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강학원> 7회차 -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 후기

명식
2020-05-12 13:45
651

  길드다 강학원 S1의 일곱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 그 중에서도 절반인 1부를 읽었는데요. 우선 지난주에 영화 <사울의 아들>을 함께 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영화의 장면 장면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고, 그것이 실제 독해에 시너지를 일으켜주어 좋았어요.

 

  발제는 영 씨가 1부의 전반부를, 제가 후반부를 맡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도 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요. 그 중에서 제가 특히 인상 깊게 느꼈던 화제는 두 가지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이미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 다른 하나는 ‘무릅쓴다는 것 - 그럼에도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이었습니다.

 

 

  먼저 ‘이미지란 무엇인가’인데요. 이것은 사실 제일 첫 번째 책이었던 히토 슈타이얼의 『진실의 색』에서도 나왔던 이야기긴 했습니다. 그 때는 ‘다큐멘터리적 이미지’라는 개념을 다루면서 나온 이야기였죠. 아마도 히토슈타이얼과 위베르만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미지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미지’란 개념이 헷갈리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토론도 그에 대해서 이루어졌고요.

 

  이들이 말하는 ‘이미지’는 주로 시각적인 것인가? 저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우슈비츠가 단테적(『신곡』) 지옥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고 할 때, 그것은 비단 시각적인 것 뿐 아니라 오랜 시간 서구에 축적되어 온 지옥에 대한 담론, 상像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한 상의 형성에는 시각적인 부분 외의 것도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고은이나 다른 분들이 지적했듯이 적어도 위베르만의 논의 속에서는 이미지가 갖는 시각적인 속성이 두드러집니다. 그 네 장의 ‘사진’이 있음으로써 어떤 효과가 발생했는가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는 결국 무엇일까. 무엇이라고 풀어 쓸 수 있을까. ‘상’? ‘그려지는 것’? 시각적이 아닌 것을 포함하더라도 ‘그려지는 것’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가령 ‘인간의 이미지’가 그려내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꼭 인간이란 종의 외형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뭘까요. ‘인간미’ 넘치는 언행들? 그 언행들도 결국 시각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누군가를 안아주는 모습이나,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처럼? 이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선은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까지 끝까지 읽어보고, 더 찬찬히 생각하고, 어쩌면 이것으로 에세이를 쓸 수도 있겠지요.

 

 

  다른 하나는 ‘무릅쓴다는 것 - 그럼에도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이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럼으로써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만일 상상하기를 포기한다면, 그리하여 어떤 존재를 감히 말로 표현할 수도,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 신, 신성한 번제물, ‘홀로코스트’ - 만들어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우리로부터 영영 멀어져 실종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세상의 다른 잔혹한 학살들과 쇼어를 비교하는 걸 거부하는(“감히 그것을 쇼어에 비교하다니!”) 몇몇 시온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감히 말해질 수 없는 것. 그럼으로써 그들은 쇼어의 기억과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비교하길 거부합니다. 또한 저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기억을 다룬 만화 『쥐』에서 주인공 블라덱 슈피겔만이, 역사상 가장 잔혹하다 말해지는 인종청소에서 살아남은 그 주인공이 아무렇지도 않게 흑인을 멸시하던 장면을 떠올립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냐고 분노하는 며느리에게 그도 말했죠. 흑인은 유태인에 비교될 수 없다고.

 

 

  인간의 상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 이미 접해온 것을 토대로 행해집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그것을 연결시키는 행위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가 언젠가 보고 느꼈던 것을 토대로, 어떻게든 그것들을 가지고 다른 무언가와 접속하려는 노력입니다. 저는 위베르만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그럼에도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어떻게 접속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규혜가 지적한 ‘윤리’의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의 2부에서는 그 문제를 포함해 보다 폭넓게 이에 대해 다룬다고 하니, 다음 시간에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댓글 2
  • 2020-05-12 15:45

    후기 잘 읽었어요. 연결과 접속이라는 단어가 참 중요한 지점을 이야기해준다고 느껴져요.

  • 2020-05-12 22:03

    빠른 후기 감사합니다.

    저는 이미지와 상상을 연결시켜서 생각했어요. 키틀러적 의미에서의 '영화적(이미지적)-상상'. 단순화하자면, 우리는 어떤 상상을 할 때 그것을 '이미지적'으로 상상하잖아요.
    키틀러를 따르자면 그건 아마도 1800년대의 사진, 그리고 1900년대의 보편화된 영화가 이루어낸 우리의 인식적 틀/ 혹은 조건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기에 위베르만은 언어와 이미지간의 상호작용(고은이 지적했듯 어쩌면 이미지에 더 큰 힘을)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죠.
    이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영화가 시작하기 전, 혹은 끝나고 난 뒤의 검정색 화면(블랙-박스)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영화적 인식의 세계에서 어둠을 그대로 어둠으로 남겨두는 것은, 어쩌면 인식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이때 '모든 것을 무릅쓴 네 장의 사진(이미지)'은 말 그대로 이미지의 부재로 인해 시작할 수 없었던 우리의 상상-어둠의 침묵을 깨는 일종의 경종이 되고,
    나아가 상상 할 수 없음의 알리바이를 무효화하며 우리를 상상으로 밀고 가는 물리적 힘으로 작용한다고.
    영화적 상상이란 근본적으로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빈-공간을 채우는 일입니다. 그것은 물론 조작이지만, 또한 해석이고, 달리 어둠에 대한 저항(진실-투쟁)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오히려 위베르만이 제시하는 몇가지 '크롭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얼핏 모든 가능한 해석 중의 하나인 것 같지만, 사실은 위베르만이
    '게으름'이라고 말하는 상상의 부재, 해석 없는 조작이 아닐까요)

    맞아요. "상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 이미 접해온 것을 토대로 행해집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그것을 연결시키는 행위입니다."
    빈-공간을 나의 '토대'를 가지고 메우고자-접속코자 하는 것. 그리하여 현실을 생산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그것이 상상이고, 또한 '이미지적' 상상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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