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 마지막, 장자 집중 세미나 후기

지원
2019-04-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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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다 멤버들과의 짧은 휴가를 앞두고 공항에서 후기 남깁니다. 장자+들뢰즈 세미나 1시즌의 마무리, 미학 세미나 1시즌의 마무리, 보릿고개 두 번째 글, 공모사업 마감, 기타 베트남 여행 가기 전 끝내야 할 일들로 정말 정신없는 한주였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을 마무리 하고 공항에 도착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마지막 주 장자 집중 세미나의 후기를 전하겠습니다.

 

마지막 시간은 멤버 전원이 장자 씨앗문장 글쓰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각자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던 문장을 가지고 나름대로 미니 에세이를 써오는 것이었지요. 저는 덕충부 편의 첫 에피소드, 왕태 이야기에 나오는 말 없는 가르침不言之敎을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덕충부 편에 들어오자마자 제가 꽂힌 문장입니다. 장애인인 왕태는 주장도 가르치는 바도 없는데 많은 사람이 그를 따릅니다. 이를 본 공자의 제자 상계는 스승에게 묻습니다. “정말 말 없는 가르침이라는 것이 있어서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깨닫는 것일까요?” ‘말 없는 가르침이란도덕경에 나온 말로, 안동림의 해석에 따르면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마음의 덕으로 저절로 감화시키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우리는 말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말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말에 집착하고, 말에 괴로워합니다. SNS는 특히 말들의 홍수이며, 말들의 전쟁터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말 없는 가르침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SNS의 불편한 말들, 친구들의 감수성 부족한 언사들에 병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차단하고, 분노에 차 댓글을 달고, 불편한 언사를 하는 친구 앞에선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친구들도 팔로워도 줄어만 갑니다.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공허하고 외롭습니다. 반면 왕태는 말하지 않는데 많은 자들이 그를 따른답니다. 나는 그들과 나의 차이, 그들이 하는 말의 옳고 그름에 집착했습니다. 그러나 왕태는 만물이 하나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마치 들뢰즈와 가타리가 만물이 강도로서, 질료로서 하나라고 말하듯, 차이는 속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하듯 그는 고요한 물과 같이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이 아닌 고요한 물에 자신을 비추어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그가 요동치고 혼란한 말로써 그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전히 친구들의 언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고, 5.18에 대한 망언을 하는 자유한국당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SNS의 뻘 글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찌 만물을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일까요. 수행이 필요한 일일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수행은 필요합니다. 말로만 들뢰즈를 공부하고, 말로만 장자를 공부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앞으로는 말 너머의 것을 잘 살피도록 해야겠다, 그것이 내가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데에 가장 시급한 과제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에세이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느끼기에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 속에서 쓰여진 것 같은 라라선생님의 에세이가 좋았는데요, 저는 왠지 이번 시즌 라라샘(고은이도!)이 전날 저녁에 미리, 그리고 꾸준히 올리신 메모 덕에 장자의 많은 부분들을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있으면서 없는 상태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라는 것이 연기적인 조건에 따라 형성된 것임을 자각하는 것이 첫 단계일 것이다. ‘라는 사람도 내가 살아온 환경이나 조건이 달랐다면 타고난 기질은 같더라도 성향, 취향, 가치관은 달라져 있을 터이다. 그 맥락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면 원래 내 것이란 없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고착된 자아가 없으니 외물과 접속하는 자아는 자유롭다.(라라샘 글 중)”

 

라라 선생님 역시 장자의 수평의 점을 들뢰즈와 가타리의 강밀함들이 연속되는 상태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아가 물의 흔들림 또한 물의 수평을 위한 운동으로 정의해주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그리고 공동체는 저 물통 안의 물처럼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물이 그렇게 흔들리는 것은 새로운 자극에 따라 새로운 수평을 구성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만일 그것을 의식하고 방향을 탐색하고 있다면, 비록 흔들리고 있을지라도 그 파동의 리듬을 타며 노닐 수 있을 것이다.”(라라샘 글 중)

 

블랙커피님의 진솔한 고민이 담긴 에세이도 좋았습니다. 비록 문탁샘은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하고 물으셨지만, 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솔직한 고민, 그것으로부터 한발 나아가고 싶은 블랙님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이 고민이 저의 것과 비슷해 감정적으로 공감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문탁샘의 핀잔에 저도 같이 뜨금;).

 

스피노자를 공부하며 유아독존에서 벗어나 공통개념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알게 되었지만, 자꾸 자신의 표상 안에 갇히는 나를 본다. 요즘 들어서는 공통개념 형성이 난점이 많다는 점만 거듭 확인하였기에 마치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사물이 분할되지 않고 하나인 곳(텅 빈 상태),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없는 경지에서 사물들이 서로 되어감을 보고 응하는 애태타의 인기비결. 이것은 나의 표상을 뚫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지대를 발견하게 해준다. 과연 이 공부와 함께 나도 인기인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블랙샘 글 중)”

 

함께 고민하고 시도해 본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즌 2공부를 통해 조금 더 공통개념, 수평의 점, 충만한 신체에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모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마침 비행기가 들어왔다는 안내가 나오네요. 몸 건강히 다녀오겠습니다. 여러분도 짧은 방학 푹~ 쉬세요.

댓글 1
  • 2019-04-27 19:35

     들뢰즈 세미나의 개념 정리보다 각자의 이야기와 문제의식들이 더 잘 드러났기에 개인적으로는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시즌 동안 장자를 함께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모두가 각자 장자를 통해 꼭 풀고픈 화두가 하나쯤은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원에게는 말의 화두가, 블랙커피님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의 화두가, 타라쌤께는 영화를 계속 할 것인가의 화두가, 제게는 인위와 무위의 화두가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그 화두들을 풀기에 한 시즌만으로는 아직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제 첫 시즌이 끝났고 앞으로 세 시즌이 더 남았습니다. 앞으로도 공부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모두들 서로 의지하며 끝까지 완주하여 각자의 화두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는 일 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문탁샘을 포함하여 모두 정말 수고하셨고, 5월 10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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