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화장품 상식③] 방부제 미모? 큰 일 날 소리!

자누리
2019-04-24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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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화장품 상식]은 자누리사업단에서 연중 프로젝트인 화장품 만들어보기-수작(手作)을 위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정말 화장품에 대한 상식은 얄팍하지만 혹시 더 묵직한 사유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포부로 글을 이어갑니다.]


1. 방부제, 필요악?


가끔 연예기사를 보다 보면 이런 제목이 보입니다. “000 변함없는 방부제 미모그런 기사에 저는 화들짝 놀랍니다. 방부제는 그렇게 좋은 것만도, 만만한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부패할 것은 부패하고, 시들 것은 시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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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오일만큼 논란이 많은 물질이 방부제입니다. 얼마 전 대표 방부제인 '파라벤'을 퇴출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보듯이 방부제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는 방부제는 주로 유기화합물을 합성해서 만든 합성방부제입니다(일단 저희는 천연물질 기반의 방부제를 씁니다). 이것이 뜨거운 감자라 한 이유는 오랫동안 논란 속에서 개선되고 검증되었으므로 합성방부제가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의견도 만만찮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예전에 어떤 농학박사에게서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농약은 다른 어떤 살충제보다 안전하다고 말하더군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누구에게 안전한가, 누구에게 무해한가라는 질문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개운치가 않습니다. 유해성 여부는 그 만남이 서로에게 적합한가에 달려있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물질도 그 자체로 악한 것이 없고, 모두 그 존재 이유가 있다면, 해로움은 만나는 결합의 비율, 속도의 문제일 겁니다. 쎈 펀치와 약한 펀치가 만나면 약한 펀치의 손가락이 부러지는 거고, 쎈 펀치가 늙어서 약해지면 그 손가락도 부러질 수 있는 것처럼, 예전에는 안전했지만 그 양이 많아져서 해로울 수도 있고, 인간에게는 안전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논란의 초점이 오직 인간에게 맞추어 지는 것은 여러가지로 마음이 불편합니다.

실리콘 오일도 그렇고 합성방부제도 그렇고 최대한 인간에게는 피해를 안 끼칠 수도 있다고 치더라도 그 나머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비인간들, 또는 뒤 시간을 따라올 모든 것들이 최소한 우리와 같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지금도 좋지는 않은데, 이보다 더 나쁜 만남들이 속출하면 어떻게 하지요? 여기에는 핵과 같은 거대 규모의 문제계가 있는가 하면 세균과 같은 아주 작은 크기의 문제계도 있습니다. 방부제는 후자와 관련되겠지요.

 

2. 세균과 미생물


방부제 이야기를 하려면 주인공인 세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방부제의 유해성을 설명하는 글 중에는 세균도 사람 피부도 모두 세포인데 세균을 죽일 정도면 사람 세포를 안 죽일 리가 없다고 하는 내용을 봤습니다. 그러나 방부제도 종류가 있어서 모두 세균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화장품이나 식품에 들어가는 방부제는 살균제와 달리 세균의 증식을 억제할 뿐입니다. 그리고 세균이라고 모두 세포를 파괴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세계에도 아주 많은 종들이 살고 있고, 아주 다양한 만남을 연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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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이라는 말도 썩 좋은 용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무찌르자 세균들’ 처럼 창 들고 서있는 세균 이미지가 널리 퍼져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생물, ‘미생물이 더 부르기 좋은데, 실제 처음에는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근대 초까지도 한여름 부엌에서 음식물이 썩다가 나중에는 물처럼 흐느적 거리는 현상은 그냥 당연한 거였습니다. 지금은 살림을 잘 못했다거나 게으름의 소치라고 생각해서 부끄러워할 일이 되었지만요. 여기에 과학적 분석이 행해지면서 화학자들은 화학작용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생물학자들이 사실은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무생물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생물이라고 하자 분위기는 급변합니다. 옆집 사람과도 어느 날 싸우기도 하는데, 저 작은 생물이 싸우자고 덤비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거기에 위생의 시대를 거치면서 미생물은 퇴치해야할 적으로 굳어졌습니다. 세균이라는 이름도 그 때 붙여졌습니다. 사실 미생물은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거처할 안전한 공간을 생물 몸 속에서 만들 뿐이고, 시간이 걸리지만 인간들과도 사이좋게 사는 미생물도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세균이라고 싸잡아서 부르고, 무찔러야 할 대상으로만 여깁니다. , 파스퇴르균과 발효균은 빼고요.

3. 썩지 않는 것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과학자들이 호들갑만 떨지 않았더라면 부엌에서 썩어가는 것을 보아도 세상 끝날 것 같은 아득함을 느끼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콜레라가 창궐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을 앞에 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럼에도 미생물이 세균으로 둔갑한 이유에 대해, 그들과 인간의 만남에 대한 근본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작과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형편없는 환경에서 살아갈 때 어쩌면 그들도 세균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자본가, 지주, 정치인, 지식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요. 이주민들을 따라 온 미생물들이 새로 만난 환경에서 적응하는데 사투를 벌일 때, 도시로 내몰린 근대인들도 그렇게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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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투 속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사유가 있습니다. 바로 세균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 썩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유입니다. 실리콘 오일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잘 썩지 않는다는 성질이었습니다. 예전에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세미나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바로 그 썩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문명이 천연에서 발견한 위대한 썩지 않는 것이 바로 화폐라는 것이지요. 화폐가 그러하듯 썩지 않는 것은 세계를 돌아다니고, 매끄러운, 동일성의 세계를 사유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근대 문명은 썩지 않게 하는 기술의 발명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왔고 어떤 면에서는 자부심이었습니다. 냉장고, 화학방부제 덕분에 이젠 여름이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중심주의가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방식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썩어야 할 것이 썩지 않고, 그 만남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자본주의, 상품이라는 보편성의 세계 만큼은 나가는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마을경제와 메티스

 

참 알 수가 없다. 한 날 한시에 태어난 탄력크림인데도 저 놈 하나만 곰팡이가 생겼다. 이럴 때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똑같다고 생각한 출생환경이 어디가 달랐을까? 그걸 도로 들고 온 친구도 난감해 한다. 크림을 찍어 바르던 그 손가락이 문제였을거라고 농담을 던지고 새 것을 주었다. 찬찬히 보니 윗부분에서도 병과 붙어 있는 곳에만 곰팡이가 있다. 이걸 통째로 버리기에는 아까와 거기만 걷어내고 써보기로 맘먹었다. 내 얼굴은 두꺼우니까 별 탈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 쓸 때까지도 별 탈 없었다.”


이건 제 경험담입니다. 천연화장품도 방부제를 씁니다. 다만 합성방부제를 안 쓰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으로, 저는 방부제 미모가 아니라 곰팡이를 어떻게 생각할까가 더 고민입니다. 곰팡이와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만일 다르게 사유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어떤 구조, 네트워크, 또는 집합체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마을경제라 부르고, 그런 기술을 메티스라 부르며, 마을경제 몇 년의 경험으로 생각을 많이 바꾼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또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댓글 1
  • 2019-04-27 07:39

    미생물과도 함께 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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