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 <천개의 고원> 후기, 도덕의 지질학 안녕!

고은
2019-04-03 12:06
465
길고도 길었던 『천개의 고원』 3장 「도덕의 지질학」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나중에 발제문 보실 때 참고하시라고 네 사람의 발제문에 해당되는 책의 쪽수 올립니다.
- 뿔옹쌤 발제문으로 진행했던 첫 번째 시간은 지질학과 유전학의 층위에서 진행되는 지층의 이중분절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봤습니다. 책의 페이지로는 85~95입니다.
- 마음쌤의 발제문으로 진행했던 두 번째 시간은 세 가지 지층화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책의 페이지로는 116~129입니다.
- 세 번째 시간엔 저와 블랙커피쌤이 발제하였습니다. 저의 발제문은 지층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내용으로, 95~116입니다. 블랙커피쌤은 전체를 종합하여 언어로 넘어가는 부분을 다루셨고, 책에서는 129~144입니다.

들뢰즈식 책읽기
제가 발제를 맡았던 지층의 다양성과 통일성에서 개념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이 개념을 확인하는 데에 세미나 시간이 거의 다 갔습니다. 그러나 한 장 안에서 개념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아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셨던 것 같습니다. 들뢰즈 사전세미나에서 『들뢰즈 이해하기』를 읽었을 때 마지막 장을 읽고 나니 비로소 앞의 장부터 한 번에 쫙 꿰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쩌면 『천개의 고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금 잡히지 않아 조금 버겁지만 마지막에 가면 어떤 희열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가 왜 이 책들의 장을 ‘고원’이라고 불렀는지 저는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맨 앞장이었던 「리좀」을 펼쳐봅니다. 
“책에는 대상도 주체도 없다. 책은 갖가지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과 매우 다양한 날짜와 속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이 어떤 주체의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 질료의 구실과 이 질료의 관계들의 외부성을 무시하게 된다.” “기의든 기표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묻지 말아야 하며, 책 속에서 이해해야 할 그 어떤 것도 찾지 말아야 한다. ”(13)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글은 비록 미래의 나라들일지언정 어떤 곳의 땅을 측량하고 지도를 제작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14) 저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책에 얽매이지 않고, 경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려운 책을 써놓고 이런 부분을 앞에 실어둔 두 저자에게 감사를...ㅋㅋ
왜 이렇게 지층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말했을까?
처음에 3장을 읽으면서 내내 했던 고민은 “이장의 제목인 ‘도덕의 지질학’과 이장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이중분절’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였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어떤 ‘환상’을 깨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앞선 두 장에서도 들뢰즈와 가타리는 끊임없이 인간중심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에, 저는 만일 그들이 인간중심주의를 비틀고자 한다면 오로지 자연, 즉 비인간적인 것에 몰두해 이론을 전개할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예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실제로 초반에 들뢰즈는 지층의 이중분절을 이야기하며, 지질학적으로 지층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전적인 지층화로 넘어가 생명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까지도 제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층위의 지층화가 언어에 관한 문제인 것이 드러나자마자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언어야말로 진정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의 ‘환상’마저 시원하게 깨뜨려버렸습니다.
“지질과 윤리학, 생물학과 정치학을 하나의 지평에서 동시적으로 사유할 수는 없을까. 이런 사유의 실험을 통해 ‘사회와 개인’, ‘인식과 윤리’, ‘언어와 사물’이라는 수목적 체계를 교란시키기. <도닥의 지질학>을 난 그런 관점에서 읽고 싶다.”(채운쌤 2013년 여름강좌, 2강)
제 첫 질문은 이장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다시 보니, 왜 이토록 지층/지층화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를 대변하고 있는 조르프아의 지층화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이유도 가지각색입니다. 퀴비에는 지층에는 분명히 다른 유형들이 존재하고 이 유형은 환원될 수 없다며 화를 냅니다. 비알통은 다른 유형들이 그 형태나 본질을 바꾸기는 너무 어려워서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겠냐고 되묻습니다. 저자들의 지층화에 대한 논의는 분명 어떤 것들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자신들의 맥락 위로 확 가지고 와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즉 저자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층이 굳어져 있는 것처럼, 영원한 것처럼, 절대적인 전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자 ‘지층화’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지층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합니다. “지층은 잔여물이지 그 역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세계를 딱딱하게 지층의 결과물로만 보게 됩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 곳에서도 언제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과정에서 무언가를 자꾸만 포착하려고 든다면, 지층화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또 서로서로를, 상황 상황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추상적 기계
마지막 정리를 할 때 갑자기 문제가 되었던 추상적 기계의 층위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써볼까 합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앞서 이야기한 퀴비에의 방식과 추상적 기계의 두 층위는 또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 층위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1) 퀴비에 vs 추상적 기계
퀴비에는 이미 어떤 것을 전제하고 시작합니다. 세상에는 공통적인 형식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전제로 하여 유형을 나눌 수 있다고 일반화 하는 겁니다. 형식의 ‘동형성’ 개념을 부정합니다. 오히려 ‘일치’ 개념에 가까운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조프루아의 접어넣기를 통해 코끼리에서 말미잘로 이행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환원될 수 없는 축, 유형, 분류학상의 문門이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화가 나서 조프루아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사기꾼이고 형이상학자야.”
그러나 지층을 잘 살펴보면 퀴비에의 생각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체의 요소(성분)이 동일할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지층들을 분류할 수 있는 일치된 형식은 없습니다. 오로지 형식적 관계들 또는 연결들이 동일할 뿐입니다. 조프루아가 접어넣기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오히려 접속의 형식이 동일한 덕분입니다. 그것들의 형식이 일치한다고 전제하는 것은 어떤 것을 전제해놓고 분류해버리는 일이지만, 방식에서 유사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도리어 그것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2) 상대적 운동과 절대적 운동의 추상적 기계
저번 시간에 명식이 러프하게 정리를 하면서 상대적 운동의 추상적 기계가 일반화와 연결된다고 설명하였는데요, 추상적 기계라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떤 전제, 일반화, 일치로부터 벗어난 개념입니다. 유형을 분류함으로써 고정시키는 게 아니라, 생동하고 있는 지층을 바라보는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상대적 운동과 절대적 운동에서 추상적 기계는 어떻게 다를까요? 이 움직임이 어느 층위에서 일어나느냐 따라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유전학 층위에서 일어나는 상대적 운동은 지층의 장벽에 부딪힙니다. 저번시간 마음쌤이 유전자 관련해서 설명해주실 때, 그 움직임은 유전자 내부에서 일어난다고 하였던 걸 기억하시나요? 벽에 튕겨져 나오거나 지층들의 관계와 환경 속으로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게 상대적 운동입니다. 상대적 운동에서 추상적 기계는 통합태로 지층 위에 있게 됩니다. 그러나 절대적 운동은 벽을 뚫고 나와 고른판의 형식화되지 않은, 탈지층화된 요소에 도달합니다. 이 층위에서 추상적 기계는 고른판 위에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고른판의 도표를 작성하는 평면태의 양상을 갖는 겁니다. 
제가 잘 설명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혹시 잘못 쓴 것이 있다면 꼭 알려주시길 바래요!
ps, 이건 제가 장자 공부할 때 메모해놓는 것입니다. 저보다 훨씬 잘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렇게만 하셔도 되지 않을까 해서 올립니다. 저는 제가 알아볼 수 있도록 내용과, 핵심 개념어들을 가볍게 적어보았습니다.
KakaoTalk_20190403_120105615.jpgKakaoTalk_20190403_120102047.jpg
댓글 2
  • 2019-04-04 22:47

    '상대적 운동'과 '절대적 운동'에서의 추상기계보다는 그냥 통합태와 평면태가 더 간편할 것 같습니다.

    - 입자들을 방출하고 조합하는 추상적 기계는 통합태와 평면태라는 두 가지 상이한 존재 양태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 한편으로 추상적 기계는 성층 작용에 갇혀 있고 또 특정하게 결정된 지층 속에 감싸여 있으면서 지층의 프로그램이나 조성의 통일성을 정의하고 이 지층 위에서 일어나는 상대적 탈영토화의 운동들을 조절한다. (통합태)

     - 다른 한편으로 추상적 기계는 모든 성층 작용들을 가로지르면서 혼자서 그리고 제힘으로 고른판 위에서 전개되면서 고른판의 도표를 작성한다. 하나의 동일한 기계가 천체물리학가 미시물리학,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양쪽 모두를 작동시키며 절대적 탈영토화의 흐름들을 안내한다. (평면태) (이상 114p)


     제가 일반화라는 표현을 썼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통합태로서의 추상적 기계가 공통적 형식을 추출하는 추상 작용을 하며, 그럼으로써 관련 지층의 통일성을 구축한다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평면태는 물론 탈형식화의 추상 작용으로써  '매끄러운 공간' - 기관없는 신체 - 절대적 탈영토화의 흐름을 이끌고요. 저자들은 분명히 '통합태로서의 추상기계''지층 안에 감싸여 있다'고 썼습니다. 물론 그와 동시에, '평면태적 추상기계'로서 지층을 넘나들며 탈지층화된 판 위에 - 심지어 어떤 지층들 안에 반쯤 선 채로 존재(138p)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때 평면태로서의 추상기계도 머무르며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탈영토화의 흐름을 '인도'하고 고른판 위에서 스스로를 '전개'합니다. 추상적 기계는 그와 같이 작동하는 듯 보입니다. 

  • 2019-04-05 00:46

    제가 이해하기로 중요한 것은 기존의 철학적 사고가 "내용과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 그리고 들뢰즈와 가타리는 일차적으로 이 이분법, 내용과 형식의 이분법을 깨려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때 '이중분절'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 아닐까요? 내용과 표현으로의 이중분절, 그리고 내용의 형식과 실체로의 이중분절, 표현의 형식과 실체로의 이중분절. 그러나 현실적인 언어, 사물들(말과 사물)을 통해서 이것의 복합성, 다양체성을 밝혀내기란 아주 어렵고, 사실상 이것들이 아주 복잡하게 섞여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층은 이러한 복잡성(다층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어떤 요소로 등장합니다. 언어, 특히 기호체계로서의 언어를 이야기하며 푸코를 인용하는 부분을 보면 그 점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주의하고 있습니다. 내용과 표현의 형식이라는 새로운 분류가 기의-기표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러나 들뢰즈와 가타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분법을 잃어버린 말 없는 춤, "이것들은 지층들을 통해서만, 지층들과 관련해서만 존재"합니다. 눈은 [그 지층을 잃어버렸다면] 검은 구멍이다. 하지만 검은 구멍과 눈은 그것들의 지층과 영토성 바깥에서 무엇이겠는가? 정확히 말해서, 우리는 지층들과 지층에서 이탈한 고른판 사이에 이원론이나 피상적 대립을 설정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138)" 이때 <추상적인 기계>가 등장합니다. "<추상적인 기계>는 자신이 그리는 탈지층화된 판 위에 펼쳐져 있다. 또한 그와 동시에 조성의 통일성을 정의하면서 각 지층 안에 감싸인 채로도 있고, ... 고른판(<추상적인 기계>) 위에서 풀려나가거나 춤추는 것은 제 지층의 분위기, 파동, 회상, 또는 긴장을 담고 있다. ...고른판, 또는 평면태는 형식을 부여받지 않은 질료들의 무차별적 집합이 아니며 이런저런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의 카오스도 아니다... 추상적인 기계는 무턱대고 하지 않는다. 연속성들, 방출들, 조합들, 결합들이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138-139)" 그러니 문제는 무언가를 포착하려고 하는 것이 며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의심이라는 생각을 넘어(사실상 이중 집게/ 분절은 그 자체로 포착이 아닌가요?), 나아가 조프루아와 같이 그것의 동형성, 그리하여 <괴물-되기>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지층들 위에서. 혹은 그것과 관련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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