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경제이야기> 띠우의 입장발표문

띠우
2019-04-1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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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글쓰기1>            

                                             재미만으로 무언가를 오래 할 수 있나요?       

<그는 문탁에 오기 전까지 혼자서도 나름 잘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문탁에 왔는데 낯선 언어들 덕분(?)에 속으로 매우 당황했다(증여, , 공통감각 등등). 무슨 말인지 번역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삶이 고달파지기 시작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그는 마을경제 개인프로젝트로 막무가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어쩌다 월든 6년차 일꾼이 되어버린 어느 한 사람. 이 글들은 그의 공동체생활기가 될 것이다.>



 

  나는 월든에서 재미있게 산다. 하지만 단지 재미로만 어떤 일을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다. 놈팽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재미란 것이 쉽게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름의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를 좇느라 처음의 재미조차 잃어버리곤 한다. 그때부터는 타성에 젖어 일상을 살아가기도 한다. 늘 똑같은 것이 일상이라고 말하며... 그렇다면 자본주의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월든에서 일하는 나는 어떠한가. 나 역시 만들어낸 의미를 좇느라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누군가로부터 비수 같은 질문이 날아와 꽂힌다. 그런 타성에 젖어 살기에 월든은 수많은 사건과 관계들이 얽히고설키어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매듭이 지어지는 순간이면 새로운 질문이 생기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월든 일을 했던 우리들로서는, 아니 적어도 나로서는 월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여전히 혼란스럽다. 월든의 특이성은 무엇이냐? 차이를 발명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재미삼아 모인 동아리 아니냐? 아니다. 삶이 변하고 있고 그게 나로 드러나지 않느냐. 어디?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데 보지 못하는 것은 너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아니,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 그렇다면... 몇 년째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이란 참으로 괴롭다. 더 뭐라고 해야 하지. 월든의 특이성을 표현하지 못했다고 인정? 그 의미를 좇아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은 곧 나를 부정하는 일이기에 쉽지 않다. 난 뭐하고 있는 걸까. , 이게 바로 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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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탁에서는 2017년과 18년에 마을경제와 관련하여 두 차례의 워크숍이 열렸다. 우리의 역량만큼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조금의 안도와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일말의 답답함이 반복되었다. 나 역시 그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작년 말, 다시 회의가 거듭되었고 배치를 바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공부와 활동이 우리의 실험을 구체화할 힘이 되기에 다시 세미나를 시작했다. 어디선가 다른 일에 능력을 발휘할 일꾼들이 마을경제로만 몰려든다는 곱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막상 모인 일꾼들 사이의 이해관계도 복잡했다. 공부로 활동을 표현하고 싶은 반면, 공부로도 활동으로도 잡히지 않는 어떠한 불확실함 때문이었다. 우리들 사이에서 그 무엇도 선명하지 않았다.

 

  ‘마을경제세미나의 첫 주제는 <사물과의 동맹>이다. 요즘은 누구든지 외롭다고 말을 걸면 대답하는 어플이 있고, 비데가 없으면 볼일도 못 보는 어린이들이 늘고, 버스 정류장마다 내가 탈 버스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친구와의 대화는 줄어들고, 자기 몸 관리도 스스로 못 하며,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와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 이러한 사물의 전면적인 등장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언명 하에 사회전반으로 빠르게 뻗어갔다. 그것이 나는 불편했고 그로 인해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한 느리게 반응하고 가장 늦게 그 무리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반항해왔다. 빠른 변화 속에 반응하지 않고 인간애를 되살리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더 이상 인간 중심이나 근대적 사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많은 것이 얽혀있었다. 사물과의 동맹은 우리 코앞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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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공부를 하면서 다른 질문에 이르렀다. 사회의 변화가 늘 자연(사물)의 변화와 함께 했으며 이를 분리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막다른 길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든의 특이성에 대한 나의 대답 속에는 자기 확신에 찬 해석(인간중심)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비인간 혹은 사물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결국은 인간을 우선하였던 것이다. 작업장, 재봉틀, 옷감, 또 다른 일꾼들, 파지사유, 세미나회원 등등과 맺는 관계가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해 가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미흡했다. 우선 월든의 특이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물을 노동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써 바라볼 수 있는 눈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할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암중모색중이다.

 

  가끔 기대를 가지고 보던 드라마의 결말이 나의 기대와 어긋날 때가 있다. 주로 처녀작을 볼 때 그런 경험을 한다.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작가나 연출가에 대한 접속이 늘다보면 처음과는 달리 익숙해진다. 익숙해짐에도 매번 다른 차이를 발명하는 작가에게 정이 가게 된다. 이런 작품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열린 배치물로 작동하기도 한다. 여러 대상에게 열려있고 어떻게 접속되느냐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한편, 월든의 작업시간은 정해져 있고 비슷한 작업을 반복한다. 반복과 함께 이 행위는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익숙함에도 힘은 발생한다. 다른 질문에 이르는 이유다. 매우 미세하더라도 차이는 생성되고 내가 고민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차이에서 포착될 것이다(다시 삽질?). 실패하더라도, 이 글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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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나는 사람, 공간, 기계, 재료, 책 등등 나와 맺는 다양한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배치 속에서 더 좋은 것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혼자만의 상상이 아닌, 나와 마주하는 모든 것들과 생성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할 때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운영회원을 올해도 못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개인의 역량에 따른 욕망과 공동체가 어떻게 유연하게 관계 맺고 새로운 생성의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불확실함은 불안을 동반하지만 새로운 움직임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익숙하더라도 다시 누군가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부디 나의 글쓰기가 미세하더라도 다른 상상력을 불러오기를.

 

댓글 5
  • 2019-04-12 00:04

    입장발표를 한다고 해서 놀랐어요~ 앞으로 띠우가 쓰게 될 이야기들, 사물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낼 지 궁금합니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띠우. 띠우의 미세한 감각의 차이를 잘 읽어보고 싶어요~

  • 2019-04-12 00:50

    그러게

    Let it be

  • 2019-04-12 09:23

    띠우의 마음이 담겨질 글들이 ... 궁금하고 기대되네요 ^^

    덕분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될 것 같고요

    rabbit%20(36).gif

  • 2019-04-12 09:58

    사물은 물론 사람과도 잘 동맹하기 어려운 제게 띠우샘의 글이 무척 기대됩니다~~  홧팅이요!

  • 2019-04-12 19:08

    이 글에서 보여지는 띠우는 2018년의 띠우와 벌써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

    올해도 뭔가 띠우샘과 하고 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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