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 불교산책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요요 2023.08.17 |
조회 288
요요와 불교산책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요요 2023.07.20 |
조회 449
논어 카메오 열전
진성자(제나라 대부 진항)가 간공을 시해했다. 공자께서 목욕재계하고 조정에 나가 애공에게 알렸다. “진항이 그의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그를 토벌하십시오.” 애공이 말했다. “세 대부들에게 말하시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금께서는 세 대부들에게 말하라 하시는구나.” 공자께서 세 대부들에게 가서 말했으나 모두 안 된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陳成子弑簡公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恆弑其君 請討之 公曰 告夫三子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君曰 告夫三子者 之三子告 不可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논어> 헌문-22   내가 동양 고전을 처음 읽었을 때 겪은 어려움 중 하나는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진성자(陳成子)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여기는 진성자라고 되어 있지만 대체로 전성자(田成子)라고 하고, 진항(陳恒), 전항(田恒), 혹 전상(田常)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성자(成子)는 그의 시호이며, 이름이 항(恒)인데 『사기』에는 상(常)으로도 되어 있다. 진성자 혹은 전성자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이들이 진(陳)나라에서 살다가 제(齊)나라로 이주하여 성을 전(田)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강(姜)씨의 제나라에서 전(田)씨의 제나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세가(世家)」는 춘추전국시대 제후국들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러니까 노나라의 역사는 「노세가」에 진나라는 「진세가」를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제나라의 경우 「제세가」로 되어 있지 않고 「제태공세가」와 「전경중완세가」로 나누어져 있다. 제나라 군주의 자리가 강태공의 강씨에서 바로 진성자, 아니 전성자의 전씨로 바뀌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陳)나라에서 처음 제나라로 이주한 이는 진완(陳完)이다. 완은 원래 진나라의 공족(公族)이었다. 진나라는 순임금의 후예들에게 봉해...
진성자(제나라 대부 진항)가 간공을 시해했다. 공자께서 목욕재계하고 조정에 나가 애공에게 알렸다. “진항이 그의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그를 토벌하십시오.” 애공이 말했다. “세 대부들에게 말하시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금께서는 세 대부들에게 말하라 하시는구나.” 공자께서 세 대부들에게 가서 말했으나 모두 안 된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陳成子弑簡公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恆弑其君 請討之 公曰 告夫三子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君曰 告夫三子者 之三子告 不可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논어> 헌문-22   내가 동양 고전을 처음 읽었을 때 겪은 어려움 중 하나는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진성자(陳成子)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여기는 진성자라고 되어 있지만 대체로 전성자(田成子)라고 하고, 진항(陳恒), 전항(田恒), 혹 전상(田常)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성자(成子)는 그의 시호이며, 이름이 항(恒)인데 『사기』에는 상(常)으로도 되어 있다. 진성자 혹은 전성자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이들이 진(陳)나라에서 살다가 제(齊)나라로 이주하여 성을 전(田)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강(姜)씨의 제나라에서 전(田)씨의 제나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세가(世家)」는 춘추전국시대 제후국들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러니까 노나라의 역사는 「노세가」에 진나라는 「진세가」를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제나라의 경우 「제세가」로 되어 있지 않고 「제태공세가」와 「전경중완세가」로 나누어져 있다. 제나라 군주의 자리가 강태공의 강씨에서 바로 진성자, 아니 전성자의 전씨로 바뀌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陳)나라에서 처음 제나라로 이주한 이는 진완(陳完)이다. 완은 원래 진나라의 공족(公族)이었다. 진나라는 순임금의 후예들에게 봉해...
진달래 2023.07.11 |
조회 279
한문이예술
昔, 어떤 과거는 오래된 극복이다   동은     1. 하고 싶은 말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선생님을 하기로 했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선생이었나?'부터 '내가 선생이어도 될까?', 그리고 '내가 어쩌다 선생이 되었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질문한 친구에게 되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친구는 "그냥 궁금해서요."라고 했지만 곧이 곧대로 듣기에는 조금 찔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선생이라기엔 하고 다니는 행색이 너무 선생답지 않았나? 수업이 별로인가? 아니면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시라도 너무 '선생'같은가^^?? 스스로 선생이라기보다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온 시간이 훨씬 길어서 그런지 친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 앞에 서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선명했다.      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너희들한테 한자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인 것 같아."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몰랐던 것을 '나 정말 그랬구나!'하고 이제서야 깨닫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수업준비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자의 이야기를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방식보다도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았다. 그랬으면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건지...!     2. 昔      한자로 상상조차 힘든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과거로 회귀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에 고대의 일에...
昔, 어떤 과거는 오래된 극복이다   동은     1. 하고 싶은 말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선생님을 하기로 했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선생이었나?'부터 '내가 선생이어도 될까?', 그리고 '내가 어쩌다 선생이 되었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질문한 친구에게 되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친구는 "그냥 궁금해서요."라고 했지만 곧이 곧대로 듣기에는 조금 찔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선생이라기엔 하고 다니는 행색이 너무 선생답지 않았나? 수업이 별로인가? 아니면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시라도 너무 '선생'같은가^^?? 스스로 선생이라기보다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온 시간이 훨씬 길어서 그런지 친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 앞에 서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선명했다.      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너희들한테 한자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인 것 같아."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몰랐던 것을 '나 정말 그랬구나!'하고 이제서야 깨닫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수업준비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자의 이야기를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방식보다도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았다. 그랬으면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건지...!     2. 昔      한자로 상상조차 힘든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과거로 회귀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에 고대의 일에...
동은 2023.07.04 |
조회 340
봄날의 주역이야기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봄날 2023.07.04 |
조회 279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문어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피터 고프리스미스, 『아더 마인즈』       나의 문어 선생님 친정집 제사상에는 늘 삶은 문어가 올라왔다. 제사가 끝나면 문어를 먹기 좋게 잘라 음복을 한 뒤 술안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다. 그렇게 내게 문어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숙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을 통해 만난 문어는 한낱 먹거리가 아니었다. 문어는 한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연의 신비와 생명에 대한 경이를 되살려 그를 다시 살게 한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였다.   다시 문어를 만났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라 책 <아더 마인즈>로.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피터 고프리스미스 역시 <나의 문어 선생님>의 주인공과 같은 스쿠버 다이버다. 그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문어를 만났고, 문어를 관찰하고, 문어의 마음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은 마음의 탄생에 대한 탐구로까지 나아갔다. <아더 마인즈>에서 시작한 그의 물음은 더 심화되어 의식과 마음의 진화 그리고 생명의 의미를 탐색하는 <후생동물>을 쓰게 되기에 이르렀다. 두 권의 책 모두 진화론의 관점에서 마음과 의식의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인간이 진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보는 관점에 매우 비판적이다. 두권의 책 모두에서 마음과 의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최근의 과학과 철학의 첨예한 담론들을 건드리며 전개된다. 사실 이 담론들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이 글에서는 마음과 의식의 진화보다는 문어를 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마음과 의식의 진화 문제는 살펴보아야 할 쟁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관련한 공부가...
문어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피터 고프리스미스, 『아더 마인즈』       나의 문어 선생님 친정집 제사상에는 늘 삶은 문어가 올라왔다. 제사가 끝나면 문어를 먹기 좋게 잘라 음복을 한 뒤 술안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다. 그렇게 내게 문어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숙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을 통해 만난 문어는 한낱 먹거리가 아니었다. 문어는 한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연의 신비와 생명에 대한 경이를 되살려 그를 다시 살게 한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였다.   다시 문어를 만났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라 책 <아더 마인즈>로.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피터 고프리스미스 역시 <나의 문어 선생님>의 주인공과 같은 스쿠버 다이버다. 그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문어를 만났고, 문어를 관찰하고, 문어의 마음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은 마음의 탄생에 대한 탐구로까지 나아갔다. <아더 마인즈>에서 시작한 그의 물음은 더 심화되어 의식과 마음의 진화 그리고 생명의 의미를 탐색하는 <후생동물>을 쓰게 되기에 이르렀다. 두 권의 책 모두 진화론의 관점에서 마음과 의식의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인간이 진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보는 관점에 매우 비판적이다. 두권의 책 모두에서 마음과 의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최근의 과학과 철학의 첨예한 담론들을 건드리며 전개된다. 사실 이 담론들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이 글에서는 마음과 의식의 진화보다는 문어를 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마음과 의식의 진화 문제는 살펴보아야 할 쟁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관련한 공부가...
요요 2023.06.17 |
조회 48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