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베스트 논어 7] Q. 마지막에 가서 엎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은
2020-04-27 09:58
233

 

[나의 베스트 논어]는 문탁에서 논어를 쫌이라도 읽거나 듣거나  또는 외운 친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논어 문장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2주간 매일 소개한 뒤 그 중 '올해의 논어'로  세 문장을 선정할 예정입니다. 열심히 고를 생각을 하며 읽어주세요^^

 

 

 

 

子曰:“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공부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산을 만드는 것과 같다. 한 삼태기의 흙을 보태지 않고 그만두는 것도 내가 그만두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땅을 고르는 것과 같다. 비록 한 삼태기의 흙을 덮어 나아가는 것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 (9-18)

 

 

 

  『논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삼경스쿨에서 강독을 맡았던 편이 「자한」이었다. 무지 열심히 강독을 준비했고 또 이 강독을 계기로 비로소 ‘깍두기’의 탈을 벗을 수 있었지만, 「자한」의 내용은 내게 크게 남아지 않았다. 당시 나는 한자 까막눈이로 한문을 배우지 시작한지 막 1~2년이 되었을 때였고, 잔뜩 긴장한 채로 한자를 하나하나 찾고 해석하기 바빴다. 강독에서 빵꾸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왜 이 한자가 쓰였는지, 옆에 저 한자랑은 뭐가 다른지, 주에서는 이 한자를 뭐라고 풀이하고 있는지, 주석은 왜 이렇게 달렸는지에 대해 공부해야만 했다. 이 말은 왜 했는지, 어떤 맥락 위에서 했는지에 대해 물을 시간과 역량이 내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게 된 문장이 하나 있으니, 바로 저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 한글 해석본도 없는 세주까지 읽어가며, 해석이 맞는지도 틀린지도 모르는 채 주를 단 사람들의 의도를 해석하기 바빴다. 내 해석에 따르면(^^;), 이 문장은 중간에 그치는 것도 남이 막은 것이 아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남이 시켜서 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아, 그러니까 열심히 하라는 말이구나?’하고는 자리에 앉아 강독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우쌤이 질문을 던지셨다. 변화구였다. 여태까지 강독에서는 못 봐왔던 류의, 전혀 준비하지 못한, 나를 너무 당황스럽게 한 질문이었다. “왜 마지막 삽질에서 모든 게 무너졌다고 생각해?” 나는 책을 붙잡고 정답을 찾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어느 주에 이런 내용이 있었지…?’

 

 

  우쌤이 그런 나를 보고 말하셨다. “정답은 없어.” 아 이런, 애석하게도 정답은 책에 없었다.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왜 산을 잘 만들고 있다가 마지막 한 번을 남겨놓고 그만두게 되었을까? ‘그것은 필시 이자가 오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답은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가 얼마나 오만했었는지를 막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쉽게 그만둬왔다고 생각했다. 우쌤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대답하셨었다. 우쌤의 대답을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말이 너무 무거워서 나는 완전히 바닥으로 착 가라앉아 버렸다. 우쌤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그날 우쌤은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질문에 답해보라고 하셨다. (역시 변화구였다. 내 기억에 강독 중에 그런 시간은 거의 없었다.) 다들 나름의 이유를 댔다. 그리고 몇 년 뒤 뉴욕 해완의 집에서 아침마다 논어를 한 구절씩 읽어주며 같은 질문을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도, 역시 다들 나름의 이유를 대답했다. 전부 다 달랐다. 이 문장은 그런 문장이다. 각자에게 지금의 삶이, 그러니까 공부로써의 삶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점검해보게 하는 재미있는 문장이다. 지금 내가 다시 이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요새 '오만'은 나의 삶과 공부에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작년에 들뢰즈와 장자를 공부하며 그렇게 애쓰면서 살지 않겠다고 말했음에도, 나도 모르는 새에 또(ㅠ) 이를 꽉 깨물고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즐겁게 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기 때문이다” 

 

 

  Q. 이자가 마지막에 가서 엎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댓글 5
  • 2020-04-27 10:21

    "즐겁게 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기 때문이다"
    요런 표현! 참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이런 구체적인 문장은 구체적인 근거를 스스로 생각할 때 나온다.
    이를 악물면 치열에 무리가 가니....
    이제 이를 악물지 않고 하는 방법을 고민해봅시다^^
    또는 왜 이를 악물었나를 생각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고.

    • 2020-04-27 14:07

      나도 모르는 새에 또(ㅠ) 이를 꽉 깨물고...
      저는 이 문장이 더 좋아요
      나도 어쩔 수 없는^^ 그래서 슬픈^^ 그래서 기쁜^^

  • 2020-04-27 11:36

    오무나... 베스트 문장이라 겹치는 경우가 있을 거라 예상은 했는데... ㅎㅎ
    그럼에도 고은이의 재해석은 공감이 가게 적확하네요.

  • 2020-04-28 10:48

    공부 넘나 잘하는 고은에게 보내는 나의 일침:

    공부를 하지 말고 탐구를 하숑~~~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숑~~~
    난 뉴욕에서의 너의 아침 논어가....넘...지루했다는^^

  • 2020-04-29 05:00

    “즐겁게 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기 때문이다”
    : 여기 이를 악물고 있는 또 다른 1인 추가요~~~~~~~~~~~~!
    그래서 저는 요즘 친구들한테 '이를 악물어봐야 니 이만 상한다, 그리고 그거 보고 있는 니 친구들 너무 괴롭다~~' 는 지청구를 배부르도록 들으면서 ㅠㅠㅠ
    그 지청구의 뜻을 살피고 살피느라... 흑흑흑... 고은의 저 문장이 문득 위로가 되었음.... 우리.... 힘냅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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