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9회 소축괘(小畜掛)_작은 힘의 지혜

여울아
2018-07-1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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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풍천소축> 작은 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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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축, 부드럽지만 강한 힘

소축괘(小畜卦)는 밀운불우(密雲不雨)라는 고사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구름이 빽빽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답답한 형국을 묘사하는 말이다. 먹구름 잔뜩 낀 하늘에서 시원하게 비가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름양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비구름을 더 모을 바람(공기의 이동)이 필요하다. 이때 바람의 세기가 거세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칫 태풍이나 돌풍처럼 주위를 풍비박산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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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축은 답답한 상황에서 부드러운 바람으로 구름을 모으고 마침내 기다리는 비를 내려주기에 형통하다. 여기서 소()는 작은 힘, 음을 말한다. ()은 작은 힘으로 큰 것들을 저지하다혹은 쌓아서 모으다로 해석할 수 있다. 괘의 모습(卦象)을 들여다보면, 강건한 상괘가 공손한 하괘를 만나서 부드럽게 저지당하고 있다. 소축은 음효 하나가 양효 다섯을 상대하는 형상이기 때문에, 강한 세력으로 억누르기 보다는 부드러운 힘으로 눌러주는 것이 키포인트이다.

 

부드럽게 눌러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주역에서는 음양의 조화가 중요하다. 날뛰는 다섯 양들의 힘이 우세한데 하나의 음이 어떻게 이들을 제어할 수 있을까? 만약 음이 양을 강한 힘으로 제압하려고 맞서면 오히려 불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면 기다리는 비는 끝내 오지 않는다. 비가 오려면 구름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서 쌓여야 한다. 음이 양을 부드럽게 달래가면서 힘을 키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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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축,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내기

효사에서 초구, 구이, 구삼은 모두 육사의 견제를 받고 있다. 다만 자리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초구는 혼자 나섰던 길을 돌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구이는 위아래 양효들과 연대하면서 자신의 본래 자리를 되찾는다. 구삼은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격이다. 이렇듯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견제의 상황에 놓인다. 여기서 만만찮은 육사효에 대응하여 나머지 효들이 자기 자리를 회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회복은 내 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때 회복은 단지 겉모습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음이 부드럽게 눌러주었기에 양효들은 본래 자기 모습이 파괴되거나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다만 자기 자리로 돌아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원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런 성찰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고 그 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회복이다. 잘못된 인간관계는 마치 바퀴살이 빠진 수레처럼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을 잃고 완전히 괘도에서 이탈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어느 한 쪽의 잘못일 수만은 없다. 육사가 양효들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자신보다 강한 힘을 가진 양들을 억지로 제압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화로 인해 관계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소축괘에서는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겸손함뿐이라고 말한다. 겸손함은 자신이 불리할 때는 남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거드름을 피우거나 제 분수를 모르면 비난과 비웃음을 면치 못할 수밖에. 그러므로 무엇보다 육사는 제 분수에 맞는 자리를 찾아서 사심 없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것이 육사가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다. 이제 육사는 자기 자리를 찾고 제 할 일을 하면서 다음을 기약한다소축의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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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축, 힘을 비축하는 기다림

앞서 수괘(需卦)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과 달리, 소축괘는 어느 정도 여건이 형성된 상황에서의 기다림이다. 그래서 둘 다 비가 오길 기다린다는 것은 같지만 소축괘는 수괘보다 기다림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축괘에서의 기다림은 고통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짙은 구름 낀 하늘 아래서 이제나 저제나 비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누구나 초조함을 느낄 것이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축괘의 기다림은 간절함을 담고 있다. 이 상황은 문왕이 유리옥에 갇혀서 서쪽 지방의 자기 나라를 바라보았다는 일화로 비유된다. 문왕은 감옥에 갇혀서 신세한탄을 하며 허송세월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불후의 역작 주역을 저술했다. 그가 백성들과 주변 제후들로부터 칭송받자, 천자 주()는 위협을 느껴 그를 유리라는 땅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문왕일지라도 억지로 때를 앞당길 수는 없었다. 그는 억울한 감옥살이를 감당하며, 이를 문덕을 펼치는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문왕의 아들, 무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먹구름이 걷히고 단비가 내렸다.

 

소축괘에서는 작은 힘으로 큰일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비구름을 모으는 작업은 음이 양을 키우기 때문에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대신 대축(大畜)이 끝내 흩어지는 것과 달리 소축은 때가 되면 완성된다. 그래서 소축괘는 힘을 비축하며 기다리면 반드시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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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장마철엔 소축괘가 절실해진다. 나는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면 온종일 삭신이 쑤신다. 심지어 햇볕이 쨍쨍 내리쬐더라도 비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곧장 무릎에서 욱신욱신 신호가 온다. 그리고 구름이 모이기만 하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남모를 고통으로 괴롭다. 하지만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먹구름이 끼면 반드시 비가 내릴 때까지 구름을 모으는 작은 힘의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서 작은 힘이란 일상에서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힘을 비축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마치 빽빽한 구름이 더 모여 비를 내림으로써 메마른 땅을 촉촉이 적셔주어 온갖 초목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말이다!

 

댓글 8
  • 2018-07-19 10:56

    소축괘의 기다림, 음이 하나인 괘상만으로도

    고난이 느껴지고 변화를 얼마나 기다릴지 감이 오긴 하네요^^

    그 기다리는 시간은 문왕은 <주역>을 쓰면서 보냈다는 거군요.

    그 '작은 일'이 결국은 주나라에 천명이 내리는 큰 결과를 가져왔다고 읽히는데요.

    문왕의 이러한 기다림을 '작은' 일이라고 한다면

    이 '작은' 은 다시 정의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소축의 기다림이 의미롭게 다가올 것 같아요~

  • 2018-07-19 11:17

    여울아님, 소축괘 글 잘 보았습니다. 일상에서 자기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힘을 비축하며 때를 기다린다는 작은 힘의 지혜~

    (비유할 수 없는 것은 치유될 수도 없다는데^^  ) 

    '자연'에 인생을 접목시켜서 풀어나가는  주역의 세계를

    알게되어 큰 기쁨입니다.

  • 2018-07-19 12:01

    수천수괘랑 비교하면 힘을 쌓아야하는 괘인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수괘는 음하나가 오효에 있어서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면 되지만 소축괘는 아주 애매한 사효의 자리인지라...

    그 사효가 손풍의 겸손함을 덕으로 가지고 있으니 그 덕을 기반으로 양들의 능력을 잘 조절하겠지요.

    그러니 그냥 자기자리를 굳건히 지킨다는 말로는 표현이 조금 부족할 것 같아요.

    있는 힘 없는 힘 짜내서 주변의 배치를 돌보고 과하지 않게 조정하며 그 과정에서 장차 폭발할 힘들이 쌓이겠지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 그의 내공은 엄청날터인데, 그의 능력이 겸손함이라는게 생각해볼지점이 되네요.

    신영복 선생은 겸손을 자기를 낮추어 다른 사람들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이라 합니다.

    아마 자기 성찰은 주변을 돌아보는 것과 같을 거라 생각되네요.

    주역에서 대소는 음양을 상대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니, 작은 힘의 비축보다는 부드러운 힘의 비축이 더 나은 표현일것 같아요.

  • 2018-07-19 12:56

    제가 기다림에서 작은 힘으로 푼 것은 정말 그 힘이 작다고 느껴져서 예요. 

    작아서 부드러웠기 때문에 양효들을 헤치지 않지만 

    그로 인해 가다림이 무척 더디고 괴롭거든요. 

    문왕이 때를 기다리렸 던 것은 대단한 일임에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인고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던 것을

    소축의 음효로 푼 것에서 무릎을 절로 치게 됩니다. 

    • 2018-07-19 17:26

      무릎도 아프고, 무릎도 치고... ㅋㅋㅋ

  • 2018-07-19 17:56

     다만 자기 자리로 돌아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원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런 성찰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고 그 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회복이다.

    마음 속에 새겨둡니다.

    작은 힘이 길러지기를 기다려주는 것.

    이것은 작은 힘의 역할이 아니라 그 힘을 지켜보는 이들의 역할이네요.



  • 2018-07-20 10:58

    강건한 상괘가 공손한 하괘를 만나서...?

    지적질 안하고 싶지만 ㅋㅋㅋ 보이는건 어쩔 수가 없고 그냥 가자니 찝찝하고 해서...^^

    상괘 하괘가 바뀌었네요

    풍천소축--상괘 풍은 겸손, 하괘 천은 강건...


    주역을 읽다보니 겸손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진정한 힘은 겸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 2018-07-31 15:00

      인디언님, 상괘가 하괘를 부드럽게 누르고 리드하는 상황이라고 보심 돼요.

      그래서 상괘가 강건하고 하괘가 이를 따르는 공손한 형국이라고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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