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RappIN'文學 (2) 더 좋은 랩을 찾아서-

송우현
2019-04-22 15:43
489



*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청년들이 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다섯 명의 청년들이 매주 돌아가며 세 달 동안 저마다의 주제로 세 개씩의 글을 연재합니다. 글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우현의 보릿고개 프로젝트 : RappIN'文學 (2) 




  더 좋은 랩을 찾아서 


~가사의 내용과 기술 사이~



 


가사(歌詞)는 노래의 내용이 되는 글이나 말이다. 우리는 가사를 통해 곡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으며 가사로부터 음악적인 재미와 언어적인 재미를 함께 느낀다. 랩은 라임과 플로우 등 다양한 제약을 통해 그 재미를 극대화 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라임이나 플로우 같은 기술적인 면과 내용적인 면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좋은 가사라고 생각한다.


 


래퍼들은 왜 돈 자랑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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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라는 장르의 큰 매력은 가사에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스웨깅(Swagging)이다.


 


본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서 "건들거리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힙합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요즈음에는 힙합 뮤지션이 잘난 척을 하거나 약간의 여유, 허세를 부리는 기분을 표현할 때 쓰인다.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힙합곡들의 내용은 스웨깅으로 구성되어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소위 말하는 돈 자랑이나 자신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드러내는 것인데얼마나 스웨깅을 재치 있고 신선하게 하느냐가 실력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실 흑인들에게 스웨깅은 단순한 돈 자랑만은 아니었다. 힙합은 게토(빈민가)에서 시작된 문화인데, 경찰들의 과잉 진압 같은 사회적인 압박과 경제적인 압박이 만연한 게토에서 많은 돈을 버는 방법은 랩스타가 되거나, 농구선수가 되거나, 갱스터가 되어 마약을 파는 것뿐이었다.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마약을 팔고 갱스터가 되는데, 이런 게토에서 랩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인 것이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드러내 게토의 영웅으로 자리매김 하여, 게토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또 다른 랩스타를 만들어내는 순환의 역할도 하였다. 최근에는 이런 이해 없이 장르적 특성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요즘의 스웨깅은 가사의 내용과 맥락을 단순화하여 기술적인 면을 돋보이게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불쾌감을 느껴 힙합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많아졌다. 



 난 그 예시로는 도끼와 비와이를 꼽는다. 이 둘은 한국에서 기술적으로 랩을 가장 잘한다고 평가 받고 있고, 라이브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둘은 매우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기술적인 면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지만 곡의 내용은 언제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도끼는 실제로 어릴 적부터 가난하게 살아왔고, 소속사 사기 등 험난한 여정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온 인물이다. 그렇기에 도끼의 가사는 다른 래퍼들과 조금 다른 무게감을 지닌다.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성과 톤은 최고수준이며 변칙적인 플로우를 소화해 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래도 나는 도끼를 최고의 래퍼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의 노래는 항상 같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뱉는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가사를, 말을 뱉는 이상 그 내용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도끼의 노래를 처음 듣는다면 큰 매력을 느낄 테지만 갈수록 그의 신곡은 기대가 되지 않고, 찾아듣지 않게 될 것이다. 비와이도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는 비와이를 돈 자랑 없이 매니아와 대중 모두를 사로잡은 래퍼라고 평가하지만 실상은 도끼와 다르지 않다. 기술적으로는 최고, 내용은 언제나 하느님. 자신의 종교에 대한 스웨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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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이와 도끼

스웨깅을 하더라도 가사의 내용은 중요하다. 화려한 플로우와 테크닉 역시 중요하지만 그 내용의 깊이가 없다면 분명 한계점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요즘엔 각자들의 맥락에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웨깅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번 돈을 부모님께 드렸다는 가사나, 구제만 사 입어서 유행이 아닌 멋을 챙긴다는 가사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단순히 나는 돈이 많다 나는 존나 짱이야라는 내용일지라도 그 표현이 신선하고 재밌어서 듣는 이가 즐겁다면, 좋은 랩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난 버거킹 토핑을 다 추가해 그만큼 돈 버는 중


창모  One more Rollie 


 랩이라는 형식은 기존 노래에서 멜로디로 만들어내는 쾌감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박자의 자유도를 높인 형태이다. 그만큼 전달할 수 있는 음절 자체가 많아지기 때문에 그 내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플로우는 듣는 순간에 즐거움을 얻지만 가사는 곱씹을수록 그 즐거움이 우러난다.한 순간의 유행이 아닌 기억되고 회자되는 음악들은 내용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가 있다.(물론 기술적인 면도 뛰어나다.) 그런 맥락 속에서 내가 낸 3장의 앨범은 모두 기술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을 모두 잡으려는 시도였다. 기술적인 면을 포기하지 않고 그 내용과 앨범의 서사를 만드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전자파에 갇혀 콘크리트 사이


나무를 찾길 바라는 부모님들의 마음


할일은 차고 넘쳐 학교로 끝인 줄 알던 애는


빌딩위에 섰고 다들 관심 밖


카톡은 싫지만 우리들의 관계는


뭘로 이뤄져있나 생각해봐


생각해보면 생각할필요가 없다고 느끼니


Sorry to me, sorry to everybody


kokopelli - Flower


 


변화의 흐름


 하지만 힙합이 태어난지 50년이 된 지금, 이러한 생각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랩으로 가장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릴펌(Lil pump)의 곡을 보자. 그의 거의 모든 곡에서는 돈이 많다는 내용밖에 찾아볼 수 없다. 의식의 흐름대로 10분만에 쓴 것 같은 가사는 그마저도 제대로 발음하지 않았고 아무렇게나 뱉는 듯한 추임새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이 아무 생각 없이 만든 것 같은 곡은 사실 발음을 의도적으로 흘려 플로우를 자연스럽게 만든 뒤 뒤에 나올 추임새를 강조하여 박자적 쾌감을 극대화 시킨 형태이다. ‘구찌갱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이게 노래냐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의 가사는 내용을 전달할 생각 전혀 없어 보이고, 라임과 플로우를 살리기 위한 도구로써만 사용한다. 이런 그의 성공은 내용이 전혀 없어도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면 충분히 음악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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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릴펌은 00년생이다

 미술사에도 비슷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당시 대중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제목과는 다르게 그림에서는 계단도, 누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표현하려는 대상이 아니라 거친 선들로 이루어진 움직임만이 존재했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확고히 정립하면서 예술을 일종의 완벽함으로 해석했던 당시 미술계는 이게 그림이냐는 반응이었다. 회화가 가지고 있던 재현의 의무도 지키지 않았고, 아무렇게나 붙인 것 같은 제목은 당시 누드가 가지고 있던 미적관념을 조롱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전복시키고, 사진과 영상에게 재현의 의무를 뺏긴 회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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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과 그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스킬풀하게 랩을 뱉는 이전의 래퍼들도 결국 가사의 내용을 고려했다. 그 내용이 항상 비슷한 맥락이어서 재미가 없는 경우는 있었어도 내용 전달의 의무는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릴펌은 그 내용 자체를 파괴시킨다. 앞뒤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의식의 흐름 자체가 재밌기도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가사가 하나의 악기로써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아무렇게나 뱉어대는 듯한 추임새들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박자에 떨어지면서도 중독성 강한 비트와 기가 막히기 붙는다.


 나는 진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수많은 제약 속에서 그 내용을 전달하는 게 래퍼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릴펌은 가사와 목소리를 내용전달의 의무에서 해방시켜 하나의 악기로 쓰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대중들에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나에겐 내용이 없는 힙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안녕하세요, 김왈리입니다


 세상은 변화한다. 장르의 틀은 무너지고 음악의 새로운 방향성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한다. 나의 앨범들은 결과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새로운 흐름들 속에서 좋은 랩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나의 앨범은 내용의 전달과 기술적인 면을 함께 살리려다 보니 음악을 깊게 들어야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고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기도 힘들었다.(물론 내용의 서사도 기술도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김왈리라는 새 자아를 만들어 오로지 기술적 형태에만 집중한 곡들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새로운 자아의 대한 개념은 뒤샹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뒤샹은 에로즈 셀라비라는 자아를 만들어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려 했는데 성적 정체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변경 혹은 선택이 가능하다는 발상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래퍼의 정체성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아직 기술 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기존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시도는 일종의 실험이 될 것이다. 기존에 있던 코코펠리는 잡기술없이 내용에 더 충실한 랩을 하고, 새로운 자아인 김왈리는 내용을 신경 안쓴 채로 기술에 치중된 랩을 선보일 생각이다.


 실험을 통해 좋은 랩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뀔 수도, 아니면 다시 처음으로 회귀하여 그 중간지점을 연마할 수도 있다. 결과가 어찌되든 좋은 랩에 대한 고민과 실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나에게 랩은 게임이자 가장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댓글 5
  • 2019-04-23 21:30

    진즉부터 랩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없었던 나는 진즉...악기로 듣고 있었는뎅!! 잘하고 있는거였네!! ㅋㅋ

    왈리 왈리 왈라셩 왈라리 왈라! 화이팅!! ^^ 

  • 2019-04-23 21:38

    김왈리의 기술적인 랩 - 빨리 듣고 싶다

  • 2019-04-24 13:19

    오... 리스펙 부라더!!

    뭔가 멋진 작품 기대합니다 김왈리 no diggity!!!

  • 2019-04-26 20:17

    에피소드 하나.

    어느날 여울아쌤 차에 몇몇이 탔어요.

    그때 차에서 어느 아티스트의 멋진 랩이 흘러나오고

    누군가 물었어요. 

    BTS야? 라고. ㅎㅎ

    (우현이가 들으면 기분 좋을지?나쁠지? 모른다며 다들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ㅋ)

    여울아쌤은 차에서 우현의 앨범을 들으시더군요.^^

  • 2019-05-15 14:43

    제 차에도 우현 앨범이 떡허니 있습니다. ^^

    데이비드 보위가 자신을 '지기 스타더스트'로 부르던 것도 생각나네요.

    김왈리 홧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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