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자 장자 덕충부 후기

명식
2019-04-08 23:18
404

 

 

  장자 덕충부의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덕충부 두 번째 시간은 내용을 보다 촘촘히 살피면서 등장하는 개념들을 다른 장들의 구절들과 견주어가며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강좌 시간동안 전부를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특히 여섯 개의 개념-구절들(뒤페이지들에 더 많았지만 시간상.....)을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불언지교不言之敎, 즉 말로 이르지 않는 가르침입니다. 왕태의 에피소드에서 던져지는 질문으로, “어째서 왕태 같은 자에게 그리도 사람들이 모여드는가. 혹 그가 말로 이르지 않는 가르침을 행함으로써 드러냄 없이 마음-심성을 완성시키기 때문無形而心成일까.”에 등장합니다. 이 불언지교라는 말은 노자 도덕경의 2장에서도 나오는데, 그 구절인즉 <그리하여 성인은 무위의 태도로 세상일을 처리하고 불언의 가르침不言之敎을 행하여 만물을 흥하게 하면서도 내가 시작했다 하지 않고, 만물을 낳고 기르면서도 가지려 하지 않고, 만물을 기르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고 공이 이루어져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지 않는다.>입니다.


  여기서 성인이 무위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 이전 구절이 설명하며 이 구절인즉 <있음과 없음은 서로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완성하며, 김과 짧음은 서로 형성되며, 높은과 낮음은 서로 포함하며, 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로군요. 이것을 자연히 구성되는 상대성 속에서 세계가 구성-유지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때, 불언지교란 그 메커니즘을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체화토록 한다는 것일까요? 이 부분은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두 번째는 명물지화이命物之和而수기종야守其宗也인데요. 물지화 즉 사물들의 조화를 명, 피할 수 없는 이치로 생각하고 그 근본을 지키라는 말인데. 여기서 특히 사물들의 조화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잇달아 꼽히는 세 번째 중요 구절 만물개일야萬物皆一也, 즉 만물은 모두 하나라는 구절과 네 번째 중요 구절 유심호덕지화遊心乎德之和, 덕을 조화롭게 하여 마음을 놀게 하다라는 구절. 그리고 이 날 강좌에선 시간상 다뤄지지 못했지만 나중에 나오는 구절 덕자성화지수야德者成和之修也 - 덕이란, 사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까지 지속적으로 조화라는 개념을 가지고 도가적 덕을 풀이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만물은 모두 하나라는 구절과 연계시켜보면, 여기서 혹 조화란 어떤 인드라망적인 형태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다시 앞선 무언지교의 개념과 연결한다면, 인드라망적 조화의 이치를 이르지 않는 가르침으로 행하는 것이 성인의 일이며, 그는 곧 무위의 행함이다. 이것은 유교적 교화와는 분명히 다른데, 유교적 덕의 충만함이 신체의 외형으로 드러난다면 다만 성인은 덕이 충만하여 잔잔한 물과도 같은 수평의 상태를 이루어 외형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잔잔하게 가라앉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가라앉은 것들을 잔잔하게 할 수 있다. (지능지중지止能止衆止. 이것이 다섯 번째 중요 구절이며, 무언지교의 풀이일 것입니다.) 이러한 성인은 천지를 뜻대로 다루고 만물을 내 것으로 삼으며 육체를 한낱 객사로 여기고 귀와 눈을 가상으로 알며 모든 지적 인식을 통일시켜 정신적으로 죽음을 초월합니다. (관천지부만물직우육해상이목일지지지소지이심미상자사호官天地,府萬物,直寓六骸,象耳目,一知之所知,而心未嘗死者乎. 이것이 여섯 번째 중요 구절입니다. )

 



  수평의 상태, 드러나지 않는 덕은 유가에서 말하는 덕과는 대비되는 것으로, 노자 도덕경에서 말하는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며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아는 것도 모른다고 해야 진실로 아는 것이다.” 와도 일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유가의 덕은 결국 외적으로 드러나야 하고 드러나는 것인데 (물론 번지르르한 겉치레를 의미함은 아닙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아는 것은 안다고 해야 진정 아는 것이다”) 노자와 장자 - 도가의 덕은 앞선 왕태, 신도가, 숙산무지, 애태타 등의 예시에서 알 수 있듯 외형의 층위에서 다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 까닭은 결국 외형이란 자연의 도리와 작용이 베풀어준 것이므로 인위에 따른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라는 데서 찾아야 하는 것일 수도.

 

  아무튼 그리하여 여기서 조화의 논의는 무궁無窮절대적 탈영토화와 기관 없는 신체의 층위까지 착륙하는 것 같습니다. 그 김에 덧붙여 들뢰즈의 언어로 덕충부를 조금 풀어보자면, 왕태, 신도가, 숙산무지와 같은 이형의 신체를 가진 이들은 통념적 분절선과는 다른 절단선의 소유자들일 것이고. 어쩌면 유위와 무위의 문제는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사이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행함을 인간의 위를 고민하여 기계와 배치라는 개념에 이르렀던 들뢰즈의 경우와 맞물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추측들을 해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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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2019-04-09 07:16

    충실한 후기네~~

    글구 나는 무슨 교주같군. 쩝.

    德者成和之修也 를 비롯한 덕충부 후반부 이야기, 특히 왕태부분을 2분기 시작할 때 다시 한번 짚을 것임^^

  • 2019-04-09 07:33

    장자는 늘 시간이 부족한듯요~ 

    좀더 질문하고 논의하고 강의들을 시간이 있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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