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통신 1> 복을 아시나요?

뚜버기
2019-03-11 18:52
461

복통신1 - 복을 아시나요

 

 

 

은 문탁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 공동체화폐다. 문탁에 발을 들여놓으면 어느 새 복회원이 되었다. 또 일년에 두어번 열리는 복잔치를 경험하며 복이 뭔지 감을 잡아갔다. 그런데 작년엔 신입 복회원을 거의 받지 않았다. 복잔치도 열리지 않았다. 그런 노력이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화폐사용에 하나의 질문이 되고자 태어난 대안화폐 복. 하지만 언제부턴가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2018년은 정리하고 되짚어 보는 시간을 보냈다.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 복에 관한 우리의 말과 행위들이 어떻게 변해왔나 살펴보았다. 가을에 열린 마을경제 워크숍에서도 복과 화폐를 주제로 토론을 이어갔다. 이제 그 과정을 갈무리하여, 2회에 걸친 <복통신>에서 복이 어떻게 태어났고 변해왔는지 공유하고 앞으로 복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제안하려고 한다.

 

 

 

마을화폐 화폐 복의 탄생

 

 

 

2010년 초에 열렸던 지역화폐 추진 워크숍(모임은 안타깝게도 실행주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마무리 되었다)을 인연으로 만난 몇몇 사람이 문탁에서 경제공부 모임을 꾸렸다. 이름하여 <마을과 경제> 세미나. 20104월 시작된 세미나는 시즌을 거듭하며 점점 치열해졌다. 그 사이 처음의 관심사였던 지역화폐 추진보다는 생활 전체의 문제로 관심이 옮겨졌다.

그해 겨울,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끝낸 책걸이 자리에서였다. 세미나원들은 돈과 경제를 우리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실험을 해보자며 천연화장품 사업을 창업하기로 결의했다. 세미나원 중에 천연화장품 제조기술을 가진 이(물론 자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탁 회원들에게 기금을 모아 이듬해 3<마을과 경제 사업단>이 출범했다.
그와 더불어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대안화폐가 기사회생했다. 사업단에서 대안화폐를 만들어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화폐 이름은 그때도 재기발랄했던 노라가 제안한 ()’이 채택되었다. 마치 복()을 주듯이, ()을 받듯이 쓰였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고 20114월에 <마을화폐 복()>이 탄생했다.

 

bok_cash.jpg

 

 

복은 돈처럼 유형의 화폐는 아니다. 복회원이 되면 복계정이 부여된다. 회원들은 스스로 복을 발행하여 물품구입에 데 쓸 수 있다. 복을 주고받는 사람 쌍방의 인지 아래 문탁홈페이지의 거래했어요게시판에 알리면 거래가 완료된다. 거래된 복을 복정리 담당자(지금은 향기)가 매월 한 번씩 정산하여 홈페이지에 공지한다. 이렇게 해서 회원들의 복거래와 잔고가 모두에게 공유된다. 마이너스계정(일명 마이너스복)도 가능하며, 사용한도에 제한도 없고 상환기한도 없다. 이자 또한 붙지 않는다.

 

처음에는 <마을과 경제 사업단>이 주도하는 몇몇 생산 활동(천연화장품만들기, 단품요리만들기 등) 중심으로 복이 오갔다. 복회원은 누구나 복을 발행해서 물품구입에 쓸 수 있지만, 그렇게만 하면 복잔고는 계속 마이너스가 된다. 그래서 계정의 균형을 맞추려면 생산활동에 참여해야 했다. 화장품 만들기 초짜 일꾼으로 왔던 새털은 본인이 자신있는 분야에서 복을 벌어들일 묘책을 생각해냈다. 문탁웹진 원고료를 복으로 달라고 요청한 것. 복이 사업단을 넘어 문탁으로 확대되는 물꼬가 트인 계기였다.

 

 

 

 

복은 선물에 반()한다?

 

 

 

분업하지 않고 효율을 추구하지 않으며 놀듯 일하겠다는 <마을과 경제 사업단>은 문탁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비자본주의적 생산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문탁이 추구하는 선물과 우정의 공동체에 잘 부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은 그렇지 못했다. 화폐가 선물의 순환에 끼어드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의견들이 있었다. 이러다 주방선물이나 밥당번도 선물이 아니라 복거래에 편입되는 것 아닌가하는 말도 나왔다. 복의 모델이었던 지역화폐 자체가 상호부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긴 했지만, 화폐에 대한 통념상 복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먼저 든 것은 당연했다.


의심과 걱정 속에서 우리는 복이 화폐냐 아니냐는 등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맑스 강좌와 세미나가 열렸고 증여경제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했다. 문탁에서 의미있는 하나의 개념이 되기 위해 복은 선물의 원리를 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를 위한 의식적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2011년 8월 30일  

 

화장품 사업을 위해 애쓰는 노라, 달팽이, 뚜버기, 요요님께 자누리가 각 2만복씩 드릴께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2011년 10월 10일

 

  빛내님께 수지침 진료비 2,000복 드립니다. 

 

 2011년 10월 12일

 

 가제트공방까지 운전해주신 뚜버기님께 2천복 드립니다.

 

  2011년 11월 13일 

 

 마경단에서 특별회비를 5만복 문탁네트워크에 드립니다.

 

  2011년 12월 30일 

 

노라가 청량리님께 복을 드리고 싶어요. 컴퓨터 포맷 및 외장하드 구입을 도와주셔서요^^

 

  2012년 2월 16일

 

푸딩이 청량리님께 이천 복 드립니다. 갑자기 쌩뚱 맞죠? ㅎㅎ 마을 중고 장터 때 저희 아들과 넘 잘 놀아 주셔서 제가 잠시 큰 자유를 만끽했어요~~~ 밥 사드셔요^^*

 

복은 점점 지역화폐의 일반적 특성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일례로 복은 선물의 매개로서 독특하게 기능했다. 초기 일년 간의 복거래 가운데 발췌한 위의 거래 내용을 보자. 일부는 서비스의 제공(운전, 컴퓨터수리, 수지침 등)에 대가지급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고받는 사람이 협의하여 금액을 정하고 거래를 한 것이 아니다. 선물로 주어진 수고에 대하여 얼마 후에 복이 답례로 전해진 방식이었다. 물론 다른 것들은 통상적 의미의 선물로 준 복이다. 이때도 돈을 선물로 줄 때와 달리 복선물은 왠지 거부감이 없었다.

 

복부자들이 다른 회원들에게 자발적이면서도 강제적으로 복을 선물하는 복포틀래치도 생겨났다. 그런 가운데 유쾌한 감정들이 흘러 넘쳤고 복은 점점 선물과 융합되어 갔다. 문탁 주방 앞에 걸린 선물의 노래 칠판처럼, ‘거래했어요게시판에는 복선물의 노래가 흘러넘쳤다.

 

 

보물.jpg
 

 

 

 

마을경제와 복

 

 

 

20122, 사업단은 문탁1층에 공간을 마련하여 <마을작업장 월든>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공간이 안정되고 찬방, 길쌈방, 중고장터, 더치커피로 생산영역이 넓어지자 복거래가 급증했다. 복 쓸 곳이 늘어나면서 품삯으로 지급되는 복도 많아지는 등, 복이 순환의 사이클에 들어선 것이다. 복회원도 문탁을 넘어 마을로 확대되었다.

 

작업장의 경제 규모가 커지자, 품삯이나 물건값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할까라는 문제가 생겼다. 또 복이 주어지는 활동과 선물로 주어지는 활동은 어떻게 나누는가도 묻게 되었다. 원가노동시간 등의 기준에 따라 계산한다는 등가교환 방식이 아닌 선물의 원리에 토대를 두고자 했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직 서로의 감각을 맞춰가며 적당한 지점을 찾아야 했다. 서로의 감각을 맞춘다는 것 또한 다수결로 정할 수 없는, 논의를 되풀이하는 과정을 필요로 했다.

 

돈이 아닌 복은 그런 감각을 맞춰보는 데 좋은 실험재료였다. 예를 들어, 중고장터(이후에 이어가게가 됨)에 물품을 기증하면 월말에 복선물을 받는다. 돈이라면 바로바로 주고받았겠지만 복이기에 장부에 적어놓고 월말에 줄 수 있다. 그때 기증자가 받는 복은 복불복이었다. 그달의 중고장터 수입의 고저에 따라, 기증자가 복이 많냐적냐에 따라 복은 천차만별로 주어졌다. 주먹구구로 우스워 보이는 이 방식이 실제로는 정교하고 섬세한 방식임을 우리는 체득해갔다. 이런 경험이 복을 넘어 현금경제까지 이어지면서 작업장 경제는 등가교환이라는 벽을 넘나들었다.

 

복은 또한 문탁의 경제를 활발하게 하는데 기여했다. 복으로 지급받은 품삯은 문탁 안에서만 쓸 수 있기에, 더 많은 이들이 작업장 생산품들을 이용하게 되었다. 회원들은 작업장 물건들을 단순한 상품으로 인식하기보다 친구가 만든 물건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다. 또 돈이 아닌 복을 쓰고 싶다, 복을 받고 복을 쓰는 건 돈을 벌고 쓰는 것과 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이런 마음들이 사람과 물건과 복 사이에서 돌고 돌기 시작했다.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다는 합리적 경제 생활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점차 자본주의적 경제에 어긋나는 흐름들이 만들어졌다. 이런 식으로 시장경제 아닌 마을경제라는 것을 꾸릴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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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복의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2015년에는 정점을 찍었다회원수가 244명이 되었고 약16백만복이 거래되었다처음 시장경제로부터 이탈하고자 태어난 복은이제는 어떤 문제의식도 발생하지 않는 익숙한 것이 되었다돈 없을 때 손쉽게 계산하는 수단으로 쓰는 것 아닌가내 복잔고가 어떤지친구들의 복상황은 어떤지 무신경한 것 아닌가복회원 모임엔 나오지 않고 복사용만 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복을 쓰는 것이 돈을 쓰는 것과 다른 균열이 되고 있나이런 고민들이 생겼다.

 

두 번째 <복통신>에서는 이후에 이 고민들을 어떻게 풀고자 했는지 다루어 보려 한다또 현재의 고민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볼까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다별 것 아닌 복을 괜히 무겁게 다루는 걸까복은 약하다모든 걸 해결할 대안도 아니다하지만 나는 복이 작지만 엉뚱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균열들에 연결되는 실금처럼 여겨진다이 글을 계기로 복에 대한 우리의 공통감각을 새롭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복통신> 2탄을 기대하시라~~

 

 

댓글 3
  • 2019-03-12 00:10

    복의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뿌듯.

    하지만 겸서가 빵 사먹을 때 말고는 많이 쓰지도 않고

    벌지도 못하는 요즘입니다.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 위해서는

    대상이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니라 

    내 눈이 달라져야 하겠지요.

    옛날엔 웃으면 복이 온다고 티브이에서도 막 그랬는데.

    ㅋㅋㅋ

  • 2019-03-13 10:42

    복이 '균열들에 연결되는 실금' 같다는 말이 와닿네요.

    그러게요 어떻게 엉뚱하고 재밌는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갑자기 의욕이 생기네요. ㅎㅎ

  • 2019-03-18 07:17

    ‘복’ 참 잘 지었어요

    노라 센스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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