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강학원> 2회차 - '진실의 색' 후기(2)

조규혜
2020-04-02 14:38
573

다큐멘터리 형식

세미나 첫 번째 책, 히토 슈타이얼의 ‘진실의 색’이 끝났다. 부제를 빠트리면 안 된다. 부제는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이다. 그렇다. 히토 슈타이얼은 미술관에서 플레이되는 다큐멘터리 영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난 2주간의 세미나에서 ‘다큐멘터리 이미지’, '다큐멘터리 형식‘을 세세하게 포착해내고 싶었던 이유가 ’미술관‘에 있었다.

이 책에서는 다큐멘터리 일반에 대해서 상상하기 쉬워서 또 어렵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형식’과 같은 것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에 관해 세미나 시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후기에서 간략하게 더 써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형식’이라는 것은 다큐멘터리 ‘종류’와 다르다. 다큐멘터리가 다루고 있는 대상에 따라 역사 다큐멘터리, 자연 다큐멘터리, 시사 다큐멘터리, 휴먼 다큐멘터리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 베리떼와 같이 다큐멘터리 안에서 진실과 주장에 대한 카메라의 존재여부를 가르는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 또한 일종의 종류로 분류 될 수 있다. 즉, 대상과 방식에 따라 다큐멘터리는 분류될 수 있다. 그렇다면 히토 슈타이얼이 말한 다큐멘터리 ‘형식’이란 것은 무엇일까.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와 보면, 저자가 설명한 미술관에서의 다큐멘터리에는 종류가 없는 듯 보인다. 다큐멘터리와 진실 및 리얼리티의 관계에 관람객이 더해져 발생하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의 역학을 말하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대상은 테러리트스트, 노동자, 마을 주민, 경찰, 그리고 인서트 형식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사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대상에 따라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카메라의 존재를 엄격하게 관리하여 직접적으로 진실을 주장하려는 순수한 형태이든, 카메라의 존재를 자유분방하게 드러내며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다루는 형태이든, 기존 다큐멘터리 이론에 입각하여 다큐멘터리 형식을 말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은 언어와 편집되어지는 방식인 듯 보인다. 언어란 대상들의 언어이자 감독의 언어이다. 대상의 존재 형식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가진 언어를 가지고 형식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상의 언어에 따라 형식이 결정되어지는 방식도 아니다. 인간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간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이라 해서 사물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 또한 인간의 언어로 다뤄질 수 있으며, 인간 또한 사물의 언어로서 다뤄질 수 있다. 사물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는 서로 떼어질 수 없으며 그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관계의 직조 형태가 감독의 언어이자 관객과 만들어내는 역학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교환 과정에서 진실이 날라지고, 만들어지고, 소외되는 과정들 자체를 ‘다큐멘터리 형식’이라 부르는 것 같다.

 

진실의 정치를 설명하기 위한 이분법적 체계 속에서 다뤄지지 못한 것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후기였다. 가장 솔직하게 느껴졌다. 다큐멘터리 형식 그 자체가 지니는 의미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둘러싼 진실과 리얼리티의 정치와 미학을 다룬 본문에서는 저자의 이분법적 설명의 틀들이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폭력적이라 함은 현실의 다양한 가능성과 존재들을 두 개의 가능성으로 축약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를 말한다. 그러나 후기에서 이 폭력성을 저자 스스로가 다루었다. 에세이 글의 형식의 미학과 의미 그리고 에세이 글의 형식을 선택하게 된 저자의 상황 설명을 통해 다시 그 폭력성을 느낀 나의 상태에 대해 메타적으로 생각해보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두 번째 세미나 시간에 말한 것처럼, 저자의 이분법적 언어가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언어가 의미를 확정하고 앎의 견고한 범주를 구축해 지식체계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지식은 곧 실제로 간주된다. 사물의 언어가 지니는 잠재력에 비해, 이러한 인간 언어의 성질은 위계적 권력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사물의 언어가 지니는 불명확함에 비해, 인간 언어는 명료하여 투명하며, 이러한 성질로 인해 공동의 행동과 투명한 공공성의 영역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가 지식체계를 만들어가는 가부장적 권력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혹은 인간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인간 언어에서 인간은 곧 가부장적 권력으로 상상되어진다. 기존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과학적 지식 체계에서 여성은 물리적으로 배제되어왔다. 여성의 지식은 과학적 지식으로 체계 속에 편입될 수 없었다. 중립이며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 천명된 기존 지식치계의 이데아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현상인 여성의 배제를 이슈로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여성의 지식이 배제되었을지라도 여성의 지식이 생산/재생산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끊임없이 기존 지식 체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왔고, 운동해왔다.

사물 언어와 인간 언어의 이분법이 불편한 것은, 페미니즘의 언어, 여성의 언어가 만들어낸, 그리고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들을 여전히 소거해버리기 때문이다. 지식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가부장적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페미니즘을 통해 경험했다. 페미니즘 또한 가부장적 지식체계의 파편일수도 있다. 그러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적 지식 체계를 만들어내는 언어 속에서가 아닌 운동하고 있는 언어의 포착 과 그 언어의 실천을 통해서 가능해보인다. 또한 페미니즘을 통해 경험한 세계의 언어가 사물의 언어에 편입되어서는 안 된다. 가부장적 지식체계를 만들어내는 인간 언어와 함께 갈 수밖에 없지만, 끊임없이 대항하는 언어는 사물의 언어만이 아니다. 그 방법론에 있어서 모호한 사물 언어도 아니고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가부장적 지식체계로 모든 것을 회귀시켜버리는 인간 언어도 아닌 언어가 있다.

댓글 3
  • 2020-04-02 21:18

    제가 사물과 인간의 언어, 두 가지로 똑똑히 구분 지어 얘기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느꼈던 이유를 규혜가 잘 설명해주고 있네요..!
    결국엔 조금의 운동성과 약간의 유동성을 어떻게 내 신체로 끌고 오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 시간 규혜의 발제 뒤 저 또한 울컥했던 이유는
    그 끊임없이 대항하는 언어로 규혜가 말을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Go together...!

    • 2020-04-03 01:48

      Go together!

  • 2020-04-03 11:39

    1. 히토 슈타이얼에 따르면 (그는 우리가 이번에 읽은 텍스트에서도, 과거 함께 읽었던 <스크린의 추방자들>에서도 일관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요) 오늘날 미술관의 안과 밖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적 조건이 존재합니다. 다변화된 매체환경과 주체-객체의 불명확성,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구성된 불확실성 속에서 미적 진실을 구축해 온 전통적 미술관은 노동시장이, 공장은 미술관이 되었습니다(‘미술관은 공장인가?’참조). 이런 조건 속에서 그에게 다큐멘터리 형식은 푸코가 말과 사물 도입부에서 인용한 중국백과사전과 같은(“동물의 분류법: a.황제에 예속된 동물들, b. 박제된 동물들, …i.미친 듯이 날뛰는 동물들, …m.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동물들…”), 오늘날 진실과 지식을 구성하는 일종의 통로입니다. 히토 슈타이얼은 이 통로, 다큐멘터리 형식의 전통적 논리가 무너짐에 따라, 균열되고 해체되는 속에서 야기되는 수많은 위험성을 강조하며 일말의 가능성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이때 ‘형식’은 제 독해가 맞다면, ‘지식을 구성하는 형식’이라는 의미에서의 형식입니다. 이때 다큐멘터리를 장르화 하거나 종류로 구분하고, 분류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세미나에서 다루었던 이야기들처럼 다큐멘터리 형식을 더 확장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브이로그, 유튜브, 혹은 SNS상의 수많은 이미지와 이야기들. 이 또한 진실-정치의 측면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리거나, 적극적으로 도입하거나, 비틀거나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규혜가 볼드 처리한 소제목에서, 이 모든 논의가 이분법적 체계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저는 오히려 히토 슈타이얼이 리얼리즘과 구성주의의 첨예한 대립 바깥, 혹은 사이를 사유하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분법적 지식체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마지막의 후기는 ‘가장’ 솔직하다기보다는 첨언처럼 읽혔어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큐멘터리 형식의 확장적 측면을 부각하기 위해 에세이 형식을 다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3.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사물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의 이분법이 페미니즘이 만들어가는 상황을 소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가 사물로서의 여성의 고유한 활동들을 소거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때 이분법은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방식이죠. 그러나 인간은 공통의 영역을 구성할 때, 필연적으로 가부장적인 인간의 언어를 통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곳에 있습니다. 매우 당연해 보이는 불가능성 속에서 불가능한 가능성 찾기.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의 언어도, 사물의 언어도 아닌 어떤 언어가 있다는 규혜의 말에 동의합니다. 히토 슈타이얼 역시 그것을 발견코자 한다고 생각되어요.

    길어졌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도 규혜가 세미나에서 잠깐이나마 꺼내준 이야기(대외비)가 참 좋았습니다. 저는 그런 활동과 노력이야말로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고 우리가 굳건히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에 균열을 내는 진실-정치라 생각합니다. 허용되는 목소리를 넘어서 발언하는 것, 그것이 보이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히토 슈타이얼로부터 빌릴 수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기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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