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RappIN'文學 (1) 나는 어떻게 래퍼가 되었나

송우현
2019-03-26 12:01
442

*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청년들이 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다섯 명의 청년들이 매주 돌아가며 세 달 동안 저마다의 주제로 세 개씩의 글을 연재합니다. 글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우현의 보릿고개 프로젝트 : RappIN'文學 (1) 


나는 어떻게 래퍼가 되었나


이렇게 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나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무언가에 관심이 생겨서 시작하면 금방 감을 잡고 곧잘 해왔다. 하지만 그만큼 지속하는 힘이 없었다. 하나를 시작하면 끝까지 밀고 가지 못했고, 금방 다른 것에 관심이 쏠렸다. 옮겨간 열정도 얼마 못가 식어버리고 다시 다른 것을 찾았다. 내가 그렇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가 중학교 2학년 즈음이었다. 

 진로, 학업, 친구 등의 고민이 겹쳐서 사고도 치고 공부도 열심히 해보며 2학년을 지냈다. 3학년 때는 반 친구들을 잘 만나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냈다. 너무 신나게 노는 탓에 작년의 고민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그러던 여름, 한 친구가 축제 때 공연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재밌어 보였다. 노래는 둘 다 못하니 랩을 해보기로 했다. 매일 방과 후에 하는 연습은 즐거웠다. 묘하게 누가 더 랩을 잘하는지 경쟁을 하기도 했고 서로 더블링(다른 사람이 랩을 할 때 운율이 떨어지는 부분을 같이 불러주어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들고 음악적 재미를 더하는 행위)을 외우며 팀워크를 다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첫 무대를 서게 되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축제 공연이 대개 그렇듯이, 적당히 하는 시늉만 해도 열렬한 호응이 돌아왔다.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큰 감흥이 없지만 당시에는 달랐다. 살면서 그렇게 큰 호응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른 채 공연은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쾌감만은 확실히 머릿속에 남았다. 

 그 뒤로 나는 계속해서 랩과 무대라는 마약을 찾았다. 랩 동아리에도 들어가고, 힙합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음악도 더 깊이 듣게 되었다. 가사를 직접 쓰게 되면서 그 재미는 몇 배로 늘어났다. 처음엔 간단한 박자와 라임(운율), 나아가서는 음계와 가사의 내용까지 맞춘 가사를 쓰고 랩을 할 때의 쾌감은 말로 이를 수 없었다. 게다가 다른 공연들을 해보면서 느낀 것은 남들보다 내 랩의 수준이 높았다는 것이다. 친구들의 피드백과 관객들의 호응이 그것을 증명했다.

1-1.jpg

이 씬에서 내 역할은 supervise

맘에 안 드는 놈은 컷 컷 잘라

니들이 출연할 씬은 없어

미안하지만 관객으로서만 지켜봐

...

내 목적은 돈이 아닌 show & prove

그래도 관객들은 주네 별점 5

...

David camp 크루 – Rockin’ with the best 中 

 

 랩 동아리 안에서도 나는 랩을 굉장히 잘하는 축에 속했고 그만큼 랩을 핑계로 놀기만 하는 애들을 굉장히 싫어했다. 당시 나의 가사들은 그런 친구들을 디스 하고, 동시에 나를 치켜세우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친구와 디스전을 펼친 경험도 있었다. 처음 공연을 해보자고 한 친구에게 선공을 당한 것이다. 같은 팀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이 비교되는 것은 자연스러웠고 그로 인한 질투와 시기가 잘 드러나는 곡이었다. 당시 나는 매우 자만해져 있던 터라 디스를 받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 친구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미안하기도 했고, 이게 내 잘못인가 억울하기도 했다. 복잡한 감정 속에서 나는 전력을 다해 받아치는 게 그 친구에 대한 리스펙트(존중)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밤을 꼴딱 새우면서 맞디스곡을 냈다. 여러 친구들이 나의 손을 들어줬고, 결과적으로 그 친구가 패배를 인정하면서 훈훈하게 화해했다. 

 그렇게 나는 기세 등등했던 중학교의 마지막을 보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 잊고 있던 돈과 진로에 관한 고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1-2.JPG

▲자신감 넘치게 도전했던 쇼미더머니에서 탈락의 쓴맛을 보았다.

필요한 건 공부였다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 것인가? 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에요.’였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그 대답은 ‘랩 할 겁니다.’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저것 걸치기만 하던 나에게 랩은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한편으론 더는 한 발만 걸치고 있지는 않으리라, 이번엔 무조건 끝까지 가보리라는 다짐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을 포기했다. 랩으로 대학을 갈만한 곳은 없다고 봐야 했고, 입시를 위한 공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학교와 군대를 합치면 거진 6년이 지나가는데 그 시간에 제대로 음악도 하고 공연도 해보면서 힙합씬에 대한 경험을 더 해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한 술 더 뜨셨다. 그럼 대학을 위한 고등학교는 왜 다니냐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당찼던 포부와는 달리 자퇴를 하고 얼마 동안은 굉장히 무력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랩스타가 되고야 말겠다는 야망도 없었다. ‘어떻게든 살겠지’라는 막연한 생각과 ‘학교 다닐 시간에 언더그라운드에서 직접 구르겠다.’라는 포부만 있었다. 그 포부는 굉장히 추상적이었다. 한국 힙합씬은 무엇이며, 언더그라운드는 어디며, 제대로 랩을 한다는 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다 어머니의 추천으로 규문과 문탁을 만나게 되었다. 

1-3.jpg

▲규문에서 진행됐던 '철인 3종 글쓰기'

 문탁과 규문은 더 나은 삶을 연구하는 인문학 공동체다. 그곳에서 내가 했던 ‘파지 스쿨’과 ‘철인 3종 글쓰기’는 책을 읽고, 세미 나하고, 글을 쓰는 것으로 공부를 갈무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황당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쓰기 공부가 가사 쓰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랬다. 그뿐만 아니라 무엇이 아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막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집 근처’가 아닌 곳을 돌아다니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었고, 공부였다. 이때 내가 얻은 것 중 하나가 ‘나를 이야기하는 능력’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만 수백 번을 이야기하다 보니 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면서 내가 쓰는 가사들의 내용도 그렇게 변화해갔다. 그런 가사들이 쌓이면서 나를 말해줄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몇 안되는 관객들의 만족한 표정을

보는 일은 뿌듯하지 이 기쁨을 

나누기보다는 나만 알고 싶어 난

이 기쁨을 아는 사람들과 살고 싶어 난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 

나와 함께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없어도 나 혼자서 해내겠지 뭐 

그 믿음 하나로 계속 걸어가는 거지 뭐

 Pell – Life is film 中


Cash rules everything around me


 그러다 문탁에서 진행한 예술프로젝트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예술프로젝트는 청년 예술가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금을 지원해주고, 매주 멤버들끼리 피드백을 주고받아 함께 갈무리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도움을 받아 나의 첫 번째 앨범인 ‘BOX’를 만들었다. 나라는 사람을 상자에 비유하고 속에 담겨있는 물건들을 트랙 제목으로 설정한 앨범이었다.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앨범이니 만큼 좋아하는 스타일의 비트와 콘셉트들로 구성했다. 작업하는 동안에도 굉장히 즐거웠고, 결과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끝마치는 능력이 부족했던 내가 처음으로 앨범 하나를 완성시켰다는 것은 큰 의미였다(이 자리를 빌려 예술프로젝트를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1-5.jpg

▲Box를 만들었던 작업실. 위 사진은 다분히 연출된 장면이다.

 하지만 고민도 생겼다. BOX는 나에겐 충분히 만족스러운 앨범이었지만 기성곡들과 비교하면 기술적인 퀄리티가 한참 떨어졌다. 나는 앨범 단위 작업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다음 작업도 앨범을 생각하고 있었고 비트까지 내가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컸다. 그를 위한 미디(작/편곡) 레슨도 받고 있었지만 수준급으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았다(내 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앨범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내가 마음에 드는 비트를 구매하고, 믹싱과 마스터링(소리를 섞고, 볼륨을 높여서 곡의 전체적인 품질을 높이는 작업)을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는데, 그러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알바도 하고, 용돈이나 지원금도 받았기에, 내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앨범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했고, 그런 앨범들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고민이 더 깊어졌다. 내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최우선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팔리지 않는다면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 결국 하고 싶은 것을 지속하기 위한 돈은 필수적이다. 게다가 하고 싶은 것은 계속해 늘어 가는데 그에 비해 내가 버는 돈은 너무나 적었다.

 운이 좋게도(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예술프로젝트 시즌2의 도움을 받아 두 번째 앨범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앨범의 제목은 나의 바뀐 랩 네임(기존엔 Pell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과 같은 ‘kokopelli’로,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돈, 관계 등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담았다.

이제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건

순수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

그걸 왜 하고 싶어 하는지

또 어떻게 하는지

Cash rules everything around me

So i take that money

이제 슬슬 받을만해 아니 받아야해 Got a pay 

굽은 등 손에 피리 대신 마이크 who am i 그저 나를 위해 살아가는 나 kokopelli

kokopelli – kokopelli 中

오늘과 내일의 목표는 바뀔테니

 처음엔 잘할 수 있고, 인정받는 것에 대한 즐거움, 그리고 음악이 선사하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문탁과 규문을 만나 공부를 시작했을 때에는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말하는 수단이었다. 앨범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는 돈과 현실적 어려움과 부딪히고 그 속에서 어떻게 랩을 할 수 있을까의 고민을 담았다. 이렇게 랩이 나에게 갖는 의미와 내가 랩을 하는 이유가 계속 바뀌어오고, 계속 새로운 어려움들과 맞닥뜨려도 나는 랩을 한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것이 즐겁고 가장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에게 랩은 라임, 박자 같은 여러 가지 제한성을 가지고 내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종의 게임이다. 그 제한들을 넘어설 때의 짜릿함과 쾌감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랩으로 나의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고민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돈을 벌고 써야 내가 하고 싶은 랩을 계속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나 예술프로젝트나 부모님의 손을 빌릴 수만은 없었다. 이 고민의 끝은 없지만 계속해서 이 고민들에 대해 질문하고, 공부할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랩을 하는 것’이지 않을까? 두 장의 앨범을 통해 나는 래퍼가 되었다. 매 순간 달라지는 고민과 생각들을 박자나 라임에 맞춰 녹여내는 게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1-4.jpg




One & only 처음 내 목표는 좋아요 숫자가 아니었거든 

어찌됐든 오늘과 내일의 목표는 바뀔 테니

따라와봐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올 수 있을 거야 할 수 있으면

What is suicide i don’t want it anymore

비관적인 시야는 저기 놓을래 남은 것은 비춰 두 눈에

발전시키고 지켜나가는 것 행복한 현재 that is all i want

돈이 필요하다면 take this 바로 벌어올게 plz wait me

kokopelli - 여기만 아니면 돼 中

댓글 4
  • 2019-03-28 00:55

    우현아, 네 씨디를 요즘 차안에서 듣고 있어. 

    처음엔 나즈막히 읊조리는 랩에 어떻게 장단을 맞춰야 할런지

    낯설었는데, 몇 번 듣다보니 꽤 괜찮더라. 

    앨범 중에서 처음엔 4번곡이 좋았는데, 네 자전적 얘기인 7번도 좋고

    그러다 어느새 모든 곡이 다 편해지더라구. 

    지금 좀 듣기 편해지고 나니까 랩에 담긴 너의 얘기가 더 잘 와닿더라구. 

    앞으로도 파이팅~

  • 2019-03-28 09:48

    나도 시디찾으러 가야하는데~

    작년 쇼케이스인가 그때 들은 우현이 랩이 귓가에 울리는군요  기대 기대

    나도 래퍼를 안다^^ 우현이의 랩인문학 랩 인 문학 재밌게 읽었어요

  • 2019-03-28 17:33

    ㅎㅎㅎ

  • 2019-03-31 20:11

    찬결이가 자기가 하는 형이 랩을 막하니까...

    자기가 아는 형이 진짜 랩퍼라고 자랑했는데 !!!

    드뎌 나왔군!! 축하해!!!!

    나도 잘 들어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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