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고원 2장 후기

오영
2019-03-08 23:52
334

지난 주 첫 시간, 서론 : 리좀에 이어 2장에서도 온갖 개념들이 쏟아졌다.



다만 메이저 장에 해당하는 1 장에서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대결하고자 대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개념들이 쏟아지는 바람에 혼란스럽고 모호했다면, 2장에서는 프로이트가 그들이 비판하는 대상임이 명확했으므로 이해하기가 조금 더 쉬웠다고 할 수도 있다. 여전히 온갖 개념들이 펼쳐지고 있지만 다양체들의 다양체라는 개념에 무게 중심을 두고 여타 관련 개념들의 강약과 속도를 친절하게조절하며 다소 말랑하게 변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목에 담긴 1914년은 프로이트가 처음 <늑대 인간>이라고 불린 환자의 치료를 마친 후, 그에 관한 논문을 쓰기 시작한 해를 의미했다. 발제를 맡겠다고 나서면서, ‘늑대가 과연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지가무척 궁금하다는 말을 했는데 실은 이 제목 때문에 청년 시절 겪었던 내 안에 있는 너무나도 많은 나들로 인한 분열증적 혼돈과 갈등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것들이 모두 무능하고 미숙하며 결핍됨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프로이트는 전부 틀리고 들뢰즈와 가타리는 모두 맞다 라거나, 또는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틀렸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알려주는 권위자들 앞 소파에 기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앞에 있는 권위자들의 이름만 바뀔 뿐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들뢰즈와 가타리, 장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 늑대는 하나인가 여럿인가?





 








a. 하나다 b. 여럿이다 c. 하나도 아니고 여럿도 아니다 d. 하나이면서 여럿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처럼 객관식으로 제시한다면 각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각자 선택한 답과 그 답을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혹은 댓글로 달아본다면 ^^) 재미있을 것 같다. 오늘 세미나 중에 못 다한 이야기들이 매우 다양하게 펼쳐질 것만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도식적인 질문과 답이 재생산되는 구조와 그 도식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구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책을 통해 말하려는 것을 읽어내려고 할 때는 모호하게나마,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어떤 강렬함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전하고 소통하려고 할 때는 각자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과 언표로 담아내려고 애쓰다 보니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공유했는지 다소 헷갈릴 때가 있다. 실은 세미나는 그 답답함과 모호함을 정면으로 부딪치며 한편으로는 해소해가는 것일 텐데 다른 한편에서는 또 여전히 말로 전해지지 않은 것들이 조금씩 남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세미나는 계속 흥미진진하게 to be continued... 일 것 같다.














2. 다양체들의 다양체





 








세미나 중에 주로 질문이 이어진 개념들은 다양체들, 군중-다양체와 무리-다양체들, 기관 없는 몸체와 영점, 브라운 운동 등이었다.





우선, 가장 먼저 다양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그러고 보니 2장이 말하는 것이 모두 다양체들의 다양체들에 대해서인데 다양체는 ~이다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뭔가 있긴 한데, 그리고 그것의 강렬함을 표현하기 위해 들뢰즈와 가타리가 쉴 새 없이 쏟아낸 이야기들을 주워 담느라고 애를 쓰긴 썼는데 정작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고 남는 것은 별로 없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느낌적인 느낌으로 말해보자면, 무엇의, 누구의 라는 단서가 붙지 않은 생명 그 자체가 있다.



그리고 생명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생동하고 북적거린다. 하나의 유기체를 구성하는 질서정연한 움직임과는 다른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잠재성을 지닌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그 흐름이, 그 북적거림이 벌어지는 서식지, 거주지는 있어야 한다.



그 조차 없다면 우리가 지각하는 가시적인 세계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근원, 토대, 기원과 같은 무엇은 아니다.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온갖 것들이 숨어들어 있는 사막과 같은 서식지라고 표현한다. 유기체의 기관들이 지닌 특정 역할이나 기능을 부여받지 않은, 그래서 기관 없는 몸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그 몸체는 규정된 형태가 없으므로 모래 바람이 불 때 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습이 달라지는 사막처럼, 이정표도 구획도 없다. 그래서 영점이다.








나라는 개체도 그러하다. 인간이라고 규정된 토대, 근거 없이 몸체 위를 횡단하는 욕망들, 동사들만이 우글거린다.



라는 개체가 먼저 있어 욕망하고 먹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다양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유동하는 흐름 속, 어떤 배치의 순간



만들어내는 강렬함으로 감지되는 차이로서의 나, 다양체로서의 개체가 있다. 이 개체의 강렬함은 그 요소들의 거리와 운동에 따라 다른 차이(즉자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흐름 중에 있는 다양체들은 다른 다양체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 역시 매번 차이를 만든다. 운동 중인 차이들을 어느 순간, 정지된 화면 처럼 포착해낸다면 아마도 그때 우리는 흐름 중에 잘린 단면으로서 군중-다양체로부터 미시-다양체라는 경향성 속에서 무수히 많은 변주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포착한 순간이 군중 속의 무리나 무리 속의 군중으로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





 






대강 이런 요점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보충해주시길...


 








단체 카톡방에 지원이 올려준 브라운 운동짤 덕분에 무리의 다양체가 지닌 생동감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는데 옛날에 프로이트 전집을 읽는 엄마 곁에서 야한 소설집을 읽는 것과 같은 재미로 함께 읽은 기억이 난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또한 감이 잘 안잡히던 프로이트 정신분석 과정을 1 년간 경험했다는 타라샘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샘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사주명리나 타로처럼 뭔가 자신을 이해하려는 하나의 시도,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이 여전히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 








다음 주에는 문탁샘의 일정 상 장자 세미나 없이 Only 들뢰즈만 읽는다. 





 ‘부득이한 결정이었으나 덕분에 9시 반이 아닌, 10시부터 세미나를 시작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모두가 해피해졌다.





다만 다음 주에는 <천의 고원> 중 가장 어렵고 난해하다는 명성을 떨치는 세 번째 고원 < 도덕의 지질학>을,



뿔옹샘과 타라샘의 발제로 읽는다.





과연 우리는 이 첫 번째 난관을 자~알 넘길 수 있을 지 궁금해진다.  





이번 주에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발제 순서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일종의 선험적 예견 방지 시스템이 작동했던 모양이다.



사후적인 해석이긴 해도 가장 난이도 높은 장의 발제를 피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난 즐거운데  





다행히 평소 모험과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뿔옹샘과 타라샘이 흔쾌히 발제를 맡아 주었다. 


다음 주 금요일 10시 3 장 꼼꼼히 읽고 옵니다~





 

댓글 3
  • 2019-03-09 22:35

    음....2고원이 좀 더 괜찮았다는 분들이 꽤 있네요.

    제 경우에는 1고원인 '리좀' 편이 좀 더 활기찼던것 같아요. 

    개념이 우수수 쏟아졌지만 말입니다.

    처음에 2고원이 잘 읽히지 않았었는데, 프로이트의 <늑대인간>을 읽고 나니 

    들뢰즈/가타리가 프로이트의 어떤 점을 조롱했는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조롱이 좀 심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거의 모든 고백과 이야기들은 오로지 하나의 깔대기(오이디푸스)로 쓸어담고 있는 

    상담기록들을 보면 좀 으스스한 생각도 들기도 했습니다.

    다음편이 어렵다고 하니, 맘이 편하기도 하고,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고. ㅎㅎ

  • 2019-03-11 17:56

    04.jpg05.jpg06.jpg
    .

  • 2019-03-1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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