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추장단통신2] 남아있게 하는 힘?

괴로운봄추장
2019-02-08 10:55
454


2013년 여름 수지로얄스포츠 사거리에서 탈핵을 외치던 사람들을 따라 ‘문탁’에 왔다. 따라들어와 보니 이들은 스스로를 ‘인문학공동체’라 칭하더라. 그런데 아무리 눈 씻고 봐도 공부하는 사람은 없고 샴푸 만들고, 밥하고, 반찬 만들고, 바느질하고, 회의하고, 시위하는 사람들 뿐인데, 왜 이런 게 ‘인문학공동체’란 말인가! 나는 어쩌면 그걸 이해하고 싶어서 다시 문탁에 나왔다. 그리고 문탁에 나올수록 이상하게 점점 더 많이 문탁에 나오게 되었는데, 나는 내가 왜 또, 그렇게 자주, 많은 열정과 시간을 바치면서, 문탁에 나오고 있는지 명확한 이유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 지금, 2019년 2월 현재 세번째로 내게 온 추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문탁에는 두 종류의 회원이 있다. 세미나회원과 운영회원. 대표가 따로 없는 문탁에서는 운영회원들이 번갈아가면서  임시적인 대표라고 말할 수 있는 추장직을 맡는다. 운영회원이 아닐 때에는 뭔가 있어보여 운영회원도 해보고 싶다 생각했지만, 운영회원이 해야하는 추장이 뭔지 제대로 알았더라면 나는 결코 운영회원을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관심을 갖고 횡단시켜야 하는 추장의 일은, 한 가지에 푹 빠져있을 때 다른 모든 걸 잊기 좋아하는 게으른 나를 가장 괴롭히는 일이라는 점을 우선 고백한다. 언젠가 내가 문탁과 이별한다면, 그건 어쩌면 추장하기 싫어서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추장직에서 내가 제일 처음으로 맡게 된 일은 문탁을 방문하는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었다. 내가 레몬청을 담그며 난리부루쓰를 친 바로 그 다음날, 직접 담그신 레몬청을 들고 메밀꽃님과 친구들이 나를 찾아오셨다. 광명시에서 공동육아를 꾸리고 계신데, 공동육아에서 만난 인연을 지속적인 공동체로 꾸려나가고자 많은 고민을 하고계셨다. 우선 문탁의 공간을 둘러보면서 감탄하신 후에, 내게 질문 공세를 펼치셨다.



메: “이런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요?”


나: “샴푸 팔고, 커피팔고, 빵도 팔고,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세미나 회비도 받고, 운영을 맡겠다고 나서는 운영회원들에게는 더 많은 회비를 받습니다. 큰 돈이 필요할 땐, 돈 많아 보이는 친구들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냅니다.”




메: “일을 많이 하면 돈을 받고 일을 안하는 사람이 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희로서는 익숙치 않은 방법인데요.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돈도 더 많이 내는….그런 방식에 모두들 동의하나요?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나: “회의를 아주 아주 아주 많이 합니다. 회의를 하다보면 먼저 지치는 사람들이 있고, 여기서 나가지 않는 한, 회의에서 끝까지 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을 결국 함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메: “아무래도,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분들이시니 그런게 가능한 것 아닐까 싶은데요, 본래부터 책읽고 공부하기 좋아하시는 분들이었던 거죠?”


나: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공부하기 좋아한다면 공부만 하는 곳에 가면 되는데, 여기서는 밥하고, 청소하고, 회의하고, 생산하느라 많은 시간을 씁니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러는 거, 이상하지 않나요?”



여기까지는 그 전에도 들어본, 그래서 예상되었던 질문이었다. 이런 답을 듣고 잠시 생각한 뒤에는, 본인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괴로움을 토로하기 시작하셨다.



메: “실은 우리도 문탁같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데 공동육아에 참여하는 더 많은 사람들은 공동체가 아니라 그저 아이들을 맡기는 곳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졸업하기까지만 버티려고 하지, 뭔가 더 공동체다운 일을 벌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죠?”



이런 질문을 받으니 추장직을 어쩔 수 없이 해야하니 3개월만 버티자고 마음먹은 나는 무척이나 찔린다. 그와 동시에 이 질문은, 내가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일에 친구들이 관심없을 때,  나도 완전히 똑같이 하는 생각이다. 뭐라 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현재까지 내가 내린 결론을 털어 놓았다.



나 : “우선 현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하려하는 것은 선이고 우월하고 더 좋은 것이고, 그걸 함께 하지 않으려는 그들은 악이고 열등하고 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그들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게 뭔지 서로 모르고 있겠지요.

내 생각에 따르지 않고 도와주지 않는 그들을 원망하기 보다는, 우선 선생님들이 하고 싶은 걸 더 열심히, 재밌게 해서 보여주고 알리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다보면, 어? 뭐가 재밌길래 저러지? 하고 궁금해하면서 좀 더 다가오는 친구들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헌데 그러려면 뭔가를 하려는 선생님들이 진짜 많이 힘들고 고생스러울 수 밖에는 없을겁니다.”



답을 듣고 있는 세 분의 표정을 보니 잘못 대답하진 않은 것 같아 안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한, 당황스런, 질문이 내게 던져진다.



메: “들어보니,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게 되게 힘들것 같은데요. 선생님을 이 곳에 계속 남아있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내가 왜 자꾸만 문탁에 나오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머리가 복잡해서 스스로 젖혀 둔 질문이었는데, 그날 처음 만난 메밀꽃님이 바로 그걸, 나도 모르는 걸, 내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모르겠어서 한동안 말없이 있었는데, 뭐라고 답해야할지 사실 어떤 말도 내게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문탁의 몇몇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 몇몇의 얼굴들이 스쳐지나간 뒤에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나 : “사람들인 것 같네요. 매일 싸우고 욕하지만 또 다른날 내가 힘들다 할 때,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요. 말이 너무 안 통한다고 자주 생각하지만, 또 어떤 날에는 내가 하는 말도 안되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들어주고 해석해 보려고 애쓰는 친구들도 있고요.”



이런 대답을 하다보니 나 자신이 내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았다. 대답을 해낸 나 자신이 왠지 장하다 싶고, 그런 말이 내게 나오게 해 준 친구들에게 새삼스레 고마움을 느꼈다. 여기가 왜 인문학공동체인가를 이해할 수 없던 내게, 매일 밥상이 차려지는 일 자체가,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피곤하기만 한 일들을 자꾸만 벌이는 그 자체가, 서로 싸우다가도 서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일 자체가 공부라는 걸 알려준 친구들 곁에, 나는 계속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뱉어놓은 그 대답에 대해 “그래도 되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내가 몇몇의 친구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계속 뭔가를 하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게 정말 내게 힘이 되는 건가? 혹시 편안해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안주하려는 것은 아닌지? 힘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빠져서, 내가 만들어 낸 집 안에 머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언제나처럼, 또다시, 헛갈리고, 자신이 없다.



메밀꽃IMG_20190121_120010.jpg 
(나 자신이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답할 것을 촉구해주신, 메밀꽃님과 친구분들)



** 추신: 이건 추장통신이지, 공유지 부루쓰가 아닙니다~  ^^*


댓글 5
  • 2019-02-08 11:02

    뮈든 씁시다! 뭐든 읽고^^

    공동체는 숙고하는 인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네요...

  • 2019-02-08 14:56

    추장통신인 줄 알고 읽다가 '이 글은 공유지 부루쓰 3탄이군' 하다가

    다시 그게 아니라는 말을 읽었지만 아무래도 '이 글은 공유지 부루쓰3탄'인 듯!

    음.. 지난 2년 동안 스피노자 읽으면서 이런 문체의 글을 쓰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 

    히말! 올해는 원도 한도 없이 맘껏 쓰세요. 부루쓰 스타일로..ㅎㅎㅎ

  • 2019-02-11 13:15

    msn025.gifmsn025.gif아~아 부루쓰~ 부루쓰~ 부루쓰 연주자여 그~음아악을~ 멈추지이~ 말아요~~msn025.gifmsn025.gif

    • 2019-02-11 15:06

      ㅋㅋㅋㅋㅋ

      여여샘과 함께 지루박도 춰보고 싶어지네요~~^^

      • 2019-02-13 12:19

        그런데 샘 저도 꼭 문탁이 아니더라도 혹은 문탁 이더라도 그런 고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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