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중등인문학교 네번째 시간 후기

명식
2019-10-14 14:05
261

 

  안녕하세요, 2019 중등인문학교 튜터를 맡고 있는 명식입니다.

  이번 주는 2019 중등인문학교 <학교라는 낯선 곳> 네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모처럼 모든 친구들이 다 모였는데요. 이번 주에 읽은 책은 다니엘 페낙의 『학교의 슬픔』이었습니다. 저자인 페낙은 아주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프랑스의 학교 교사이자 작가인데요. 이 『학교의 슬픔』은 그가 교직에 있으면서 겪었던 일과 느꼈던 것들, 또 그가 어린 시절 학생이었을 때 낙제생으로서 겪었던 일들과 느낀 것들을 쓴 에세이지요.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번 책을 읽고 상당히 어려웠다는 감상을 가져왔는데요. 사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다른 여러 에피소드들이 모여 있는 에세이 형식이 여러분에게 낯설기도 했을 것이고, 페낙이 쓰는 단어나 표현들도 결코 쉽지 않고, 문장도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읽어온 여러분에게 박수!) 그런데도 이 책을 택한 데에는 그런 어려움들을 감수하고 읽을 만큼 진실하고 울림이 있는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해서였어요. 어떤 가식도 겉멋도 없는 한 늙은 교사의 목소리.

 

 

  『학교의 슬픔』의 페낙은 정말 솔직하게, ‘아니 이런 이야기는 선생님이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이야기들까지도 정말 솔직하게 써내려갑니다. 그 중에서도 연경이를 비롯해 여러 친구들이 골랐던, ‘나탈리’의 이야기를 봅시다.

  어느 날 교사 페낙은 열두 살 짜리 여학생 나탈리가 너무나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페낙이 그 까닭을 묻자, 나탈리는 아주 간단한 문법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더욱 펑펑 눈물을 흘리죠. 페낙은 너무나 작은 문제 때문에 그토록 서럽게 울고 있는 나탈리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하마터면 웃어버릴 뻔합니다. 그래도 웃음을 꾹 참고 나탈리에게 그 문법을 알려줍니다.

 

  「됐다, 선생은 일에 착수한다. 문법 설명으로 어떻게 이 아이를 위로해줄까? 자, 보자....나탈리. 너 지금 잠깐 시간 있지? 내가 설명해주마. 빈 교실을 찾아내 앉으라고 하고, 자, 내 말을 잘 들어봐, 이건 아주 쉬운 거야. 자, 봐, 됐지. 알겠니? 그래, 예문을 하나 만들어봐. 아이는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이해한 것이다. 자, 이제 좀 괜찮니?」

 

  페낙은 교사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나탈리에게 간단히 그 문법을 깨우쳐줍니다. 그리고 이걸로 나탈리의 마음이 위로될 거라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어! 그런데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다시금 눈물을 흘리고 크게 울먹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몰라요. 제 나이 열두 살하고도 반년이 지났는데,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요.”

  “......”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말을 곱씹는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그 애의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하지만 그 무구한 나탈리는 어쨌거나 나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잖아.」

 

  생각해보면, 좀 우스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겨우 열두 살 된 아이가 ‘평생 아무 것도 해낸 일이 없다’며 울다니요. 페낙은 나탈리의 말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하지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다음날 나탈리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게 됩니다.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나탈리의 아버지는 어느 회사 간부였는데 십 년간의 성실한 직장생활 끝에 얼마 전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간부직 해고 사태의 첫 사례였다. (...) 회사에서의 자기 역할을 의심하지 않았던 모범적이고 세심한(작년에 나는 나탈리의 아버지를 자주 만났다. 그는 소심하고 자신감이 너무 부족한 딸 때문에 근심이 많았다) 젊은 간부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는 결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고는 가족들이 모인 신탁에서 끊임없이 되뇌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이상 본서 75-76p)

 

  나탈리의 아버지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여러분이 말했던 것처럼, 슬픔. 고통. 허무함. 상실감. 무력감. 그리고 그 감정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는 나탈리에게 그대로 전염됩니다. 슬픔과 허무에 휩싸인 아버지를 눈앞에 두고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탈리가 느꼈을 고통과 무력감. 그래서 나탈리는 슬픔과 무력감에 몸서리치며 아버지의 말을 똑같이 되풀이합니다. “선생님은 몰라요. 내 나이 열두 살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요.” 

  그리고 페낙은 그런 나탈리를 바라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나탈리에게 문법을 가르쳐주는 것 뿐이었지만, 그것으론 나탈리를 웃게 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 외에는 나탈리를 위해, 그의 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제 나탈리의 아버지에게서 나탈리에게 옮아갔던 무력감은 다시 페낙에게 옮겨옵니다. 페낙은 묻습니다. 내가 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난 왜 이렇게 무력한가? 선생은, 왜 이렇게 무력한가?

 

 

 

  『학교의 슬픔』에는 이처럼, 우리가 결코 들여다볼 수 없었을 선생들의 솔직한 내면이 낱낱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들이 학생들과 함께하며 겪는 고통들과, 그 고통들이 서서히 그들을 마모시켜가는 과정과, 그 가운데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고뇌들.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선생들이 우리와 똑같이 감정을 느끼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책의 마지막에서 페낙이 내린 하나의 결론도 읽을 수 있었지요. 뻔하고 단순히 쓰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숱한 삶과 고민의 결과이기에 결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하나의 단어. (여러분은 기억하지요?)

 

  이처럼 『학교의 슬픔』은, 우리에게 선생님이 되어보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람들 중 한 명의 내면으로 들어가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을 우리가 더 잘 느끼게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와 그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물론 우리는 친구들과는 꼭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종종 이런 일을 하지만, 나와 다른 점이 많은 사람 -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 - 들과는 좀처럼 이런 경험을 하기 힘들지요. 그렇기에, 비록 어려운 책이었지만 여러분과 함께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수업 막바지에 쓴 ‘내가 선생님이 된다면’에 대한 여러분의 글들도 더해서 말이지요.

 

  다음 시간에는, 존 테일러 개토의 『바보 만들기』를 읽습니다. 이것도 어떤 선생님이 쓴 책인데, 살짝 어려울 수도 있지만 꽤 재미있는 책이에요. 그럼 다들, 책 꼭 읽고 다음 주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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