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31. 택산함괘 - 어떻게 만났는지는 물어보면서 그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왜 안물어보나?
영감
2019-04-01 23:48
7179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어떻게 만났는지는 물어보면서 그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왜 안 물어보나?
상경에서
천지만물의 근본을 논하던 주역은 하경에서 인륜의 시작인 남녀관계로 시작한다. 하경의 첫 괘인 택산함
괘에서 인간사 중 가장 복잡 미묘하다는 남녀의 애정을, 주역 답게 시점의 단계별로 적당히 원색적으로
적당히 모호하게 논술하고 있다. 젊은 여자를 상징하는 태兌괘 아래 젊은 남자를 상징하는 간艮괘가 오는
택산함 괘는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을 상징한다. 감상적인 의미의 함(咸)이 남녀관계의 동력을 '느낌’으로
설정하고 느낄 감感에서 마음 심心을 떼어버리니 다 함咸이 되면서 몸과 마음이 부르르 떠는 울림이 되었다. 함
괘가 천지비天地否 괘에서 유래한다고 가정해본다. 빽빽하게 찬 양과 음이 제대로 만난 비否 괘에선 개성이
센 건乾, 곤坤 두 괘가 오만하게 서로 돌아앉아 있으니 되는 게 없다.
물리적으로만 혼합된 이 두 괘를 화학적으로 화합시킨 결과가 택산함 괘다.
천지비를
구성하는 건 괘와 곤 괘가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하여 바깥 효인 삼 효와 상 효를 각각 주고받았을 뿐인데 '매출이
쑤욱' 이 아니고 소녀소남(少女少男)이 만나 감응하는 택산함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서로를 알아 부족함을 채워주니 직관적으로 느끼고 울린다. 이를 상전에서는
이렇게 정리한다. '산 위에 못이 있는 것이 함(咸)이니, 군자(君子)가 보고서 마음을 비워
남의 의견을 받아들인다.(象曰 山上有澤이 咸이니 君子以하여 虛受人하니라.)' 양성이 강한 금속: 나트륨Na과 음성이 강한 비금속: 염소Cl가
만나 외각에 있는 전자를 한 개 주고받아 불꽃 튀는 이온결합을 일으키면서 소금 NaCl을 만들어내는
화학반응과 흡사하다.
함 괘의
괘사, '함(咸)은 형(亨)하니 이정(利貞)하니 취녀(取女)면 길(吉)하리라'에서 ‘利貞’을 정이천은 '서로
감동하는 도(道)는 이로움이 바름에 있으니, 부부(夫婦) 간에 음란함으로 좋아하는 것은 서로 감동하기를 바름으로써
하지 않는 것이며 악(惡)으로 들어간다'라고 풀이하면서 슬쩍 제동을 건다. 이어서 남녀가
감동하면 혼인해야 길하다고 못을 박는다. 정(正)을 주문하고 있다.
정이천의
새까만 후배 철학자인 독일의 이마누엘 칸트는 한 술 더 뜬다. 모든 인격을 단지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할 것을 명하는 그의 정언명령을 따르면, 성적 활동 자체가 부도덕하거나, 최소한 종의 보존이라는 목적을 거스르는 쾌락에 몰두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귀결이다. 과격하다. 하긴 강도한테도 거짓말을 해선 안된다는 양반이니. 미안해진 칸트는 여기서 한가지 타협안을 내놓는데 그것이 결혼이다. 결혼하는
인격들은 자신의 인격을 서로 양도하기로 계약하는 것이므로 따라서 일방적으로 수단화 된 채 인격이 훼손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택산함의
효사는 함 괘 답게 남녀 감응의 단계를 사람의 신체 부위를 가지고 육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 괘인
간(艮)괘는 초육, 육이, 구삼 공히 충동적인 사랑을 무(拇)--> 비(腓)-->고(股)에 비유하며 사뭇 유보적이다. 탐색전 단계에서 엄지 발가락(拇)은
벌써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마음뿐이고 아직 엔진에 시동이 안 걸렸다. 육이에서 감동이 달아오르며 에너지를
제공하는 종아리(腓)가 불끈 작동한다. 실탄을 장전하고 표적을 정조준 하며 사격 명령을 기다린다. 중(中)에 위치하여 신중하게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간 괘의 윗자리인
구삼에서 허벅지(股)까지 감동이 차오르지만 아직도 때가 아니란다.
외(外) 괘인
기쁨의 태 괘에 올라와서야 감응의 주체는 몸에서 마음으로 승격되고 내 괘에서 시작한 말초적인 감응이 비로소 몸과 마음이 함께 감동하는 균형 잡힌
사랑으로 완성된다. 감응의 무게 중심이 몸에서 마음으로 이동함에 따라 한 축이 부족한 다른 한 축을
보완해주고 격려해주며, 치우치지 않은 지극한 진실과 정성의 '지속
가능한' 사랑이 가능해진다. 서괘전(序卦傳)에서도 남녀의 감응을
결혼의 틀에서 설명하면서 그래야 오래간다고 항(恒) 괘를 함 괘의 뒤에 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원제 The Course of Love )' 에서 쉽게 빠져들어간 불타는 초기 사랑으로부터 시작하여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우여곡절 – 의견 충돌, 성, 육아, 권태, 오해, 회의, 외도 - 속에서
어떻게 사랑을 유지하고 살아가는지 또는 가야 하는지를 탐구한다. 소설에서 왜 사람들은 한 쌍이 어떻게
만났는지는 자주 물어보면서 그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안 물어보냐고 반문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랑의
본질을 몸과 마음의 균형에 의한 지속성에서 찾는 것이다. 먼저 몸과 마음이 내재적으로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력 있는 음양의 감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켜켜이 음양이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 중에 하나는 성적 활동의 공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부부로 한정된 상호
독점적인 성적 파트너십을 외부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방편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결혼 제도는 이 부부
됨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보장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신약 성경도 히브리서 13:4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중되어야 하고 부부의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말아야 한다’에서 결혼을 공동체 안에서의 규범으로 정의하고 있다. 인간은, 종족 보존을 위한 원초적 본능과 수신제가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로 전개되는 사회 구성의 두번째 단계인 가정의
기능을 양립시키기 위해, 부부관계를 인륜의 시작으로 꼽는 지혜를 발휘했다. 윤리는 기쁨을 제한하는 실(失)보다 그 기쁨을 보호하는 득(得)이 더 큰 원리에 의해 계속 작동한다. 동양권에서는 이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음란', '문란' 등의 수치스러운 수식어를 동원하여 짐승과 등치 시키면서
규범을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택산함 괘는
몸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남녀 간의 생리적 반응을, 아이의 부산한 발에서 시작하여 입만 남은 노인에
이르는 과정으로 분절하고, 정(正)과 중(中)의 주역 보편적 가치를 녹여 넣었다. 충동적이고 육 적인 남녀의 기쁨을 절제와 배려, 희생에 의한 지속적이고
영 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나아가 군주가 천하를 감동시키는 바름으로 부연하였다. 정이천은 이 세계가 자극(感)과 반응(應)의 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며 인간은 그 속에서 자신의 행위를 결단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감응에 의해 어떤 사물의 움직임은 다른 사물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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