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강학원> 4회차 - '축음기, 영화, 타자기' 후기

초빈
2020-04-19 20:42
265

 오늘은 저번 시간에 이어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발제를 하려니 감이 안 잡혀서 오래 헤맸지만...ㅠㅠ 그래도 제시간에 써서 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휴!

 

 아무래도 세미나 인원이 많다보니, 매번 깊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세미나가 끝나는 거 같아 아쉬운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꽤 흥미로운 주제들이 나와서 즐거웠어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관점을 많이 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네요.ㅎㅎ)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위주로 정리해봤습니다.

 

1. 인간의 소통체계, 듣고-보고-쓰는 것이 각각 축음기, 영화, 타자기로 분해되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이 매체들은 다시 결합합니다.(유성영화 등으로) 소통 불가능성을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으로부터 빠져나온 요소들이 한데 모여 마치 새로운 하나의 사람이 태어난듯한 이미지가 그려졌어요. (마치 사이보그나 이브처럼요.)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다면 이 ‘새로운 사람’은 듣고 보고 쓰는 것을 넘어서 걷고 사고하고 말하는 기능까지 인간을 닮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봤습니다.(어쩌면 인간의 것 이상을 표현하게 될지도 모르죠... 너무 멀리 갔나요?ㅎㅎ 역시 이건 상상만으로 그쳤음 좋겠네요..) 

 

2. '인식 자체가 이미 조작된 것'이라는 말이 재미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눈의 착시 현상을 이용한 미술품이나 장난감 같은 게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눈으로 포착하지 못 하는 게 많다는 걸 의미하죠. 여기서 눈보다도 카메라가 더 정확하게 사물을 포착해내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카메라가 포착해내는 것이 진실이냐? 꼭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3. 우리는 사진을 찍으면서 현실의 '일부'만을 담아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피사체가 카메라를 인식하고 '브이'를 취하게 될 경우 더욱 '부자연스러운' 사진이 되죠. (저 역시도 '브이'가 있는 사진보다는 피사체가 의식 없이 먼 곳을 멍하게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 더 아름답다고 느껴요) 우리는 이렇게 현실과 사진(현실이 아닌 것)을 구분합니다. 하지만 키틀러를 여기서 사진 자체도 '진실'이 될 수 있지 않겠냐 질문을 던져줍니다. 

 

 사진 또한 진실이라면...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렇다면 사진을 찍는다는 건 뭘까요? 사진을 찍는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걸까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은 참 기운 빠지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키틀러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머릿속으로 유레카!) 우리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아마도 계속해서 자유의지를 이어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렇게 구성된 신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키틀러의 이야기를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의 질문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분명, 어떻게든 영향을 받을테니까요. 저는 계속해서 그의 질문을 안고 가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제 나름의 답을 얻게 될지 궁금하네요.

 

 

댓글 2
  • 2020-04-19 21:42

    와! 빠른 후기 고마워요. 오늘 이야기 되었던 것들 초빈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잘 이해되네요. 지금 이미 초빈 나름의 답을 얻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

  • 2020-04-20 19:52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는 초빈의 말이 재밌네요 ㅋㅋ
    저는 <논어>를 읽으며 관련 텍스트를 보고 있는데, 문득 저번 세미나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일부 옮겨 적습니다.

      역시나 오늘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을 것이다. 저 옛날 신라시대 최치원이 신발을 벗어놓고 자연 속으로 스며들 때 그러하였듯 지난여름에도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흘러내릴 것이다. 내가 물을 보든지 말든지 물에겐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홍류동 계곡물도 공자의 개천과 똑같이 '제 스스로(自) 그러하게(然)' 흘러내릴 따름인 터다. 내가 계곡을 찾아와 볼 때를 기다려 내 사진의 배경이 되기 '위하여' 존재하고 있음이 아닌 것이다. (...)
      이 뒤집어 보기 체험(배움)이 몸에 익을 때, 기쁨이 온몸을 휘감으리라고 공자는 말한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으랴"라는 말은 너[여기선 자연, 그러나 우리 세미나에서는 사진]가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세계의 주인공임을 깨닫는 순간 내 속에서 충일한 기쁨이 터져나온다는 뜻이다.
    - <우리에게 유교란>, 배병삼 저

    우리는 대부분 주체로 의미를 생산하며 살아가곤 하지만, 이를 역전시켜 그것들이 나를 '위하여 ' 나타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나름으로 세상의 주인공임을 인지하고, 그것과 어떻게 만날지를 고민하는 것.
    그것이 히토의 '사물의 언어'를 듣는 방법이고,
    축음기의 방대한 (히토용어인)'자료'를 만나는 일이고,
    영화 (키틀러용어인)'정보흐름'들의 (히토용어인)'힘'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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