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可曰否 논어> 현실주의자 공자님이 제안하는 원한 갚는 방법

인디언
2018-08-27 07:56
338

  <曰可曰否논어>는 '미친 암송단'이 필진으로 연재하는 글쓰기 입니다.




    或曰 以德報怨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헌문 36)      

  어떤 사람이 말했다. 덕으로 원한을 갚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은덕을 보답할까?

직(直)으로 원한을 갚고 은덕으로 은덕에 보답하는 것이다.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報怨以德)’는 말은 『노자』에 나오는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는데 오히려 은덕으로 갚을 수 있다면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아마 『논어』를 안 읽었으면 이 말도 공자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는 말에 공자는 오히려 반문한다. 원한을 덕으로 갚으면, 그럼 은덕은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덕으로 갚을 것은 은덕이지 원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한은 직(直)으로 갚아야 한다고 한다. 은덕에 덕으로 보답하는 것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니 그렇다 치고, 원한을 직(直)으로 갚아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혹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인가? 인(仁)을 주장하시는 공자님이 설마 그리 말씀하셨을 리는 없을테고,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는 직(直)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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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자기 집에 누군가 식초를 빌리러 왔는데, 집에 없는 식초를 이웃에서 빌려다 준 미생고를 직(直)하지 못하다고 했다. 있으면 있다 하고 없으면 없다 하는 것이 직(直)인데, 미생고는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제 집의 가난함을 감추려고 속인 것이니 직(直)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공야장 23장). 그렇다면 감추지 않고 속이지 않는 것이 직(直)이라는 것. 한편, 양을 훔친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이 직(直)하다는 섭공에게 아들은 아버지를 숨겨주고 아버지는 아들을 숨겨주는 것에 직(直)이 있다고 했다. 양을 훔친 것은 누구나 고발해야 할 일이지만, 자식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이럴 경우는 굳이 직(直)을 억지로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자로 18장) 직(直)은 속이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하는 것인데,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숨겨주는 것이 직(直)이라니, 참 헷갈린다. 어쩌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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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원칙과 융통성, 권도(權道), 시중(時中)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속이지 않고 바르게 하는 것, 정도에 따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직(直)의 원칙이지만, 부자지간이라면 그것은 다른 상황이 된다. 오히려 고발하지 않고 숨겨주는 것이 더 ‘마땅하고 적합한’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마땅하고 적합한’ 직(直)으로 원한을 갚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원칙’을 가지고 상황을 살펴 그 상황에서 ‘가장 마땅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에서 늘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인지 순간순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는가. 물론 각자에게 작동하는 원칙이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내 마음에 사사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直)은 경(敬)으로 연결된다.(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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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으로 원한을 갚는 것은 이상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안되는 성인이나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직(直)으로 원한을 갚는 것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공자님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준이 되는 사람은 원한을 덕으로 갚을 수도 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원칙없이 아무렇게나 마음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권도나 시중이 그렇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양하지만 그것이 ‘마땅한’ 것인지는 항상 살펴야하기 때문이다. 덕으로 원한을 갚는 것보다는 직(直)으로 원한을 갚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공자님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고 싶어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인간에게는 덕으로 원한을 갚는 것만큼이나 직(直)으로 원한을 갚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긴 한다. ㅠㅠ



댓글 1
  • 2018-08-27 10:08

    처음 <논어>를 읽을 때 이 구절 읽고 당황했어요. 그런데 공자님의 말씀에 수긍이 가더라구요. 원한을 덕으로 갚으면, 덕은 무엇으로..?

    여전히 '직'이라는 개념이 어렵습니다.

    상황에 따라해야 한다는 말씀도 참 어려워요.

    그런데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에 공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라는 인디언샘의 해석엔

    많은 고민을 하게 하네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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