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인..> 첫번째 세미나와 mt

자누리
2019-05-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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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첫 시간 후기

  우리는 근대성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의견을 가지고 있다. 보통 근대성을 넘어야 한다고 할 때 그 근대성은 어떤 것일까? 라투르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근대성을 완전 특별한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적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근대성을 이전 시대와는 다르다는 개념으로 시간의 단절과 탄생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라투르는 탈근대주의자들도 이런 차원에서 보는 한 정말 근대성을 넘어갈 어떤 전략이 나올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다. 시간의 관점이 아닌, 차원을 바꾸어서 우리가 하고 있는 현실적 실천, 삶의 차원에서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대인이 아니라는 말은 근대성을 다시 정의하자는 말과 같다. 

  실제 우리는 인간-비인간의 혼합체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지속적으로 구분하는 작용도 한다. 어찌 보면 분류와 혼합은 인간의 기본 사유이면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와 근대 이전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이 문제적인 근대성을 약간의 차이를 가진 것으로 정의하자면 분류작용이 다른 어느 때 보다도 강해서 혼합작용을 잘 이해하거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이런 점에 깊이 공감되었다. 라투르는 이것을 정화작용과 번역작용으로 부르는데, 근대성은 정화작용이 너무 강하고 반대로 번역작용은 무시하거나 은폐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우리는 공부-활동, 정신-신체, 정치-경제를 구분하는데 익숙하고, 그 구분 속에서는 언제나 위계 관계를 설정한다. 아니, 무엇을 같이 하기 위해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더 중한지를 말하기 위해 구분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는 구분=혼합이 되는 방식을 잘 알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라투르의 생각을 읽으면서 더 더욱 동양의 조화론을 갈고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라투르를 통해서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정화작용이 왜 우세해졌을까? 물론 라투르는 이것이야말로 근대의 기획이고, 제조된 근대성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정화작용만큼 번역작용이 있음에도 그 혼합들이 저 아래로 숨겨졌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역할 분담을 당연시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어떤 혼합들이 일어나는지는 알기 어렵다. 이것은 사회가 커져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흔히 말하듯, 문탁에서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것은 문탁이 커져서일까? 아니면 아직도 우리는 번역작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일까? 이런 질문들을 삶의 구체적 수준에서 확장해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일과 홉스의 논쟁을 살피는 것은 흥미로왔다.

  탈근대주의, 사회구성주의자들은 보일과 홉스를 각각 자연-과학 지식과 정치권력의 시조로 본다. 즉 삼권분립과 같은 정화작용이 근대의 출발이고 전부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라투르는 좀 더 밀고 나가보면 그 속에 번역작용과 하이브리드가 있음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보일과 홉스는 모두 근대의 전쟁을 어떻게 잠재우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평화를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전체적 차원에서 근대성의 기획을 이루어내었다. 그들은 자연과 사회, 과학과 정치의 경계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중 보일의 기획이 더 흥미로왔다.

  전쟁의 원인은 서로 다른 이견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보통 이익 추구라고 생각하지만 홉스와 달리 보일은 이익조차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같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이점도 생각해볼만 하다. 우리는 보통 인간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할 때 마치 이익을 동일하게 여겨서 파이나누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보일은 그렇게 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단지 이견이 문제인 것이다. 홉스는 이견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므로 오직 힘에 의해서만 통일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로크는 이견은 활발하게 나누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합의를 이룰 수 있는가? 토론 속에서 자연스레 합의가 도출되는 것도 아니고, 다수결도 아니라면? 실험이었다. 즉 눈 앞에 벌어지는 사실의 증명 속에서 명증한 검증이 일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공동체를 지향해서 그런지 사실-지식의 힘을 정치권력보다 더 현실적이며 크다고 보는 보일의 방식이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숙의-민주주의일수도 있다. 그런데 보일의 방식이 홉스의 방식과 달라서 생긴 문제는 과학과 정치의 경계 설정만이 아니다. 그 둘은 애초에 추구하는 바가 통일성과 평화였으므로 사실 경계를 넘나든다. 경계 설정과 횡단, 이 둘은 함께 있어야 근대성이 완성된다는 점이 라투르의 생각을 특이하게 보이게 하는 점이다. 단지 그 횡단이 공공연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횡단과 혼합체를 어둠 속에서 양산한 것, 그것이 근대성을 황폐화로 이끈 원인이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생각거리가 많아지고 혼란스러워진다. 다음 시간과 에세이로 뭔가 정리가 되기를...

 

이번 세미나는 양양 도라지네 집으로 가서 MT를 겸하였다

묵중한 발제문과 텍스트로 저녁내내 어둡더니 끝내 밤별 한번 못보았다. 다음 날 워크샵 논의와 복의 새 용법에 대한 토론 속에서 여전히 분위기는 침침했고...mt는 이러라고 가는건지 몰랐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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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뚜버기가 취해서 귀엽게 해롱되는 걸 처음 보았고, 코스모스와 같이 하루밤을 자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아서 좋았다. 소박한 식사를 하자고 밥 먹는데 큰 시간 안들인 것도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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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대로 간 팀은 하조대 바다를 보아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산보다는 이런 바닷가에 사는 것도 좋을 듯하여 마구 욕심이 났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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