다. 그러다 보니 에펠탑과 개선문 등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다. 다만 여기가 파리 임을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인식장치에 불과한 것 같았다. 퐁피두 센터를 한참을 둘러보다가 세일하는 책도 몇 권 샀다.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사실 이곳에 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기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1박을 더 해야 하는 데, 근처 숙소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웬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손짓으로 들어오란다. 잉? 나를 아는 건가? 얼떨결에 들어가 만나서 이야기해 들어보니 파리에서 무료안내관광을 하는 분이다. 한국에도 두어 번 온 적이 있단다. 이번 휴가엔 부산에 가보고 싶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하지만 ‘이왕 도서관에 들어온 거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후다닥 검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부슬비가 제법 오기 시작한다. 게다가 지하철 출구를 잘못 찾아서 숙소로 오는 길을 헤맸다. 겨우 숙소에 도착하니 Y가 밖에 나와 있다. 오호, 나를 기다려 준건가? “많이 기다렸어? 저녁은 먹었냐?” 헌데 그게 아니었다. “야, 대강 좀 해라, 어!!” 잔뜩 화가 난 Y는 그렇게 한 마디 쏘아 붙이고 방으로 휙 올라가 버린다. 우리는 저녁에 만나기로 했을 뿐 돌아오는 시간은 정하지 않았었다. 9시가 조금 넘긴 했지만 마냥 놀다 온 것도 아닌데...“야! 뭐야, 지금!!” 다시 Y를 소리쳐 불렀다. 왜 늦었는지를 나름 설명하려 고 애썼다. 하지만 Y는 대꾸를 안 했다. 이제는 나도 화가 났다. “됐다! 그렇게 말없이 뚱하게 있으려면 그냥 올라가든가, 네 맘대로 해!!” 뭔가 풀어야 하는데, 잔뜩 화가 난 Y는 그렇게 먼저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의 침묵은 적막했다. 나의 부정확한 시간관념에 불만인 Y와 녀석의 조급함이 못 마땅한 내가 파리에서 드디어 폭발한 거다. 이렇게 되면 남은 그리스는 더 이상 같이 못 다닐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조금씩 녀석을 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눈을 떴는데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뭘 해야 할지도, 녀석과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일어났냐? 아침 먹을거지?” Y가 먼저 말을 건낸다. 밥 먹자는 말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다행이다. 괜히 지금 눈을 뜬 것처럼 “어? 으…응” 부스스 일어났다. 둘은 마주보고 앉아서 한동안 말없이 빵에 잼만 바르고 있었다. “어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네가 그렇게 올라가버리는 바람에 말 못했다. 미안하다.” 먼저 사과를 했다. “너랑 시간 약속을 안 한 게 잘못이지. 그렇다고 그 시간에 들어오냐? 참 너란 인간은 알 수가 없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 그러면서 Y가 덧붙여 말했다. “그것도 일이지만, 사실 어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알고 보니 녀석이 디카를 잃어버린 것이다. 기념품가게에서 둘러보고 나오는 데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아뿔싸. Y는 급하게 경찰서를 찾아갔다. 헌데 경찰서 3곳에서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서로 뺑뺑이만 돌린다. 결국 화가 나서 한 마디 했더니 그제야 사건 경유서 양식을 꺼낸다. 다 끝내고 허탈하게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그때부터 나를 기다린 것이다. 헌데 8시가 넘도록 오지도 않고 ‘전화를 할까?’ 공중전화를 찾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카메라 잃어버리고 나는 늦게까지 오지도 않고. Y는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들 중 절반 이상을 잃어버렸다. 어제 녀석의 마음이 어땠을까?  우리는 그렇게 아침을 먹고 다시 파리로 나섰다. 국립중앙 도서관에서 삶은 계란을 나눠 먹었고, 라 데팡스 계단 아래에서는 샌드위치를 같이 먹었다. 에펠탑이 노을에 물들 때까지 쉬었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와인 한 병도 샀다. 오늘 느꼈다. 녀석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서로 다르지만 의지할 수 있다는 걸.         공항에 울려 퍼진 우리 이름   떠나기 전 같은 방을 썼던 일본인 친구에게 작은 고추장 튜브를 줬다. 9개월째 자전거로 배낭여행을 하는 친구인데 앞으로 도 6개월 정도 더 남았단다. 우리보다 더 ‘헝그리’해 보였다. 별다른 소스 없이 파스타를 해 먹는 거 보고 안쓰러웠다. 매운 걸 좋아한다고 해서 줬더니 엄청 좋아한다...^^;; 마트에서 저녁거리 살 때 만난 한국인에게는 지도 하나를 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예정이란다. 헌데 계획하고 떠나는 순례길이 아니어서 그 친구에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우린 이미 산티아고 를 떠나왔기 때문에 스페인 관광청에서 받은 산티아고 지도가 필요 없었다. 어젯밤은 초조와 불안, 억울함과 미안함에 잠 못 들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평온하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부리나케 노틀담 성당을 훑어보고 공항으로 향했다. 헌데 시간이 좀 늦어 캐리어를 수화물로 부칠 수가 없었다. 설득 끝에 기내에 갖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우리는 탑승장소로 뛰었다. 헌데 그게 문제였다. 수화물로 부쳤으면 특별한 일이 없었을 텐데 검사원들이 캐리어와 배낭을 모조리 열어서 뒤진다.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 사이 방송이 나온다. “승객 중에 Y와 청량리, 속히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원을 쳐다보며 ‘우리 이제 가야 한다’고 했는데도 뭘 찾아야 한다며 기다리 란다. 가스 활명수를 검사원이 약물이라며 버리려고 하자 Y는 얼른 마셔버린다. 다시 방송이 나온다. “승객 중에 Y와 청량리, 얼른 탑승 바란다!!” Y는 흐르는 진땀을 닦는다. 녀석의 검사가 끝났고 먼저 비행기에 탔다. 내 검사원은 캐리어에서 자꾸만 뭔가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방송이 또 나온다. “청량리!! 빨리 타라!!” 결국 비행기에서 승무원이 달려온다. “네가 청량리지? 얼른 가자!!” 검사원은 개의치 않고 계속 캐리어와 배낭을 뒤진다. 그러더니 짠! 하고 꺼내 든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팔았던 자전거에 딸린 작은 쇠뭉치(조립할 때 쓰는 거). 엑스레이 통과기는 폼인가? 형태를 말해주면 금방 찾을 것을. 서로 농담 주고 받으며 설렁설렁 검사하는 모습이 영 맘에 안 들었다. 다 끝나고 ‘미안하다, 이제 가도 좋다’ 뭐 이런 말도 없다...-_-;; 우리들 때문에 비행기는 출발이 지연됐고 난 제일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헌데 바퀴가 땅에서 떨어졌을 때, Y가 갑자기 ‘크으~’ 신음소리를 낸다. 검사 끝나고 급하게 비행기에 타느라 잠바를 안 입고 온 것이다. 카메라에 잠바 까지. “이젠 뭘 더 잃어버 려야 하지?” 녀석이 한숨을 쉰다. 시작부터 나갈 때까지 파리는 어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다.       역시 사람을 잘 만나야지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당황했다. 전철, 버스, 기차 모두가 파업이라 운행을 안 한다는 것이다. 유일한 운송수단이 택시였다. 시내까지 32유로 균일요금. 너무 비쌌다. 우리는 합승할 만한 사람을 물색 하기로 했다. 혼자인 사람, 가방이 별로 없는 사람, 우리와 방향이 같은 사람 등등. 몇 번의 실패 후에 출장 온 독일인 회사원을 만났다. 이야기가 잘 된다. 시내로 들어와 그 아저씨가 먼저 내릴 호텔 앞에서 영수증을 요구했고 영어를 못 하는 택시기사와 실갱이가 벌어진다. 답답한 아저씨는 전체 요금을 지불하고 “괜찮다. 회사돈이니 청구하면 된다”면서 택시기사에게 우리 숙소까지 가달라고 부탁까지 해준다. 이런 행운이!! 숙소까지 공짜로 택시를 얻어 타고 온 셈이다. 헌데 택시기사는 숙소 앞에서 10유로를 더 내야 한단다. “그 아저씨가 요금 다 낸 거 안다. 게다가 우린 돈도 없다”고 하자, 그는 뭐라고 궁시렁 거리면서 가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_-;; 드디어 마지막 여행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전날 고대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봤고 오늘은 반대편 언덕에 올랐다. 다시 한 번 파르테논을 보면서 ‘잘 있어라. 언제 널 또 보겠냐’ 인사를 했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 경찰관 한 명이 갑자기 우리 앞에 선다. “당신들 여권 좀 보여달라” 순간 뜨끔 했다. 여권 사본만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상한데, 왜 당신들은 사본을 들고 다니지?” 우린 지갑과 디카 잃어버린 경험을 이 야기하면서 이유를 댔다. 하지만 손목에는 알 수 없는 비닐봉지가 감겨있었고, 헐렁한 츄리닝 바지에, 둘 다 새까만 동양인이 었다. 게다가 갖고 있는 여권도 복사본. 그 경찰관 눈에는 불량한 밀입국자로 보였을까? 잠시 후 다른 경찰관 두 명이 더 와서는 “무슨 일이야?” 우리를 위아래 훑어보더니 몇 마디 주고받고 결국 보내준다. 휴우...돌아서면서 “뭐야, 저 자식!” 이라고 내뱉었지만 아직도 가슴은 두근거렸다.     마지막 만찬과 헤어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만찬을 위해 수산시장에 들렀다. 어제 저녁을 먹은 가게에서 생선을 가져오면 5유로에 구워준 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제대로 된 해산물을 먹어본 적이 없는 우리였다. 생선을 본 가게 아저씨는 깜짝 놀란다. ‘비늘도 안 벗기고 내장 손질도 안 된 걸 어떻게 먹냐’는 것이다. 몰랐다. 그저 ‘fresh fish’면 된다고 해서 수산시장에서 사 온 것일 뿐이다...-_-;; 칼도 없어서 아저씨께 식사용 나이프를 빌렸다. 숙소 직원 몰래 방으로 가져와 화장실에서 손질을 했다. 비린내가 방 전체에 진동을 한다. Y는 향수를 마구 뿌린다. 칙칙- 다시 몰래 가게로 와서 30분을 기다린 끝에 우리 손에 들린 생선구이는 일품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산 생선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발코니에서 먹으니 더 즐거웠다. 와인 두 병을 금세 비운다. 마침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들어온다. 같이 합석을 했다. 알고 보니 그리스에 여자친구가 있는 프랑스 대학생이었다. 그 친구 술이 들어가니 조심스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문제다, 23일에 그리스 노동 총파업이 있을 거다, 프랑스에는 인종과 언어문제가 심각하다’ 등등. 술기운에 조금 오버했다. 마지막 만찬 자리인데 그 친구의 이야기에 혼자 열을 내고 있었다. 그리곤 Y와 비틀거리면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아쉬웠다. ‘굳이 내가 저 프랑스 친구 이야기에 오버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여행의 마지막 만찬인데 Y와 그렇게 보내다니...쩝. 그때는 새벽까지 이야기 했지만, 돌이켜보면 사실 별 기억도 안 나는 친구다. 소중한 것은 주변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됐었다’ 싶은 생각이 든다. 거의 매일 밤 와인 한 잔에 고민과 토론이 한 접시였다. 그래서 녀석과 같이 그저 웃고 즐기며 생선구이를 재밌게 먹을 수 있었던 시간이라 좋았다.  그리스를 출발, 코펜하겐과 북경을 거쳐 다시 한국에 도착했다. 주변에서 한국말이 들리니 오히려 낯설다. 말과 행동이 갑자기 조심스러워진다. 여행 중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그걸 Y와 둘이서 해결해야만 했다. 난 Y를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남이 생각하는 나를 자주 볼 수 있었다. Y를 알아가는 시간이 결국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었다. 그래서일까? 매일매일 낯선 아침을 마주했던 공간에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편한 만큼 무디기도 하다. 그 무뎌짐이, 익숙함이 두렵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녀석과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고마워. 일상에 돌아가서도 잘 살아야 돼!’ Y에게도 나에게도, 토닥토닥 토닥토닥...         에필로그  아이는 한 달 만에 나를 보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서럽게 운다. ‘그동안 어디 갔었어!’ 라고 항의하는 것 같다. 그걸 보니 나도 울컥한다. 차 안에서 아내는 그 동안 둘이서 고생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준다.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고마운 만큼 무거운 마음도 함께 가지고 있으려 한다. 안 그러면 고마움이 쉽게 사라질 테니까.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틈|   원문과 댓글은 http://www.moontaknet.com/5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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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그녀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요? 완벽한 추장님이었던 만능 지금님은 왜 그때는 "2% 부족한 그녀" 였을까요? 2% 부족한 그녀, '지금' 어디있어? 달 팽 이 2009년 용인으로 이사하고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이 아파트 내 도서관이었다. 거기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친구를 만났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다. ‘지금’은 내게는 낯설기만 한 새 아파트의 터주대감으로 동네 아줌마들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마당발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이 다른 평범한 아줌마들과 달리 아이교육을 어떻게 더 잘 시킬까가 아니라 도서관이 동네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고민하는 개념아줌마임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가 있어 용인에서의 삶이 더 즐겁고 좋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문탁에서 마을과 경제 세미나를 처음부터 함께 해온 내 친구 ‘지금’이 올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문탁 축제 준비에 자발적으로 나섰다. 축제가 끝나고 뒷담화를 나누었다.(우리는 서로 반말하는 사이지만 반말로 쓰기도 거시기하여 그냥 이렇게 고쳤다.) “축제준비는 문탁에 줄 수 있는 선물” - 2011 문탁 인문학 축제 준비위원을 자원했는데 어떤 동기로 그렇게 했는지, 축제 준비과정은 어땠는지 얘기해주세요. 문탁에서 순환하고 있는 선물경제에 어떻게 참여할까 생각했었고, 특히, 글쓰기 공작소에서 받고 있는 넘치는 선물(수강료 없는 글쓰기 수업)에 무엇으로 답례를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마침 축제준비위원회에서 마을과 경제 세미나에 축준위원 참여를 요청해서 바로 이거다 싶어 자원했어요. 준비과정에서는 준비위원이어서 어쩔 수 없이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니 과정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준비과정에서 축준위와 운영회의의 이중구조로 논의가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준비위 중 저만 회원이 아니어서 중간 중간 단절감이 들고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더군요. 논의가 미진했던 부분이 운영위에서 결정된다던가 하는.. 어떤 부분들은 체계적으로 체크되지 않고 넘어가기도 해서 조금 아쉬웠어요. 그래도 축제의 전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축제 내용 중 좋았던 것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이전에 경험했던 축제들과의 차이점은 어떤 것이었는지도. 대학 때나 도서관활동에서 경험했던 것과 비교하면 처음엔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렵게 준비하지 않고 쉽게 간다고 할까. 그게 잘못 됐다는 게 아니라 좀 낯설고 어색했었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준비해서 될까했던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즉흥성이 살아나거나 흥겹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복아고라의 경우 가능할까 했는데 꽤 좋았고 직접 축제에 오지 못하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겠구나 싶었어요. 마지막 순서인 공연도 사회자의 능력에 힘입은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준비정도보다 재밌었고요. 준비 많이 한건 데 나만 아니라고 생각하나 ㅎㅎ - 친구 분들을 축제에 초대했었는데 어떤 기대로 초대하였고, 참여한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문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초대했어요. 참여했던 친구들은 직접 참여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담스럽지만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반갑고 놀랍다고 하더군요. 인문학공부라는 것이 사람관계를 매개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문탁네트워크가 외연을 확장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듯도 하고.. 그냥 한번 들어가 볼까 하기에는 좀 어렵죠. “마을 작업장에 대한 비전은 글쎄요... 막연하네요.” - 마을과 경제 사업단에도 참여하고 계시고 이번 축제의 주제가 ‘마을과 생산’이었는데요. 이후 마을작업장 활동에 대한 기대와 개인적인 참여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얘기해주세요. 마을작업장활동에 대해서는 솔직히 그림이 안 그려져요. 단지 자누리화장품 생산을 위한 공간이 작업장 한켠에 생긴다는 정도의 기대만 있어요. 개인적 비전도 글쎄요.. 마을작업장은 작업장 세미나팀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마을과 경제 세미나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도 없었던 것 같고. 사실 화장품생산에 대한 논의도 따로 하기 힘들었잖아요. 게다가 가난뱅이의 역습 때 세미나에 빠져서 그랬는지 나하고는 좀 동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문탁에는 워낙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들이 많아서 내가 꼭 필요한가? 꼭 필요하지 않다면 그 선에서만 관여하자란 생각도 있고. 나서서 뭔가 하기에는 아직 자신감이나 활동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고 그러다보니 주어지는 일만 하게 되네요. (이 부분에서 나는 마을작업장에 대한 이야기를 마을과 경제팀들과 잘 공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을 했다. 그리고 열심히 현 상황.. 그러니까 실제로 마을작업장세미나에는 마을작업장을 고민하는 사람이 마경단 빼고 몇 안 된다. 이제부터 마작세미나팀을 새롭게 꾸려 고민을 시작해야 된다 등등 이야기하고 보니 인터뷰하길 잘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작업장 비전을 이야기할 새로운 팀구성이 필요하네요. 그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뭘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지. 생산품의 경우 유기농을 고집한다던지 해서 가격이 비싸져 진입장벽을 높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자누리화장품의 경우에도 좀 비싸다는 감이 있는데 모두들 편안히 받아들이는 듯해서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문탁에 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계층이 좀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거나 새로운 시도는 실패하더라도 의미가 있고 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탁이 공부만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새로운 활동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좀 막연하긴 해요. “문탁은 내 인생의 변곡점” - 문탁과의 인연이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세요. 인생의 변곡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처음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배우는 게 많아요. 책을 통해 전에는 어설프게 알았던 것이 정리되고, 젊었을 때 꿈꿨던 삶을 지금 여기서 계속 지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아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극복할 방법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질문하고 있어요. 아직 답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계속 묻고 있는 중이에요. - 요즘 ‘지금’의 생활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활동영역과 생활의 배분에 대해서 올해 용인시 작은도서관협의회 교육부장을 맡았어요. 일이 많은 곳이에요. 제가 딱히 도서관이나 책에 전문성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책임이 있으니 가장 우선적으로 시간을 배분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데 그건 일이 많진 않지만 빠질 수 없는 부분이고요. 반딧불이도서관(살고 있는 아파트 작은도서관) 일도 실무는 현 임원들이 하고 있지만 관여하지 않을 수 없고요. 대학 때 하던 기독학생회 사람들과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어요. 그리고 문탁이 있고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공부보다는 이런저런 활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어 그냥 활동이나 열심히 해야 하나 생각할 때가 있어요. 또 가끔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건 아닐까도 싶고. 정리가 필요한가 고민하기도 해요.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답답함을 자주 느끼는데 공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은 갈급함도 있어요. 좀 헷갈리는 상태죠.( 문탁샘이 이걸 보시면 ‘지금’의 생활을 확 정리해버리시지 않을까? ㅎㅎㅎ) - 문탁인들이 ‘지금’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2% 부족해서 그런 거 같아요. 사람이 좀 비어있어서 ㅎㅎㅎㅎ 사람들이 다 2%쯤 부족한데 다들 어떻게든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런데 내 친구 ‘지금’은 그 2%를 당당히 자연스레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러니 모두들 이 친구를 만나면 내 2%를 들켜도 괜찮겠다는 편안함이 드는 거다. 난 이런 그녀가 무지무지 부럽다. ‘지금’이 가까이 있어 참 좋다. |틈| http://www.moontaknet.com/83493 원래 기사와 댓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결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지혜는 삶에 대한 심사숙고이지, 죽음에 대한 심사숙고가 아닌 것이다. (E4, 정리67) 문탁웹진 틈 2.0 시대를 접습니다. 틈이라는 이름이 존재하기도 전, 문탁웹진 1.0의 시대도 사라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틈 2.0 시대를 열기위한 우리들의 심사숙고 과정이었고, 새로운 구성을 위한 움츠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문탁의 '뉴 미디어'를 준비합니다. 뉴 미디어는 단순히 웹진의 다른 이름을 뜻하지 않습니다. 미디어는 흐름입니다. 그래서 뉴 미디어는 문탁의 새로운 흐름을 구성하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새롭게 흘러가려면, 어떻게 흘러왔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뉴 미디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가 흘러온 지난 추억을 재미있게 뒤적거려 드립니다. [001] 철학적 은유로 가득찬... 철학적 은유로 가득찬 영화를 보는 건 기쁜 일입니다. 맥주와 더불어 친구와 함께 보니 더욱 기뻤습니다. 1. 코다마 얼마 전 강원도의 새벽, 저의 모든 세포를 흔들어 깨운 건 코다마였나 봅니다. 나무의 정령! 선도 악도 아닌 명랑한 숲의 안내자. 코다마는 즐거운 정령, 즐거운 자연입니다. 2. 시시신 "나무의 죽음은 그러나 삶의 또다른 반쪽입니다...나무의 죽음 이후의 삶-삶이 맞습니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숲으로 되돌리며 다른 생물들의 삶으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나무의 죽음』p6) "보편적 자연은 마치 밀랍으로 그러하듯 전체의 실체에서 이번에는 말을 만들었다가 다시 녹여 그 소재를 사용하여 다음에는 나무를, 다음에는 사람을, 다음에는 그 밖에 다른 것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각 잠깐씩만 존속한다. 상자에게는 조립되는 것이 무서운 일이 아니듯이 부서지는 것이 결코 무서운 일이 아니다" (『명상록』p114) 그러니 "죽음을 멸시하지 말고, 죽음을 기뻐하라. 죽음도 자연이 원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조급하거나 거만한 태도를 취하지" 말라.(『명상록』p150) 아시타카를 치유하고, 나고신과 모로를 죽게 하고, 그 자신도 죽고, 새싹으로 다시 살고.... 시시신은 죽지 않습니다. 그는 생명 그 자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삶과 죽음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생명은 살아있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생명은 삶과 죽음을 넘어 새롭게 구성하는 힘, 살아나게 하는 힘,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입니다 낮의 시시신만큼이나 밤의 데다라신이 가슴 벅차도록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요? 3. いける 저는 올해 두번이나 죽었다가 살았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알겠더라구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지만, 그 자리는 내가 출발했던 그 자리는 아니라는 것을... 좋든 싫든 제가 다시 출발하려는 그 자리는 살아온 흔적이 남은 자리였습니다. 아시타카도 팔에 흔적이 있습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죽인 재앙신의 저주의 흔적, 그 죽음의 흔적!! '산'도 흔적의 존재입니다. 죽은 엄마 '모로'와 죽인 엄마 '에보시'의 흔적!! 하지만 모든 유한한 '양태'들은 살아야겠죠. 그 흔적을 피하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그 흔적 속에서 그 흔적에 들러붙어 악착같이 살아야 합니다. 4. 에보시 제가 에보시 같다구요? 웃어야 하나..울어야 하나...^^ 어쩌면 우리 모두 에보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기 위해, 삶을 죽이는 자, 에보시!! 하지만 에보시가 "다시 시작"해보겠다면 우리도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いける 살아라. 정말...살 수 있을까요? 살아가되 매번 다시 살 수 있을까요? 우리...같이....삽시다^^ |틈|

[특집]스피노자 친구들이 세월호를 말하다  슬픔의 역설적인 가능성        정리 : 청량리 참석 : 달팽이, 꿈틀이, 띠우, 히말라야, 코스모스, 여울아, 뿔옹        세월호가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그것이 참사의 원인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외적인 원인에 의해, 수동의 정념에 의해 휘둘린다. 그러나 또한 적합한 원인을 알게 되면 능동적인 정서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세월호가 인양되었을 때, 슬픔의 원인을 알게 되어 능동의 기쁨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한 그렇게 되면 맞은편에 태극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어떤 공통개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에 대해 스피노자를 함께 읽는 친구들과 이야기 나눴다. 태극기가 휘날리며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감독은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왜 다르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사무라이의 시체와 마주한 사건의 진실은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혹은 욕망에 따라 서로 다르게 진술된다. 탄핵과 구속으로 ‘촛불’과 ‘태극기’는 봄바람을 타고 다소 가벼워졌지만, 세월호의 문제에서 여전히 유의미한 단어들이다. 태극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은 크게 두 축으로, 예를 들면 어버이연합과 일베, 나눌 수 있다. 그들은 경제개발의 논리에 적합한 부품이 되는 것만이 살아남는 것이었던 이들과 신자유주의 물결 아래 모든 것이 각 개인의 책임과 능력으로 평가되는 경험을 갖는 이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세월호 참사는 어쩔 수 없는 사건이었고, 각 개인이 풀어야 할 아픔이다. 그래서 더 큰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서둘러 마무리 짓고 싶은 사건이고, 개인의 슬픔을 더 이상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말아야 하는 ‘지난 일’이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본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문제다. 한 명의 사람을 잃은 이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차가운 바다 속으로 내던져진 재난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의 이익과 폭력에 대해, 각자도생의 방식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고자 한다. 선장이 구속되고, 선체가 인양되었지만, 슬픔은 여전히 깊은 곳에서 맴돌고 있다. 혹자는 유가족의 몫이라는 둥, 그들이 안아야할 삶의 무게라는 둥 여전히 사건과 슬픔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한다. 이런 ‘라쇼몽’적인 관점은 세월호 문제에 있어서 같은 사건을 다르게 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이 정당화 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 스피노자적 질문은 그 한계를 함께 넘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슬픔의 역설적인 가능성 자신에게 유용한 것들을 찾아내고 유지하려고 노력(conatus)한다는 점에서, ‘촛불’과 ‘태극기’가 광장으로 나온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각자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것을 인정한다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욕망이고 노력이라면 그것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러한 노력으로 당신들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지에 대해서. 왜냐하면, 그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고 세월호를 우리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이 세월호를 비판하고 외면하려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이제 웬만큼 밝혀졌고 해 줄만큼 했으니 마무리하자는 것과 다른 하나는 계속해서 슬픔과 마주하는 것이 이제는 힘드니 그만 잊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앞의 이유에 대해서는 지면관계상 ‘팩트 체크’에 넘기도록 하고, 여기서는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약전을 나눠 읽으며 기억의 방석을 함께 만들면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슬픔 속에 빠져있는 것과는 다르다. 영화 ‘이웃집의 신이 산다’에서 주인공 에아는 울 줄 모른다.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6명의 사도들의 눈물을 모으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나와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며, 따라서 눈물은 슬픔과 마주하는 방법이다. 슬픔은 우리를 더 작아지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을 멀리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외적인 원인에 끊임없이 휘둘리는 존재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 앞에서 슬픔의 정서는 커다란 파도와 같이 우리를 집어삼킨다. 밀려오는 슬픔을 양태인 우리들이 어찌할 수는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양태이기 때문에 마주하는 공통의 방법을 알고 있다. 다만,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계속 노를 저어야 하듯, 슬픔 속에서 무언가 하고 있을 때에 우리는 그것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 슬픔 속에서 우리가 힘들 때는 그것을 함께 마주할 때가 아니라 혼자 외면할 때이다. 나는 구속이 확정되면, 세월호가 인양되면 슬픔의 원인을 알게 되어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광장으로 나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구속과 인양은 하나의 결과이자 현상이었으며, 나의 슬픔의 원인은 아니었다. 슬픔의 원인은 밖에 있지 않고 각자의 마음속에 다르게 자리한다. 그러나 함께 눈물을 흘리고,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너를 통해 나의 슬픔의 원인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슬픔의 원인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기쁨의 정서로 바뀌기도 한다. 얼마 전 광화문 나비행진 역시 그런 공통의 정서에 근거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너무나 큰, 직접적인 사건이어서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누구는 3년이면 됐다고 하지만, 30년쯤 되면 가능할까? 노란 배를 타고 기쁨의 노를 저어 함께 광화문으로 나아갈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틈|        p.s. 이 글은 스피노자 친구들과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글이다.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보다는 우리가 어떤 공통의 것들을 나누었지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인터뷰나 토크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 처음 세월호 이야기를 꺼낼 때는 역시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스피노자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나누고 나왔을 때는 왠지 모를 벅참이 있었다. 슬픔을 마주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된 듯한 느낌적인 느낌? 이틀이 지난 지금, 그 정서가 조금은 줄어들었지만, 그래서 자주 만나야 하나보다. 세월호도 자꾸 이야기를 해야 하나보다.    



문탁 & 이슈 >

2017년 새해를 맞아 <길위기금> 인사드립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길위기금> 통장입니다. 저는 2년 전에 태어 났어요. 아빠는 문탁전체회계 출신 <천만원>, 엄마는 중국 시안 수학여행 출신 <오십삼만원> 이지요. 두 분이 합치셔서 이 땅의 청년들의 자립과 공부를 위해 저를 탄생 시키셨습니다. 제가 한살때에는 매달 주권 없는 학교에서 보내주는 <30만원>의 우유값과 주방에서 보내주시던 <30만원>의 선물로 자랐습니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보내주시는 고모 여울아님과 가끔씩 목돈을 보내주시는 외가친척분들의 특별용돈으로 저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이름 한 번 불러드릴까요? 작은물방울, 시시리리, 여여, 요요, 노라, 광합성 제가 태어났을 때 언니 오빠들을 반신반의 했지요. 과연 <기금 신청서>를 쓰면 돈을 보내줄까? 문탁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닌데... 분명 글을 써 오라거나, 후기를 쓰라고 할 거야 ㅋㅋ 그래서 첫 해에는 방세나 학비를 조심스럽게 신청하곤 했지요. 그러다 두 번째 해가 되자 학비, 생활비, 자립프로젝트, 청송 인문학등 다양한 방법으로 신청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악어떼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힘을 보태기도 했지요. 소문에는 다음달이 되면 공부에 집중하고자 일을 줄이는 청년들의 신청서가 많이 들어 올거라고 하네요. 그럼 2년동안 제가 어디로 지원을 보내드렸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재미있게 순위를 매겨 보았어요. ㅋㅋ 1위 ; 프로젝트 지원 650만원 (길벗, 뉴욕원정대, 예술프로젝트) 2위 ; 활동비 570만원 (노라찬방, 담쟁이, 농활, 악어떼) 3위 ; 생활비 및 집세 275만원 (고은, 지원) 4위 ; 학비로는 223만원 (고은, 명식, 동은, 지원) 5위 ; 길위-청송으로는 100만원 (청송) 우와~~~ 2년동안 문탁의 청년들이 받은 기금이 1818만원 이네요. 놀랍지 않나요? 우리가 시작한 돈은 1053만원이었는데, 2년동안 이렇게 많이 쓰고도 1320만원이 남아 있네요. ㅋㅋ 물론 그 이유도 우리는 다 알고 있지요. 여러분들의 특별회비 덕분이라는 것을요 제가 설날을 맞이하여 이렇게 <길위기금> 안내를 하는 이유도 이제 눈치 채셨지요? 작년에는 <길위기금> 용법을 많이 만들어 내지 못해 특별회비 주신다는 호의(?)도 잠깐 사양한 적이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문탁의 청년들의 공부와 자립과 실험을 위해 팍팍 좀 써보려구요. 문탁어르신들 설날에 세뱃돈 받으시면, 보너스 타시면, 공돈이 생기시면 주저마시고 <길위기금>에 보내주세요. 저희가 청년들에게 잘 지원할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새해 <길위기금> 많이 보내 주세요 딩동~~ 아 벌써 특별회비 20만원 들어왔네요.

텍스트 : 나카자와 신이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일정 : 2017년 7월 8일부터 4주간 /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12시반 강사 : 박혜성 (문탁네트워크 회원) 김시연 (문탁네트워크 회원) 일정 1강 (7월8일) 사랑과 경제-전체성으로서의 운동 서장~2장 2강 (7월15일) 증식의 비밀과 순수증여 3장~ 4장 3강 (7월22일) 코르누코피아, 무한증식 5장~6장 4강 (7월 29일) 황페한 나라로부터의 탈출 7장~종장 강의 및 세미나 파지사유 인문학은 강의 + 강사와 질의 응답 + 수강자들의 세미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토론) 로 진행됩니다. 책을 꼼꼼히 읽고 각자 나누고 싶은 질문이나 구절을 정리해 옵니다. (세미나 시간은 수강자들 간의 적극적인 토론과 대화로 더욱 풍성해 질 것입니다. ) 신청방법 1.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신청사연과 연락처도 남겨주세요. 전화번호 비공개를 원하면 비밀글로 써주세요 2. 회비는 6만원입니다. 입금을 해야 신청이 완료됩니다. (단 복회원인 경우, 복사용을 원하시면 신청할 때 함께 적어주세요.) 문의 : 공일공-9118-하나 둘 팔 삼 (오영) 입금계좌: 우리은행 1002 9335 17477 ( 김시연) *문탁네트워크는 영리를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아닙니다. 회비는 강의가 시작되면 반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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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월호 이후의 삶 곁*에서 함께하기 글 : 광합성 “들으러 와줘서 고맙다” 이 구술 작업은 증언을 통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는데 일차적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사건의 진실을 청취하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증언을 통해 드러나는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증언의 말‘ 그 자체다. - 중략 - 이 작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첫째 사건에 휩쓸렸던 주민들이 당시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그 ‘말’을 청취하여 기록하는 것이요, 둘째 그 ‘말’을 통해 드러나는 고통과 분노, 슬픔과 상실의 감정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의 ‘말’에 집중하고 그 ‘말’을 청취하여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까닭은 그 고통에 대한 감각적, 정서적 기억과 재현이야말로 ‘실체적’이며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김영희,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실태 보고서」 중에서 지난 3월 23일,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조사 보고서」(이하 보고서) 발간 및 주민 증언대회가 있었다. 보고서는 송전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받은 피해와 고통을 담은 것으로, 연세대 국어국문과 김영희 교수와 제자들(석사 2학기 김시연, 이선혜)은 작년 중순부터 밀양에 다니면서 주민들의 구술을 기록·분석했다. 특히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한전이 얼마나 교활하게 돈으로 마을 주민들을 갈라놓았는지 그래서 사이좋게 지내던 주민들이 서로를 탓하고 욕하는 사이가 되고 관계가 회복불가능한 정도로 이르게 되었음을 아프게 고발했다. 이어진 증언대회에서는 밀양, 청도, 횡성, 군산, 당진에서 오신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그 간의 과정에 대해 발언하셨다. 보고서 작업을 위해 만난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그에게 전한 말은 ‘우리 이야기를 들으러 와줘서 고맙다’였다고 한다. 그것은 문탁에서 밀양에 갈 때마다 주민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것이 주민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일이었는지 다시금 느껴졌다. 더 자주 내려가서 이야기 나누지 않았음을, 또 주변 친구들과 더 많이 밀양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음을 반성했다. 이야기 나누면서 알아간다 ‘우동사’에서는 거의 모든 모임의 시작을 ‘나누기’로 한다. ‘나누기’는 정토회 수행에서 하는 이야기 형식으로, 최근의 자신의 근황이나 생각, 마음의 상태들을 공유하는 일이다. ‘나누기’로 모임을 열면 생각과 말들이 자연스럽게 워밍업되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 좋다. 일상적으로 ‘나누기’를 하면서 재미있는 것 첫 번째는 나를 알아간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언가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혹은 어떻게 듣고 있나 알게 된다. 또 그것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잘 알아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알아간다’고 말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거나 들으면, 내가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가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인다. 그것은 대화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머릿속생각으로 정리되고 또 말로 표현된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뭔가 조금씩 뒤틀린다. 다른 사람을 듣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의 오류가 일어난다. 그렇게 들여다보면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나 스스로 내가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말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이런 일상 나누기를 중심에 두는 것이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천착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답답한 마음도 있었다. 이런 걸 중심에 두고 사는 것이 좀 ‘쪼잔’해 보일까봐 문탁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거의 하지 않았다.(이것은 아마도 나의 오해^^) 하지만 나누기를 매개로 하는 ‘소통’은 단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류를 깨닫고 ‘그럼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혹은 다른 사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의 시작점이 된다. 이렇게 귀가 확장되고 주파수를 맞춰가며 지내면서부터 아주 사소한 개인적인 것도 대화의 장에서 ‘공통적인 것’이 되고 있음을 경험한다. 엄신기호는 그의 책 『단속사회』에서 지금 사회를 소통능력 부재로 진단한다. 사람들은 돈을 주고 상담소에 가서 사적인 경험을 고백하고 그것에 대한 해석을 듣고 온다. 일상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공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관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또 일상에서 대화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참조하면 좋을 이야기로 만드는 능력’이 전승되지 않는다. 대화가 아닌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따로따로인 상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에서의 소통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그럴 때 각자의 경험이 공적 경험으로 재생산되기 쉽지 않다. 공적 공간이란 “사적인 문제들이 공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언어로 새롭게 해석되고, 사적인 곤란들에 대하여 공공의 해결책이 모색되고 조정되며 합의”되는 공간이다. 이럴 때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구분되지 않고 겹쳐있거나 혹은 상태가 다른 하나일 것이다. 밀양의 문제처럼 소위 ‘사회적인 것’의 문제 역시 그 안에서는 우리가 겪는 일상의 문제와 별도의 일이 아니다. 돈 때문에 다툼이 발생하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이들이 없고, 자식과 부모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립되고... 알면 알수록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든 것들은 들추고 꺼내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공통적인 것이 된다. 밀양, 곁*이 되고 싶다 밀양에서 한전과 합의하지 않고 남은 주민들은, 다른 주민들로부터 마을의 발전을 막는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마을 행사에서 배제되고 있다.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이하 대책위)의 김영자 총무님은 “우리는 밀양에서 음.. 한마디로 말하면 왕따지요 뭐” 라고 하시며 “합의 안하신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가지 못하게 돼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그래서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가 함께 해 온 동화전 마을도 마찬가지로 힘든 일을 겪고 있다. 그간 대책위 활동을 주도했던 위원장님이 새로운 생업을 찾아 나선 것으로 인한 갈등이 계속 되고 있고, 그 사이 이웃 간에 한전과의 합의여부에 대한 오해도 있었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 주민합의에 대한 마무리를 하고자 한전에서는 전방위적으로 총력을 다해 아직 합의 하지 않은 주민들을 돈으로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대책위도 지금이 가장 힘들 때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슬펐지만, 그래도 들을 수 있어서, 그 자리에 함께 있게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탁의 친구들과 일 년에 서너 번 밀양에 다니며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부족하게 느껴진다. 갈 때마다 매번 듣는 ‘고맙다, 고맙다’는 말을 받기도 송구스럽다. 그래도 계속 만나고 더 가까이서, 사적이지만 전혀 사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주파수를 맞추며, 즐거운 일을 같이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처음에는 이제 밀양에 송전탑 몇 대가 들어섰고, 어디까지 들어섰고, 몇 명이 합의했고, 몇 명이 합의하지 않고 남았는가... 이런 것들이 궁금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곳에 계신 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송전탑 때문에 겪었던 고통과 분노, 슬픔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우정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혹은 시답지 않은 연예인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다. 잘 듣고 싶다. 말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 반가움, 편안함 혹은 갈등이나 원망의 마음 등 그런 것들까지도 ‘곁’에서 함께 하고 싶다. 올해는 밀양에서 더 많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이 만들어 질 것 같다. 밀양 인문학이 될지, 밀양 문탁 청년모임이 될지, 농활단이 될지 모르겠지만, 더 자주 가고 가서 같이 놀고, 그러면 좋겠다. 알지 못하기에 잘 듣고 싶고 듣고 나면 더 알고 싶어지는 지점, 끝이 없는, 언제나 시작인 그곳에 지금도 서 있다.|틈| * 사회학자 엄신기호는 『단속사회』 지금의 사회를 ‘편’은 있지만 ‘곁’은 없는 사회라고 하며,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샘의 글을 ‘곁의 언어’를 만드는 일, ‘곁을 만드는 글’ 이라고 표현했다. 이 글에서 엄신기호의 ‘곁’ 개념을 차용했다.

[특집] #3 몸과 손으로 기억하다 몸의 기억과 손의 기억   글 : 달팽이  한 달 쯤 전 기억방석 만들기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해 동안 문탁학인들과 기억 손작업을 하자고 제법 강하게 의견을 냈던 터라 거절할 수만은 없어 애매하게 알았다고 했다. 원래도 글재주가 없어 뭐라도 써보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오는데, 세월호라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막막했다. 미루고 미루었다. 재촉하는 이도 없어 그냥 이대로 웹진 틈이 마감할 때까지 조용히 있으면 되려나했다. 웬걸!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무슨 얘길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몇 편의 글을 썼다 지웠다. 4월 3일과 4월 19일 그리고 4월 16일에 국가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 구의역에서 삼성반도체에서 쌍용자동차에서 세월호에서 자본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그리고 그 모두와 연결된 나에 대해.        올 초 한 해 활동계획을 세우며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손작업이었다. 나는 왜 그 기억을 붙잡으려 하는 것일까? 국가와 자본이 빼앗아가는 생명력에 대해서라면 기억해야할 다른 사건들도 많은데, 그리고 문탁의 모든 활동이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데 왜 하필 세월호인가? 이유는 아주 신체적이다. 그저 아이 잃은 어미, 아비의 고통과 살아남은 아이들을 비롯한, 죽음과 이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절로 내 몸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통해 내 몸에 각인된 흔적이 너무나 선명해서 웬만해선 지워지지가 않아서이다. 봄날의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청춘들, TV로 생중계된 서서히 침몰하던 거꾸로 뒤집힌 커다란 배, 그리고 노란 리본들과 눈물들. 감정은 때로 그저 멋대로 상상하는 오류의 원인이지만 때로 정확하게 반응하는 직관능력이기도 하다. 그저 내 몸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을 수 없다고.   1주기에 우리는 304조각의 조각보를 엮으며 사라진 304개의 우주를 추모했다. 그 작업은 사회적 애도의 과정이었고 아이 잃은 어미를 위로하려는 몸짓이었다. 2주기를 맞으며 별이 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었다. 304명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으로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는 108배를 하며 허벅지 근육에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4월이 온다. 3주기를 맞는 우리의 몸짓은 이미 1월부터 시작되었다. 친구들 몇이 기억교실을 다녀오면서부터 3년 상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었다. 2014년 4월에 멈춰져 있는 교실을 보며 우리 눈에 들어 온 것은 입구에 놓여있던 단원고 친구들의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과 방석이 없어 차가워 보이는 의자였다.        이름만 가진 한 사람이 아니라 친구들, 가족들과 어떻게 지냈었는지, 잘 웃는 아이였는지, 꿈은 뭐였는지, 노래를 좋아했는지 약전은 우리에게 그들의 짧은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2학면 5반 정이삭 이름으로만 기억하던 이삭이는 시력을 잃은 어머니를 잘 돌봐드리던 효자아들, 어머니처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꿈꾸던 청년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낡은 청바지를 잘라 멋스런 방석을 만들고 이삭이의 자리를 찾아가 의자 위에 방석을 올려준다. 손으로 이야기로 우리는 이삭이를 기억하고 그 기억과 함께 묵묵히 다른 세상을 열어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기억은 쉽지 않다. 아이들의 삶을 읽어내는 일은 다시 그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그와 연결된 많은 아픔들을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약전을 펼쳐보기가 망설여진다. 그들의 짧은 인생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대면하기가 고통스럽다. 그들이 더욱 구체적인 삶으로 나와 엮였으니 그 기억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스스로 다그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함께 고민해 줄 친구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든든한 친구들 덕분에 나는 약전을 읽어내고 250개나 되는 방석을 만들고 그리고 조금은 기억한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겠다.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