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고원 첫 번째 세미나 후기 - <서론 : 리좀>

명식
2019-03-04 10:46
262

 

  글쓰기 강학원, 들뢰즈 세미나 첫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우선 세미나를 시작하기 전에 처음 읽어본 천의 고원, 그 중에서도 <서론 : 리좀>이 어떻게 다가왔는가에 대한 감상을 공유했습니다.

 

  우선 뿔옹샘은 지도/모사라는 개념과 매끄러운 공간 개념의 효용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셨구요. 고은은 <리좀> 파트가 책 전체의 읽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일종의 매뉴얼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감상을 말해주었습니다. 한편 라라샘과 마음샘은 천의 고원이 전반적으로 많은 배경지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주셨어요. 오영샘은 들뢰즈가 전반적으로 특정한 비판적 대상을 상정하고 전개해나가는 것 같다고 하셨구요. 또 지원은 현실의 사건들에서 리좀이 어떤 부분들을 점유하고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소영샘은 저항적이고 일탈적인 모든 것들을 리좀 개념으로 수렴하면 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지셨습니다.

 

 

 

  저는 타라샘의 감상이 인상 깊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디선가 리좀이란 개념을 접한 것 같아 기억을 되짚었더니, 2000년 즈음 대학에서 수직적인 학생회의 방향성을 비판하면서 리좀적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문건을 접한 기억이 있다고 하셨었지요. 또 일전에 공부하신 불교의 연기 개념이 리좀을 설명해주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구요. 개인적으로는 들뢰즈의 텍스트를 읽을 때에는 그러한 방식이 실제로 도움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자기의 맥락과 연결해보기.

 

  「책에는 주체도 대상도 없으며,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배치이자 다양체로 여겨야 한다. 다시 말하여 끊임없는 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는 장이자, 생각의 흐름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복합체로 생각해야 한다. 어떤 흐름을 잡아내어 또 다른 어떤 외부의 흐름과 이어내느냐에 따라 동일한 책도 전혀 다른 책이 된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묻지 말아야 하며, 책 속에서 이해해야 할 그 어떤 것도 찾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물어봐야 한다. 책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지, 책이 무엇과 연결접속 되었을 때 강렬함을 통과시키거나 가로막는지()” (13)」(발제문)

 

  새로운 선들과의 접속, 그를 통해 매번 다르게 되는 책. 책에 대한 들뢰즈의 이런 문제제기는 우리가 함께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하여 우리는 함께 책을 읽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말만을 하게 되어서도 안 되는……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한편 라라샘은 수목적 유형의 책’, ‘수염뿌리 유형의 책’, ‘리좀적 유형의 책이란 표현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셨는데요. <들뢰즈는 분명 접속에 따라 다양할 수 있는 책을 말했음에도, 한편으로는 왜 유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책들에게 어떤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 하는가. 또한 그러한 유형에 따른 구분 자체가 임의적인 게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였던 것 같아요.

 

  「첫째는 뿌리 유형의 책(수목壽木적 책)이다. 그것은 강력한 통일성을 가진 중심 뿌리와 그로부터 갈라져 내린 곁뿌리들로 구성되며, 모든 곁뿌리들은 결국 중심 뿌리라는 일자一者로 귀속되는 고전적인 형태이다. 모든 것이 하나의 중심으로 귀결되고 그 중심을 통하여 단일한 전체 - 유기적인 통일체가 된다.

두 번째는 어린뿌리 혹은 수염뿌리 유형의 책이다. 이것은 뿌리 유형의 책보다 파편적이고 다양한 형태, 보다 곁뿌리적 형태로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곁뿌리를 아우르는 총체적 통일성을 부여받는 책 혹은 책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땅밑줄기, 리좀적 유형의 책이다. 구근과 덩이줄기의 책. 일자적 중심뿌리가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잔뿌리들의 그물망으로 존재하는 책.

 

  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토론이 있었는데, 대략적으로 결론을 정리해보자면 들뢰즈의 그러한 구분은 책들에 어떤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하여 분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또한 앞으로 천의 고원을 보면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정리를 했던 것 같아요.

 

 

 

  뿔옹샘이 제기하셨던 지도-사본의 개념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습니다. 완벽한 재편, 카피가 아닌 경로를 지시하는 것으로서의 지도. 그럼으로써 무엇이 더해지는가에 열려있는 지도.

 

  「그것(리좀)은 사본이 아니라 지도이다. (...) 지도는 열려 있다. 지도는 모든 차원 안에서 연결 접속될 수 있다.”(30) 간단하게 말해 지도는 길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길이기도 하고, 보다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길 - 예를 들어 내 생각이나 행동이 나아갈 방향성으로서의 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는 무언가를 완벽하게 모사하고 재현할 필요가 없다. 지도는 그 모든 것의 재현일 필요 없이 오직 생각과 행동과 삶의 경로만을 담고 있으면 된다. 그 생각과 행동과 삶에 무엇이 필요한가에 따라 지도에 들어가는 것도 달라지며 그런 의미에서 지도는 선들의 접속으로 구성되는 리좀이다.

 

  하지만 동시에, 열려있던 지도가 사본에 맞춰 뜯어고쳐지는 경우도 분명 존재함을, 그렇기에 지도-사본, 리좀-나무가 완벽하게 괴리되어 있는 것이 아님도 분명히 했습니다. 리좀 안에는 나무 구조나 뿌리 구조가 있다. 하지만 역으로 나무의 가지나 뿌리의 갈래가 리좀으로 발아할 수도 있다.”(34) 그렇기에 리좀은 중간의 사유인 것이겠지요.

 



  이 외에도 n-1이나 프로이트의 예시 같은 부분들에 대해서도 함께 궁금증을 해결하였고, 문탁샘은 무엇보다도 리좀은 다양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넘어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첫 시간 <서론 : 리좀>이 끝났습니다. 겁먹었던 것에 비하여 생각보다는 부분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많아 이야기도 꽤 활기찼고, 그러다보니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조금 짧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계속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그런 부분들은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1914-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고원 전체를 다루며, 발제는 오영 선생님입니다! 다음 시간에도 계속 이런 분위기로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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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2019-03-04 15:34

    어떻게 이렇게 꼼꼼한 후기를 쓸 수 있는 것인지. 놀랍네요. ^^

    저한테 들뢰즈/가타리가 열어주는 리좀의 세상은 해방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데,

    매끈한 평면이 어떻게 해방이 될 수 있는지 질문 삼아서 고민해보고 싶네요.

    그리고 우리 세미나 구성원들이 다양체, 기관없는신체로서 변용될지 궁금하고 기대되네요. ㅎ

  • 2019-03-07 15:58

    시간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기는 박진감도 재밌는 것 같아요.

    들뢰즈 세미나 시간은 타이트한 느낌이었는데요, 오히려 타이트해서 쫄깃한 맛이 있었달까요..

    아무래도 책이 좀 추상적이다보니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걱정할 필요 없었네요.

    다들 할 이야기가 많아보이셨어요. 하지만 책이 어렵다보니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오가지는 못했는데요.

    그래서 저는 한시간반이 꽤나 적당한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이야기가 사변적으로 가지 않고, 필요한 이야기들만 딱딱 찝어서 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세미나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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