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예술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동은       1. 거북이를 좋아하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     나는 거북이를 좋아한다. 아마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는 동물이 있어?” 그 질문에 답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동물 중에서도 거북이를 좀 더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누군가는 거북이를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의 거북목으로 세세하게 분류하면서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어떤 종류와 부위,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줄줄 외우며 익히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에는 그냥 푹 빠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정신 차리니 좋아하는걸 깨닫고 그 이후에 이유를 찾게 되는 식이다. 내가 깨달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북이의 등껍질의 지문같은 주름들, 매끈하면서도 나른한 눈의 모양, 꾹 다문 입의 곡선, 다양한 형태의 발톱과 느릿한 걸음걸이, 혹은 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헤엄치는 몸짓같은 것들… 더더더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북이 미쳐있다거나 거북이를 위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한다고만 생각해달라. (한때 평생 남미의 거북이 봉사자로 사는 걸 꿈꾸기도했지만…….)     혹시 첫 글에서 비 우雨로 시작했던 첫 수업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말들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첫 수업때의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링크) 나는 긴장하면 오류난 기계처럼 굳어버리고 마는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갈수록 긴장은 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첫 시간이니 인사와 함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동은       1. 거북이를 좋아하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     나는 거북이를 좋아한다. 아마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는 동물이 있어?” 그 질문에 답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동물 중에서도 거북이를 좀 더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누군가는 거북이를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의 거북목으로 세세하게 분류하면서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어떤 종류와 부위,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줄줄 외우며 익히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에는 그냥 푹 빠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정신 차리니 좋아하는걸 깨닫고 그 이후에 이유를 찾게 되는 식이다. 내가 깨달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북이의 등껍질의 지문같은 주름들, 매끈하면서도 나른한 눈의 모양, 꾹 다문 입의 곡선, 다양한 형태의 발톱과 느릿한 걸음걸이, 혹은 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헤엄치는 몸짓같은 것들… 더더더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북이 미쳐있다거나 거북이를 위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한다고만 생각해달라. (한때 평생 남미의 거북이 봉사자로 사는 걸 꿈꾸기도했지만…….)     혹시 첫 글에서 비 우雨로 시작했던 첫 수업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말들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첫 수업때의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링크) 나는 긴장하면 오류난 기계처럼 굳어버리고 마는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갈수록 긴장은 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첫 시간이니 인사와 함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동은 2023.09.21 |
조회 495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요요 2023.09.20 |
조회 42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치매 이후에도 삶이 있다 『내가 알던 그 사람』(2018), 웬디 미첼       지난번 1234에서 ‘유쾌한 치매관계를 위한 상상력 한 자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상상력 한 자밤을 얻어 볼까 하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을 골랐다. 저자 웬디 미첼은 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년간 근무하던 중이었다. 이혼 후 청소부를 하며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우다가 이직을 하고, 뛰어난 기억력과 일처리 능력 덕분에 간호사의 근무일정을 작성하는 복잡한 업무처리 팀의 노련한 팀장이 되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58세에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웬디.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치매 이전의 자신을 말한다. 85세가 아니고 58세라니! 엄마의 상상의 세계만이 문제가 아닐 듯하다.                                                         감정의 책꽂이를 채우다   웬디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의사가 ‘알츠하이머’와 ‘치매’라는 두 단어를 말하는 순간은 그냥 멍하다. 치매진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아는 인생을 훔쳐갈 단어. 치매는 이렇게 ‘들이닥치고’ 그 이유조차 모른다. ‘거대한 시꺼먼 블랙 홀’, 완전히 백지상태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 자신이 없었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머릿속이 목화솜이 반쯤 차 있는 것처럼 뿌예지고, 조깅을 하다가 이유 없이 넘어지고, 포크를 떨어뜨리고, 생각한 것만큼 말할 수 없고, 밑도 끝도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치매 이후에도 삶이 있다 『내가 알던 그 사람』(2018), 웬디 미첼       지난번 1234에서 ‘유쾌한 치매관계를 위한 상상력 한 자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상상력 한 자밤을 얻어 볼까 하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을 골랐다. 저자 웬디 미첼은 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년간 근무하던 중이었다. 이혼 후 청소부를 하며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우다가 이직을 하고, 뛰어난 기억력과 일처리 능력 덕분에 간호사의 근무일정을 작성하는 복잡한 업무처리 팀의 노련한 팀장이 되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58세에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웬디.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치매 이전의 자신을 말한다. 85세가 아니고 58세라니! 엄마의 상상의 세계만이 문제가 아닐 듯하다.                                                         감정의 책꽂이를 채우다   웬디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의사가 ‘알츠하이머’와 ‘치매’라는 두 단어를 말하는 순간은 그냥 멍하다. 치매진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아는 인생을 훔쳐갈 단어. 치매는 이렇게 ‘들이닥치고’ 그 이유조차 모른다. ‘거대한 시꺼먼 블랙 홀’, 완전히 백지상태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 자신이 없었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머릿속이 목화솜이 반쯤 차 있는 것처럼 뿌예지고, 조깅을 하다가 이유 없이 넘어지고, 포크를 떨어뜨리고, 생각한 것만큼 말할 수 없고, 밑도 끝도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인디언 2023.09.18 |
조회 404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2023), 이주희     감정사회학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왔던 현타는 ‘지금 내 감정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은 자발적이고 은밀한 나만의 본질같은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연출된다는 것.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바로 그런 ‘감정’과 ‘구조’의 은밀한 콜라보에 ‘차별’이라는 다소 버거운 주제를 함께 이야기 한다.         처음엔 ‘차별’이라는 주제에 오히려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차별받으며 혹은 차별하며 살아온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이내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차별이 식상한 주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이미 ‘차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받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혹은 식상하다는 이 느낌은 아마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더뎌지고 희미해지고 무산되는 과정에서 번번이 느꼈던 익숙한 실망감이거나, 그도 아니면 너무 어마한 주제에 대한 무기력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마디로 언급하기엔 좀 불가능하지만 ‘감정’, ‘구조’, ‘차별’ 이라는 어마무시한 삼총사를 1234를 통해 ‘아무튼’ 만나 보았다.     차별은 ‘구조’와 맞물려 있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차별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성향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 속에 숨어 들어간 차별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차별은 차별하는 이나 차별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과 국가, 그리고 여러 신념체계가 복합적으로...
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2023), 이주희     감정사회학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왔던 현타는 ‘지금 내 감정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은 자발적이고 은밀한 나만의 본질같은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연출된다는 것.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바로 그런 ‘감정’과 ‘구조’의 은밀한 콜라보에 ‘차별’이라는 다소 버거운 주제를 함께 이야기 한다.         처음엔 ‘차별’이라는 주제에 오히려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차별받으며 혹은 차별하며 살아온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이내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차별이 식상한 주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이미 ‘차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받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혹은 식상하다는 이 느낌은 아마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더뎌지고 희미해지고 무산되는 과정에서 번번이 느꼈던 익숙한 실망감이거나, 그도 아니면 너무 어마한 주제에 대한 무기력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마디로 언급하기엔 좀 불가능하지만 ‘감정’, ‘구조’, ‘차별’ 이라는 어마무시한 삼총사를 1234를 통해 ‘아무튼’ 만나 보았다.     차별은 ‘구조’와 맞물려 있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차별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성향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 속에 숨어 들어간 차별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차별은 차별하는 이나 차별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과 국가, 그리고 여러 신념체계가 복합적으로...
스르륵 2023.09.17 |
조회 361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현실이 상상으로, 상상이 다시 현실로 동은       1. 빛나는 정지된 순간    몇 년 전 여울아쌤과 탕누어의 <한자의 탄생>을 읽으면서 받았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탕누어가 다양한 주제로 소개하는 한자들을 경험하며 한자에 담겨있는 고대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고, 그때 느꼈던 영감과 자극 덕분에 한자로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입이 닳도록 한자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을까? 최근 <한문이 예술> 글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재미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서서히 실감하고 있다. 요즘에는 그 문제의 원인이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야) 알고 있는 지식과 배경이 너무 짧고 얕고 좁아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게 된 <한자의 풍경>은 탕누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자의 경이로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고고학적 자료와 유물 조사의 기록, 시대적 배경과 흐름, 최근까지 계속 달라지고 있는 담론을 소개하면서 비교적 추상적이고 짐작되는 내용보다는 실재적이고 사실에 근거하는 한자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학술적인 책이라고 생각됐지만 저자는 동시에 한자가 갖고 있는 힘과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한자의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빛나는 정지된 순간을 만나게 된다. (6)     저자는 형태에 의미가 남아있는 한자의 특성상 문자가 만들어진 순간을 파헤치다 보면 문자를 만들어 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본 경외심을 느낄 수...
현실이 상상으로, 상상이 다시 현실로 동은       1. 빛나는 정지된 순간    몇 년 전 여울아쌤과 탕누어의 <한자의 탄생>을 읽으면서 받았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탕누어가 다양한 주제로 소개하는 한자들을 경험하며 한자에 담겨있는 고대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고, 그때 느꼈던 영감과 자극 덕분에 한자로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입이 닳도록 한자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을까? 최근 <한문이 예술> 글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재미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서서히 실감하고 있다. 요즘에는 그 문제의 원인이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야) 알고 있는 지식과 배경이 너무 짧고 얕고 좁아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게 된 <한자의 풍경>은 탕누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자의 경이로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고고학적 자료와 유물 조사의 기록, 시대적 배경과 흐름, 최근까지 계속 달라지고 있는 담론을 소개하면서 비교적 추상적이고 짐작되는 내용보다는 실재적이고 사실에 근거하는 한자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학술적인 책이라고 생각됐지만 저자는 동시에 한자가 갖고 있는 힘과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한자의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빛나는 정지된 순간을 만나게 된다. (6)     저자는 형태에 의미가 남아있는 한자의 특성상 문자가 만들어진 순간을 파헤치다 보면 문자를 만들어 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본 경외심을 느낄 수...
동은 2023.09.11 |
조회 266
    정상을 벗어난 관계 - 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 리뷰           『아이들의 계급투쟁』. 나는 이 제목을 보고 아프리카 아이들이 직접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급 불평등에 분노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에 동화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책에선 전혀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계 영국인 브래디 미카코로, 책은 미카코가 오랫동안 보육교사로 활동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그녀가 처음 보육 봉사를 시작했던 영국 저변에 위치한 탁아소의 이야기이다. 미카코는 저변 탁아소의 활동을 인정받아 정식 보육교사가 되었으며, 민간 어린이집 교사로 채용된다. 1부는 그녀가 일하던 민간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과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저변 탁아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면서 민간 보육 기관으로 향하던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단순한 ‘보육일지’라기 보다는 보육 현장 최전선에서 기록한 ‘투쟁일지’에 가깝다. 그녀가 돌아간 탁아소는 영국 브라이턴에 소재한 하층계급 주민들을 돕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 탁아소는 스스로를 영국 생활수준의 최하위권이라고 명시히고 있으며, 그렇기에 흔히들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책에선 1부와 2부의 내용을 구분하기 위해 보육기관으로 향하는 예산이 긴축된 시점의 1부를 ‘긴축 탁아소’라 부르고, 노동당이 집권하던 시기이자 미카코가 보육 봉사를 하던 시기의 2부를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평소 슬프거나 감동적인 작품을 봐도 잘 울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수시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저자는 저변의 이야기를 다루며 감정적인 호소를 하기 보다는, 보육과...
    정상을 벗어난 관계 - 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 리뷰           『아이들의 계급투쟁』. 나는 이 제목을 보고 아프리카 아이들이 직접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급 불평등에 분노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에 동화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책에선 전혀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계 영국인 브래디 미카코로, 책은 미카코가 오랫동안 보육교사로 활동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그녀가 처음 보육 봉사를 시작했던 영국 저변에 위치한 탁아소의 이야기이다. 미카코는 저변 탁아소의 활동을 인정받아 정식 보육교사가 되었으며, 민간 어린이집 교사로 채용된다. 1부는 그녀가 일하던 민간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과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저변 탁아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면서 민간 보육 기관으로 향하던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단순한 ‘보육일지’라기 보다는 보육 현장 최전선에서 기록한 ‘투쟁일지’에 가깝다. 그녀가 돌아간 탁아소는 영국 브라이턴에 소재한 하층계급 주민들을 돕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 탁아소는 스스로를 영국 생활수준의 최하위권이라고 명시히고 있으며, 그렇기에 흔히들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책에선 1부와 2부의 내용을 구분하기 위해 보육기관으로 향하는 예산이 긴축된 시점의 1부를 ‘긴축 탁아소’라 부르고, 노동당이 집권하던 시기이자 미카코가 보육 봉사를 하던 시기의 2부를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평소 슬프거나 감동적인 작품을 봐도 잘 울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수시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저자는 저변의 이야기를 다루며 감정적인 호소를 하기 보다는, 보육과...
우현 2023.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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