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강학원> 3회차 - '축음기, 영화, 타자기' 후기 (2)

동은
2020-04-18 16:28
380

 

오늘은 키틀러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중에서 서문이 가장 어렵다고 하더군요. 서문에서 키틀러는 우리가 얼마나 매체에 영향을 많이 받는지 문자를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우리가 흔히 매체라고 생각하는 신문, 뉴스, 방송같은 통신매체 이전에 문자 또한 정보를 전달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기록하는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정보들은 문자를 통해서 기록되었죠.

키틀러는 크게 라캉의 정신분석학 개념을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갑니다. 바로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와 타자기, 영화, 축음기가 대응한다는 거죠. 키틀러는 기술매체가 발명되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소설이나 수필, 논문 등등을 통해 보여줍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제가 발제했던 두 부분에 대한 예시를 중심으로 후기를 적어보겠습니다.

장-마리 귀요의 <기억과 포노그래프>는 축음기와 뇌를 함께 생각하게 된 변화를 보여주는 논문입니다. 축음기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저장장치’에 대한 뇌의 기능을 발견하게 되죠. 귀요는 마치 축음기가 바늘로 진동을 새기듯 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신경세포의 길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귀요가 뇌를 ‘의식을 부여받은 포노그래프’라고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의식이 있으면 더 뛰어난 것이거나 포노그래프를 뇌에 못미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지적 인간중심적인 생각으로) 하지만 세미나에서 이것은 오히려 뇌의 무능을 반증하는 내용이라는 얘기가 오고갔습니다. ”여걸적이게도 귀요가 두뇌에 귀속시킨 의식의 속성 자체가-귀요는 두뇌를 무한하게 완성된 하나의 포노그래프라고 말한다- 두뇌를 무한하게 열등한 것으로 만든다.“(69)축음기가 축음기일 수 있는 이유는 포노그래프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의식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이너 마이너 릴케의 <근원-소음>은 축음기가 만들어진 이후로 사람들에게 가능해진 상상을 보여줍니다. 뇌에 있는 무늬가 우연적이게도 주파수의 형상과 비슷해보이기 때문입니다. 키틀러는 릴케의 <근원-소음>을 두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거라는 상상이 가능해졌다고 말합니다. 저는 릴케가 시인으로서 시인의 역할을 고민했던 사실에 감동같은 걸 했는데 키틀러가 릴케의 글을 통해서 하고자 했던 말은 이게 아니었습니다. “릴케 이전에는 누구도 암호화한 적 없는 궤도를 해독하자고 제안한 일이 없었다.”(87) 사람들은 이후로 소리를 저장해 그것을 재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역으로 LP판에 문자나 모양을 새겨넣어 소리를 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불가능한 실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상상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이러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과학자들의 작업이 우리가 가정한 차원의 이 요소[감각]들을 본질적으로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감각을 위나 아래를 향해 즉, 다른 층위로까지 확장하도록 해준 현미경, 만원경 등은 그를 통해 얻어진 부분이 감각적으로는 해석될 수 없기에, 본질적으로는 “체험”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감각이라는 다섯 손가락을 가진 손을 더 활동적이고 더 정신적인 수단으로 발전시키는 예술가야말로 가장 결정적으로 개별 감각-영역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섣부른 추측은 아닐 것이다.“ (84)

이런 본문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저희는 축음기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결정적인 변화인 무의식의 발견에 대한 얘기도 나눴습니다. 축음기 이전까지는 선별된 정보들만 기록되었던 반면, 축음기는 정보를 선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걸러지지 않은 일들까지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무의식이 소음과 연결된다는 지점이 신기했습니다. 

다들 책이 너무 어려웠던 건지 활발한 이야기가 오고가진 못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지난 책에서 슈타이얼이 말한 ‘사물의 언어’가 바로 이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지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끝나버린 것 같네요. 다음 파트인 2장 영화를 읽고 나서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댓글 2
  • 2020-04-19 10:14

    축음기 파트가 익숙치 않아서 동은이도 헤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세미나 시간에 같이 수정한 내용 잘 정리해줘서 고마워요. 영화파트도 쉽지는 않지요,,^^ 그러나 기죽지 말고, 재미있는 부분들을 위주로라도 조금씩 이야기 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2020-04-20 19:35

    동은이 인상 깊었던 부분을 가져와준 덕분에, 같이 더 깊이 이야기 나눠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동은이가 이 책 읽으면서 히토의 <사물의 언어>를 떠올렸다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러고보니 이 파트를 <사물의 언어>에 관심이 있는 동은과 준범이 맡았다는 것도 재미있었구요.
    저는 동은이가 이 연결지점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꼈는지가 궁금해요.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들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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