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1968년, 어떤 그리고 모든 혁명의 질문 <1> “자유인”

명식
2019-03-05 15:03
649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청년들이 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다섯 명의 청년들이 매주 돌아가며 세 달 동안 저마다의 주제로 세 개씩의 글을 연재합니다글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명식의 보릿고개 프로젝트 : 1968, 어떤 그리고 모든 혁명의 질문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이것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반드시 던져지는 질문이다. 미지의 한걸음을 앞두고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지금 하려는 일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미 몇 번의 실패를 지켜봐온 사람들에 의해.

그는 곧 다시 새로운 질문들을 낳는다. 만약 가능하다면, 세계는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무엇이 필요한가? 세계를 바꾸려는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글과 이어질 두 개의 글은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이것은 1968년의 이야기이자 2019년의 이야기이며, 그보다 더 많은 해의 이야기이다. 그 흐름에 닿아있던 모든 사람들의 문답이자 나 자신의 문답이다.

  이것은 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지고 가야 할 질문의, 지금 이 순간 스쳐가는 대답이다 





  < 1 > “자유인

   지금 우리 국민은 차원이 전혀 다른 혁명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새롭고도 품격이 높은 혁명입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어떤 나라에서도 없었던 혁명입니다

 

     - 문재인, 2016.12.10. <촛불혁명을 정치가 완성해야 합니다>

 


  



   1968년은 많은 것들이 변화한 해였다.


   대개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 이름을 붙일 때 그것이 일어난 장소나 중심인물의 이름, 사건의 성격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그 해에는 세계 각지에서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그 중심인물이라 할 만한 이를 지목하기도 어려웠으며 결이 다른 사건들이 제각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그 해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붙일 수 있었던 유일한 이름은 사건들이 일어난 연도뿐이었다.

 

   68혁명.

  그러나 실은 그 연도조차도 그 사건들을 담아내기에는 불완전하다. 그 사건들은 68년에 시작되지도 68년에 끝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1945년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1967년 볼리비아의 라이게라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또한 나는 이 이야기를 1968년 프랑스의 낭테르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또 그 외 많은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다만 끝맺을 곳을 찾기 어려울 뿐이다.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말했듯 투쟁은 원과 같아 어디서나 시작할 수 있고 결코 끝나는 법은 없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과연 어떻게 써야 할 지 오랜 시간 고민해야 했다. 어디서 시작하여, 어떤 흐름들을 골라내고, 무엇과 이을 것인가? 하지만 마냥 고민하고 있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세 곳 모두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1945, 폴란드 아우슈비츠

  그 해는 두 번째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꼭 칠 년째가 되는 해였다.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전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와 태평양으로 번진 전쟁은 무수한 목숨을 앗아갔다. 파리가 함락되기까지 36만이 죽고 다쳤다. 레닌그라드에서는 420. 스탈린그라드에서 다시 200. 엘 알라메인에서 45. 쿠르스크에서 130. 난징에서 30. 바르샤바에서 25. 노르망디에서 25. 베를린에서 120.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20.

  그리고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와 다른 유대인 수용소들에서 350.

  

  전쟁은 7300만 명을 갈아마셨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고통스런 삶을 남겼다. 더하여, 몇몇의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죽음과 유령들의 세계에 누워있다. 문명의 마지막 흔적은 우리 주위에서, 우리 내부에서 사라져버렸다. 승승장구하던 독일인들이 시작했던, 인간을 동물로 만들려는 작업은 패배한 독일인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인간을 죽이는 건 바로 인간이다.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도, 부당함을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거리낌 없이 시체와 한 침대를 쓰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옆 사람이 가진 배급 빵 4분의 1쪽을 뺏기 위해 그 사람이 죽기를 기다렸던 사람은,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미개한 피그미,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보다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전형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263p)



 프리모-레비는 토리노 대학에서 화학과 수석을 차지한 이탈리아계 유대인이었다. 그는 1943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파시스트 민병대에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끌려갔고,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는 생존을 대가로 대답을 요구받았다.

  

  이것이 인간인가.



 

01.jpg

 ▲ 『이것이 인간인가의 커버이미지

  그 질문은 그가 쓴 첫 번째 회고록의 제목이자,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삼 년의 시간 동안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그는 가스실 행이 결정된 동료 옆에서 자신이 선택되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신께 기도하는 남자를 보며 이 질문을 던진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이따금씩 추레한 자신들에게 경멸의 눈짓을 던지는 독일 여성들을 보며 이 질문을 던진다. 독일 군인들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대에 오른 동료, “동지들, 내가 마지막이오!”하고 최후까지 외친 그 용맹한 남자의 죽음 앞에서 한 마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독일인들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그 앞을 행진해 지나쳤던 자신을 향해 이 질문을 던진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뒤에도 독일인들에게 증오를 표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되풀이했고, 1987년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 질문을 던진 것은 그만이 아니었고,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도 그만이 아니었다. 대답을 요구받은 것은 인류였다. 인간은 어디로 갔는가? 만물의 영장이며, 진리의 탐구자이자, 이성과 지성을 지닌 고결한 인류는 어디로 갔는가? 그러한 인간은 어디가고 서로가 서로를 갈아 마시지 못해 안달하는 짐승듦만이 여기 남았는가? 이러한 참극을 벌여놓고도 진리와 이성을 운운할 자격이 인간에게 아직 남아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으며, 무엇으로 세계 안에 존재해야 하는가?


   1945815, 일본 제국의 항복을 끝으로 전쟁은 끝이 났다. 모든 사람들이 종전의 기쁨에 도취되었고 2년 후 실시된 마셜 플랜은 막대한 돈을 유럽에 뿌리며 빠르게 전쟁의 상흔을 지워나갔다. 그로부터 불과 20년도 되지 않아 서구세계는 유래 없는 풍요를 맞이했고, 사람들은 - 적어도 겉으로는 - 빠르게 전쟁의 기억을 지워나갔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여전히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책무를 잊지 않았고 레비가 그러했듯 인간에 대한 물음을 되풀이했다. 누군가는 인간도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세계의 구조 속에서 다른 대상들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인간이 선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락하고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한 유럽에서 논쟁은 거듭되어 이어졌다.

  그리고 논쟁이 불붙던 1960년대 말, 대서양 건너편에서 한 인간이 죽었다.

  그 인간의 이름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였다.






  1967, 볼리비아 라이게라

 

  “떨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라! 당신은 단지 한 명의 인간을 죽이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그를 처형한 젊은 군인 마리오 테란은 마지막 순간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온몸을 떨었다.

 

  그의 눈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매혹당했습니다. 나는 크고 위대한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장 코르미에, 체 게바라 평전686p)

 

  마리오 테란은 술을 마시고, 다시 몸을 떨다가, 눈을 질끈 감고서 가까스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게 체 게바라는 죽었고 위대한 인간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마리오 테란은 이듬해 4월 투신자살하여 삶을 마감했다.




02.jpg

체 게바라의 시신을 살피는 군인들




  67년의 일이었다. 68혁명이 시작되기 불과 1년 전의 일이었고, 이후 수 년 간 이어질 숱한 혁명가와 운동가들의 죽음에 앞선 전주곡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곧 전 세계로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 특히 유럽의 젊은이들의 심장에 불을 당겼다. 그가 게릴라였고, 혁명가였으며, 혹은 조각 같은 미남이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체 게바라라는 한 인간의 삶이 보여준 가능성과 확신 때문이었다.

  라이게라 마을에서 마리오 테란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아홉이었다. 그로부터 16년 전, 그의 나이가 스물셋이었을 때 그는 졸업을 앞둔 의대생이었으며 호흡기가 필요한 천식환자였고 방탕한 젊은이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나 의사의 길에 단 한 발자국만을 남겨놓고 있던 그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남미 대륙의 여행길에서 비탄에 빠진 남미 민중들의 삶을 목도했고 혁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55, 그는 평생의 동지인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고, 56, 16명의 동료들과 함께 쿠바로 잠입했으며, 59, 3년 동안 정글을 헤맨 끝에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전복시킨다. 그리고 65, 그는 관료로 남기보다 세계 또 다른 곳에서 혁명을 일으키고자 쿠바를 떠났고, 67, 볼리비아에서 혁명을 일으키려다 체포되어 죽었다.

03.png

사르트르와 체 게바라의 대담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두고 이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체 게바라가 거둔 성공과 과오에서 비롯한 말은 아니었다. 그는 의사라는 엘리트 지식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혁명가가 되기를 선택했고, 불가능해 보이는 쿠바 혁명을 실현시킴으로써 인간의 선택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였으며, 혁명을 성공시킨 뒤에도 마지막까지 주변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혁명에 나서 죽었다. 일찍이 사르트르는 선택하여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주장한 학자였고, 체 게바라의 삶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인간상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풍차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처럼

   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

   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

                                                                                               (체 게바라, 653월 쿠바를 떠나며)

 

  ‘인간체 게바라의 삶은 그 자체로 레비의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다. 동시에 2차 대전 이후에 태어나 기성세대의 모순을 응시하며 자란 젊은이들을 향해 던져진 하나의 선언이었다. 이미 서서히 세계 곳곳에 일고 있었던 저항의 불길 속에 체 게바라의 죽음은 하나의 확신으로 던져졌다.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하여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을, 또한 세계를.

  그럼으로써 인간은 정녕 자유로운 존재다.

  어쩌면, 68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그 운동의 흐름들을 어설프게나마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것은 68년이라는 연도가 아니라, 바로 그 확신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프랑스에서는 그러했을 것이다.

 

  1968, 프랑스 낭테르 대학

 

  68혁명의 시작을 추적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 시작점을 프랑스의 낭테르 대학으로 잡는다. 낭테르 대학은 급격히 늘어난 대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파리 외곽에 새로이 지어진 대학이었는데, 수용 가능한 학생 수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을 받으려 한데다 지리적 위치 탓에 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심각하게 부족했다. 그 때문에 대학은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여러 권위주의적 규칙들을 만들어야 했고, 그 중 하나가 남학생들은 여학생 기숙사를 방문할 수 없다는 규칙이었다. 68혁명에 대하여 특히 프랑스에서의 움직임을 중점적으로 보는 이들은 바로 이 규칙이 혁명에 불을 지폈다고 설명한다.

  

  681, 프랑스체육청소년부 장관인 프랑수아 미소프가 낭테르 대학 수영장의 완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학을 방문한다. 그 때 한 학생이 장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 콘벤디트였다.



  “장관님, 청년 문제에 관한 당신의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600쪽짜리 보고서에 청년의 성 문제에 대한 내용은 한 줄도 없더군요. 왜 청년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선 다루지 않습니까?”

   장관은 그에게 수영장에나 뛰어들어서 머리 좀 식히라고 대꾸했다.

04.jpg

빨갱이 대니라고 불렸던 68 당시의 다니엘 콘벤디트(다니엘 콩방디)

  다니엘 콘벤디트와 그의 동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위를 벌이고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그들은 점점 더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대학의 고루한 기숙사 규칙은 물론 지구 반대편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을 펼쳤고, 프랑스 정부의 대학의 산업화에 맞섰다. 322, 마침내 학생 그룹은 낭테르 대학의 행정건물을 점거한다. 그들의 강령은 모든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다. 지도부는 없었고, 그 누구나 발언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묘했다. 즐거우면서도 심각했다. 구석에는 수염을 기른 한 젊은이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 토론이 열기를 띠자 다른 학생들이 그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샌드위치와 맥주병이 든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 토론은 비판적 대학, 반제국주의 투쟁,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 구조를 조명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구조를 폭로할 수 있는 상황과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크리스 하먼, 세계를 뒤흔든 1968, 123-124p)

 

  학교 당국과 프랑스 정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낭테르 대학을, 뒤이어 파리대학교 전체를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무장경찰을 투입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대응이, 결정적으로 시위를 확산시켰다. 불과 수백에 불과했던 학생그룹은 경찰의 과잉진압 속에 수천으로 불어났고, 다시 프랑스 전역의 대학생들이 호응하면서 수십만으로 불어났다. 거기에 다시 교사들과 젊은 노동자들이 가세했다. 드골 정부는 격노했고 프랑스 공산당과 노조는 당황했다. 이들의 운동은 우파 정부는 물론 좌파 지도부도 통제할 수 없었다.


  5월이 찾아왔다.

  파리에는 스물다섯 개의 바리케이트가 세워졌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실시간으로 쉴새없이 학생들의 움직임을 중계했다. 대학과 공장은 점거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마비되었다.






  1968,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이탈리아 피사, 이탈리아 밀라노……

 05.jpg

댓글 1
  • 2019-03-13 11:08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 편이 기다려지네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713
<북콘서트>옛이야기 낭송책 4권 출판기념 파~뤼에 초대합니다~
여울아 | 2020.11.12 | 조회 2084
여울아 2020.11.12 2084
1712
올가을 패셔니스타 한번 돼봐? -복경매의 후유증^^ (6)
문탁 | 2020.10.24 | 조회 1074
문탁 2020.10.24 1074
1711
홍은전의 <나는 동물이다>와 고병권의 <두번째 사람 홍은전> (3)
문탁 | 2020.10.12 | 조회 1564
문탁 2020.10.12 1564
1710
<마마’s 테이블> ZOOM 토크 후기 (4)
초빈 | 2020.09.27 | 조회 898
초빈 2020.09.27 898
1709
문탁 강의실에 공유기 달았습니다. (4)
가마솥 | 2020.09.19 | 조회 837
가마솥 2020.09.19 837
1708
[청년과 가족③] 그런 사랑 어디 없습니다 (2)
고은 | 2020.09.18 | 조회 880
고은 2020.09.18 880
1707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서 소식지가 왔어요
문탁이층 | 2020.09.03 | 조회 878
문탁이층 2020.09.03 878
1706
8월30일~9월6일 파지사유와 문탁 이용안내
요요 | 2020.08.30 | 조회 1238
요요 2020.08.30 1238
1705
10인이하 세미나엔 줌 말고 이 화상채팅 플랫폼을 써보는게 어떠세요? (3)
동은 | 2020.08.30 | 조회 2119
동은 2020.08.30 2119
1704
상추쌈출판사에서 온 책 선물-잘가, 석유시대 (1)
2층공부방 | 2020.08.27 | 조회 1239
2층공부방 2020.08.27 1239
1703
<수요힙합> 신나는 건 싫은데, 그루브는 좀 타고 싶네요 (1)
송우현 | 2020.08.12 | 조회 774
송우현 2020.08.12 774
1702
고전장편세미나의 동학, 파랑의 책 <박경리의 말> (3)
기린 | 2020.07.20 | 조회 623
기린 2020.07.20 623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