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죽은 자의 사치와 산 자의 곤궁

요요
2019-03-02 20:39
458

죽은 자의 사치라는 제목은 정확한 번역일까

최근에 나는 을유 문화사에서 나온 오에 겐자부로의 장편소설 <개인적인 체험>을 읽었는데

그 책에 소개된 오에 겐자부로 연보에는 이 소설의 제목이 <죽은 자의 오만>으로 되어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떤 사람은 =おごり한 턱내지 선물로 번역할 수도 있다고 한다

는 사치라는 뜻과 한턱 냄이라는 뜻이 있다. おごり에 오만, 교만의 뜻이 있기는 하지만

한자가 가 아니라 , 혹은 이다그러니 우선 오만은 제외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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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는 1957, 22세에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의 첫 작품은 동경대학신문에 실린 <기묘한 일>이었다

<죽은 자의 사치>는 그해 8월에 <문학계>라는 잡지에 발표되었다.


두 작품은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기묘한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죽은 자의 사치>에서도 화자는 알바로 돈을 벌어야 하는 가난한 학생이다

<기묘한 일>에서 화자는 대학 부속병원에서 기르던 개들을 죽이는 일을 하게 된다.

<죽은 자의 사치>에서는 의과대학 지하에 있는 해부용 사체들을 새 알콜 용액이 담긴 새로운 수조로 옮기는 일을 하게 된다

앞선 작품에서 능숙하게 개들을 죽이는 개 도살자가 등장하는 것처럼

뒤의 작품에서는 수 십 년간 대학 지하의 해부실에서 시체들의 역사를 함께 하며 동고동락해온(?) 해부실 관리인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구조도 거의 같다.

시체들을 옮기는 일을 하면서 화자는 의식의 소멸로서의 인간의 죽음만이 아니라

완전한 로의 추이를 겪는 시체의 변용-죽음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알콜에 잠긴 이 시체들은 화장터로 직행하는 시체들과 달리 죽음 이후의 죽음, ‘로서의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체들은 단지 인 것만은 아니다

들에게도 살아있는 인간이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종전 직전에 탈영하려다 총을 맞고 죽은 젊은 병사의 시체를 마주한다

그 시대에 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병사와 전쟁전쟁 이후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화자를 통해 우리는 젊은 오에 겐자부로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전쟁을 벌였던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만든 부조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다

<기묘한 일><죽은 자의 사치>도 주인공은 하루 종일 기이한 일을 했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결국 알바비도 제대로 받지 못할지도 모를 상황을 만난다

희망이란, 얼마나 바스라지기 쉬운 것인가

그러니 우리의 화자는 믿을 수 없는 산 사람들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

알콜 용액 속에서 견고한 의 양감을 지닌 그것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알바 동료인 여학생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사실 여학생은 임신 중이었고 임신중절수술을 할 돈을 벌어야했다

일을 하면서 그녀는 자기 뱃속에 있는 것이 수조에 담긴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 다 인간에 틀림없지만, 의식과 육체의 혼합은 아니잖아? 인간이기는 하지만 살과 뼈의 결합에 지나지 않지.” 

그녀 역시 태아도 시체도 인간이면서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학생은 아기를 낳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꾼다. 시체들이 불러일으킨 어떤 인상 때문이다.

수조 속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아기가 죽는 경우에도, 

한번 태어나서 확실한 피부를 가지지 않으면 수습이 되지 않을 거라는 기분이 들었어.” 

만일 여학생의 아기가 태어난다면 그의 출생은 죽은 자들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목 때문에 우리는 이 글을 읽는 내내 죽은 자의 사치란 대체 무엇일까 궁금해 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사체를 트럭에 싣기 위해 온 잡역부들이 시체를 옮기다 떨어뜨린다. 

관리인은 그것들이 화장터로 옮겨지는 처지인데도 사체를 소중하게 다루라고 외친다

그 말을 듣고 잡역부들은 사치스런 것(ぜいたく もの)이야, 이놈들이라고 투덜거린다

여기에서 비로소 사치와 동의어인 ぜいたく가 등장했다

아마도 그런 요구 자체가 터무니없는 사치라는 말일 터이다

시체들이 곧 닥쳐올 로서의 종말을 모른 채 새로운 알콜로 옮겨지는 호사를 누린 것이나

소각하러 가는 마당에도 소중하게 취급하라는 대접을 받는 것이 죽은 자들에게는 사치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낙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의과대학 지하실에서 시체를 옮기는 일을 해야 하는 청년들의 삶은 고단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의학부 교수는 고상한 문학을 논해야 할 청년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대놓고 경멸한다

죽은 자의 사치 때문에 산 자가 맞닥뜨린 곤궁은 더 도드라져 보인다.

죽어있는 이 누리는 것과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누리지 못하는 것의 대비가 더 선명해진다

그러나 아직은 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초기 작품에서 세상과 자신을 향한 어떤 중얼거림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아마 이 중얼거림이 분명한 형태를 갖추고 조금씩 힘이 실리는 것을 앞으로 읽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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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단편집의 뒤에 실린 오에 겐자부로의 후기를 읽어 보았다.

그는 첫 작품인 <기묘한 일>을 전쟁전에 자신이 겪은 경험을 담아 2부로 개작하려 하였으나 

당시에는 능력의 부족을 느끼고 비슷한 테마로 <죽은 자의 사치>를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同工異曲이라는 비판을 얻었고

자신 역시 <죽은 자의 사치>를 그렇게 생각하고 최초로 낸 단편집에서는 그런 이유로 후자를 제외시켰다고 한다.


*同工異曲(동공이곡):재주나 솜씨는 같지만 표현된 내용이나 맛이 다름을 이른다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나오는 말

댓글 2
  • 2019-03-02 20:40

    ㅋㅋㅋ 아르바이*가 금지어라고 해서 알바로 고쳤네요. ㅋㅋㅋ

  • 2019-03-04 05:55

    함께 읽은 글인데 후기로 글의 분위기가 확실히 와닿았습니다. 함께 수업할 때도 후기로 뵐때도 많이 배우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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