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가타리의 언어철학? - 화행론!!

문탁
2019-05-30 11:11
387

1. 




아, 간만에 몹시 뿌듯했습니다.




특히 블랙커피님의 후기와 이어지는 명식-마음님의 댓글을 보고 나서는




아, 세 사람이 글쓰기 강학원을 하드캐리 하고 있구나 (할 것이다. 혹은 해야 한다^^ ㅋㅋㅋ)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 기쁜 마음을 동학분들께 바로 전달하고 싶었으나... 버뜨... 야탑과 동천동 사이를  오가며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번씩) 홈을 파는 바람에...늦었습니다.







음...뿔옹님과 블랙커피님의 후기와 이어지는 댓글에 어찌 응답해야 하나...를 매우 고민했습니다.




4장과 5장을 다시 요약 정리하는 게 필요할까?




아니면 각 조의 핵심적 질문에 다시 대답하는 게 필요할까?




그것도 아니면 각 분들이 꽂혀있는 것 (예를 들어 라라샘의 '의사소통-공명-주체'의 풀리지 않는 의문,  마음의 '다이어그램', 블랙의 '잉여성과 탈영토화의 관계', 고은의 '도대체 내가 뭘 틀린 걸까요?')에 친절하고 차분하게 응답하는 게 필요할까?







그런데 그 각각의 질문은 결국 들뢰즈/가타리 논의 전체와 연관되는 것이기 때문에...이 짧은 지면에서 잘 정리하는 게 어렵게 느껴져요. 역부족을 실감한다고나 할까...^^










2.




지난 토욜.  하루 5시간*10주 완성 <중론>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사님 말씀 중에 요런 말이 있더라구요. 그 동네 공부에서는  '유7중3'이라는 말이 있다는 겁니다. 구,인,명,유를 7년 공부하고 중관학을 통해 7년간 배운 것을 논파하는 공부를 3년 하는 거래요. 그럼 기본적인 공부 끝!!




음..그 때 제 기분은...뭐랄까..... 아~~놔~~ ......뭐 이런 것? ㅋㅋ




중관학이라는 어려운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유식을 포함한  무지 어려울 것으로 짐작되는 불교 교학 공부를 7년 해야 하는데, 그 공부조차 나중에 깨지기 위해서라니... 뭐 어쩌라구...라는 생각이 들었던거죠.



게다가 나중에 찾아보니까 구,인,명,유가 아니라 구사론, 인명론, 유식학이예요. (구, 인명, 유)


인명을 인, 명이라고 받아쓰는 수준인데 도대체 올해 중론 공부를 제대로 할 수나 있는건지... 어쨌든 결론은....이 생에서는 깨닫지 못하고 죽겠구나...라는 것^^




그런데 <천의 고원>도 비슷해요. 우리가 이것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저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어려움이라기 보다는 (사실 전 그들의 주장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깨려고 하는 것들 - 플라톤, 데카르트, 라캉, 소쉬르 등-을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들을 깨기 위해 아주 세심하게 동원하는 개념들의 맥락과 뉘앙스를 (이건 또 니체, 베르그송, 스피노자, 푸코 등과 연동되어 있죠)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약서를 통해 그들 주장을 결과적으로 획득/소유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결론이 아니라 그들의 과정입니다. 탈영토화라는 개념을 정보적으로 습득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기존의 서양철학의 논리, 혹은 당대의 이론적인 통념으로 부터 어떻게 탈주하고 있는가를 알아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아주 올드하고 재미없는 국어선생처럼 텍스트를, 텍스트를 읽고 또 읽고, 줄을 긋고, 단락을 나누고, 키워드를 뽑아내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3. 


<천의 고원>은 어떤 책일까요? 이것에 답하면 우리 공부 끝? 음.....아마도.......끝!! ㅋㅋㅋ




공식적으로 그것의 부제는 "자본주의와 분열증2"입니다. 앞서의 <앙띠 외디푸스>의 부제가 "자본주의와 분열증"이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지만 첫 시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앙띠 외디푸스>와 <천의 고원> 사이에는 연속성 못지 않게 어떤 단절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것이 이론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정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들은 더 차분해지고 더 신중해졌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어떤 '지층'을) 벗어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 그들이 더 분석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구조와 그것의 변화를 동시에 사유할 것. <천의 고원>은 강고한 어떤 지층(사실 그것을 꼭 '자본주의'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에 붙들려 있는 우리에게 그 지층을 분석할 개념적 틀을,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념적 틀을 제공합니다. 





"지도나 리좀이 본질적으로 다양한 입구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충분히 조심한다면 우리는 심지어는 사본들의 길이나 뿌리-나무들의 길을 통해서도 거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막다른 골목에 들어설 수밖에 없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권력들과 주체적인 변용들을 거쳐갈 수 밖에 없고, 편집증적 구성체나 그보다 더 나쁜 오이푸스적 구성체에, 즉 다른 변형 조작들을 가능케 하는 굳어진 영토들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정신분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받침점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다른 경우데 우리는 직접 도주선에 기대게 될 것이다. 지층들이 파열하도록 해주고 뿌리를 끊고 새로운 연결접속들을 작동시키는 도주선 말이다. 따라서 가변적인 탈영토화 계수들을 가진, 사본-지도들이나 뿌리-리좀들 같은 서로 아주 다른 배치물들이 있게 된다...우리는 보편소를 함축하는 이론적 분석이 아니라 다양체들 또는 강렬함의 집합들을 구성하는 화행론을 가지고서 이런 것을 식별해내야 한다. 나무의 심장부에서, 뿌리의 공동에서, 가지의 겨드랑이에서 새로운 리좀이 형성될 수 있다" (1고원 리좀 중에서, 35쪽)  (제가 줄을 친 부분은 이번 시즌 우리가 공부하는 것과 직접 관련된 부분입니다)






하여, 우리는 그것을 가장 정치적이고 (미시분석)이고 윤리적인 (탈주선 혹은 되기) 텍스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지요.  







4. 


수업시간 중 매주 반복해서 말씀드리고 있지만 "우리와 관련된 세 개의 커다란 지층을, 즉 우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구속하고 있는 세 개의 지층인 유기화, 의미생성, 주체화를 생각"하는 것(6고원, 기관없는 몸체, 306쪽)이 중요합니다. 역시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그 어떤 지층'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불가피합니다. (하여... 뿔옹님 조에서 나온 것과 같은 "모든 주체화란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 지층을 틀린 것, 잘못된 것, 못된 것으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 (푸코식으로 말하면 '대문자 권력'을 상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지층화의 산물로, 어떤 배치의 결과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그게 알파고 오메가입니다. ㅋㅋㅋ 




이번 시즌에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세 가지 지층 중 바로 의미생성과 주체화의 지층입니다. 4장(언어학의 공준)에서는 기표체계(system)라는 지층을, 5장(기호계)에서는 주로 주체라는 지층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일 우리가 다룰 7장(얼굴성)은 이 기표화와 주체화가 동시적으로 작동하면서 구성되는 얼굴성의 이야기입니다.



 4장의 논의 핵심은 소쉬르식의 언어학이 언어학의 전제(공리,공준)가 아니라 언표활동의 특정 결과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화,행에서 화(랑그)가 본질이고 행(빠롤)이 잉여가 아니라 거꾸로라는 것.  그 잉여가 본질인데 그 화행으로부터 행을 배제하면서 지층화된 것이 랑그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푸코의 언표이론에 깊숙히 기대고 있는 이 장은 (그래서 제가 <지식의 고고학>, <담론의 질서> 같은 책을 가져가고 복사해서 뭐라뭐라 떠들었지만...음...대부분은 이러셨을 듯. "이것은 또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ㅋㅋㅋㅋ) 그래서 언어의 본질은 언표행위(화행)의 집단적 배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언어(랑그)에 붙어있는 어떤 잉여성 -어떤 음색, 감정, 맥락, 관계망, 사회적 조건...-이 선재하는 것이고 랑그는 이 속에서 도출되는 것이지요. 논리적으로 언어-랑그-기표체계속에 탈주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것(랑그)이 이러한 잉여성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표와 행위 사이에 내적 관계, 내재적 관계는 있지만 동일성은 없다. 차라리 그 관계는 잉여의 관계이다. " (4고원, 언어학의 공준, 155쪽)






5. 


제가 이렇게 주절이 주절이 쓰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블랙커피샘 조의 질문 "기표작용적 체제와 후-기표작용적 체제는 무엇으로부터 탈영토화 한다는 것인지, 그리고 여기서 잉여는 어떻게 관여하는지에 대해 서로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기표체제라는 지층(기표적 기호계), 주체라는 지층(후기표적 기호계)은 어떤 지층화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랑그로 추상화되지 않는 (들뢰즈는 이것을 랑그의 문제는 추상적이어서가 아니라 차라리 덜 추상적이어서 문제라고 하죠) 아니, 랑그로 추상화되기 이전의 어떤 "언표적 장"(푸코식으로 말한다면 말입니다) 속에서 특정 요소들의 관계가 굳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탈영토화'를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토 자체가 (영토화되기 이전의 어떤 질료적 흐름으로부터의) 영토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이고, 랑그 이전에 언표적 장(잉여) 이 있기 때문이고, 주체 이전에 이미 도주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블랙커피샘의 질문은 이렇게 변환되어야 합니다. "기표적 기호계에서의 탈영토화와 후기표적 기호계에서의 탈영토화는 어떻게 차이가 날까?" 혹은 "잉여성의 두가지 형식이 '빈도수(이건 기표적 지층과 관련)'와 '공명 (이건 주체 지층과 관련)'이라면, 이 두 가지 다른 잉여성의 형식으로부터 두 기호계의 탈영토화의 성격은 어떻게 달라지는 것일까?"라고 말입니다.




저자들은 그것을 기표적 기호계에서의 탈영토화는 상대적 탈영토화에 머물고 (결국 재영토화)... 절대적 탈영토화처럼 보이는 후기표적 기호계에서의 탈영토화 역시 구멍에 빠지면서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재영토화). 이런 두 가지 재영토화가 얼굴을 이룹니다^^




제3의 탈영토화, 혹은 절대적이고 긍정적인 탈영토화의 논의는 5장 말미에서는 다이어그램-추상기계에 대한 논의로  7장에서는 얼굴지우기-되기의 논의로 이어집니다.












**자, 근데 제가 주절이 주절이 떠든 것은 대체로 블랙커피샘 조의 토론을 통해, 그리고 블랙커피샘과 마음님의 복습조의 토론을 통해, 그리고 다시 블랙커피샘의 개인적 복습을 통해 다 정리하신 내용입니다. 표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대동소이한 내용을 제가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특별한 것도 없구요. 하지만 응답한다는 차원에서 몇 자 적었습니다. 그리고 적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합시다. 저도 지겹네요. ㅋㅋㅋㅋ



댓글 2
  • 2019-05-30 19:54

    후기 올리고도 뭔가 해소되지 않은 것이 목에 딱 걸려 있었습니다.

    샘의 긴 응답을 읽으며 그것이 쏴악~~~내려갔습니다. 

    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rabbit%20(32).gif

  • 2019-05-30 20:18

    저도 좀 더 잘 정리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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