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화장품 상식②] 매끈한 얼굴의 근대인

자누리
2019-04-24 23:42
268

[[얄팍한 화장품 상식]은 자누리사업단에서 연중 프로젝트인 화장품 만들어보기-수작(手作)을 위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정말 화장품에 대한 상식은 얄팍하지만 혹시 더 묵직한 사유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포부로 글을 이어갑니다.]

 1. 화장품의 흡수력


자누리사업단은 립밤 선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립밤을 만들어 세미나 동학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 세미나(마을경제세미나)는 노라가 화일을 선물하면서 크고 작은 선물들이 심심찮게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립밤 선물은 그 분위기에 취한 것일 뿐이었는데, 후에 우리도 생산을 하자는 얘기가 오갈 때 천연화장품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선물이 가져온 이런 나비효과가 있는가 하면 높은 진입장벽에 슬퍼했던 선물도 있습니다. 언젠가 잘 사는(?) 친구에게 탄력크림을 선물했더니, 얼굴이 하얗게되는 게 빨리 흡수가 안 되는 것 같다고 싫어하더군요. 일반 화장품은 이 하얀 현상이 잘 일어나지 않으므로 제 선물은 빛을 잃어버린 겁니다. 선물을 마다하게까지 만든 그 현상은 지금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화장품은 피부조직에 필요한 유분과 수분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세포가 자생적으로 알아서 하지만 나이가 들거나 공기가 나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외부에서 보충을 해 줄 필요가 생깁니다. 여기에 세포를 더 튼실하게 하는 기능성 성분들도 넣고, 피부와 균형도 맞추어야 하니 로션이나 크림 형태로 만들게 됩니다. 수작 해보신 분들을 알겠지만 크림 만들 때 여러 물질을 섞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눈에 잘 안보일 정도로 미세한 거품이 생깁니다. 크림이 잘 흡수되지 않고 하얗게 밀리는 현상은 이 거품이 흡수를 방해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현상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피부가 모든 물질을 쑥쑥 통과시켜주면 그게 더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세포막은 폼으로 있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화장품의 흡수력이란 것이 우리 피부와 만나는 방식에 따라 그 때 그 때 다릅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화장품을 써도 컨디션에 따라 빨리 흡수가 안 되는 날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경우 제 손으로 감싸서 체온으로 흡수력을 높여줍니다.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요. 그러나 상품으로 팔려할 때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불안정하면 안 되겠지요. 친구가 아닌 소비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으니,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바르는 순간 쑤욱 흡수되어서 촉촉해 진 사용감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 미세한 거품은 빨리 없애버려야 합니다. 여기에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드는 오일이 있습니다. ‘실리콘 오일인데, 바로 화장품을 상품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입니다. 실리콘 오일은 매우 유연해서 피부에 쫙 퍼지면서 거품들을 터트립니다. 유레카!


2. 실리콘오일


천연화장품에는 보통 실리콘 오일을 쓰지 않습니다. 유해성 논란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기술로 더 안전한 물질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들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실리콘 오일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이 오일은 식물성도 동물성도 아닌, 석유화학의 산물이어서 공급이 안정적일뿐더러 오히려 식물성 오일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측면도 있으니까요(과학의 산물이므로!). 저희도 실리콘 오일을 쓰지 않는데, 유해성 논란 외에도 조금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피부를 너무 매끈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매끈한 게 좋지 않냐고요? 글쎄요. 이 실리콘은 고무 대용으로 쓰이는, 성형 보형물로 쓰이는, 바로 그 실리콘과 성분이 같습니다. 물론 형태는 다르지만, 그만큼 부드럽고 유연해서 피부를 덮어버리면 매끈하고 반들반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작은물방울 얼굴이 너무 매끈거려서, 의심스런 눈초리로 뭐 발랐냐고 묻기도 합니다. 화장품업계가 어떤 유해성 논란에도 이 물질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매끈거리는 얼굴이 근대성의 상징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근대 과학의 발명 이전에도 사람들은 화장품을 사용했습니다. 차이는 신토불이 재료를 쓴다는 것인데, 이것이 근대를 가르는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동백기름, 남미는 호호바오일, 이처럼 자기 주변에서 나는 식물을 이용하는 것과 전 세계 시민이 실리콘 오일을 사용하는 것, 이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아닐까요? 실리콘 오일이 세계를 제패하자 매끈한 얼굴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보편감각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결과 얼굴의 주름을 없애기 위해 어마무지한 공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 먹는 것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주름지는 것을 혐오하는 것 같습니다. 설마하니 매끈한 얼굴을 가지려는 욕망이 정말 사람 본성이기야 하겠습니까? 부모님의 거친 손이나 주름진 얼굴에서 연륜에 대한 존경과 연민을 가졌던 시대도 분명 있었습니다.


거품 제거를 위한 용도에서 매끈한 피부의 효과까지 가는 데는 그리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매끈한 얼굴, 그 똑같은 얼굴을 재생산하는 것을 문명의 효과로 보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래서 다른 생각, 다른 가치를 추구하자는 생각이 실리콘 오일을 사용하지 않은 동기 중 하나입니다. 앞서 말한 탄력크림 선물을 마다한 친구와 달리, 립밤을 만들던 친구들은 얼굴이 하얗게 되던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화장품 자체에 관심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얼굴은 매끈합니다. 언젠가 문탁이 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여남은 명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실렸는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저는 사진 속의 피부만 보이더군요. 나이에 맞지 않게 주름이 없는 얼굴들에 속으로 뿌듯했습니다.

 

*처음 실리콘 오일 사용의 자제를 검토한다는 정책이 독일 정부에서 나왔을 때, 그 이유는 분해되지 않으면 물이나 흙에 쌓여 생태계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논란은 주로 사람에게 유해한가, 무해한가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랬다고 합니다. 또 하나 이런 논란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유해할지도 모르는 물질을 인간에게 실험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생체실험에 쓰이는 동물들은 어떻게 할까요? 물론 방부제도 필요하고 임상실험도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필요한, 그 방법에 대한 사유는 부재합니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는 길어질 것 같아서 다음 회에 더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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