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 부루쓰 2탄 : 도망가고 싶은 나의 고관절

히말라야
2019-01-2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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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망가고 싶은 나의 고관절

얼마전부터 오른쪽 고관절이 아프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 본 결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내게는 통증이 느껴진다. 엑스레이로도 보이지 않으니, 다른 이들의 눈에도 내 고관절의 통증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프다.  의학적으로 아무이상이 보이지 않는데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 마음치료나 힐링 센터에 가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심리적 고통의 발현이라고 해석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무 이유없이 턱이 아프다면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그런다던가, 심장 근처가 아프다면 어떤 일로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던가 하는 식으로.

외과적 이상없이 아픈 내 고관절 역시 그렇게 해석해 본다면 어떨까. 밖에서 성큼성큼 걸을 때는 거의 아프지 않은 데 집안일을 하며 작게 작게 움직거릴 때 아픈 내 고관절은, 아무래도 어딘가로 멀리 떠나지 못해서 생긴 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스피노자 선생도 몸과 마음은 일체여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바로 몸에서도 일어난다고 했으니 이런 진단이 그저 허무맹랑한 추론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면 고관절이 아픈 내 마음 속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정상.jpg


요즘 내 기분은 솔직히 말해 결혼한 지 1년 쯤 되었을 때 느꼈던 어떤 막막함과 유사하다. 8년 가까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음에도, 결혼 후 1년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새로 알게되었을 때의 황망함. 아무도 나를 속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속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을 아시는지. 내가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속은 것 같아 후회하지만, 딱히 되돌려 없던 일로 할 수있는 이유를 명확하게 댈 수 없었던 그 때의 느낌이 떠오르는 것은, 지금 내가 문탁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맡고 있는, 친구따라 시작했다가 그들은 가고 나는 남아 2년차를 맞이해야 하는 큐레이터 활동 때문이리라.

결혼.jpg

지난 주, 파지사유에 레몬박스가 배달되었다. 그 전 같으면 상큼한 레몬차를 떠올리고 침을 흘리며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었겠지만, 이번 만큼은 내 눈앞에 있는 바로 그 레몬들이 세상에서  제일 밉살스러운 녀석들로 보였다. 그 녀석들이 맛있는 차가 되기까지 벌어질 모든 과정의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에 내 손이 가야할 것만 같은 강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안 좋은 시기에 찾아 온 얄미운 녀석!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큐레이터들의 대장격인 둥글레에게 당연히 미루면 될 일이었고, 조금만 더 늦게 왔더라면 의욕 넘치게 파지사유의 음료를 담당하겠다며 새로이 큐레이터를 자청한 느티나무에게 미루면 될 일이었던 것을! 해는 지고 동이 트기까지는 아직 먼 컴컴한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것만 같은 내게, 이 얄미운 녀석들이 찾아 왔던 거시닷!

게다가 일의 주도권 역시, 녀석들에게 있었다. 먼 제주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되어 딱 요 시기에만 얻을 수 있기에 행여라도 상하게하면 안되는 귀한 몸들이기 때문에. 녀석들이 마치 내 어깨를 타고 짓누르는 것만 같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혼자서 생각하지 말라”는 스피노자 선생의 조언에 따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을 월든으로 갔다.


레몬박스.jpg


거기에는 손작업에 열중하는 작업장 친구들과 더불어 마침 그 때 그들에게 낭송 논어를 읽어주고 있는 게으르니가  있었다. 모두들 공자님 말씀을 듣느라 고요하고 숙연하다. 레몬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라, 잠시 나도 그들 옆에 앉았다.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할지 몰라 고민하는 내게 공자님말씀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들리지 않는 공자님 말씀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까, 정말 모를 일이다. (사주 때문일까?)

이런 나의 바램은 아랑곳없이 게으르니가 읽어주던 공자님 말씀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니 나는 말을 꺼내야만 했고, 달팽이와 게으르니 사이에서, 누구에게인지 애매하게 물음을 던졌다.

나: “레몬이 왔는데, 다음 주까지 두면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달: “사람들 모아야지.”

나: “그렇죠…” (그걸 누가 몰라요? 그걸 못하는게 나의 가장 큰 문제라구욧!)

나: “.....언제 사람들이 많을까요?”

게: “금요일날 오전에 주역세미나 있다. 일단 카톡에 올려.”

나: “오영샘이 칼질 잘하는데, 금요일날 오시나…?”

게: “오영샘 팔 아파서 안 돼.”

나: “그렇구나… 글면 토용샘도 칼질 잘하는데….”

달: “토용도 팔 아파”

은방울은 은방울을 싸고 돌고, 월든은 월든을 싸고 도는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뭐랄까, 얄밉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정말 복잡하고 오묘한 기분을 안고 월든을 나섰다. 어쨌든 공자님 말씀을 입에 달고 다니고 주역세미나팀이자 은방울키친에 소속된 게으르니와 월든의 대표장인이자 문탁공식 스피노자적 인간인 달팽이, 그 둘은 설마 어둠 속에서 헤매는 나를 모른척하진 않겠지….라는 믿음과 함께.

(2편에서 계속)


댓글 7
  • 2019-01-22 18:15

    왠지 모르게,웹툰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ㅋ

    다음편을 빨리 읽고 싶다는. ㅎㅎ

    그건 그렇고, 결혼한 후 1년 뒤에 느낀 막막함이 큐레이터 활동때문이었다니.

  • 2019-01-22 18:26

    ㅋㅋㅋ 올 한해 히말의 새로운 면을 많이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팍~~~

    더불어 히말의 변신도 목격할듯 

    응원합니다~ 파지 큐레이터^*

  • 2019-01-22 19:23

    ㅋㅋㅋ

  • 2019-01-22 21:01

    에고고고.....모를 땐 뭘 모르는지도 몰라서 지니치던 일들....

    한 번 알게 되면 모르던 때로 되돌아 갈 수가  없어서,

    해야 하는 일들,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

    그래서 우리의 신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른다잖아~

    그 막막함의 끝에는 히말이 모르던 히말이 있을 터...

    화이팅!!!

     

  • 2019-01-22 21:21

    다음부턴 고민말고 월든으로 Go 하세요.

    해결사들 쫙 깔려있잖아요^^

  • 2019-01-23 10:37

    공자왈~~ 德不孤 必有隣 이라~~~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말씀^^

    히말의 덕을 외롭게 하지 않을 이웃들은 어디 있을까요? ㅋㅋㅋ

  • 2019-01-24 10:58

    아 유 시리어스?

    돈 워리 비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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