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可曰否 논어>32회 - 내가 공부하는 이유

여울아
2018-10-22 07:06
353

  <曰可曰否논어>는 '미친 암송단'이 필진으로 연재하는 글쓰기 입니다.



子曰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

仁者 安仁 知者 利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곤궁한 상황을 오래 견뎌낼 수 없으며 즐거움에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어진 사람은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 (리인편 2)


 

동양고전을 공부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이다. “공부를 계속하면 나도 변하겠지?” 나는 적어도 이 공부가 자신에게 이롭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 공부를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마저도 그만두면 나는 어진 사람(仁者)은커녕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뭣 좀 아는 사람(知者)이 되려고 공부한다.

하지만 인자와 지자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인자는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지자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닥치면 태세전환을 쉽게 한다. 평소에는 인자와 지자 둘 다 인을 추구하며 산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두 사람의 차이는 극명히 드러난다. 지자는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 못가 인을 포기한다. 심지어 잘 나갈 때조차 지자는 맘껏 오래 누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만심에 빠져 주변과의 관계를 망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인자는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상황 변화에 따라 적응하며 자신의 길을 간다. 즉 인자란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인을 편안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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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는 <논어>에서 대표적인 인자이다. 공자는 다른 제자들은 하루나 한 달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을,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다고 평가한다.(옹야 6) 여기서 인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안회가 산속에 들어가 혼자 도를 닦는 것처럼 상상하면 안 된다. 나는 오히려 안회가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었다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인은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덕목(마음 다스리기)이기 때문이다공자는 그가 배우기를 좋아했기(好學) 때문에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옹야 2). 흔히 호학자(好學)라고 하면 책 읽는 공부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공자는 책읽기보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신의가 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을 더 강조한다(학이 6). 공자에게 호학자란 인간관계를 잘 풀어내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런 차원에서 호학자 안회의 안빈낙도(安貧樂道)는 재해석을 시도해볼만 하다. 일반적으로 안빈낙도라고 하면 깊은 산속에서 흐르는 물과 하늘을 바라보는 한갓진 생활을 떠올린다. 그러나 <논어>에는 안회가 공자의 제자가 된 후 공자의 무리들과 떨어져 지낸 기록이 전혀 없다. 안회는 공자가 정치적 목적으로 천하를 주유하던 때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공자를 따라나섰다. 당시 관직에 오르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고향땅에 남은 제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안회는 스승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사람들과 살며 부대끼며 가난한데도 기꺼이 즐겁게 공부했다. 대나무 밥 한 그릇과 물 한 모금이면 충분하다(옹야 9)는 그의 안빈낙도는 공동체와 함께하는 삶이었다. 이렇게 곤궁한 삶을 견딜 수 있던 것은 그가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마음을 다해 실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논어>에서 인()은 앎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배움이고, 아는 대로 실천하는 삶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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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논어>로 왈가왈부하는 내 차례는 마지막이다. 2012년 이문서당과 학이당에서 처음 논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후 다시 <논어> 전편을 공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듬성듬성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이렇듯 매일 두세 개씩 문장을 암송하는 일은 낯선 경험이었다. 그러니 내가 이전에 알던 문장도 새롭게 읽히고, 어느 순간 감동을 주었다. 물론 이런 것이 있었나 싶게 완전히 잊힌 문장도 많았다. 오늘은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공동체에서 공부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제자 안회를 소개하고 싶었다. 나는 아직 곤궁하지도 않은데 미리 곤궁해질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두려움 때문에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부터 버리려는 것이 아닐까? 인자가 되지 못한, 지자(라고 쓰고 지자라도 되자라고 읽자)는 어쩌면 이런 질문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공부하는 이유이다.


 






댓글 1
  • 2018-10-22 08:41

    왜 내가 뿌듯하고 왜 내가 뭉클할까? 

    내가 논어를 다시 다 읽은 것도, 왈가왈부를 마무리하는 것도 아닌데...ㅋㅋㅋㅋㅋ

    여울아........rabbit%20(3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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