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1강 후기

오영
2018-03-10 21:39
387

드뎌 2018 <스피노자와 글쓰기>가  시작됐다.


겨울내 웅크리고 있던 만물이 깨어나듯 문탁에서도 새롭게 개강한 강좌와 세미나들 덕분에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니


정말 봄이 왔음이 실감난다.  



이 봄 들뢰즈를 통해 다시 만나는 스피노자! 새롭다.


돌아보니 지난 1년 간 스피노자 공부한다고 하면서 좌충우돌, 이리저리 헤매기만 했던 것 같다.  


진태원 샘의 강의 덕분에 이제 좀 알듯도 하다 여겼건만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헝, 너무 어렵다.


개강 하기 전 호기롭게 첫발제를 맡을 때만 해도 좀 여유가 있겠지 했으나, 왠걸~ 읽을 때마다 다르다.


꽂히는 것들, 이건 좀 알것 같다고 느끼는 것들이 제각각 따로 논다. 나름 도출한 특성들을 모아 어떤 완결된 꼴을 만들어


내야 하는 데 어렵다. 뭔가 빠졌다, 근데 뭐지? 결국 다시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수밖에.




각자 메모를 읽다보니 저마다의 고민이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차이는 있어도 다들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는 있다. 복잡한 퍼즐을 푸느라 진땀을 흘리면서도 각자 풀어낸 만큼 이야기도 풍성해진다. 


우리끼리만 재미있으면 되는 것일까? 스피노자에 관한 지식이 쌓여도 그것이 저절로 지혜가 되지는 않는다 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이다. 질문이 이어진다.  


명색이 <스피노자와 글쓰기>인데 텍스트를 읽고 요약 발췌하는 데 급급해서야 어디 면이 서겠는가 하는 자기 반성도 있다. 


늘 고민스럽지만 딱히 답은 없다. 암튼 우선은 각자의 방식으로 텍스트를 소화하는 데 집중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각자 상반기 에세이 주제를 잡는 것도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마무리했다.






세미나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과연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때 지성의 역할은 무엇이냐 였다.


에티카 1 부는 신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다룬다. 스피노자는 실체 (즉 신)는 무한하게 많은 속성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무한히 많은 속성들에 의해 '표현되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자라고 정의한다. 들뢰즈는 이때 스피노자가 사용한


'표현'이라는 말에 주목해서 스피노자의 신에 대해 풀어나간다. 신에 대한 인식이 사물에 대한 인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신을 직접 인식할 수 없다. 신은 그야말로 인간의 손에 닿지 않는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고해서 신을 불가지적인 영역에 두고 애초에 이성적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온전히 믿음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대와 문화가 달라져도 신 (그것이 유일신이든 다신이든, 혹은 우주나 물신, 그 무엇으로 규정하든)은 우리의 삶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정치적이며 윤리적 삶이 다르지 않으며 그 토대가 신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보았다.  




들뢰즈는 표현에는 두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펼치거나' 혹은 '전개하고' 다른 측면에서는 '감싸거나 ' 혹은 '함축한다'


즉 신의 피조물로서 자연만물은 그 자체로 신을 표현한다(전개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각을 통해 보여지는 것들이 곧 신의

댓글 7
  • 2018-03-11 00:48

    스피노자에게 왜 표현한다는 것이 중요한가?

    표현한다는 것은 인식한다는 것.

    스피노자에게 철학한다는 것은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느냐의 문제였다.

    왜 구별을 다루고 있나?

    인식은 이것과 저것, 각 사물들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실재적 구별에 대한 방법론을 비판하면서

    동일 속성의 여러 실체가 없다고 한다. 즉, 속성들과 실체의 관계는 수적이지 않다.

    만약 실체가 속성들과 상응하는 만큼 복수로 존재한다면 실체의 실재성 역시 속성들에 의존하게 되는 모순을 낳는다.

    왜 속성인가?

    실체의 삼항일조(실체, 속성, 본질) 중 왜 속성을 설명하는데 집중하지?

    속성은 표현하는 것이며, 이것은 신적 본질을 인식한다는 것.

    우리가 신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신의 속성들이 공통적 형상으로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공통적 형상들은 신과 피조물을 공통으로 구성하는 속성들이다.

    실체와 양태가 동일한 의미로 표현하는 것을 속성의 일의성이라고 한다.

    즉, 다양한 표현들이 하나의 실체를 의미(지칭)한다는 것.

    가령 나는 문탁 회원이자 엄마, 아내, 며느리 등으로 다양한 이름(역할)으로 불리지만, 나라는 존재는 하나라는 것.

    왜 속성의 일의성은 내재적인가?

    속성의 일의성이란 속성이 동일하게(동일한 의미로) 형상적으로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고 양태의 본질을 포함하는 것.

    속성들은 하나의 실체, 하나의 존재를 표현하고,

    존재는 속성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속성은 존재에 내재적(원인)이다.


     

    • 2018-03-12 07:19

      주역의 용어로 스피노자를 읽어보고 스피노자의 용어로 주역을 읽어보려는 '사유의 모험'을 한번 감행해보세요. (개념을 개념으로 읽는 건...정말 .....끝이...... 없시유...ㅜㅜ...)

      그럼 혹시 알아요? 들뢰즈의 스피노자 (이것도 들뢰즈의 사유실험 혹은 사유모험의 결과잖아요.)가 아닌 여울아의 스피노자가 탄생할지...^^

      • 2018-03-15 23:40

        아직은 책을 독해하기도 벅차지만,,, 언젠가는^^

  • 2018-03-11 12:06

    속성의 일의성이라고 하면 개념의 혼동이 온다

    속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신과 자연이 동일한 표현방법을 갖게 된 것을 

    스피노자 철헉과 존재론의 일의성이라 한다

    그래서 여울아의 표현인 속성이 내재적 원인이라는 정리는 혼동을 가져오지 않나?

    우린 계속 개념과 용어 사이에서 헤매겠지요?

    들뢰즈의 말대로 모든 문제는 이름을 잘못 불러서 발생하는 것 같아요

    김애란 소설에 오해의 변이 있어요

    자신은 오해인데 언제부턴가 이해로 잘못 이해되고

    이해로 불리고 있다고^^

    작가의 직관은 2종인식 혹은 3종인식인 듯!!

    -관리자로 들어온 새털

  • 2018-03-11 13:46

    아직 일의성과 내재적 원인을 바로 연결시키기엔 공부가 부족한 듯도 합니다.

    암튼 3장까지 공부하고 난 지금

    '표현'과 '속성'이 스피노자의 실체와 양태를 이해하는데 키라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전 '속성'으로 인한 일의성이 실체에서 양태까지 온세상을 일관되게 구성하는데 중요한 것 같구요

    '표현'은 데카르트가 끝내 벗어나지 못한 외재적이며 초월적인 존재의 필요성을 일축하는 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렵지만 다음 공부가 살짝 기대되기도... ㅎ

  • 2018-03-11 19:24

    진태원샘 강의 1강만 듣고 계속 빼먹게 되면서....난 인제 글렀다고...말해왔는데...

    흠...정말...난 글렀구나...글렀어... ㅠㅜ

    그치만...스피노자니깐~ 

    글른 나도 오영샘이랑 여울아샘이랑 뿔옹이랑...같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믿으며......

    같이 묻어 가 볼랍니다... (실체의 평균 깍아먹기? ^^;;)

  • 2018-03-11 19:59

    정리25: 신은 실재들의 실존의 작용인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본질의 작용인이기도 하다.

    주석: 한마디로 말하면, 신이 자기원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신은 또한 만물의 원인이라고 말해야 한다.

    따름정리: 특수한 실재들은 신의 속성의 변용들과 다르지 않다. 

    곧 신의 속성이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양태들과 다르지 않다.

    정리26: 어떤 작업을 하도록 규정된 실재는 필연적으로 신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규정되었다.

    그리고 신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실재는 자기 스스로 작업을 하도록 규정할 수 없다.

    이 정리와 주석, 따름 정리들을 근거로 들뢰즈는 이렇게 설명하는군요.

    "속성들이 그 본질을 구성하는 실체와, 그 속성들을 자신들의 본질 속에 포함하고 있는 생산물들에 대해서 동일한 한가지의 의미로 말해지는 한에서 확립되는 속성들의 일의성은,

    <작용인>이 <자기원인>과 동일한 의미로 말해지는 한, 원인의 일의성으로 연장된다."(스피노자의 철학 88)

    이에 앞서는 '속성' 항에서는 이렇게 말하는군요.

    "신이 피조물들 속에 함축되어 있는 완전성들을 소유하고 있을 때 

    그 완전성의 형식은 피조물들이 갖고 있는 완전성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이 스피노자는 근본적으로 우월성, 다의성, 심지어는 유비 등의 개념들을 부정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주의적 내재성은 창조뿐만 아니라 유출에도 대립된다.

    따라서 내재성은 무엇보다도 속성들의 일의성을 의미한다. 

    동일한 속성들이 그것들이 구성하는 실체에 대해서도,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양태들에 대해서도 말해진다.

    (이것이 일의성의 첫번째 형태이다.)"(스피노자와 철학 83)

    물론 이미 우리가 알고있다시피 이 번역에서 형식은 형상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들뢰즈는 일의성에는 세 가지 형상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속성들의 일의성, 원인들의 일의성, 그리고 양상의 일의성. 양상의 일의성은 필연성이라고도 말해지네요.

    정리 29에서 '자연 안에는 우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주석의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에 대한 규정과 관련해서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속성들의 일의성, 여기에서 속성들은 동일한 형식 아래서 능산적 자연으로서 신의 본질을 구성하고

    소산적 자연으로서 양태들의 본질을 함유한다. 

    원인들의 일의성, 여기에서는 모든 사물들의 원인이 소산적 자연의 발생으로서의 신, 자기 원인과 동일한 의미로, 능산적 자연의 계보로서의 신에 대해서 말해진다.

    양상의 일의성, 여기서 필연성은 능산적 자연의 조직 뿐 아니라 소산적 자연의 질서 또한 규정하게 된다."(스피노자의 철학 134)

    모두 숙고해 보고 세미나에서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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