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10회 리괘(履卦) - 호랑이 꼬리를 밟았다

향기
2018-07-26 02:32
963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천택리괘> 호랑이 꼬리를 밟았다

             헤헤천택리.jpg

  천택 리(天澤 履)가 나에게 글감으로 주어졌다. 우연히 나에게 주어진 괘는 마치 점을 쳐서 얻은 것처럼 나를 고민에 빠뜨렸다나는 리괘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천택 리는 하늘 아래 연못이 있는 형상이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고, 맑은 연못에 그대로 하늘이 비치는 풍경이 떠오른다고요하고 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리()밟는다’, ‘행하다의 움직임이 있는 뜻을 가지고 있다. 리괘는 발로 걸으며 실천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리괘로 들어가 보자.


 흐흐코난위험해.jpg

  履虎尾 不咥人 亨.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

 

  왠 호랑이 꼬리? 주역은 참으로 생뚱맞고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언어들로 가득하다. 만약 우리가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면 호랑이가 공격해 오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호랑이 꼬리를 밟지 않더라도 호랑이와 마주치는 것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급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가다가 보면 예상치 못한 것을 밟을 수 있다. 매우 위태로운 상황일 때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리괘는 말한다. 연못이 땅 속에 있는 것 같이 납작 엎드리라고. 하늘 아래 연못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듯이 자신의 분수에 맞게 그리고 겸손하게 처신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리괘는 호랑이 꼬리를 밟는 위험한 상황임에도 위험에서 벗어나 형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리괘는 매우 좋은 괘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위험할 때라는 것은 어떤 때인가? 분수에 맞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연못은 쉽게 연못에 비친 근사한 하늘의 모습이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쉽게 주변에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보지 못하고 권력 자체가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처지와 역량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분수에 맞게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리괘에서는 각 효의 위치가 중요하게 생각된다. 세 번째 효에서 경보가 울리고 있다.


  六三 眇能視 跛能履 履虎尾 咥人 凶.

  육삼은 애꾸눈이 보며 절름발이가 걷는 것이다. 호랑이의 꼬리를 밟아서 사람을 무니 흉하다.

 

괘사와는 대조적으로 육삼효에서는 호랑이 꼬리를 밟았는데,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버려서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세 번째 효의 위치는 원래 양(, )의 자리인데 음(, ­­)이 위치했다. 이런 경우 부정(不正) 또는 실위(失位) 했다고 얘기한다. 원래 양의 자리이므로 음이 자신이 양인 줄 알고 양의 기운을 쓰려고 한다. 자신은 한쪽 눈으로만 볼 수 있고 다리를 절룩거려서 능력이 되지 않는데 할 수 있다고 망동하고 있다. 여섯 개의 효 중에 딱 하나의 음이 다섯 개의 양들을 이끌어 보려고 힘을 쓰다가 결국 양들에게 밟혀서 흉함에 이른 것이다.


 흐흐코난.jpg 


  육삼효를 보며 나의 처지가 오버랩 되었다. 돌아보면 나는 내 처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120%의 힘을 쓰면서 살아왔던 거 같다. 회사에서는 밤을 새워 일해서 프로젝트 일정에 나를 맞추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완벽하게 좋은 엄마가 되고자 했으며, 문탁에서 새로 시작한 공부도 잘하고 싶었다. 엄마·아내의 역할, 공부와 활동 등 모든 것을 잘 해내려고 무리하게 힘을 썼었다. 결국은 호랑이 꼬리에 물려 모든 것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겨우 나의 처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채 혼자서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가족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 열심히 엄마, 아내,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공부를 하면서도 내부엔진만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신영복 선생님은 담론에서 득위(得位)의 비결은 ‘70%의 자리라고 하셨다. 자기 능력이 100이라고 하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 것이 득위라고. 30%의 여유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시며, 그 여유가 창조성, 예술성으로 나타난다고 하셨다. 나는 30%의 여유가 자신을 성찰하고 관계를 인식하는데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도 책을 읽고 과제(?)에 쫓겨 정작 나를 성찰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자꾸 공부가 버겁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스스로 자신을 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시선은 외부로 향해 있으므로 자신의 눈에 비친 타인을 보기가 쉽다. 자신의 깊이와 맑음을 정확하게 볼 수 있을 때, 나의 주변도 보이는 것이다. 어떤 관계를 만들어야 할까 생각하기보다 자아에 갇혀 볼 수 없었던 이미 수없이 연결되어 있는 관계들을 놓치고 살았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대게 말한다. 30%의 여유로 분수를 지키며 겸손하게 뚜벅뚜벅 실천하며 걸어가고 싶다. 리괘를 통해 나의 그릇으로 떠 본 것은 이 정도이다. 호랑이 꼬리에 물려 흉했지만 결국은 자신을 돌아보고 형통해 졌다고 해야 하나^^ 



흐흐코난함께.jpg

댓글 4
  • 2018-07-26 17:18

    이번괘에서는

    겸손.. 이라는 단어만 머릿 속에 남았었는데

    저또한 시선은 먼곳에 있으면서 정작 등잔 밑은 보지못하며

    나와 내 주변을 돌보지 못했던 내모습에 공감되네요

    나에게 있어서 호랑이 꼬리에 물림이란 무엇일까?ㅎㅎ 괜히생각해봅니다 ㅋㅋ

  • 2018-07-26 21:45

    향기샘의 은은한 목소리가 읽어주는듯, 담백하고  힘이 느껴지는 ᆢ^^

    애꾸눈과 절름발이 딴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한것일테지만ᆢ욕심일수도 있겠네요.

    결국 호랑이에게 물려봐야  깨달아지는 분수와 겸손일테지요ᆢ 흑ㅠ

  • 2018-07-27 18:02

    아리송한 ( 많은 ) 괘중의
    하나였는데 예술적인 요약 덕분에 履괘 복습 잘 했습니다. 호랑이 신체에서 밟을 수 있는 부분이 고작
    꼬리 정도인데 그나마 처신을 잘 해야 살아남는다니, 전통사회에서 처신의 기준이 되었던 상하의 질서를
    오늘은 무엇으로 번역해야 할지요. 이제까지 배운 괘들의 卦辭는 卦名을 主語로 서술했는데 천택리 괘에서는
    갑자기 履虎尾로 시작을 하는게 무슨 복선이 있는 건 아닌지 방자한 의심도 해 보았습니다

  • 2018-08-13 15:08

    ''납작 업드려 자신의 분수에 맞게 처신하라''

    이것은 무엇보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아는 것이 필요하겠네요.

    그래야 자기 능련을 과신하거나 넘어섬을 멈추고 그에 맞게 처신할테니까요.

    그런데 반대로 먼저 몸을 사리고 손사레를 치는 것도 경계해야 할것 같아요.

    좋은 사람으로 사는건 참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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