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주역> 18회 산풍고-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

고로께
2018-09-20 02:09
604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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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여름 무렵에 남편이 결혼식장을 가다가  쓰러졌다. 그는 보호자 없이 바로 응급수술을 했고, 중환자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여름이 끝날 즈음 퇴원했다. 그 후로 사무실은 병원과 집이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가족들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나는 <주역>의 고()괘를 배우면서, 우리 가족을 덮친 사건은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그 때 이미 남편이 하는 일은 계속 어려워졌고,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었다. 그럼에도 나는 상황을 회피했고 안일하고 게을렀다. 마음속으로 괜찮겠지, 잘 지났는데 더 큰일이 생기겠나?’ 하면서 사태 해결은 뒷전으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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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징후는 서서히, 혼란은 한꺼번에 온다



()괘는 기쁨으로 남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일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서로 기뻐하고 따르며 산다면 좋을 듯한데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일까? 서로 어울려서 살다보면 상대방에게 잘못과 실수를 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그냥 지나치고 버려둔다면, 고인 물이 썩게 마련이듯이 무질서와 혼란이 온다. ()괘는 안일하게 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맞는 것, 병폐가 쌓여있는 혼란한 상황을 얘기한 것이다.


(), 글자를 보면 접시위에 벌레 세 마리가 있어서 좀먹고 갉아먹는다. 나무를 상상하자면 여러 벌레가 나무의 속을 천천히 파먹는다. 나무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도 속은 이미 썩고 삭아서 마지막엔 아무것도 없이 쓰러진다.

고괘(蠱卦)를 상()으로 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된다. 위에는 산이 있고, 아래에는 바람이 있다. 바람이 산 아래 모든 곳에서 휘몰아치니 세상은 흔들리고 어지럽다.

  

2. ()는 정말 형통(亨通)할 수 있을까?



()괘는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괘사에 ()는 크게 선()하여 형통(亨通)하니, 대천(大川)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왜 좋고 형통하다고 했을까?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를 알고 슬기롭게 대처해서 험난한 상황을 잘 건너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괘는 없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이 닥쳤던 때를 기억하고 근본 원인을 파악하여 잘못을 반성하고, 이를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 잘못을 잘 바로잡으면 이를 디딤돌 삼아서, 장차 다가올 더 큰 위험을 방지할 수 있으니 형통(亨通)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하고 순환하기에 이를 자연의 이치라고 한다. ()괘의 위태롭고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자연의 이치대로 하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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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를 잘 다스리며 살자



나는 고()괘의 효사 중에 강한 양()의 자리인 구이(九二), 유약(柔弱)한 군주의 자리인 육오()를 통하여 나와 남편의 관계를 풀어보고자 한다.


구이(九二)는 육오()와 서로 협력하고 호응하는 관계, 쿵 짝이 잘 맞는 사이이다. 능력 많고 똑똑하며, 강한 기운으로 일을 주관해서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뜻을 낮추어 육오() 군주에 순종하고, 일도 도맡아서 바르게 잘한다. 육오()는 군주의 자리, 유순하고 힘이 약하다. 그는 강한 구이(九二) 현자에게 의지 하지만, 또한 순한 성정의 카리스마로 잘 이끈다.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평화롭고 백성은 군주를 따른다. 또한 군주는 모든 명예와 영광을 가진다.



남편은 퇴원 후 혼자서는 아픈 몸으로 사무실 운영을 혼자 할 수 없어 나와 같이 출근한다. 나는 지난 경험을 되새겨 매사에 조심하고 깐깐하게 대한다. 그 때문에 남편은 내게 사업을 하는 융통성이 없다고 핀잔을 준다. 우리 둘의 티격태격 싸움은 계속되지만, 일은 사고 없이 무난하게 흘러간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의 강한 양의 기질이 나타나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먹는 것이다. 남편이 먹는 음식을 심하게 간섭한다. 바깥음식을 통제하고 세끼 모두들 집 밥과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남편도 이렇게 먹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두 내게 맡긴다.



돌아보면 어떻게 나는 그 시간들을 지나왔을까? 문탁에서 친구들과 공부하며 힘든 시간을 잘 보냈다. 내가 어려움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공부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 2
  • 2018-09-21 23:39

    제가 고괘를 만난 때도 문득 떠오르네요. 흐

    쌤~ 고괘의 시대를 건너시느라 고생많으셨네요.

    앞으로는 형통한 일만 있으시길요~

  • 2018-09-28 08:43

    어려운 일을 묵묵히 잘 해결해나가던 고로케쌤이 떠오르네요

    험난한 상황을 잘 헤쳐나가면 형통하다....

    <주역>은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늘 변화하는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정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깨우쳐주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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