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통신 2> 2019 복의 귀환
뚜버기
2019-03-26 21:49
507
복통신2 : 2019 복의 귀환
- 봄이 오니 복이 온다 -
들어가며 : 복을 둘러싼 고민들
복회원제가 생기고 처음 일, 이년 동안은 말 한마디면 누구나 복회원이 될 수 있었다. 세미나 회원들은 대거 복회원이 되었다. 복은 가볍게 문탁에 잔뿌리를 내리며 뻗어나갔지만 그랬기 때문에 결합력이 취약했다. 연락처를 몰라 소식 전할 길이 묘연한 복회원들도 있었고, 자신이 복회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유명무실한 회원들도 있었다. 심지어 복이 물건 살 때 적립되는 마일리지인 줄 알았다는 웃픈 사연들도 전해졌다.
복규모가 커지자 이런 에피소드들이 고민거리로 변했다. 2014년엔 복과 관련된 여러 사안들을 다루고자 복작복작 연구소라는 거창한 이름의 활동단위가 구성되었다. 복작연구소에서 처음 한 일은 복회원 가입절차를 정비한 것이다. 복Q&A와 가입신청서를 문서로 만들어 신입회원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나는 복회원제도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라고 쓰고 싶었지만 여러 사람이 만류하여 아쉽게도 빠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복을 주고받는 짧은 순간일지라도 다른 경제를 상기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1. 마이너스, 정말 괜찮아?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복을 벌지는 않고 쓰기만 하면 어떻게 되냐고. 누구나 개인의 이익을 동기로 행동한다는 경제학개론의 인간심리학에 따르면 마이너스 한도도, 상환기한도 없는 복회원제도는 조만간 붕괴될 것이 뻔한, 이상한 시스템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도 마이너스가 수십 만복씩 쌓이는 경우가 꽤 있다. 생각 없이 복을 쓰기만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주변의 우려를 사는 회원들도 가끔 있다.
나를 슬픈 정념에 빠지게 만든 사건도 있었다. 당시 회원들이 자신의 복상태에 너무 무심한 것 같아 복잔고를 문자로 알려주었다. “ㅇㅇㅇ회원님, 회원님의 3월말 현재 복잔고는 마이너스 이만복입니다.” 이런 식으로.... 수고 많네요, 몰랐네요, 복 벌 궁리 좀 할께요...등의 반응을 기대했으나 의외의 반응도 상당수였다. 빚 독촉 받는 느낌이라며 돈으로 당장 갚고 싶다는 회신에 당혹스럽고 섭섭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지만 그에게 돈으로 복부채를 탕감받지는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다.
복을 현금으로 갚을 수는 없다. 복은 복끼리 순환한다. 복 빚을 지면서 우리 삶 자체가 함께 사는 이들에게 빚지며 채워가는 것임을 되새기게 된다. 때로 빚을 지고 때로는 빚을 주면서 그렇게 섞이면서 사는 것. 그것은 문탁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내려온 공동체의 윤리다. 공동체의 삶은 주고-받고-갚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공동체의 화폐인 복 또한 그런 윤리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나만의 이득(그런 것이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을 위해 마냥 마이너스로 치닫지 않게 해준다. 설령 그렇게 되어 복경제가 붕괴된다면 그것은 아마 공동체가 힘을 잃었다는 뜻이리라.
2. 복은 활동을 표현한다?
돈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익명의 흐름 속에 있는 반면, 복은 문탁 에서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들 사이를 오고간다. <거래했어요> 게시판을 훑어보거나 매월 정리되어 올라오는 복통장을 살펴보면, 복을 인연으로 문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 케이스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찬방 셰프 활동에서 번 복으로 이어가게 단골 고객님이 되어 나눠 입고 돌려쓰기의 진수를 맛본다. 주술밥상 매니저로 받은 복을 강좌 수강료로 내고...그러는 사이에 문탁과의 접속이 점점 깊어진다. 그 다음엔 복이 관여하지 않은 일에도 발벗고 나서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의미있는 활동에 복이 관계하지는 않는다. 탈핵릴레이시위를 조직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밥당번을 하고, 홍보활동에, 각종 회의에 눈코 뜰 새 없는 일상을 보내도 복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분명 엄청난 활동을 소화하고 있는데 복 벌 일도, 시간도 없다보니 복과는 멀어진다. 복은 활동역량을 키운다고 하지만 활동역량과 복은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었다.
(누구보다 멋지게 문탁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는 히말라야, 그런 히말을 멋지게 찍어준 사진은 참 찾기 어렵더군요)
2017년의 복잔치에 등장한 복스토리펀딩은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단비와 같은 코너였다. 당시 유행하던 스토리펀딩을 본떠 고안된 것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활동을 소개하며 복펀딩을 요청하는 방식이었다. 펀딩 주인공이었던 히말라야에게 “녹색다방원 활동하느라 수고한다”고,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 고맙다”고, “활총생 열심히 하라”고 많은 이들이 복을 투척하며 응원했다.
3. 복의 버블과 정체현상?
파지사유가 자율카페로 바뀌어 매니저 일자리가 없어지고 셰프들의 등용문이었던 노라찬방이 주술밥상으로 전환되면서 셰프 일자리도 급감한 2016년부터는 복 벌 곳이 크게 줄었다. 그렇지만 찻값으로 이, 삼천 복 쓰거나 단품반찬을 늘 복으로 사던 익숙한 습관이 갑자기 바뀌기는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파지사유나 주술밥상에는 복이 쌓이고 개인회원들은 대부분 마이너스복 잔고에 머무는 현상이 벌어졌다. 각자에게 인지되었을 때는 “복 벌 곳이 없는데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복작연구소에서는 매달 이런 고민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논의를 거듭했지만 이야기는 늘 도돌이표를 반복했다. 사람들이 무신경하게 복을 쓴다, 신경써도 복 벌 곳이 없다, 포틀래치를 열자, MBC(마이너스복클럽) 모임을 다시 하자 등등...개인별 복정리를 위한 미니수첩(이름하여 복권)을 제작했지만 반짝 효과만 있었을 뿐 이내 잊혀졌다.
사업단들은 복이 쌓이자 본회계에 내는 운영회비를 복으로 지급하면서 상황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러자 본회계의 복이 또 문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강좌수강료를 대거 복으로 받아 본회계의 복이 더 늘어나는 등의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그렇게 쌓인 본회계의 복으로 포틀래치를 열기도 하고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활동비를 복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복을 순환시킬 때는 자신 뿐 아니라 전체 복의 흐름을 살피고 서로 소통하며 의논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얻었다. 이제 ‘나의 복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자’를 넘어 ‘문탁 전체 복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쪽으로 복을 둘러싼 담론은 변해갔다.
4. 복, 이제 없어도 괜찮아?
2018년 정초의 워크숍에서 복작복작 연구소는 현재 복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고 우리 활동력에 비해 복의 사용규모가 크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몇 년 동안 반복되어 온 문제였다. 환기와 주의가 필요하다는 말만으로 해결하기엔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닌가? 초기에 복은 문탁의 관계 밀도를 높이는 긍정적 기능을 했지만 지금도 과연 그런 기능을 하는 걸까?
2018년 한 해는 많은 사람들이 복에 대한 생각을 서로 나누었던 시기였다. 지난 회에서 언급한 대로 복잔치도 열리지 않았고 신입회원 가입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복 거래규모도 줄어들어 2014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마을경제 워크숍이 열리고 복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작년10월을 기점으로 복거래가 다소 상승했다는 점이다.
짧은 관찰이지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떠오르면서 어떤 느낌이 왔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는 내버려두라. 그러면 자기조절능력에 의해 균형을 찾아간다”고 했고 이에 대한 반박으로 칼 폴라니는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언제나 “사회의 자기보호 기능이 작동”하여 파국을 막았다며 여러 근거들을 제시했다.
나는 실제 문탁과 복의 관계가 그러함을 느꼈다. 개인들 사이에 복거래가 없었지만 각자의 활동에는 선물의 형태로 복이 따라 붙었고 다양한 생활의 기술들이 동원되어 복을 순환시켰다. 때로 정체되고 때로 치우쳤지만, 우려가 표명되면 그 말의 흐름은 느리지만 조금씩 복의 균형을 맞추는 데 실재적인 힘을 발휘했다. 소통하려 애쓰는 만큼 복은 균형을 이루며 순환해 온 것이다.
나가며 : 복 되살리기를 위한 제안들
지난 8년간 복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다른 경제적 감각을 몸에 익혀왔다. 이제는 거추장스럽고 번거로운 복 없이도 그 감각을 살리면서 충분히 잘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새로 문탁에 접속하는 회원들에게는 여전히 복은 유의미한 것 같다. 공부 이외에 활동을 통해 공유하는 경험들이 있을 때 훨씬 다르게 사는 삶은 가시화된다. 복은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활동의 위한 좋은 촉매 구실을 한다. 또한 몸에 체득되었다고 생각하는 감각들도 늘 접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크게 달라진다. 늘 체감할 때만 감각은 생생한 것으로 살아난다. 그렇기에 아직 복은 그 할 일 남아있는 것 같다.
2018년을 끝으로 지난 몇 년간 복을 앞에 두고 온갖 시름을 자청해왔던 복작복작 연구소가 활동을 마감했다. 앞으로는 새로 생긴 마을경제연구소가 복을 화두로 삼아 복잔치도 계획하고 복회원 가입도 진행하게 될 예정이다. 그간 많은 이야기들과 노력들이 있어왔다. 그 힘으로 복의 흐름이 유지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그 힘을 믿고 그런 노력에 좀 더 힘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애물단지 같은 복을 잘 쓰면서 올 한해도 활발발하게 함께 살아가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첫째, 앞에서 썼듯이 복회원들이 그 흐름에 관심을 기울일 때 복은 막히지 않고 흘러 다닐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매월 복통신을 열심히 올려 전체 흐름을 공유하려 한다. “복회원님들, 자신의 복잔고 찾아 볼 때, 친구들 잔고도, 다른 사업단 잔고도 쭉 훑어 주세요. 그리고 복통신도 열심히 읽고 댓글 달아주시고요!”
둘째, 마이너스가 많은 회원들에게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려 한다. “마이너스 회원님, 빚 독촉 아니니까 불쾌하게 여기지 마셔요. 예기치 않은 능력 발휘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답니다!”
셋째, 특히 사업단들도 자신들의 복에 관련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또 자기 활동을 넘어 다른 활동을 포괄하는 복의 흐름에 신경을 쓰는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넷째, 개인회원들이 다양하게 복을 주고받는 방식들을 발명해 보자. 지금까지 복 거래는 활동단위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개인 복거래가 활성화될 때, 자본주의 교환거래와 복거래가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제 8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반자본주의적으로 복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실험해보자.
복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넘칠 때 복은 또 다시 문탁생활에 활기를 불러 넣는 화폐, 재미를 주는 화폐로서 우리 생활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복을 발행하는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복을 이야기 하는 올 한해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1677 |
[보릿고개 프로젝트] 김지원의 스코틀랜드 여행기(3): 나의 위스키 테이스팅 노트, 맛의 다양한 조건들에 대하여
(10)
지원
|
2020.03.07
|
조회 1069
|
지원 | 2020.03.07 | 1069 |
1676 |
[북앤톡] 책방의 이름이 선정되었습니다! + 책 선물 공지
(5)
서생원
|
2020.02.29
|
조회 1232
|
서생원 | 2020.02.29 | 1232 |
1675 |
[보릿고개 프로젝트] 김지원의 스코틀랜드 여행기(2):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 자연에는 선악의 구분이 없다
(10)
지원
|
2020.02.25
|
조회 935
|
지원 | 2020.02.25 | 935 |
1674 |
만주 주문하세요~
(9)
오영
|
2020.02.18
|
조회 539
|
오영 | 2020.02.18 | 539 |
1673 |
[북앤톡] 신입사원 인사드립니다. + 책방 이름 공모
(14)
송우현
|
2020.02.18
|
조회 1183
|
송우현 | 2020.02.18 | 1183 |
1672 |
하수구 냄새 잡아요 ~~~~
(9)
가마솥
|
2020.02.17
|
조회 587
|
가마솥 | 2020.02.17 | 587 |
1671 |
[보릿고개 프로젝트] 김지원의 스코틀랜드 여행기(1): 충격과 공포, 에든버러에서 따귀를 맞았다
(10)
지원
|
2020.02.15
|
조회 840
|
지원 | 2020.02.15 | 840 |
1670 |
<스즈카> 탐방 보고회 + <담쟁이베이커리 시즌 2> 워크숍 합니다.
(1)
달팽이
|
2020.02.14
|
조회 755
|
달팽이 | 2020.02.14 | 755 |
1669 |
2020 문탁 프로그램 안내
(10)
관리자
|
2019.12.29
|
조회 2849
|
관리자 | 2019.12.29 | 2849 |
1668 |
2019 문탁네트워크 어린이낭송서당 <이서인, 졸업 축하해!!!> 동영상입니다.
청량리
|
2019.12.17
|
조회 887
|
청량리 | 2019.12.17 | 887 |
1667 |
2020 문탁 공부계획(안) 확대연구기획 회의!
뿔옹
|
2019.12.02
|
조회 520
|
뿔옹 | 2019.12.02 | 520 |
1666 |
12월 5일 축제맞이 대청소 같이 해요
추장
|
2019.12.01
|
조회 383
|
추장 | 2019.12.01 | 383 |
올 한해 복이 팽팽 돌아 웃음이 넘치게 돌고
덕분에 재미난 일들이 쭈욱 이어지면 좋겠네요 ㅋㅋㅋㅋ
복으로 문탁에서의 많은 관계들을 이어나간 한 사람으로써 복 되살리기 응원합니다!
이번 복장터 기대중~
복 스토리펀딩 재미있고 기발했어요.
저는 종종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이걸로 복 벌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곤 해요.
이를테면 과한 포장지나 예쁜 문구들이 아까워서 모아놓은 게 두 박스 있어요.
개인적으로 선물할 때 잘 쓰고 있지만, 포장지 다시 쓰기로 복활동을 해보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하기는 좀 어려워요. 해도 되는 걸까, 어떻게 누구랑 하면 좋은걸까..
복 벌이와 적극적인 활동 혹은 공동체 내의 관계가 아주 깊게 관계하고 있구나 체감합니다.
언젠가 적극적인 복벌이를 해보리라! 제 소망 중 하나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