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주에 대한 주자의 설說

고은
2019-03-2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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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양생주>에 관한 주자(송대 유학자)의 설說입니다. 장자를 입체적으로 읽으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공유합니다.
(...) 노장의 학술은 의리의 당부는 따지지 않고 단지 그 사이에 의지하여 자기 몸을 온전히 보전하고 재앙을 피할 생각만 한다. 
(...) 선을 행하되 명예에 가까이 가지 않게 하라는 말은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성현의 도리는 단지 사람들에게 힘써 선을 실천하게 가르칠 뿐 처음부터 명예를 구하라고 가르치지 않을뿐더러 명예를 피하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학문을 하면서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위기지학(자기를 위한 학문-유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이 아니므로 말할 것도 없다. 
(...) 악을 저지르더라도 형벌에 걸리지 않게 하라는 말은 더욱 도리에 어긋난다. 군자가 악취를 싫어하는 것처럼 악을 미워하는 것은 두려워함이 있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만약 형벌을 범하지 않는 것은 몰래 저지르고 형벌에 걸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자취를 교묘하게 피해서 감히 범하지 않는다면 사사로운 이익만 계산하는 것이니 도리를 해침이 더욱 심하다. 
(...) 장자의 뜻은 의리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이해만 헤어린 것이다.

장자가 생각하기에 유가는 의리를 너무 따지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게 목숨까지 잃게 만든다고, 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냐고 묻는 것입니다. 주자가 보기에 장자는 유가적 성현의 말을 오독하고 있으며, 자기 목숨만 챙기기 급급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이번에 명식이 썼던 [보릿고개 프로젝트](많이 읽어주세요ㅎㅎ)의 체게바라는 전형적인 의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장렬한 죽음이야말로 유가적인 죽음이 아닐까요? 장자만 읽어서는 당연히 생사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 처럼 보이겠지만.. 의리와 생사의 문제는 꼭 옳고 그름을 나누기가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번 <장자>시간에 유가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이 제기되었던 터라, 양쪽 입장을 모두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하여서 공유해봤습니다. <장자>에서 주장하는 바를 도가적 인물들이 모두 그렇게 살아내지 못했듯이, 이를테면 <논어>에서 주장하는 바를 유가적인 인물들이 모두 그렇게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장자>에서 비판하는 유가를 유가 사상의 진면모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진면모가 뭐냐... 실제와 재현이 따로있냐... 할 수 있지만..ㅋㅋ 여하튼 유가에 다른 모습도 있다는 말입니다. 
장자를 이제 막 공부해가고 있는 시점이라 아직 이렇다 저렇다 할만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지만,... 장자와 유가가 그렇게 다른지도 찬찬히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학자 한유는 공자-자하-전자방-장자로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주자는 장자가 유가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천도>편에 나오는 '도를 말하면서 도를 터득하는 차례를 말하지 않으면 도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대단히 훌륭한 논의로 아무래도 공문의 문도와 접촉하여 전수받은 유래가 있는 것 같다." "장자가 누구에게서 전수 받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도체道體를 알았던 인물일 뿐 아니라 맹자 이후 순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모두 장자에 미치지 못한다." 
근데 또 주자는 장자의 주석들이 전부 형편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주를 다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말했다니, 유가와 장자의 먼듯하면서도 가까운듯, 가까운듯하면서도 먼 거리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작년 고전대중지성에서는 세미나원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책(세네카의 책)을 읽다가, 올해 강학원에선 불교, 들뢰즈와 연결시키며 호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책을 읽다보니... 뭐랄까 요상한 온도 차이가 느껴지네요..ㅋㅋ 장자의 이야기들이 '띠용' 할만큼 매력적이고 재미있지만, 여러 면을 함께 보면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싶어 빈약한 자료 한 번 공유해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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