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경제이야기> 작업의 이유

띠우
2019-05-13 01:00
406

띠우 글쓰기2  

<그는 문탁에 오기 전까지 혼자서도 나름 잘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문탁에 왔는데 낯선 언어들 덕분(?)에 속으로 매우 당황했다(증여, , 공통감각 등등). 무슨 말인지 번역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삶이 고달파지기 시작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그는 마을경제 개인프로젝트로 막무가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어쩌다 월든 6년차 일꾼이 되어버린 어느 한 사람. 이 글들은 그의 공동체생활기가 될 것이다.>


작업의 이유

 

  한창 바지 옆선을 박다가 바늘이 또 부러졌다. 그 둔탁한 소리가 내 손끝까지 전달되면서 소름이 확 돋았다. 일을 멈추기가 싫어서 옆 자리로 옮겨 앉아 다른 재봉틀을 보았더니 이번엔 실이 빠져있었다. 바늘을 다시 끼우든지, 실을 다시 끼우든지 해야 한다. 이럴 때면 나는 순식간에 일할 의욕이 훅 꺼진다. 재봉틀을 어찌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일을 멈춰야 하는 것이다. 한창 솟아오르던 의욕이 한낱 비누거품 같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창 밖으로 눈을 돌렸더니 월든의 쌀쌀함과는 달리 봄빛이 일렁일렁한다. 잠시 후, 마음을 잡고 다시 자리에 앉아 실을 끼웠다. 가끔 월든에서 혼자 작업을 하는데, 일에만 집중하는 느낌이 꽤 좋다. 저것들과 잘 지내야할 텐데...



mug_obj_201601121302391460.jpg     

  월든에는 재봉틀만이 아니라 피할기도 있다. 가죽을 얇게 벗겨주는 그것이 처음 월든에 왔을 때, 나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많은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피할기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다보니 애써서 재단한 가죽에 구멍이 숭숭 났다. 그 때마다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는 소름끼쳤다. 일을 계속 하려면 가죽을 다시 재단해야했다. 실패가 한 번뿐이라면 다행이지만.... 버려지는 가죽이 쌓였고,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단순한 기계인데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후부터, 아예 피할기의 존재를 무시하기로 했다. 내 손은 벗어났지만 요즘도 가끔 지금님 손에서 울어대는 피할기, 그 소리는 나에게 여전히 비명 같다.

PEP20120222016101034_P2.jpg

  재봉틀은 피할기와는 달리 갈수록 무시하기 어렵다. 가죽은 간단한 도구로 하는 손작업물이 미적으로 뛰어났지만, 앞치마나 청바지 가방 같은 천 작업에는 재봉기술이 적절한 것이다. 차츰 일자박기 정도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재봉틀과의 사이에서 불시에 생기는 문제는 당황스러웠다. 유독 내가 만지면 바늘이 부러지고, 불이 나가고, 실이 끊어졌다(똥손?). 서툴면 낯설고, 낯설면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재봉틀과 말썽이 나면 도움을 청했다. 그것도 자주 일어나다 보니 답답해서 도구의 확장이 필요해졌다.


  둘을 대하는 나의 욕망이 다르다. 피할기는 무시하면서 재봉틀은 자꾸만 잘 다루고 싶은, 그 사이에서 손과 도구의 적절한 균형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그 전에 어떤 것은 무시하고, 어떤 것은 잘 하려는 욕망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건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월든에서 일하면서 나는 우리가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한다고 생각하곤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가끔 그 속에서 동일성에 포획되어 간혹 달팽이처럼, 지금처럼, 토용처럼 사고하고 말한다. 익숙해진 만큼 짐작과 확신에 의해 지난 월요일이 다시 내일의 월요일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내가 네가 된 것과 같은 착각이다. 말 안 해도 아는 사이? 그러나 그런 것은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에서 무언가를 적합하게 인식하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판국에 말 안 해도 안다는 건 오만이었다. 그때 발생하는 힘들에 의해 관계는 비틀리기 마련이다. 일상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주 빗겨가는 순간을 일으켰다. 말하자면 나는 나를 둘러싼 대상에 의해 우연히 변하고 상대에 의해 혼란에 빠지기 쉬웠다. 사람만이 아니라 재봉틀이나 피할기와의 관계도 이와 유사한 것 같다. 이것들은 매순간 나와 다르게 관계를 맺는다. 한동안 재봉틀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부딪히기보다 다른 사람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해왔다. 상황은 반복되었지만 관계의 변화는 느렸다. 손작업도 그랬던 것을 잊고 있었다.             

KakaoTalk_20190513_012016287.jpg        KakaoTalk_20190513_011730307.jpg

 손은 내 몸에 붙어있는 도구지만, 처음부터 작업이 익숙하진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꾸준히 작업했다. 요즘 재봉틀과도 비슷하다. 나는 다시 실을 끼웠고 재봉틀에게 잘해보자고 토닥거리면서, 밑실도 바꿔 끼우고 바지 한 벌을 마무리하였다. 너무 기뻐서 파지사유로 달려가 보는 사람마다 자랑하였다. 바지가 멋져서가 아니라 재봉틀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거칠게 혹은 미세하게 반복해 부딪히면서 나는 바지를 완성했다. 바늘이 부러진 원인을 알기 위해 긴장하고 달래고 살펴가며 맞이한 변화였고 나의 쓸모가 나타난 순간이었다. 꾸준히 함으로써 내가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피할기야, 기다려라.


  미세한 차이의 수없는 반복? 이에 떠오르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주은 여주인공(혜자)의 이야기였다. 결말은 예상과 달랐지만, 초반에 아버지의 죽음을 되돌리기 위해 혜자는 반복해서 시계를 돌렸다. 죽음을 되돌리는 일은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한두 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혜자는 삶과 죽음을 뒤바꾸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하였다. 똑같은 시간에 눈을 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뛰고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고, 다시 뛰고 타고 넘어지고... 혜자는 마침내 아버지의 죽음을 되돌리지만, 다시 살게 된 삶 역시 죽음만큼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결말에 이어지는 혜자의 대사.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그리고 ''였을 그대들에게...              

                                                    

눈이부시게.jpg

                                                                                       <눈이 부시게>

 

   스피노자는 인간의 신체는 본성이 다른 수많은 개체로 합성되기에 동일한 사물에 의해 수많은 방식으로 자극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작업을 시작할 때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가 요즘은 재봉틀과 수시로 만나고 피할기를 힐끗 거린다. 한편에서는 월든에 드나드는 이들과 조금씩 다른 만남을 이루고 있다. 비슷하게 혹은 동일하게 보이는 행위 속에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르게 자극을 주고받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역량 만큼이겠지. 지금 우리에게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혜자의 시계 따위는 없다. 그냥 내가 살아가는 현재가 있을 뿐이다. 거기에 다시 재봉틀 앞에 앉는 또 하나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자! 

댓글 5
  • 2019-05-14 08:11

    저는 베이커리 작업을 하면서 오븐 문을 열고 반죽을 넣기 전에 항상 주문을 외워요.

    도와줘.

    물론 오븐은 정직해서 결코 망가진 반죽을 멋지게 부풀리지도 잘못된 배합을 바로 잡아주지도 않지만요.

    오븐이 180도 이상으로 달궈지고 반죽이 들어가면, 이제 저 반죽과 저는 오븐에 의지해 밀가루의 다음 생을 기대하죠.

    뭐 오븐안에 윤회의 작동원리가 들었다고 해야할까요? ㅎㅎ

    띠우 쌤의 글을 보며 전 오븐을 떠올렸어요.

    멋져요. 사물과 맺는 관계.

    그리고 또 더 멋진건.  아들의 바지를 짓는 엄마이며, 그 바지를 기쁘게 입는 아들의 마음이네요.

  • 2019-05-14 12:24

    맞아요. 도구랑 기계랑 친해지는 마음이 중요한 듯해요.

    띠우샘 글을 보니 뭔가 만들어보고 싶네요.  ^^

  • 2019-05-18 07:49

    그렇군요. ^^

    아직도 도구적 인간이 아니어서...나도 무서운 사물이 많은데....

    용기를 내야겠네요~ 

    어쨌거나 띠우샘도 조만간 1급 재봉사(?)로 거듭나시겠어요~~화이팅!!

  • 2019-05-18 09:10

    능력이 상승된 만큼 기쁨도 늘어나겠네요~ ㅎ

  • 2019-05-19 00:28

    며칠전부터ᆢ 이젠 쓰지도 않는 재봉틀을 팔아버려야지 하며 얼마를 받을까만 고민하고 있었는데ᆢ

    띠우샘 글을 읽으니 내가 쫌 잔인(?)한  느낌이 ᆢ 

    일단 재봉틀과의 관계를 새로 맺을수 있는지 여부부터 다시 고민 해봐야겠어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02
<가능성들> 5,6장 메모 (3)
띠우 | 2023.06.27 | 조회 191
띠우 2023.06.27 191
901
<가능성들>3,4장 메모 (4)
| 2023.06.21 | 조회 220
2023.06.21 220
900
<가능성들>1-2장 후기 (3)
| 2023.06.19 | 조회 180
2023.06.19 180
899
<가능성들> 1,2장 메모 (6)
띠우 | 2023.06.13 | 조회 145
띠우 2023.06.13 145
898
<불쉿잡> 5장~7장 후기 (1)
띠우 | 2023.06.12 | 조회 322
띠우 2023.06.12 322
897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후기 (3)
곰곰 | 2023.06.08 | 조회 148
곰곰 2023.06.08 148
896
<적을수록 풍요롭다> 강좌준비 질문들 (6)
뚜버기 | 2023.06.08 | 조회 154
뚜버기 2023.06.08 154
895
불쉿잡(1장~4장)첫 시간 후기 (5)
달팽이 | 2023.06.05 | 조회 224
달팽이 2023.06.05 224
894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메모 (5)
곰곰 | 2023.06.02 | 조회 128
곰곰 2023.06.02 128
893
<분해의 철학> 5,6장 후기 (3)
| 2023.06.01 | 조회 151
2023.06.01 151
892
<에코프로젝트1 시즌2> 첫번째 메모 올립니다 (5)
띠우 | 2023.05.30 | 조회 240
띠우 2023.05.30 240
891
<분해의 철학> 5,6장 메모 (8)
띠우 | 2023.05.26 | 조회 161
띠우 2023.05.26 16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