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세미나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 안내

문탁
2019-07-25 09:50
428
<시경> 게릴라 세미나 안내 :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

1.
공식적으로 <시경>은 2019 이문서당 하반기 프로그램입니다. 버뜨, 1년 반에 걸쳐 <주역> 십익을 다 읽고도 약간의 여유가 있었던 우리는 상반기 마지막 4주 동안 <시경> 워밍업을 했습니다. <소아>, <대아>의 매우 중요한-인용빈도가 높은- 시 열 두편을 읽었던 것이죠. (결국 풍, 아, 송의 송은 하나도 못 읽었습니다)
 
그 열두편을 하나씩 떠올려볼까요?
<녹명>, <사모>, <황황자화>, <상체>, <벌목>, <채미>, <소민>, <소완>, <소반>, <문왕>, <영대>, <생민>.... 음 다시 써보니, 마치 패, 경, 옥 등 이국 소녀의 이름을 부르던 윤동주가 된 기분입니다. 아~ 득~ 하네요.
 
어쨌든 전 이놈의 <시경>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어려워, 어려워..를 되뇌는 저를 보면서 우쌤은 모드 전환이 안 되어서 그런 거라구 하십니다. 그러면서 “머리를 쓰지 말고 가슴을 써~~”라고 일갈하시네요. (심지어 “문탁네트워크에는 시적 역량이 없는 것 같아~~” 라는 말씀꺼정...ㅋㅋ)
음...버뜨....음....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전 겨우겨우 독일어 기본문법을 떼고 책을 좀 읽어볼까 했는데, 책을 펴보니 독일어가 아니라 스페인어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의 당혹스러움! 음..뭐 그런 상태였습니다.
 
단어도 너무 어렵고, 익숙한 단어도 뜻이 다르고, 수시로 허사가 나오고, 동물, 식물, 그릇, 기물 등의 이름은 끝도 한도 없이 나오고 (뿐입니까? 하나의 시에 말들의 이름이 무려 네 가지나 나옵니다.駱 駒 騏 駰) , 의성어, 의태어는 뭔 말인지 도무지 뉘앙스 파악이 안되구(사슴은 '유유'..울고, 비둘기는 '편편' 날고, 말들은 '침침' 달립니다)  .... 한마디로 ‘가슴’이 아니라 ‘머리가’ 동원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 단어장을 만들고 외워야 할 것 같은 느낌!
헐...망했습니다!!!
 
 
 
 
 
2.
과장이 심하다구요?
음...<대아>에 <生民>(백성을 낳으심)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강원(姜嫄)을 씨족 어머니로 하여 그 후손이 어떻게 농경문명을 건설했는가(발자국 임신으로 태어나게 된 후직이 처음엔 버려졌으나 천지만물이 보호하사 잘 자라났고, 급기야 ‘경작’기술을 개발 콩, 벼, 삼, 보리, 오이, 차기장, 검은 기장, 붉은 기장, 흰 차조 등을 심고...어쩌구 저쩌구...)를 줄줄이 읊는, 거의 ‘아스달연대기’ 급의 이 대서사시는,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저는 이 시를 인류학적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사피엔스>와 연관해서 읽어보면 어떨까, 라는 온갖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죠. 
 
 
 
그러나!!!
10언 절구가 4장, 8언 절구가 4장, 도합 8장(총 226자)으로 되어 있는 이 시에 나오는 단어는 대충 이렇습니다.
①禋(인):정결히 제사 지내다/ ②武(무):발자국/ ③敏(민): 엄지발가락/ ④歆(흠):소리가 울려퍼지듯 감응함/ ⑤震(신):임신하다/ ⑥夙(숙):삼가하다/ ⑦達(달):쑥~낳다/ ⑧副(부):가르다/ ⑨寘(치):버려두다,놓아두다/ ⑩腓(비):보호하다/ ⑪字(자):사랑하다/ ⑫呱(고):울다/ ⑬實(담):퍼지다/ ⑭訏(우):크다/ ⑮匍(포):기어가다/ ⑯匐(복):기어가다 /⑰嶷(억):영리하다/ ⑱荏(임):콩(잠두-작두콩)/ ⑲菽(숙):콩(대두)/ ⑳旆旆(패패):잘 자라는 모양/ 役/ 穟穟/ 幪幪/ 瓜瓞/ 唪唪/穡/茀/ 厥/茂/苞/褎/穎
 
앞의 4장에서 추리고 추려서 만든 단어장이 위와 같은 것인데 뒤의 4장에서 나오는 글자들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誕降嘉種하니 維秬維秠며 維穈維芑로다 恒之秬秠하니 是穫是畝하며 恒之穈芑하니 是任是負하여 以歸肇祀하시니라 / 誕我祀如何오 或舂或揄하며 或簸或蹂하며 釋之叟叟하며 烝之浮浮하며 載謀載惟하며 取蕭祭脂하며 取羝以軷하며 載燔載烈하여 以興嗣歲로다 / 卬盛于豆하니 于豆于登이로다 其香始升하니 上帝居歆이삿다 胡臭亶時리오 后稷肇祀하시므로 庶無罪悔하여  以迄于今이삿다
 
인류학이고 나발이고... 이 시는....그야말로..... 하늘에서 낯선 단어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맹자가 “시를 해설하는 사람은 글자에 구애되어 시의 맥락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맹자, 만장 상) 이쯤 되면 글자에 구애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ㅋㅋ. 
뿐만 아니라 그냥 실물로 보여줘도, 한글로 말해도, 이 콩은 뭔 콩이고 저 콩은 또 뭔 콩이냐, 혹은 이 조는 어떤 조이고, 저 조는 또 어떤 조란 말이냐, 싶은 저로서는, 음~ 걍~ 다 관두고 싶습니다.
 
 
 
 
 
 
3.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전 예전부터 시가 어려웠습니다. 사서에 밑도 끝도 없이 인용되는 시들. ‘단장취의’하듯 삽입되는 시의 구절들. 시가 뭐길래 이런 방식의 글쓰기/말하기를 할까? 그리고 <논어>에 나오는 공자가 시를 강조하는 무수한 언급들.(아들한테 시를 배우지 않으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이라거나, 시를 배워야 “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多識於鳥獸草木之名”할 수 있다와 같은 언급들) 전 여전히 그것들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주자집주에 따라 해석하는 게 어렵다는 게 아니라 인간 감정의 영역인 시가 (공자도 " 興於詩"라고 말했죠. 신영복 샘은 이것을 ‘진정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작동하는 장이, 정치적, 윤리적 영역이라는 걸 납득하는 게 어려운 거죠.
아니 남녀가 눈 맞아서 밀당하고 희롱하는 연애시들이 몽땅 ‘思無邪’(생각에 삿됨이 없다)로 환원되거나, 수자리 나가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형제를 걱정하는 감정들이 전부 "세상을 이해하는"(가이관)  방편으로 활용된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자는 저처럼 헷갈리지 않았을까요? 그는 그때까지 내려오는 <모시서>처럼 시에 대해 접근할 수는 없었을겁니다. 우리가 읽는 주자집전의 서문을 보면 주자는 시의 탄생을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성과 정 때문에 인간은 생각하게 되고 말하게 되는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잉여들이 생겨 (咨嗟詠歎之餘자차하고 영탄하는 나머지) 자연스럽게 가락을 붙여 읊조리게 (自然之音響節族)되었다구. 
여기까지 주자는 멋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는 시의 효용을 여전히 공자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시를 배우는 이유는 “선을 권면하고 악을 징계”하기 위함이라구. 그러고 나니 문제가 생깁니다. 그럼 <풍>에 나오는 그 많은 연애시들(예를 들어 모시서에서 "東方之日, 刺衰也. 君臣失道, 男女淫奔, 不能以禮化也"이라고 언급한 시들) 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공자가 시삼백을 편집하면서 그런 시를 그대로 둔 이유는 뭐지? 주자의 대답은? - 궁금한 분들은 우리 교재에서 <시경집전서>를 읽어보시도록.
 
 
4. 
만약 10세기쯤 지나서 (그때까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이런 노래들을 발견했다고 칩시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 오너라 너희 집 지어 줄게/
두껍아 두껍아 너희 집에 불났다 /쇠스랑 가지고 뚤레뚤레 오너라(1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 오너라 너희 집 지어 줄게/
두껍아 두껍아 너희 집에 불났다 /쇠스랑 가지고 뚤레뚤레 오너라”(2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1연) /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한다, 멋쟁이 (2연) /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먹는다, 무슨반찬, 개구리 반찬 (3연) / 살았니 죽었니, 죽었다 (4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놀림을 받았더래요 /샤바 샤바 아이샤바 얼마나 울었을까?“
 
천년 후 사람들은 이것의 가사만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것이 특정한 놀이와 연관된 노래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마르셀 그라네는 시경과 관련하여 그런 작업을 한 모양입니다. 뒤르켐의 제자답게 엄밀한 사회학적 방법을 통해 (그것을 그는 문헌의 성격을 정확하게 결정하되, 일단 그것을 통해 사실을 파악하고 실증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그 사실 외에는 그 문헌을 더 이상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 이중의 방법 / 11쪽) 시가 창작되고 있는 고대의 의례를 복원합니다.
뒤르켐의 제자인 마르셀 모스가 뒤르켐의 방법론으로 고대사회/원시사회를 분석해 그 사회의 형태를 증여사회라고 이름붙인 불후의 저작 <증여론>이 발표된 게 1923~1924년입니다. 역시 뒤르켐의 제자인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고대사회를 분석해서 그 사회의 어떤 원형들을 복원해냅니다. 1929년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시경> 공부에 들어가면서 간만에 학술서 한 권 읽어보겠습니다. 2번에 걸쳐 마르셀 그라네 책 <중국의 고대축제와 가요>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모두 함께 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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