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화장품상식⑤] 나의 최애템 천연비누

자누리
2019-07-1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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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화장품 상식]은 자누리사업단에서 연중 프로젝트인 화장품 만들어보기-수작(手作)을 위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정말 화장품에 대한 상식은 얄팍하지만 혹시 더 묵직한 사유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포부로 글을 이어갑니다.]


머리감는 비누인 샴푸바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작년부터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써보라 하고 피드백을 받았더니 모두 좋아라 했습니다. 제가 천연비누를 좋아해서인지 새로 만드는 제품이 주로 천연비누나 세제 종류입니다. 비누 만드는 법을 처음 배웠을 때는 혼자서 실험에 열을 올리기도 했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비누 만드는 법을 배운 많은 사람들이 그럽니다. 손작업이 주는 희열, 그것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가 봅니다. 천연비누의 매력은 그 것만이 아닙니다. 저의 최애템 천연비누를 소개합니다. 


 


1. 천연비누 탄생의 산고


 


요즘 천연비누 만드는 쇼핑몰들이 워낙 많고 예쁘게 만드는 곳도 많습니다. 저도 문탁에서 작업장을 만들기 직전에 비누 쇼핑몰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문탁에서 같이 하자고 할 때 저 나름 엄청 고민을 했습니다. 단 몇 달 공부를 같이 한 것 뿐인데 이 친구들을 믿어도 될까? 정말 반시장경제라는 이름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텍스트에서 배운 게 그게 아니지 않아? 일단 해보는 거지. 심지어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도깨비를 좋아해서 쇼핑몰 이름을 깨비비누라고 지었었는데, 이것은 도깨비의 선물이다, 뭐 이런 생각(ㅋㅋ).


여하튼 저희가 만드는 비누는 색감도, 모양도 그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아마 기법의 차이가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쁜 비누들은 '녹여붓기라는 기법을 많이 씁니다. 파라핀이나 밀랍을 녹여서 예쁜 양초를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게 비누베이스를 녹여서 만듭니다. 그러나 저희는 비누화 반응을 거치는 기법을 씁니다. 오일을 비누로 재탄생 시키는 기법입니다. 제가 많은 실험을 해봤지만 이 기법으로는 녹여붓기만큼 예쁜 비누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비누화 반응이 시작되면 일단 열이 나고 온도가 올라간 뒤 다시 식어서 고체비누가 됩니다. 사람으로 치면 열병을 앓는 것과 같습니다. 열병 뒤에 지치기도 하고 새사람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처럼, 비누도 온도가 올라가는 정도와 식는 속도에 따라 푸석해질 수도, 매끈해질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조금씩 아기자기한 몰드에 부어서 예쁜 모양을 낼라치면 공기와 접촉면이 넓어져서 더 푸석해집니다. 이런 과정에서 산뜻한 색감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비누화반응은 재탄생의 산고를 치릅니다. 손작업을 뭐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누 제조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비누화반응을 거쳐야 손작업으로 보는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반응을 거치면서 비누는 글리세린이라는 보습 성분 친구와 함께 나타납니다. 이 둘의 결합으로 비누 자체의 보습작용이 뛰어나고, 거의 부작용이 없게 됩니다. 비누 되기 어려운 딱 그 만큼 좋은 평가를 받는 천연비누는 우리 친구들의 에세이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연비누, 그것도 비누화 반응을 거친 천연비누를 좋아합니다.




어성초.jpg


 




2. 고체비누의 과유불급





이처럼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고, 좋은 비누를 만들 수 있어서 천연비누를 좋아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비누를 만들고 자르면 언제나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뭐랄까, 비누에게서 풍기는 고요한 기운이 저를 채워주는 느낌 같은 게 생깁니다. 비누가 주는 그 기운이 뭘까 생각해보니 계면활성제의 역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동안 계면활성제에 대해서 말이 많았습니다. 유해성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제게 이렇게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천연비누는 계면활성제 안 쓰죠?” 그러나 비누를 비롯한 모든 세제는 기본적으로 계면활성제입니다. 때를 제거하는 원리 자체가 계면활성제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오염물 중에서 먼지 같은 것은 물에 씻겨 내려가고, 잘 안 씻기는 ’, 특히 피부의 는 기름성분입니다. 때는 옷이나 피부에 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합니다. 세제는 바로 이 기름-때를 옷이나 피부에서 떨어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화학시간에 배운 원리는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tpwp.png


 


옷에 붙어있는 때의 경계면을 세제 분자 여럿이 둘러싸서 떼어냅니다. 옷에 붙어 있어서 세상 편한 로 하여금 거기를 떠나도록 자극한다는 의미에서 “()계면활성제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므로 계면활성제는 중개자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물과 친해야 하고, 기름에 붙어야 하니 기름과도 친해야 합니다. 그림에서 하나의 분자에 양면으로 있는 친수성기’, ‘친유성기가 그것입니다.




꼭 세제가 아니라도 세상에는 이런 계면활성제의 역할을 하는 것들은 많습니다. 마요네즈의 유화제나 로션의 유화제 등, 하여간 이질적인 것들을 섞어놓는 역할을 하는 것들입니다. 제가 천연비누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계면활성제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비약해서 보자면 계면활성제는 일종의 네트워킹 자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안정을 추구하는 세계와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두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비누는 상온에서 고체상태인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다가 물을 만나면 헬렐레 풀어져서 저렇게 친수성과 친유성의 만남들을 갖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남을 변화시키는 그 기능은 또 다른 중개자인 물을 만나야 작동하는 거지요. 쉬운 게 없습니다. 아마 계면활성제가 너무 활발하면 세상이 변화하는 폭도 너무 커서 살기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저 세상이 완전히 계면활성 상태의 혼돈도 아닌 것이, 완전 계면고착 상태도 아닌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마도 비누를 만들고 자르면서 저는 과유불급의 이치를 깨닫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연비누에 대한 사랑은 천연비누가 제게 주는 선물입니다. 도깨비가 준 선물일까요?


  



3. 게으른 자의 발명




샴푸바를 써보니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비누는 모발 단백질과는 찰떡쿵이어서 모발에 끈적거림이 남아 있습니다. 머리를 시원하게 해주고 물도 많이 안써도 되니 좋은데도 그 끈적끈적, 뻣뻣한 감이 문제였습니다. 처음엔 그걸 보완하기 위해 간단한 헤어미스트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샴푸를 쓸 때에도 늘 영양제의 유실이 아까웠던 기억이 났습니다.




샴푸를 만들 때 많은 영양물질들이 첨가됩니다. 모발에 좋다는 탄력 성분, 보습성분, 그리고 항균 성분들까지. 저희가 특히 애용하는 영양제 둘을 꼽으라면 창포추출물과 실크아미노산이 있습니다. 단오날 머리 감을 때 쓰던 그 창포는 항균작용이 뛰어나서 비듬을 예방해준다고 합니다. 실크아미노산은 모발 단백질 성분을 흡수되기 좋도록 아미노산 크기로 분해한 겁니다. 말만 들어도 모발에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모발에 흡수되기도 전에 샴푸 거품과 함께 씻겨 내려가면 아무 효과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모발이 흡족하게 이들을 먹고 기운을 내려면 물로 씻기 전에 충분히 머리에 마사지를 해주어야 합니다. 꼭꼭 누르고 문지르며 흡수될 시간을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늘 미진합니다. 게을러서 대충하거든요.



그래서 헤어미스트 레시피를 짜면서 샴푸에 들어가던 영양성분들은 모두 넣자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쳤습니다. 머리를 감고 말린 그 후에 마치 스킨처럼 바르면 씻겨 나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임상실험을 한다고 써보신 분들은 모두 흡족해했습니다. 성공인 것 같습니다. 발명은 게으른 자들, 그래서 아쉬운 게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 혼자 합리화해 봅니다. 


 


헤어.jpg




그 동안 정신을 팔던 일 하나가 끝나가니 슬슬 손이 근질거려 옵니다. 새로운 비누를 만들까, 아니면 월든 가서 여름 바지를 만들까, 또는 카시트 만들기에 도전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end)


 

댓글 6
  • 2019-07-16 12:08

    흠...비누 만들기로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시다니!

    역시 좋은 글은 생활속에서 고민한 흔적이 묻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며,,,

  • 2019-07-16 17:50

    "...그러다가 물을 만나면 헬렐레 풀어져서..."

    진지하게 읽다가 헬렐레에서 빵 터짐요. ㅎㅎ

    맞아요. 게다가 여름엔 습도가 높아서 세면대 위에 자누리 비누가 더

    헬렐레 중입니다. 그래도 식구들이 이젠 익숙해져서 꼭꼭 잘 뭉쳐서  쓰네요.^^

    그런데 헤어미스트가 있었네요? 저런!

    문탁에서 손꼽히는 제 긴머리가 임상실험에 안 쓰이다니요.ㅠ

    실망이 실망이.......................

  • 2019-07-18 14:53

    계면활성제의 기능을 똑띠 알아먹었어요^^

  • 2019-07-18 23:16

    음.... 이상하군요...

    게으르면 머리도 천천히 느릿느릿 감는 거 아닌가?

    헤어미스트는 휘리릭 해 버리는 사람들.... 음.... 예를 들면 달팽이? 꿈틀이?

    뭐... 이런 분들이 더 어울려요 자누리쌤 ㅋㅋㅋ

  • 2019-07-19 07:13

    비누바 + 헤어미스트 한 개씩 모셔와서 어제밤 바로 사용했죠. ㅋ

    머리결이 약한 울 어머니도 꼭 써보시겠다고요~

  • 2019-07-20 14:48

    저도 한세트 가져왔어요. 임상실험 후 결과 알려드릴게요.

    굵고 뻣뻣한 머리카락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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