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21. 법정드라마의 주인공-서합괘

느티나무
2018-10-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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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법정드라마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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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깨물어서 합한다

서합괘는 위는 불()이고 아래는 우레(), 불로써 명확하게 밝히고 우레로써 판결하는 괘이이다. 형벌로 깨물어() 씹어서() 화합하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재판과 관련된 괘이다. 그런데 이 괘의 형상을 푼 것이 독특하고 재미있다. 맨 위와 맨 아래의 양이 턱의 형상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양 하나가 이물질이다. 그래서 서합(噬嗑)위와 아래의 턱으로 입 속의 음식물을 씹고 있는데 음식물 중에 질기고 딱딱한 것이 끼어 있으니 그것을 깨물어 씹어서 합하는 모양이라고 풀고 있다. 음식을 먹을 때 딱딱하고 질긴 것이 섞여 있는 경우를 상상해보라. 그것을 부수고 삼키기 위해서는 입을 수십 번을 움직여야 하고 신경을 집중해서 씹고 잘라야 한다. 그 와중에 이가 성하지 않으면 제대로 씹을 수 없거나 오히려 이가 상한다. 또 방심하다간 혀를 깨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음식을 먹는 일은 늘 입이 하는 일이라 습관처럼 무심히 하지만 먹는 음식과 씹는 과정을 알아차리고 집중해 보면 이렇듯 신중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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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 바야흐로 화뢰서합의 시대라 하겠다. 지난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청산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재판관련 기사들이 보도되고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 있는 인물들이 화면을 장식한다. 급기야 검찰과 판사들의 부패와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자질 미달의 판관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명확하고 속 시원한 판결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범죄자와 법정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 일색이다. 재판관이나 형사들이 등장하여 시원한 핵사이다 판결을 하는가 하면 역할이 뒤바뀌어 범죄자들조차 법정에 대한 쓴 소리를 뱉어낸다. 법정의 역할이 바닥으로 추락한 까닭이다. 화뢰서합의 괘에서 이러한 시대에 대한 지혜를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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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형벌과 화합


화뢰서합의 시대에 해야 할 일은 화합이다. 그것도 재판을 통해 형벌로써 화합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천하가 화합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딱딱하고 질긴 고기와 같이 강하고 간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친척, 친구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원망하게 하여 틈을 만들어 천하를 해치는 자들이다. 그러니 마땅히 법과 형벌로써 깨물어 씹어 제거한 이후라야 천하가 화합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또한 법이 있고 형벌이 있는 이유이다. 그러니 재판하는 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혹여 자질이 부족하거나 신중하지 못하여 이가 상하거나 혀를 깨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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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효사들은 각각 범법자의 유형과 그에 합당한 형을 집행하는 법조인의 모습이 담겨있어 한 효, 한 효가 법정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범법자의 여러 유형이 나온다. 어설픈 초범에서부터 상대하기 힘든 강경한자와 재판관보다 더 큰 세력을 가진 자 그리고 죄가 쌓이고 쌓여 그야말로 적폐의 온상인 자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각각의 범죄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판관의 자질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판관들이다.


3. 판관의 자질


판관은 먼저 명확한 분별력을 갖추어야 한다. 재판을 받는 자가 초범인지, 죄질이 어떠한지, 어떤 성향을 가진 자인지를 분별하여 각자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초범에게는 초장에 바로잡아 더 큰 악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충고를 잘 해야 한다. 죄질이 강한 자에게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코를 베어내듯 죄의 깊게 물어 인정하게 만들어 후한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뼈있는 질기고 단단한 고기와 같이 세력이 큰 자에게는 그 세력에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된다. 신중하고 집중하여 곧은 판결을 내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의 갈등을 일으키고 부정을 행했던 자에게 무용지물이었던 귀를 덮는 형벌로써 깨우치게 하고 세상에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판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재판관의 스스로의 자질이다. 그는 바르고 공정해야 한다. 그것은 일시적인 판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의 품행이 공정하고 발라 그 기운이 몸에서 뿜어져야 나와야한다. 그럴 때 그의 한 마디 말은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죄를 지은 자를 깊이 굴복하게 만들 수 있다. 더불어 청렴결백함을 갖추어야 한다. 혹여 얻게 되는 이익이 있더라도 전전긍긍하여 어렵게 여기고 신중해야 한다. 끝까지 올바른 마음을 지키고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효의 판관처럼 자질이 미흡하여 스스로 허물을 가지고 있으면 재판을 받는 사람이 불복하고 원망하여 항소를 하게 된다. 이럴 경우 재판관으로서 명예롭지 못하고 부끄러운 오점을 남기게 된다. 마치 마른 육포를 먹다가 곰팡이가 난 것을 씹게 되어 입맛을 버리게 되듯이 말이다.


판관은 그 역할이 음식을 씹는 이나 턱과 같다. 건강한 이는 평소의 습관에서 나온다. 그것은 비단 이를 잘 닦아야 하는 것에 한하는 것이 아니다. 식습관은 물론 일상적인 생활습관과 생각에까지 모두 관련된다. 이는 잇몸과 턱은 물론 나의 모든 것과 한 치도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판관의 태도는 법정과 국가는 물론 우리 마을과 가족 그리고 내 삶의 모든 것과도 한 치도 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판관이거나 부모이거나 교사이거나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된 후라면 질긴 고기가 화합하고 소화되어 영양분으로 흡수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화합의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인 셈이다.  (글쓴이: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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