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후기

우연
2012-07-10 14:19
2476

아로스테릭 효소의 기질과 .......리간드 사이에는 ...... 화학적으로 그 어떤 필연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로스테릭 단백질이라는 것은 화학 친화력이 없는 화합물 사이에 플러스거나 마이너스거나 간에 아무튼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고

그 결과로 어떠한 반응도 그 반응에 화학적으로 무연(無緣)하며 무관계한 화합믈을 사용하여 자유로이 제어할 수 있게 된

분자 공학의 독특한 산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아로스테릭 상호 작용의 작동원리에 의하여 어떠한 제어 시스템도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제어에 관한 선택에는 완전한 자유가 허용되어 있는 셈이 된다.

이러한 제어계는 일체의 화학적 구속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그만큼 더 생리학적 요구에 따를 수 있으며

그 결과로서 그것이 세포 또는 생물에 줄 수 있는 종래 이상의 수미일관성과 능률의 정도에 따라서 도태되는 것이다. (범우사 105p)

 

화학, 물리학적 법칙에 절대 복종하는 미시적 분자세포의 세계에서 조차 

단백질의 입체 특이성을 통하여 화학적 구속을 벗어나 생물의 합목적성(?)을 추구하는 유연함을 획득하고 있거늘

하물며 그 기계적 메카니즘을 전혀 발견하고 있지 못하는 밈의 세계에서 종의 불변성을 담보받기 위하여 그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알로스테릭 단백질이 일체의 화학적 구속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밈의 작동시스템은 인간의 유전정보에서 자유로와 보인다.

허나 밈의 진행방향이 계(系) 전체와 양립 할 수 있을 때만이  인간 종은 자연 속에서 자연선택(도태)되어 살아 남을 것이다.

 DNA차원에서의 돌연변이가 순전 우연의 사물인 반면, 그리고  이 우연이 자연도태의 압력을 견딘 이후에나 돌연변이가 살아남은 반면

밈의 형성과 발전은 우연보다는 합목적성의 수미일관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인간 종의 노력으로 방향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의지와 생각은 객관적 자연 법칙 위에서, 유전정보상(선천적으로) 알로스테릭 단백질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변형을 보장받고 있을테니까 .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이론이 실험과 논리로써 증명되어 있을 경우에, 직관적으로 이해 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론을 반박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미시적이건 우주적이건 물리학에 관해서는 직관적인 이해가 되지 않는 원인을 우리도 알고 있다.

즉 대상으로 되어있는 현상의 스케일이 우리가 직접 경험 할 수 있는 범주를 초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점을 보완 할 수 있는 것이 추상화인데 그것으로 결점을 없앨 수는 없다.(범우사 P176)

 

우리의 과학적 경험의 범주를 넘어가는 것은 직관적인 이해가 어려우며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 영역을 신의 영역으로 돌린다.

허나 아직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또한 알 수 없다고 해서 그 영역이 신의 영역이란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주관적 경혐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것 또한 논리적으로 어설프다)

과학도 우리의 경험 속에서만 사실을 밝히고 있으며 이 또한 무한한 우주의 한 단편 뿐임을 인정한다.

성당을 다니는 우렁생이는 한 동안 신의 유무 그 자체에 고민의 중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세미나를 통해 인간의 인식이 넘어가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고민의 무의미성을 깨달은 것 같다.

과학도 추상화도 직관도 무한한 우주를  바로 볼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수 많는 우연을 통해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필연적 사실이란 것 뿐.

 

우주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 중에서 어떤 특정한 사건이 생길 선험적인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우주는 실재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확률이 거의 제로였던 사건도 확실히 일어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생명이 단 한번만 출현하였다는 것과 생명이 태어나기 이전에는 출현할 확률이 거의 제로였다는 것을

긍정할 권리도 부정할 권리도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현재의 우주 속에 실재하는 모든 것이 원초적으로 미래 영겁에 걸친 필연적인 존재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위에서 말한 관념은 그것과 상충되는 것이다.

우리는 실로 강렬한 이 숙명관에 대해서 항상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현대 과학은 일체의 내재성을 무시한다.

운명은 그것이 만들어짐에 따라서 기록되는 것이지 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범우사 P183)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든 아니든 우리는 어쨌든 생겨났으며 필연적 존재로서 이 땅 위를 살아가고 있다.

과학적으로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지라도 여하간 그것은 일어난 것이다.

왜?라는 물음도, 무엇 때문에?라는 물음도 필요치 않다.

 어떠한 존재 이유도 없으며 어떠한 방향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도 자연의 소중함도 그 근본이유는 없다. 인간 스스로가 그렇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일뿐.

(밈의 이런 방향성이 종의 불변성에 대한 합목적적인 진화 방향인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운명은 그것이 만들어짐에 따라 기록되는 것이지 사전에 기록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기록 할 것인가?

무질서, 무가치 그 자체를 받아들여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 해 낼 수 있다면

인간은 회의와 무력감보다는 더 큰 역동성과 더 큰 희망을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종의 유전정보는 멸종과 쇠퇴보다는 번식과 번성을 본능적으로  수행하므로.

예기치 않은 곳에서 가해지는 자연의 도태압을 어떻게 견뎌내는가는 오롯이 인류의 몫이다.

 

 

과학 세미나 시즌 3가 끝났다.

그동안 생명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며 새로운 인식방법에 즐거워했고 몰랐던 지식의 단편에 흥분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에 두달 가까이를 묵직한 머리를 이고 다녔지만(대학 졸업 후 처음이다.) 그만큼 즐거웠고 보람찼다.

새롭게 알게 되는 과학 지식과 이미 알고 있는 단편적 사실에 부여되는 새로운 의미가 가벼운 설렘을 가져다 주었다.

어떤 인문학 공부를 할 때보다도 더 확실히 깨닫게 되는 철학적 사실들도 있었고.

 

역시 공부는 즐거운 일이다.

지끈거리는 머리 쥐어짜며 어렵게 견딘 과정일수록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외계어(?)로 쓰여진 두꺼운 과학책과 씨름할 날을 다시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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