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소학읽고 인싸되기 ⑴ 예禮, 처세술입니다

고은
2019-03-19 11:44
495





*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청년들이 길위기금에서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다섯 명의 청년들이 매주 돌아가며 세 달 동안 저마다의 주제로 세 개씩의 글을 연재합니다글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고은의 보릿고개 프로젝트, 소학읽고 인싸되기 




예禮, 처세술입니다

 

 






    2013년 3월 29일 금요일, 아직 쌀쌀하지만 햇살은 좋음


    갈까 말까 고민 했던 동기 엠티에 다녀왔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선발대로 출발했을 때까지는 들떠있는 분위기에 적응한 것 같았지만, 동기들이 한 데 모이고 나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과장된 몸짓으로 분주하고 정신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 언제, 어떻게 끼어들어야 하는 걸까? 멀리서 눈이 마주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와는 인사를 


    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인싸되기는 글렀을까? 앞으로 대학생활이 걱정된다. 


1_720x479.jpg




 『소학小學』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곤란을 겪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어려서 사촌오빠와 나이가 비슷한 삼촌에게 반말을 했다가 혼났을 때, 문탁에 들어와 선생님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했을 때…. 이런 기억은 꽤 오래도록 남곤 하는데, 그 이유가 꼭 상황을 잘 모면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 뒤에는 늘 사람과 관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고민이 뒤따라온다. 

 일상에서 이 같은 곤란함을 겪는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닌 듯하다. SNS에서는 사회초년생이나 청장년층이 온갖 관계로부터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글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심지어는 유행어도 등장했다. SNS에서 쓰이기 시작한 ‘인싸’라는 말은 요즘 TV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소학』은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잘 지내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담긴 책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관계 때문에 덜 괴로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사람들과 부대낌 없이 지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인싸가 될 수 있을까?








작지만 큰 일



 『소학』은 어린이를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소학』의 가장 유명한 문장은 ‘쇄소응대灑掃應對’(물 뿌리고 비질하고 응대함)이다. 과거 작은 사회였던 집 안에서 먼지 날리는 마당에 물을 뿌려서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대하는 쇄소응대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소학』에는 일상에 관한 내용이 많다. 책의 머리말(총론總論)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대학大學’이 일의 이치를 밝히는 것(發明此事之理)이라면 ‘소학’은 일상적인 일(事)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치라고 해서 더 중요하고 위대한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서 더 비루하고 천근淺近한 것도 아니다. 

 언뜻 보기에 ‘쇄소응대’는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저학년이 <바른생활>과 같은 책에서나 배울 법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머리말에서는 사람이 나이가 아무리 들었다고 하더라도 『소학』을 읽지 않았다면 반드시 『소학』을 공부할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일상적인 일은 어린이가 배워야 할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배워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학의 작다小라는 단어는 학동의 어린 나이를 의미한다고도, 크고 중요한 일이 대비되는 작고 덜 중요한 일을 의미한다고도 하기 어렵다. 일상적인 일이야말로 모든 일의 기본이 된다는 뜻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_720x479.jpg

▲ 길드다 판 쇄소응대, 페인트 뿌리고 붓질하기

 『논어論語』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잘하고, 평소에 행동이나 말하기를 조심하는 등 일상을 잘 꾸려나가고 난 뒤에 여유가 있거든 공부하라고 말한다. 학생일 땐 공부하라고 집안일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취준생일 땐 공부하느라 바쁘다면 방을 어지르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 오늘날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듯하다. 또 철학, 과학, 미학과 같이 고원한 공부는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만, 일상적인 일에 대해선 공부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같은 모습과도 차이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일상적인 일이 세상의 이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걸까? 일상적인 일에 힘쓰지 않는다면 뭐가 문제라는 걸까? 자포자기自暴自棄, 스스로 방종하도록 그냥 놓아버린단다. 밤마다 술을 먹고 정기를 소모시켜도, 가시를 마음에 품고 사람들을 대해도, 해가 떠있는 동안 반쯤 정신을 놓은 채 몽롱하게 시간을 보내도 스스로는 별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에서 고원한 공부에 빠지기까지 한다면? (아…)

 여기서 자포자기 하는 사람의 반대는 스스로를 꽉 부여잡는 사람이 아니다. 부모님한테는 이렇게 해야지, 친구한테는 저렇게 해야지 하는 각오로 스스로를 부여잡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십상이다. 도처에 예기치 못한 일이 도사리고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그에 맞는 공식을 만들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다. 이때 스스로를 포기하는 사람의 반대는 억지로 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도 자연스러워서 어긋나는 것이 없는데, 마치 물이 온갖 굴곡을 만나도 편안하게 흘러가는 것과 비슷하다. 막히면 고이고, 틈이 있으면 새어 나오고, 만날 일이 있으면 스며들고, 가파르면 빠르게 완만하면 느리게 움직인다. 누군가를 만나 어색해 당황할 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어 괴로울 일도 없다. 흔히 인기 많은 사람을 ‘인싸’라고 부르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고 관계의 고민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를 만나도 물처럼 자유로운 사람이야말로 ‘인싸’라고 부를만하지 않을까?








소학의 처세술



 『소학』을 보면 옛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관계를 어떻게 맺었는지, 어떻게 ‘인싸’가 되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옛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살피는 게 오늘날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죠?” 『소학』에 나오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확실히 낯설다. 이를테면 자식은 부모님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야 하며, 할 수 없이 떨어지게 된다면 있을 곳을 정하고 알려서 부모님이 덜 걱정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단다. 해외여행 가기 며칠 전에 대충 알리고 훌쩍 떠나버리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소학』의 이런 이야기를 관계의 공식이나 고리타분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묻고 고민한다면 조금 달라진다. 

 물론 어려운 때일수록 해결방법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지지만, 사실은 어디서도 관계에 대한 정답이나 기준을 찾을 수는 없다. 어렸을 때 존칭에 대한 감이 없어서 어림잡아 나이로 그 기준을 삼곤 했다. 늙어 보이는 사촌오빠에게 반말을 해야 하니, 당연히 젊어 보이는 삼촌에게는 반말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친인척 간의 관계라는 새 기준을 익힌 후 삼촌에게 다시 실수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이의 위계를 의식적으로 거부했던 대학교 안에서나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생님 앞에서 그 기준은 다시 무용지물이 됐다. 『소학』 역시 위급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복잡한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고생한다며 위로해주지도 않는다. 나는 『소학』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건 관계의 공식이라기 보단 상대방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소학』은 상대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매번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적당함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읽었던 교과서에도, 성인이 되고 읽었던 철학책에서도 이토록 일상에 대해 세세하게 말하는 경우를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일상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필요성을 느꼈다 하더라도 그런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일상을 살피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정말로 일상적routine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옆에 있는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 친구, 어른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나를 찾아내고 어디서 나를 바꿔나갈 것인가? 

3_720x479.jpg

▲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처세는 태현이처럼

 또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요즘 누가 자기를 포기하나?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말해줄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다. 심리상담가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묻고, 사주가에게 자신의 앞날을 듣고 싶어 하고, 인터넷에서 자신의 성향을 알려줄 테스트 사이트들을 찾는다. 어떻게 지금 닥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어떤 미래를 그리면서 살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건 모두 남이다. 그것도 나와 크게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생판 남이다. 

 생활메뉴얼 『소학』에도 분명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는 모두 나의 일상으로부터 즉 나의 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일상을 함께 하는 관계이자, 나의 거울이자, 나를 나이도록 해주는 이들로부터 말이다. 나라는 존재는 관계와 분리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보통 자신을 소개할 때 기호나 성향으로 설명한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 레오파드 무늬는 싫어하는 나, 낯가림이 심한 나. 하지만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로도 설명할 수 있다. 부모님의 딸인 나, 새은이의 언니인 나, 동은이의 친구인 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SNS에서도 누군가들의 친구로 소개되고, 또 다른 사람의 친구가 되길 추천받고 있다. 

 마을 서당에서 읽히기 위해 『소학』을 축소해 만든 『사자소학』은 나를 구성하는 관계들을 쭉 살펴본 뒤에서야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옴으로써, ‘나’라는 존재가 관계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남에게 도움을 받아 찾아내야 하는 ‘진정한 나’라는 존재는 없다. 나는 관계 속에 놓인, 상황에 처한 여러 축들 중 하나의 축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완전하고 온전한 나’라는 존재도 없다. 소크라테스의 말마따나 누구든 언제나 부족하고 불완전하기(無知) 때문에 구축해 나가야할 뿐이다. 즉 나의 일상을 살핀다는 것,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나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이 말은 나의 일상을 살피는 것이 나의 관계를 돌아봄으로써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학』의 처세술은 자기탐구나 자기관리와 분리되지 않는다. 






4_720x479.jpg

 ▲ 멀고도 험한 인싸의 길, 으쌰으쌰

고도 험한 인싸되기의 길



 엄청난 친화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거나, 유행을 잘 좇으면 인싸가 될 수 있는 걸까? 그렇게만 한다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별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을까? 주변에서 인싸라고 불리지만 막상 당사자는 스스로 인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다른 사람을 인싸라고 칭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인싸라고 자부하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싸’는 내부에 위치하고 있음을 지칭하는 단어 inside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니까 인싸란 관계 내부에 위치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관계와 나를 따로 떼어놓지 않고 관계 안에서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일상-관계를 잘 살펴서 스스로를 구축해나갈 수 있는 사람을 인싸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소학의 처세술을 다른 말로 하자면 적절함의 정도를 알고 그를 지키는 것인 예禮이기도 하고, 동시에 인싸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대학을 다니는 동안 인싸였지만 아싸였다. 여러 사람들과 두루 잘 지냈고, 아는 얼굴도 많았을 뿐더러 내 친구들은 나를 인싸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아싸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대개 긴장한 상태였고 부자연스러웠을 뿐 아니라,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이런 저런 도식들을 세워보고 공식에 나를 끼워 맞춰보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긴장상태에 빠지게 할 뿐이었다. 물론 그때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고 크게 나아진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면 긴장하고 때때로 스스로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소학』을 읽으며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공식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 아주 자잘한 일상의 관계로부터 자신을 살피려고 한다는 점, 어제보다는 내일 손톱의 떼만큼이라도 달라지려고 한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인싸가 되는 여전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소학』은 인싸가 되고 싶어 하는 나에게 혹은 여러분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댓글 6
  • 2019-03-19 21:01

    하하~

    작년에 함께 서당에서 '쇄소응대'를 하던 시간이 떠오르네요.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우리가 이렇게 배우고 있었나봅니다.

  • 2019-03-22 14:37

    음..나이가 들어갈수록 관계라는 것이 더 어럽게 다가왔는데

    고은의 글을 보고 소학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드네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낯설음이랄까요..

    당장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야겠어요~^^

    • 2019-03-22 22:56

      앗 은주쌤...! 댓글로라도 오랜만에 뵈니 좋네요 ㅎㅎ

      선생님께 소학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했다니, 영광입니다!

      msn039.gif

  • 2019-03-23 13:23

    친구들이 생각하는 고은은 인싸였는데 스스로는 아싸라고 생각했다는 말, 인상깊네요.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스스로 불편하고 부자연스럽다고 느낄 때가 참 힘든 거 같아요. 쇄소응대는 어느 상황에서나 외적 공식이나 기준이 아니라 내적 인과성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배움의 과정이자 수련의 과정을 일컫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규범을 강요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군요. 소학에서 읽어낸 자기 탐구와 자기 관리의 기술, 한 수 배웠습니다. ^^

  • 2019-03-28 00:39

    엄마 나는 인싸가 될 거야!! 

    =>그럼, 소학을 읽어봐. 

    으윽 이렇게 말해줄 걸. ㅎㅎ

  • 2019-04-12 09:31

    동양고전으로 보릿고개를 넘고있는 고은, 응원!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713
<북콘서트>옛이야기 낭송책 4권 출판기념 파~뤼에 초대합니다~
여울아 | 2020.11.12 | 조회 2076
여울아 2020.11.12 2076
1712
올가을 패셔니스타 한번 돼봐? -복경매의 후유증^^ (6)
문탁 | 2020.10.24 | 조회 1071
문탁 2020.10.24 1071
1711
홍은전의 <나는 동물이다>와 고병권의 <두번째 사람 홍은전> (3)
문탁 | 2020.10.12 | 조회 1560
문탁 2020.10.12 1560
1710
<마마’s 테이블> ZOOM 토크 후기 (4)
초빈 | 2020.09.27 | 조회 893
초빈 2020.09.27 893
1709
문탁 강의실에 공유기 달았습니다. (4)
가마솥 | 2020.09.19 | 조회 832
가마솥 2020.09.19 832
1708
[청년과 가족③] 그런 사랑 어디 없습니다 (2)
고은 | 2020.09.18 | 조회 878
고은 2020.09.18 878
1707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서 소식지가 왔어요
문탁이층 | 2020.09.03 | 조회 872
문탁이층 2020.09.03 872
1706
8월30일~9월6일 파지사유와 문탁 이용안내
요요 | 2020.08.30 | 조회 1233
요요 2020.08.30 1233
1705
10인이하 세미나엔 줌 말고 이 화상채팅 플랫폼을 써보는게 어떠세요? (3)
동은 | 2020.08.30 | 조회 2115
동은 2020.08.30 2115
1704
상추쌈출판사에서 온 책 선물-잘가, 석유시대 (1)
2층공부방 | 2020.08.27 | 조회 1236
2층공부방 2020.08.27 1236
1703
<수요힙합> 신나는 건 싫은데, 그루브는 좀 타고 싶네요 (1)
송우현 | 2020.08.12 | 조회 771
송우현 2020.08.12 771
1702
고전장편세미나의 동학, 파랑의 책 <박경리의 말> (3)
기린 | 2020.07.20 | 조회 620
기린 2020.07.20 62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